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차고지에서 노사 간 신뢰 시동 걸다
중랑차고지에서 노사 간 신뢰 시동 걸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4.1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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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해고’ 공식 깨뜨린 보광운수(주) 노사
버스준공영제 장점 살린 노조의 결단도 한 몫
[사건]보광운수로 새 출발한 용림교통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이 있듯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의미는 자신과 가족의 생계수단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잘 다니던 회사가 어느 날 문을 닫게 돼 실업자로 전락해 버리는 일은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해지기 마련이다. 만약 회사가 파산하더라도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해고되지 않으려면 인수업체가 나타나 고용을 이어받아야 하지만, 많은 경우 이는 노사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업체 파산과 매각 과정에서 100% 고용승계가 이루어진 사례가 있다. 서울시내버스 업체 보광운수(주)가 그렇다. 용림교통을 인수한 보광운수는 고용승계에 더해 이전 회사의 근속까지 인정했다.

▲ 중랑공영차고지 전경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용림교통의 몰락

지난해 4월 13일 서울시내버스 업체인 용림교통이 법원에 파산신청을 냈다. 이후 두 달여 만인 지난해 6월 5일 법원으로부터 최종 파산선고가 내려졌다.

옛 용림교통은 마을버스를 주로 운행하다 2004년 준공영제 시행에 맞춰 다른 마을버스업체들을 합병해 시내버스업체로 전환했다. 파산 전까지 서울 중랑구 지역을 중심으로 지선버스 4개 노선의 운행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2010년 무렵 용림교통은 ‘ㅍ’ 운수를 인수하려다 100억 원대의 사기를 당한 이후 재정이 급속도로 악화돼 CNG 연료비는 물론이고 운전기사들의 식대조차 지급하지 못하고 있었다. 버스준공영제 실시로 서울시에서 지급하는 보전금으로는 빚을 갚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용림교통에서 운행하던 노선에 투입되는 운전기사만 모두 합쳐 100여 명에 달했다. 하지만 파산신청이 접수될 때까지 노동자들은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 노동조합에 용림교통의 파산신청 접수 소식을 전한 곳도 회사가 아닌 서울시였다. 회사의 파산신청 소식을 듣게 된 지연호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용림교통지부(현 보광운수지부) 위원장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용림교통의 경영상태가 좋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회사가 파산신청을 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운전기사들의 고용문제였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파산신청을 낸 용림교통 경영진은 이 문제를 애써 피하려고 했다. 결국 100여 명의 운전기사들은 서로 다른 회사로 뿔뿔이 흩어지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옛 용림교통지부 역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다. 지연호 위원장은 회사의 파산을 받아들이며 조합원들이 머지않아 다른 직장으로 떠나게 되더라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바랄 것인지, 버스를 멈추고 파업에 돌입할 것인지, 다른 방법을 찾아볼 것인지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차는 안 세운다’는 노조의 선택은 옳았다

용림교통이 파산절차에 들어간 이후 회사의 관리 권한은 경영진에게서 법원이 선임한 파산관재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노동조합의 대화 상대 역시 파산관재인으로 바뀌었다. 파산관재인에 의해 용림교통이 공개입찰 매물로 나왔다. 그러자 지연호 위원장은 만약 공개입찰에 응하는 업체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용림교통지부에서 아예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입장을 파산관재인 측과 서울시에 전달했다.

