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항공’ 오명은 누가 만들었나
‘땅콩항공’ 오명은 누가 만들었나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3.2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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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에 쟁의 돌입한 ‘파일럿’들
임금인상률 37% 요구의 전말
[사람]이규남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위원장

지난 2월 20일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위원장 이규남)이 ‘준법투쟁’에 돌입했다. 지난 2005년 파업 이후 11년 만의 쟁의행위이다. 이규남 위원장은 2005년 파업 당시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으로 파업이 중단됐던 경험을 꺼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필수공익사업장 지정으로 “전혀 노동3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규남 위원장의 이 같은 이번 쟁의행위에서 준법투쟁을 강조하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 측은 이규남 위원장과 노조 집행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법원에는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상태다. 사측의 법적 대응이 있기 바로 전날인 2월 24일 이규남 위원장을 만나 이번 쟁의행위의 전말에 대해 들었다. 같은 달 25·26일 진행된 정기대의원대회에 관한 내용은 추후 서면으로 인터뷰한 것이다. 

 이규남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위원장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gmail.com

임금인상률 37% 요구안은 타 사업장에 비해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렇게 높은 요구안을 사측에 제시한 배경은 무엇인가?

“2000년도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후로 두 번의 파업과 그에 준하는 여러 가지 싸움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2005년 파업 당시 대한항공이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됐다. 만약 파업을 하더라도 국제선은 80%의 인원을 남기고 20%만, 국내선은 전체 인원의 50%만 파업에 참가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긴급조정으로 합법적인 공간 내에서는 아무 것도 못했다. 파업이 강제로 중재된 거다. 사실상 우리가 전혀 노동3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돼버렸다. 우리가 파업을 해도 회사는 여론을 등에 업고 긴급조정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겁을 안 먹는다. 실질적인 임금인상은 고사하고 근로조건을 지속적으로 저하시켜 왔다.

그런데 회사에 물어보니까 조양호 회장은 작년 3분기 동안 51억을 받아갔다더라. 언론 보도를 보면 조 회장이 가진 대한항공 지분이 0.01%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주주로써의 배당이 아닌 경영보수로 수십억씩 받고 있고, 퇴직금을 대폭 인상해서 만약 지금 퇴직하면 56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받게 돼있다. 뿐만 아니라 작년부터 이어지는 초저유가의 호재에서도 회사는 수천억 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데도 그 부실 경영의 책임을 그 누구도 지지 않고 있다. 그러던 중에 한 언론에서 조양호 회장의 올해 보수인상률이 37%라고 보도한 내용을 근거로 우리 노동조합도 회장보수와 동등한 인상률을 제시한 것이다. 보도내용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가 제시한 37%라는 의미는 상징적인 의미로써, 부의 올바른 분배와 경영정상화를 촉구하는 의미로써 제시한 거다.” 

조양호 회장 일가의 경영실패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구체적인 사례로 들면 대한항공이 지난 2007년 미국에서 담합행위로 3억 달러의 벌금을 맞았다. 그러면서 2007년 2분기 경영실적이 2,100억 원 적자로 순식간에 돌아섰다. 몇 년에 걸쳐서 조금씩 벌었던 이익들을 단 한방에 날려버린 거다. 또한 얼마 전 땅콩회항 사건에서 봤던 것처럼 경영자라는 사람이 경영 능력을 가지고 보직을 맡고 있는 게 아니라, 경영 능력이 안 되면서도 회장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경영을 맡아왔다.

그리고 항공업계의 가장 중요한 경영 3요소는 유가, 환율, 금리다. 작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초저유가 기조가 이어져 배럴당 20달러대까지 유가가 떨어졌다. 이처럼 대한항공이란 기업이 장사를 하면서 원자재 값이 거의 들지 않는 상황인데도 수천억 원의 적자를 냈다. 그렇다면 최고경영자인 조양호 회장은 어떤 책임을 졌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땅콩회항 사건도 이와 같은 책임지지 않는 경영, 부의 독식, 직원을 종처럼 부리는 회사의 분위기가 누적되어 쌓인 결과물이다.” 

