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통장’ ISA,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만능통장’ ISA,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6.04.1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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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실적 경쟁에 ‘깡통계좌’ 대부분?
불완전판매 방지 위해 금융당국 적극 개입 필요
[사건]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출시

3월 14일, 일명 ‘만능통장’으로도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금융권에 출시되었다. 금융위원회와 증권, 은행, 보험 등 금융권은 앞 다투어 ‘국민재산 늘리기’, ‘서민을 위한 만능통장’ 등의 미사여구를 써가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출시 한 달 전부터 TV와 라디오에서는 ISA를 홍보하는 CF가 줄줄이 나왔다. 사람들은 ISA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번에는 우리가 쓸 만한 금융상품이 나오는가’하는 기대 또한 높았다. 하지만 출시 직전부터 지금까지, 곳곳에서 부작용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느낌이다. 대상인 시민들은 물론이고 상품을 판매하는 금융노동자들 사이도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 참여와혁신 DB

세제혜택 금융상품 하나로 묶는 ISA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ndividual Saving Account, 이하 ISA)란 하나의 계좌에 다양한 금융상품을 넣고 일정기간동안 보유하여 발생한 소득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주는 상품이다. 계좌 내에 가입이 허용된 상품을 대상으로 자유로운 자산 구성과 관리가 가능하며 연간 납입한도를 설정해 저축, 투자한 금융상품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한 비과세 등 세제지원으로 저축과 투자를 촉진시키는 장점이 있다.

ISA가 우리나라에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다. 2014년 7월에 발표된 금융규제 개혁방안에서 금융위원회는 기획재정부와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의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재형저축, 소장저축 등 기존 금융상품이 별도로 도입되어 있고 세제혜택 역시 각각 부여된 상황에서 ISA를 통해 개별 금융상품을 종합적으로 편입, 관리하고 세제혜택도 일원화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9월에 밝힌 ‘한국형 ISA 도입 방안’에서 금융위는 “열거주의 과세체계 하에 상당 금융상품이 과제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상황”이이라며 한국형 ISA는 “기존의 과세특례 금융상품의 정비와 연계해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한국형 ISA는 기존의 예·적금, 펀드, 보험 등 금융회사에서 취급하는 금융상품을 ISA로 편입해 지원의 필요성이 있는 중산층 이하 노동자, 사업자를 가입대상(기존 세제혜택 금융상품의 대상 감안)으로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기존 금융상품의 지원한도, 기가입 된 상품의 통합을 고려해 연간 납입한도 내에서 각종 금융상품에 대한 자유로운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한편, 일정 운용소득에 대한 이자, 배당소득을 비과세 처리하는 내용이다. 금융위는 2014년 말까지 연구용역과 세부 시행 방안을 마련해 2015년 중 세법개정을 통해 출시할 예정이라 밝혔다.

이후 관계부처에서 제도 세부 방안을 논의하던 ISA는 2015년 8월, 정부의 2015 세법개정안을 통해 확정안을 발표했다. 확정된 ISA는 가입 직전연도 과세기간에 근로, 사업소득이 있는 사람(신규취업자는 당해 연도 가입 허용,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 제외)에게 가입자격이 주어지며 가입년도부터 5년간 매년 2,000만 원(총 1억 원)한도까지 납입이 가능하다. 기존에 가입한 세제혜택 상품은 그 상품의 납입액을 차감한 잔여금액만 ISA에 납입할 수 있다.

ISA의 세제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5년간 계좌를 유지해야 하며 이 기간 동안 인출이 제한(단, 15~29세 또는 총급여 2,500만 원, 종합소득 1,600만 원 이하 가입자는 3년)된다. 가입자는 다양한 금융상품(예·적금, 펀드, 파생결합증권(ELS, DLS) 등)을 자유롭게 편입할 수 있으며 상품 순이익과 기간 순이익을 통산해 운용수익 200만 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올해에 들어서는 예금자보호법을 개정해 ISA를 통해 예·적금 상품에 가입하는 경우 예금보호가 가능하도록 했고 각 금융사의 출시 진행사항과 일임형 ISA에 대한 포트폴리오 보고를 받는 등 준비 작업을 마쳐 3월 14일부터 본격적인 판매에 돌입했다.

