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기계, 20년 후 노동자의 삶
생각하는 기계, 20년 후 노동자의 삶
  • 성상영, 장원석 기자
  • 승인 2016.04.15 13:55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커버스토리_인공지능 시대의 노동 ①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눈길 끄는 대국이 열리던 날, <참여와혁신> 기자들은 점심으로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결과가 어떻게 될 지 한담을 나누었다. 내기는 하지 않았다.
한 명은 장기나 체스와 달리 아직까지 인공지능이 바둑 프로기사의 수읽기를 따라잡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한 명은 ‘수읽기’ 게임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지 않는 기계가 사람보다 우세하다고 점쳤다. 나머지 한 명은 두 사람의 의견을 적당히 섞어, 대단히 치열한 승부지만 이세돌 9단이 약간 우세할 것이라고 정리했다.
막상 대국의 결과는 떠들썩한 뉴스가 되었다. 최정상급 프로 바둑기사의 참패를 지켜보며 허탈함을 넘어서, 불안을 느꼈다는 반응도 쏟아졌다. 인간의 미래는 이제 어떻게 되는가? SF 영화에서나 보던 시절이 곧 들이닥치는 건가?
잘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조금씩, 하지만 많은 이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깊숙이, 발달된 기술이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의 노동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할까?

 

ⓒ 포토 DB

#1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쉬는 유토피아?

서기 2036년 어느 봄날 김참여(53) 씨는 지난해 개통된 자기부상 지하철을 타고 출근길에 나선다. 계단을 내려가 플랫폼에 들어서기까지 역사 내 직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해 상주하는 네 명의 안전요원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역사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열차운행의 전 과정이 자동화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하는 일은 전자제어 장비의 이상 유무 확인과 도움이 필요한 시민들을 대면하는 것 정도이다.

김 씨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20년 전만 해도 평일 아침이면 지하철역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3일 또는 주4일 시간제 근무가 일반화되면서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따로 없어졌고, ‘러시아워’도 옛말이 됐다.

김 씨는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안경을 끼고 인터넷 뉴스를 검색한다. 총선을 앞두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내놓은 분석 기사가 조회 수가 가장 높다. 기사 작성 프로그램이 과거 수십 년 동안의 정치, 경제, 사회 이슈를 파악해 가장 확률이 높을 거라 판단되는 전망을 내놓는다. 편집장이 하는 일은 프로그램이 쓴 기사를 검토하고, 다듬는 것이다.

김 씨의 현재 직업은 심리상담사이다. 예전에는 심리상담이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치료’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생길 수 있는 고민거리에 대해 상담을 요청해 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김 씨의 고객은 10대 청소년부터 30대 사회초년생, 새로운 직업을 찾고 있는 5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그들은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들을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최근 들어 김 씨와 같은 직업이 많이 생겼다. 새로 생겨난 직종은 대부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돌봄’ 서비스이다. 김 씨의 직업인 심리상담사만 놓고 보더라도 딥 러닝(deep learning)과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하는 로봇이 의뢰인이 느끼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를 포착해 내기는 어렵다. 만약 의뢰인이 자신의 고민을 말하면서 울먹인다거나 격분하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면 사람이 이에 가장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난 20여 년 동안 많은 일자리가 로봇이나 기계, 컴퓨터 프로그램 등으로 대체됐다.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제조업의 생산직은 말할 것도 없고 회계사, 보험설계사, 은행원 등 상대적으로 고소득을 올리던 전문직 종사자 수도 급감했다. 이들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재교육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간다. 만약 단기적인 실업상태에 놓이더라도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일정 금액의 사회임금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김 씨가 상담 준비를 위해 자료를 뒤지던 중 발견한 20년 전 신문기사에는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이 2,285시간으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길다”는 문장이 보인다. 지금은 아무리 많이 일하는 사람도 1년에 1,800시간보다 적게 일한다. 물론 여전히 한국인의 노동시간은 긴 편에 속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쉰다. 최근에는 더 많이 쉬는 만큼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인 사람들이 많아져 ‘여가상담소’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 포토 DB

#2.
기계가 잠식한 일자리, 밀려난 사람들

박혁신(47) 씨는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부터 켰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다. 벌써 2달째 일감을 구하지 못했다. 그나마 조금씩이라도 모아놨던 돈은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몸살만 걸리지 않았다면 잘리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박 씨는 한숨을 푹 내쉰다. 취업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다행히 박 씨가 사는 곳 주변에 한 곳 일자리가 생겼다. 기쁜 마음에 박 씨는 서둘러 지원서를 넣었다. 빨리 넣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먼저 지원해 자리를 차지할지 모른다.

초초한 마음을 애써 달래가며 박 씨는 주변 급식소를 찾는다. 꽤 이른 시간이지만 벌써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국가에서 기본으로 어느 정도의 돈을 주고 있지만 집세와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나면 거의 남는 것이 없다. 돈이 없으면 여기밖에 방법이 없다. 자판기에 주민등록증을 꽂자 식사가 담긴 식판이 나온다. 박 씨는 사람들 사이에서 용케 자리를 찾아내 밥을 먹는다. 예전에는 아주머니들이 식사를 나눠줬지만 지금 그 자리는 자판기가 대신했다. 박 씨는 밥이라도 인심 있게 주던 예전이 그리웠다.

밥을 먹는 중간, 문자가 온다. ‘지원 서류가 통과되었습니다. 면접을 위해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순식간에 밥을 몰아 삼키고 일어선다. 박 씨는 오랜만에 면접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뻤다. 최대한 깔끔하게 보이도록 꾸미고 집을 나선다.

“그래도 경력이 좀 되시네요. 인상도 좋아 보이고. 내일부터 출근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계약은 1년 단위로 갱신됩니다. 조건은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고요. 그럼 잘 해봅시다.”

박 씨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일어섰다.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금액은 전에 있던 곳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1년 단위로 갱신된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일할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요즘은 연간단위 계약은 찾아보기 드물다. 1달 단위나 주 단위 계약이 대부분이다. 박 씨는 이번에는 잘리지 않고 오랫동안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먼 미래, 기계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산업 전반은 놀랍도록 발전했다. 기술의 발전은 기계화, 자동화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였고 대부분의 상황에 프로그램이 대응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19세기 공장에 기계가 들어온 이래 현장에서 기계와 인공지능이 일반화되었다. 생산 효율성은 21세기에 비해 몇 배로 늘어났다. 또한 대량 생산 속에서도 고객들이 원하는 요소를 충분히 고려한 ‘맞춤 상품’까지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기계는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로 가는 열쇠가 아니었다. 기계로 만들어지는 부의 대부분은 소수의 몫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계에 밀려 일자리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제조업과 단순 업무 종사자들이 먼저였고, 사무직 종사자들 또한 회사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일자리들 또한 등장했지만 이내 그 자리도 기계들이 메웠다.

이제 사람이 하는 일은 단순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일은 기계의 가격보다 사람이 싼 일자리나 ‘사람’ 자체가 상품인 서비스업 정도다. 이것도 다 매뉴얼이 정해져 있고 자율성은 용납되지 않는다. 자율성이나 창의성은 개발과 관리를 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인력은 언제나 대체가 가능한 자원이 된지 오래다. 먼 미래, 사람은 기계에게 노동을 ‘박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