그런데 문제는 용림교통의 파산신청이 접수된 이후 이 업체에서 담당하던 2113번, 2114번, 2234번, 2235번 등 지선버스 4개 노선의 운행 여부였다. 이들 4개 노선은 중랑공영차고지를 출발해 중랑구 주거지역과 주요 전철역을 연결했는데, 당장 운행이 중단될 경우 해당 지역 주민들의 불편을 초래할 게 뻔했다. 따라서 서울시는 중랑공영차고지를 사용하는 다른 업체들과 협의하여 대체 투입 차량을 마련해 놓았다. 이를 놓고 용림교통 소속 운전기사들 사이에서는 온갖 말들이 오갔다. 회사가 망하는 마당에 대체 차량도 준비가 되어있으니 운행을 계속 나가봤자 임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지연호 위원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파산절차가 진행 중이라 하더라도 계속 용림교통 소속 운전기사들이 운행을 나간다면 최종적으로 파산결정이 나기 전까지는 서울시로부터 운송수입금을 배분받을 수 있다고 봤다. 지연호 위원장은 서울시로부터 이러한 사실에 대해 확답을 받았고, 그 뒤부터는 노동조합에서 사실상 회사를 운영하게 된다. 그리고 서울시에서 배분받은 운송수입금으로 운전기사들의 임금과 밀린 식대를 충당했다. 만약 회사가 파산절차에 있다고 해서 차를 세웠다면 타 업체의 대체 차량이 투입돼 용림교통 소속 운전기사들은 한 푼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고용승계 이뤄내고 보광운수로 환골탈태

비록 타 업체의 대체 차량이 투입되기를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직접 차량 운행에 나섰지만, 여전히 고용승계 문제는 운전기사들의 큰 걱정거리였다. 6월 5일자로 법원이 용림교통에 대해 최종적으로 파산선고를 내림에 따라 운전기사들은 7월 6일자로 해고될 것을 알리는 통지서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100% 고용승계’를 위해서는 이를 용림교통 인수 조건의 하나로 내걸어야 했다.

최종 파산 후 네 곳의 버스회사가 용림교통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서울 은평구에 본사를 둔 보광교통(주)(대표이사 신영식) 계열사인 보광운수(주)가 최종 인수자로 선정됐다. 보광운수 측은 100% 고용승계 조건을 받아들였고, 이에 더해 기존 용림교통 소속 운전기사들의 근속년수도 인정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새로 사람을 뽑을 바에는 해당 노선을 가장 잘 아는 기존의 운전기사를 계속 고용하는 것이 회사로서도 훨씬 이득이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용림교통이 보광운수로 바뀐 이후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빡빡하게 짜인 배차에 여유가 생겼다. 운전기사 1인당 하루에 운행해야 할 횟수를 줄인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체계 없이 불공정하게 이루어지던 휴무일 편성이 공정해졌다. 운전기사들이 가장 불만이던 사항이 개선되자 난폭운전이 줄고, 사고율 역시 떨어졌다는 게 지연호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박종호 보광운수 상무이사는 “신영식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들이 항상 직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보광운수가 용림교통을 인수한지 8개월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노사는 신뢰를 꾸준히 쌓아가는 듯 보였다. 이러한 신뢰의 비결은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한다’는 원칙이라는 데 지연호 위원장과 박종호 상무이사는 의견을 같이 했다. 보광운수의 사례는 노사관계의 한 모습인 긴장과 갈등 이외에 대화와 신뢰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터뷰1_박종호 보광운수(주) 상무이사

▲ 박종호 보광운수(주) 상무이사

보광운수에서 용림교통을 인수할 때 가장 초점을 둔 부분은?

“기존에 용림교통에 있던 직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게 뭔지 정확히 파악해서 혹시라도 생길 갈등을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만 회사가 정상화될 수 있겠다고 본 거다. 이전의 회사에서 직원들이 느꼈던 근무여건에 대한 불만사항을 먼저 파악했다. 가장 크게는 운행시간 문제가 있었다. 운전직의 특성상 사무실처럼 딱 정해진 근무시간이 아니다. 기사 한 명당 운행횟수를 조정해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했다. 그 다음에 차량이 노후화가 많이 됐다. 아무래도 차량이 낡으면 운행하는 것도 힘들고, 안전 문제도 생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는 사무실과 현장의 관리체계를 잡는 것이었다. 예전 용림교통에서는 사무실은 사무실대로, 현장은 현장대로 동떨어져 있었다. 규율이 많이 느슨했다.”