투자일임형 도입에 금융권 ‘우왕좌왕’, 실효성 의문도

도입 배경과 진행상황을 쭉 살펴보면 정부에서 ISA의 도입을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발표 당시 ‘국민 재산을 늘리기 위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라는 금융위의 홍보에 흥미와 신뢰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확정안이 발표되고 나서 많은 전문가들은 ISA도입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고 실제로 출시를 얼마 앞두고는 여기저기서 문제점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올해 1월 6일, 금융위는 투자일임형 ISA 계좌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원래 가입자가 자유롭게 상품 투자를 결정하기로 한 신탁형 ISA만이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신탁형 ISA와는 달리 일임형 ISA는 고객이 금융사에 자금운용을 모두 맡기는 방식이다. 예정에 없던 일이다.

금융권은 혼란에 빠졌다. 갑작스럽게 일임형 ISA상품을 준비해야 하는 문제와 더불어 일임형 ISA 상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된 은행권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임형 ISA는 기존 포트폴리오를 전용할 수 있어 소비자에 대한 설명이 용이하고 수수료 또한 높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탁형 ISA 인가를 받지 못한 중소형 증권사들은 ISA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3월 14일이라는 상품 판매 개시일에 맞추기 위해서 증권사들은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이후 계속된 은행권의 불만표시에 금융위는 2월 14일, “그간 제기된 제도 개선 요구 사항을 반영하겠다”며 “금융개혁 차원에서 은행에 ISA업무를 위한 투자일임업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고객이 은행에서는 한 가지 형태의 ISA만 가입할 수 있는 것은 투자자 선택권을 제약하고 불편을 초래하기에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조치는 더욱 큰 혼란을 몰고 왔다. 일임형 ISA개발에 부랴부랴 나서는 상황이 은행에서도 똑같이 나타났으며 투자일임업 전문가를 급하게 채용하는 풍경도 벌어졌다. 이렇기에 금융투자에 전문성이 없는 은행권이 투자일임업에 나선다면 소비자 보호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일각에서는 신탁형보다 일임형 ISA가 높은 수수료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은행에 대한 투자일임업 허가가 성과주의 확산을 앞둔 은행에게 금융당국이 제공하는 일종의 ‘당근’으로 보기도 했다.

금융권 노조 역시 은행권의 투자일임업 허용을 비판했다. 사무금융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투자일임업은 엄연히 자본시장통합법에서 정한 금융투자업자 고유의 권리”라며 “자본시장통합법을 만든 정신을 전면 부정하는 이번 금융위원회의 투자일임업 허용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현정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은 “금융위의 투자일임업 허가는 금융소비자의 편의를 획기적으로 봐준 것 같지만 결국 증권사에 비해 전문성과 사후관리가 떨어지는 은행의 불완전판매를 부추기고 막 자리를 잡고 있는 금융투자자 보호 시스템의 붕괴를 야기할 것”이라 비판했다.

소비자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은 “ISA는 제도에 치명적 결함이 있는 불완전 제도임에도 마치 국민 재산을 늘려주는 것으로 호도하는 것은 금융소비자를 현혹하는 것”이라며▲실제로 비과세 상품이 아니라는 점 ▲수수료가 얼마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점 ▲제세상품이지만 손실가능성이 있다는 점 ▲5년을 유지하지 않으면 세금과 수수료를 낸다는 점 ▲국민들에게 필요하지도 않고 내용을 모르고 가입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통장이라는 5가지 결함을 발표했다. 금융소비자원은 “만능통장이 아닌 ‘개털’통장”이라는 표현으로 ISA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외에도 ISA 도입의 목적이 실제로는 다르다는 주장은 곳곳에서 제기된다. 제도 자체가 ‘서민 절세’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이나 영국 등의 ISA 상품은 납입한도가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이나 비과세 혜택은 수익의 거의 100%다”며 “우리나라 비과세 한도 200만 원은 서민들에게 혜택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납입한도 2,000만 원 또한 서민들이 투자하기 어려운 금액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금융당국이 ISA를 도입하며 서민을 위한 금융상품으로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세제혜택 금융상품의 일원화를 통해 세수관리를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혹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이러한 의혹을 부인했다. 금융위는 3월 21일  ISA T/F 3차 회의에서 “ISA는 종합자산관리 계좌로서 기존 금융회사가 판매하던 개별상품과 다른 점이 많아 출시 초기 어느 정도 미흡한 점도 있었을 것”이라며 문제점이 있다는 점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이는 제도를 이해하고 잘 활용하기 위한 학습기간으로 출시 초기의 상황만 보고 제도 자체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과도한 실적경쟁, ‘깡통계좌’가 대다수

