삐걱대는 택시, 감차 없이는 전부 망한다
삐걱대는 택시, 감차 없이는 전부 망한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3.22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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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카 시대’ 택시산업 이미 사양산업화 진행
구조조정 없는 정부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사건]택시 감차 논란과 택시산업

운수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대개 그렇듯 택시운전을 하는 노동자들 역시 낮은 임금과 장시간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위해 부산시청 앞 광고탑에서 200일이 넘도록 고공농성을 벌였던 택시노동자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노동자들은 지난해 7월 출범한 택시협동조합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택시업계의 노동조건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납금을 없애야 한다느니, 유류비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느니 말은 많지만, 무엇보다 택시산업의 체질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참여와혁신 DB
나락으로 떨어진 택시운전자의 삶

대구 수성갑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진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설 연휴 첫 날 올린 트위터 게시물이 화제가 됐다. 김 전 지사는 지난 2월 5일과 6일 이틀 동안 대구지역에서 택시운전을 한 뒤에 트위터를 통해, 이틀 동안 16시간 택시운전을 하고도 사납금을 내고 나니 최저임금도 안 됐다며 소감을 밝혔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에 덧붙인 “대구택시 너무 많아 감차가 필요합니다”라는 말 때문에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았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사납금이 불법인 거 모르시냐”며 “사납금 바치라 강요하는 기업을 때려잡아야지 (시간당)임금 5천 원 이상 못 받는다고 일부를 잘라내서 임금을 올린다는 거냐”는 내용의 답글을 달았다. 400명이 넘는 트위터 이용자들이 그가 김 전 지사를 향해 날린 ‘일침’을 퍼 날랐다.

그럼에도 결론적으로 김문수 전 지사의 트위터 발언은 택시노동자들의 노동실태 개선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지는 못했다. 심지어 김 전 지사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보도한 언론들도 누리꾼들의 반응을 단순히 소개할 뿐 구체적으로 택시노동자들이 얼마나 일하고 얼마를 받는지,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조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 전 지사의 발언에 택시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포함한 택시산업의 사정이 압축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2012년에 한국노동연구원은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전택노련)의 의뢰를 받아 ‘택시 장시간노동 개선을 통한 사회공공성 강화 방안 연구’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특별시 또는 광역시를 비롯한 대도시 법인택시 노동자의 1일 노동시간은 근무형태에 따라 9시간 32분(1일 2교대제)에서 최대 15시간 57분(격일제)까지 달했다. 2000년대 들어 급격하게 증가해 1일 2교대제 다음으로 많은 근무형태인 ‘1인 1차제’의 경우 1일 노동시간이 평균 11시간 50분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조사된 노동시간이 타코미터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출근 직후부터 퇴근 직전까지의 시간은 다소 길 것으로 풀이된다.

법인택시 노동자가 한 달에 받는 급여의 경우 지역별, 근무형태별로 편차가 있지만 대체로 120만 원에서 180만 원 선에 머물렀다. 이는 크게 기본급과 개인수입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2009년 택시업계에도 최저임금제가 적용되면서 기본급이 최저임금을 충족하지 못하는 일이 생겨났다. 그러자 법인택시 사업자들은 산정노동시간을 줄이는 수법으로 최저임금 위반을 피했다. 지난해 부산시청 앞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던 택시노동자가 소속된 한남교통 역시 이와 같은 편법을 동원해 노동자들에게 월 40만 원에 불과한 기본급을 지급했다.

게다가 택시요금이 인상될 때마다 사납금도 지속적으로 올라 대부분의 법인택시 노동자들이 더 오랜 시간 일함으로써 이를 충당한다.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면 기본급에서 공제가 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이를 놓고 박계동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택시 사납금제는 사업주 선이익보장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그런데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택시운전은 꽤 괜찮은 직업이었다. 지금처럼 노동시간이 길지도 않았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1980년대의 산정노동시간(임금협정서상 기준이 되는 노동시간)은 대체로 8시간이었는데, 이 시간 내에 사납금을 채우고 개인수입을 추가로 올릴 수 있었다. 또 1990년대에는 산정노동시간이 7시간 20분으로 줄었지만, 이 시간 내에 사납금을 채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산정노동시간이 6시간대까지 줄어들면서 이 시간 내에 사납금을 채우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임금협정서상 기준이 되는 노동시간 내에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게 된 데에는 산정노동시간 자체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택시의 공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그 수요는 외려 감소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1990년대 무렵만 해도 지금처럼 대중교통망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자가용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결국 자연스럽게 택시로 교통수요가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 각 가정마다 한 대의 자가용을 보유하는 이른바 ‘마이카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대중교통도 더욱 발달함에 따라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시 증차는 꾸준히 이루어져 1994년 19만 1천 대 수준이었던 전국택시 수는 2011년 25만 5천 대에 달하게 된다. 이 기간 중 택시 차량 수가 6만 대 가량 늘어난 이유는 개인택시 면허 수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법인택시의 차량 수는 1994년 8만 7천여 대에서 2011년 9만 1천여 대 수준으로 약 5%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하지만 개인택시의 차량 수는 같은 기간 10만 4천여 대에서 16만 3천여 대로 50% 넘게 폭증했다.

이와 같은 개인택시 중심의 택시 증차에 대한 원인으로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는 개인택시면허 발급권자인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지목했다. 도시의 인구나 택시의 수요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선거에서 개인택시 운전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무분별한 증차를 감행해 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1985년 5만 2천여 명에 불과하던 개인택시 운전자 수는 2001년 14만 1천여 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또한 2001년에 비해 2011년에 법인택시 운전자 수가 6만여 명 줄어든데 비해 개인택시 운전자 수는 같은 기간 오히려 2만여 명이 늘어났다.