 이규남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위원장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gmail.com

이번에 쟁의행위에 돌입하게 된 배경 중에 중국 항공사로 옮겨가는 조종사들이 많다는 점도 있다고 들었다. 조종사들이 이직을 하는 이유가 뭔가?

“우선 임금 문제가 제일 크다. 그렇다 해도 대한항공에 거는 조종사들의 희망이 있으면 남겠는데, 대한항공을 떠나는 조종사들은 이 회사는 희망이 없다고 한다. 가정이나 인간관계 같이 대단히 많은 걸 포기하고 나라를 떠나서 일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물론 우리가 조양호 회장처럼 수십억씩 달라고 떼를 쓰는 게 아니다. 하지만 대한항공의 조종사들이 누구는 보수를 51억씩 받아가고, 560억이 넘는 퇴직금을 받는다는 소식에 허무함을 느끼고 있다. 말로는 명품 항공사라고 하는데, 조종사들에게 자신의 월급이 적당한 수준인지 고민하게 만든다면, 과연 이 회사가 안전을 위해서 무엇을 투자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국 항공사들이 한국인 조종사들을 대거 스카우트 하면서 3~4배의 높은 연봉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비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가령 예전에 부산에서 비행기 한 대가 뜨다가 도어 언락 라이트(door unlock light) 신호가 들어왔다. 잠겨있어야 하는 문의 자물쇠가 풀려있다는 신호였다. 비상조치 절차에 보면, 여압(항공기 내 기압)이 이상이 없을 경우, 계속 운항할 수 있다고 돼있다. 이건 가라는 게 아니라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때 가장 안전한 길은 공항에서 막 이륙했기 때문에 기수를 돌려서 다시 착륙하는 것이다. 낮은 고도에서는 지상과 기압차가 적기 때문에 이상이 없더라도 높은 고도에서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 비행기를 착륙시켰는데 회사에서 처벌을 했다. 이러한 일들에 실망한 조종사들이 떠나는 것이다.”

그 외에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11년 만에 쟁의행위 절차를 밟은 다른 이유가 있다면?

“현재 조종사들의 비행시간은 항공법과 단체협약의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러한 제한이 있는 이유는 오직 항공안전을 위해서다. 예를 들어 조종사 한 명이 하루에 조종업무를 할 수 있는 시간은 8시간으로 법에 정해져 있는데, 자발적으로 초과근무를 해서 돈을 더 벌고 싶더라도 그러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아놓은 것이다. 그 이상 조종하면 승객의 목숨이 위험해 진다는 취지다. 피곤한 조종사가 모는 비행기를 누가 타고 싶어 하겠는가? 그런데 조종사가 대거 중국으로 유출되는 상황에서 남은 조종사로 노선을 운항하려다 보니 각자의 비행시간이 늘어난다. 결국 무리한 스케줄편성을 하는 식으로 항공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영업을 하게 된다.

또한 부족한 인원은 외국인 기장으로 충원하고 있어서 내국인 부기장들의 기장 승급이 적체되고 있다. 기장 승급에 필요한 자격과 경력을 갖춘 경력 있는 부기장들이 대한항공에서의 기장승급의 기회가 수년씩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조종사들이 곧바로 기장으로 승급할 수 있는 저가항공사로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항공을 떠나는 조종사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없으면, 조종사 유출은 막을 수 없다. 그래서 11년만의 쟁의행위에 돌입하면서 까지 부의 올바른 분배와 경영정상화를 외치고자 하는 것이다.”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gmail.com