파산을 겪으면서 이전 회사에 대한 운전기사들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을 것 같다. 이전 회사에서 떨어진 신뢰를 새 회사에서 다시 쌓는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우선 직원들 입장에서 생각해서 회사가 할 건 해주려고 했다. 예를 들면 휴무일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쉬는 날에도 운행 있다고 불러낸 적이 많았다고 들었다. 직원들에게 휴무일만큼 민감한 건 없을 거다. 그래서 쉬는 날은 전화도 받지 말고 무조건 푹 쉬라고 했다. 그리고 설명이 필요한 사항은 숨기는 것 없이 이야기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 방침이니까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건 옛날 방식이 아닌가. 올해 7월이 되면 보광운수로 바뀐 지도 1년이 되는데, 어느 정도 신뢰가 쌓였다고 보고 있다.”

노동조합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조합원들이 회사를 조금 더 믿어줬으면 좋겠다. 우리 위원장님만 회사를 믿는 게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보광운수를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신뢰를 가져줬으면 한다. 보광교통에서는 ‘회장님과 저를 비롯한 경영진들은 여러분들에게 은평차고지 안에서는 제일 자부심을 가지게 해주겠다. 누구나 들어오고 싶은 회사로 만들어보자’고 말한 적도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직원들한테 해코지를 할 필요가 뭐가 있나.”


인터뷰2_지연호 서울시버스노동조합 보광운수지부 위원장

▲ 지연호 서울시버스노동조합 보광운수지부 위원장

회사가 파산위기에 내몰렸지만 끝내 노동조합에서는 버스를 세우지 않았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서울시에서 버스준공영제를 하다 보니까 운송수입금을 시에서 관리를 하고, 각 업체에 분배한다. 결국 시에서 운전기사들 월급을 주는 셈이다. 계속 운행을 하면 어떻게든 서울시로부터 운송수입금을 받을 수 있지만, 만약 운행을 하지 않으면 그 돈을 받을 수가 없다. 이미 다른 회사에서 운전기사들 노선 교육까지 새로 다 시켜서 언제든 차를 운행할 수 있게 대기시킨 상태였다. 우리가 차를 세우면 월급을 못 받는다는 얘기다. 어떻게 해서든 용림교통에서 버스가 멈추는 건 막으려고 했다. 법원이 파산결정을 내리고 인수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노동조합에서 회사를 인수하려고도 했었다. 파업을 했다면 그 동안의 월급을 못 받는 건 물론이고 고용을 보장받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해주신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서종수 위원장님과 조합 간부들께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용림교통의 파산신청 소식이 전해진 이후 조합원들이 동요하지는 않았나?

“아무도 당시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명확하게 해주지 않으니까 유언비어가 엄청나게 나돌았다. 어차피 일을 하든, 안 하든 돈은 안 나온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몇 사람은 정말로 일을 안 하기도 했다. 체당금 받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파업을 해버리자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왔다. 혹시나 파업할까봐 경찰서나 구청에서 전화도 많이 왔었다. 파산 관련해서 서울시나 법원에서 공문이 오면 그걸 보여주기도 하고, 틈이 날 때마다 조합원들에게 수시로 설명을 했다.”

보광운수로 바뀐 이후 노동조건이나 현장의 분위기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배차 문제다. 용림교통 시절에는 운전기사별로 배차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조합원들 불만이 많았다. 배차실에 친한 직원이 있으면 어느 날짜에 빼달라고 해서 휴일을 잘 챙길 수 있지만, 그게 아니면 쉬는 날이어도 언제 불려나갈지 모르니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조합원들이 회사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대해서는 박 상무님이나 신영식 회장님한테 고마움을 느낀다. 자그마한 결정이라도 노동조합에 의견을 물어보시고, 합의점을 도출하려고 노력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보광교통에서 용림교통을 인수한 것이 전화위복이 됐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