개인택시 면허를 받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법인택시 운전 경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인택시 증차가 이루어지면서 법인택시에서 개인택시로 옮겨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는 법인택시 운전자 수가 줄어드는데도 불구하고 법인택시 차량 수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1일 2교대제가 무너지고 1인 1차제가 확대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공급 늘고 수요 줄었지만 업계는 무대책

1인 1차제가 늘어나면서 법인택시 노동자 한 사람이 부담해야 할 사납금은 늘어나고 노동시간도 길어졌다. 여기에 택시 차량 수는 늘어날 대로 늘어난 상태에서 더 줄지 않아 만성적인 공급과잉 상태가 됐다. 택시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기 때문에 택시운전자 한 사람이 벌어들이는 수입인 1인당 운송수입금의 성장세도 둔화됐다.

개인택시의 경우 차량 수가 늘어나면서 1인당 연간 운송수입금은 2001년 3,157만 원에서 2011년 3,388만 원으로 7.8% 늘어나는데 그쳤다. 법인택시의 1인당 운송수입금은 2001년 1,789만 원이었던 것에 비해 2011년에는 51.4%가 늘어난 2,708만 원으로 조사됐지만, 이는 법인택시 운전자들이 대거 줄어든데 따라 1인 1차제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택시요금이 두 배 가까이 오른 점과 사납금 또한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법인택시 노동자들의 월수입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논란이 됐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택시 감차가 필요하다”는 발언은 틀린 말이 아니게 됐다. 택시 ‘감차’를 택시운전자 ‘감원’으로 오해한 일부 누리꾼들이 “택시기사를 해고해 최저임금을 보장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데 따른 해프닝이 었던 셈이다. 택시 감차는 오히려 노동조합에서 요구해 왔다. 김 전 지사가 했던 문제의 발언에 대해서도 노동계에서는 “문제없다”는 반응이다. 전택노련은 지난 2월 15일 성명을 내고, “전국 택시 26만여 대 중 공급과잉으로 5만여 대를 감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기관의 용역결과”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감차를 하면 현재 업계 종사자의 처우개선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현재 기사가 없어 1인1차제로 운영하고 있는 형태가 예전처럼 2인1차제로 운영되어 고용도 확대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택시의 차량 대수를 줄이는 일도 필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줄어드는 택시 수요를 늘리는 일도 중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가 작성될 당시 연구자로 참여했던 법무법인 이산의 이문범 노무사는 택시의 수요 감소 문제에 관한 한 노동조합과 사업조합 모두에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시간당 운송수입금이 얼마인지에 따라 법인택시 운전자의 임금이 결정된다”고 지적하면서 “전체적인 구조에서 택시 승객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문범 노무사는 특히, “대중교통인 버스보다 택시가 먼저 정부 지원이 이루어졌다”며 정부가 택시회사의 옥석을 제대로 가리지도 않은 채 무차별적 지원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액화석유가스법 개정안의 2017년부터 중고 LPG 택시의 일반인 판매 허용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그는 “중고 택시를 팔아 100만 원을 받는다고 해도 얼마나 되겠느냐”며 “택시산업의 파이를 키우는 게 중요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대중교통 소외지역을 공략하고 노선택시를 도입하는 등 수요를 끌어낼 방법을 업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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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차보상금으론 안 돼, 남은 방법은…

결국 죽어가는 택시산업을 살리고 택시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택시 공급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실제로 정부는 택시의 공급과잉이 문제가 되자 지난 2004년 지역별 총량제를 도입하고, 2005년에는 지자체 차원의 임의적인 택시 증차를 제한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각 지자체에서는 업계 자율감차 형태로 감차를 추진하고 있으나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대전광역시의 자율감차 사례가 있다. 대전시는 지난 2014년 12월 택시 자율감차보상사업을 확정하고, 2015년 3월까지 시범사업을 벌인 후 해당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당시 대전시는 시내 8,850대의 택시 중 1,336대가 공급과잉 상태인 것으로 파악하고, 이를 8년 동안 단계적으로 감축해 나간다고 밝혔다. 또한, 차량 한 대당 법인택시 3,600만 원, 개인택시 9,000만 원의 감차보상금을 지급해 업계의 자율적인 감차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개인택시면허의 시세가 9천만 원을 넘어가는 상황에서 업계의 자율적인 감차를 유도하기에는 감차보상금이 부족했다. 게다가 감차보상금 전액을 시 재정으로 충당하는 것이 아니라 시는 개인택시와 법인택시 무관하게 1,300만 원의 보조금만 지급하기로 했다. 이에 나머지 재원은 업계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키로 하면서 2015년도 감차 목표치인 167대에 턱없이 못 미치는 54대 머물렀다. 자율감차를 통해서는 택시 공급을 줄이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웠던 셈이다.

이 때문에 자율감차보다 더 적극적인 대책이 강구된다. 승차거부, 사고율, 서비스 등을 업체별·개인택시사업자별로 엄격하게 평가해 우수업체는 지원을 강화하고, 부실업체는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노동조합에서 오히려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아예 시장원리대로 다 풀어버리라”며 하소연하기도 하는데,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력한 감차정책과 더불어 근로기준법 제59조, 이른바 ‘근로시간 특례조항’에서 운수업을 제외시킴으로써 1일 2교대제를 정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노동시간을 근로기준법에 준하는 수준으로 제한하면 택시의 공급을 줄이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택시 문제를 오래 연구해 왔던 이문범 노무사는 이와 같은 방안들이 실현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어떤 식으로든 택시운송 시장을 크게 한 번 뒤집어엎을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택시업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결국, 택시업계를 구성하는 당사자들의 구조조정에 태도 변화가 무엇보다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