사측은 이미 임금인상률 1.9%로 협상을 마친 일반노조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조종사노조의 입장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측이 일반노조와 합의한 1.9%는 일반직 직원들의 전체 뜻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일반노조 집행부는 조합원의 뜻도 묻지 않은 채 투표절차도 없이 전격적으로 회사에 위임해 버렸고,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1.9% 임금인상을 발표했다. 땅콩회항 사태 이후 회사의 변화를 갈망하고 있던 전체 직원들의 허탈감과 충격은 굉장히 컸다. 회사가 진정 직원을 생각한다면 경영정상화와 함께, 일반직 직원들의 임금인상률도 조종사노조가 요구하는 인상안과 동등하게 적용해야 한다. 실제로 사내에서 조종사노조를 응원하는 일반직원들의 기대감이 상당히 크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직접적인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어제(2월 23일)도 사측 담당자가 와서 ‘당신들이 하고 있는 쟁의행위는 불법’이라면서 가처분신청을 내겠다는 얘기를 하러 왔다. 위협적으로 공격을 하고서도 ‘그래도 협상을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마치 노동조합이 협상을 거부하는 것 마냥 이런 모양새를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는지 말은 그렇게 하고 가더라. 말이 안 맞는 거다. 협상을 하려면 어떠한 것들에 대해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니 같이 풀어보자는 식으로 나와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실제 파업에 돌입할 수도 있는 건가?

“실제 파업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파업이라는 수단은 회사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이 완전히 없어졌을 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필수공익사업장 지정에 따라 필수유지인원을 남겨놓고 파업에 돌입하더라도, 지방노동청에서 긴급조정의 구실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파업에는 안 들어가는 게 방침이다.

그리고 비록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파업이 가결됐지만, 조종사노조가 원하는 것은 파업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의 불편을 최소화 하면서, 회사의 이익을 빙자하여 소수가 이익을 편취하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 나갈 것이다. 설령 이 과정에서 승객들에게 다소 불편을 끼쳐 드린다 하더라도, 그동안 감춰진 안전 위해요소들이 비로소 바로잡힌다면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서비스를 제공해 드릴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언제라도 회사가 전향적 태도로 나온다면 대화하고 소통 할 것이다.”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 김효진 객원기자 kkimphoto@gmail.com

‘대한항공조종사새노동조합’(새 노조)은 조종사노조의 쟁의행위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앞으로의 투쟁에서 새 노조와의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나갈 계획인가?

“이번 쟁의를 앞두고 우리 조종사노동조합은 새 노조와의 협력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내가 취임하면서부터 새 노조를 찾아가서 논의를 했지만, 규모가 작다 보니까 희생자 구제 대책이 없어서 쟁의에 참여하기 부담스럽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새 노조 안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행동하기를 원하는 조합원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부사정으로 인해 새 노조는 쟁의행위 찬반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고, 쟁의행위에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럼에도 우리 조종사노조에서는 그분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새 노조 조합원들도 찬반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향후 쟁의행위를 이어가면서도 우리 조종사노조가 새 노조 조합원에게 참여를 직접 명령하거나 적극 독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별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환영한다.

뿐만 아니라 향후 전체 조종사의 권익 신장을 위해 장기적으로 양 노조가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이번 쟁의를 통해 우리들의 투쟁이 양 노조 통합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조종사노조는 2월 25·26일 이틀 간 정기대의원대회를 진행했다. 향후 투쟁방향과 관련해 어떤 논의가 이루어졌나?

“일단 이번 대의원대회가 정기대의원대회였기 때문에 1년 동안의 예·결산 심의가 주로 이루어졌지만, 대의원들과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했다. 이번 정기대의원대회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파업이 아니라, 대한항공의 경영정상화 및 부의 올바른 분배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한다. 구체적인 쟁의방향이나 수위는 향후 여론을 수렴해서 쟁의대책위원회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회사는 우리 노동조합의 올바른 행보를 어떻게든 저지하고자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고 쟁의금지 가처분신청까지 내는 등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노동3권을 탄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조종사노조 지도부에서는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안전운항, 준법운항을 통하여 최고의 안전을 추구할 것이다. 만약 그 과정에서 승객의 불편함이 있다면, 그것은 회사가 그동안 불법과 편법을 묵인해 왔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