실제 판매 이후 금융권은 ISA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1인 1계좌만 개설이 가능하기 때문에 출시 초기 개설이 전체 계좌 개설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ISA를 출시하는 은행, 증권사 등에서는 벌써부터 실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에서는 추첨을 동해 자동차나 여행권, 금괴 등을 주는 이벤트까지 펼치고 있다. 본점에서 지속적으로 할당제까지 하며 실적 압박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지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계좌 가입 숫자를 늘리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

결국 실제 실적을 올리는 대상인 금융사 직원들은 친인척이나 지인 등 연줄을 최대한 동원해서 개설하고 있다. 개인 대출을 받아서 친인척의 계좌에 넣어 실적을 올리는 직원들도 있다. 할당된 계좌를 채우긴 어렵다. 지점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일단 만들어만 달라”, “만들면 만 원 넣어주겠다”고 읍소하는 일까지 있다.

결국 엄청난 ISA계좌가 만들어졌지만 이중 상당수는 가입만 해놓은 이른바 ‘깡통계좌’인 것이다. 금융위의 집계에 따르면 2016년 3월 30일 현재 전체 ISA 가입자 수는 102만 7,633명으로 집계되었다. 신탁형 가입자는 101만 5,330명, 일임형 가입자는 1만 2,303명으로 신탁형이 98% 이상의 비중이며 총 가입금액은 5천 881억 8천만 원이다. 업종별로 은행이 93만 9,829명, 증권사가 8만 7,367명, 보험사는 437명이 가입해 은행이 전체의 91.4%를 차지했다. 하지만 은행에 예치된 금액은 3,337억 1천만 원인데 비해, 증권사는 2,539억 5천만 원이 들어왔다. 결국 은행권에서 만든 다수의 계좌가 ‘깡통계좌’인 것이다.

금융노조는 성명을 내고 “한탕주의식 ISA 과당경쟁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노조는 “과도한 보상을 내걸고 직원들에 강제 할당량까지 배정하며 ISA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금융회사들의 행태는 ‘불완전판매’의 익숙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며 “ISA를 안정적인 고수익을 보장하는 금융상품인 것처럼 포장하는 행태는 금융소비자를 기만하는 일이며, 과열된 유치전은 훗날 필연적으로 불완전판매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고 비판했다. 금융노조는 금융위에는 ISA 과당경쟁을 통제 통제해 진정시킬 것을, 금융회사에는 과도한 유치 경쟁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금융당국의 태도 역시 소극적이다. 실적 경쟁과 불완전판매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었지만 “직원들에게 계좌 유치를 할당하는 것은 여러 가지 고용 계약에 따라 한계 내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뭐라고 할 부분이 아니다”고 말하며 관여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깡통계좌’가 다수라는 지적은 “청탁계좌의 성격일 수 있다”고 인정했지만 “추후 이용 가능성이 있고 과거 재형저축보다 가입 금액이 높은데다 장기적으로 자금 유입이 확대될 것”이라 말하며 “불완전판매 문제는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내부통제를 강화하도록 지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참여와혁신 DB

불완전판매 위험, 금융당국 적극적 대처 필요

전문가와 금융소비자단체는 금융당국이 실적 경쟁을 외면하고 불완전판매 위험 역시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중은행들이 개별적으로 ISA 판매직원에 대한 특별교육 및 전문상담인력을 확충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제도상의 보완과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단속 없이는 기업의 특성상 실적 경쟁이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불완전판매가 발생할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ISA의 경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불완전판매 피해사례인 KIKO사태보다 더 큰 피해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소비자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금융위는 시장과 국민을 기만하지 말고 ISA통장의 전수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제도를 보완하는 전면적인 ISA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소비자원은 개선 방안으로 ▲금융사 과도한 마케팅 중지 ▲투자성 상품의 계약철회기간 제도 도입 ▲고객투자성향제도 전면 개선 ▲창구 거래 녹취 ▲배상책임 등을 내놓았다.

금융당국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만능통장’ ISA는 일단 흥행에는 성공한 모양새다. 하지만 원래의 ‘국민재산 늘리기’라는 좋은 취지는 사라진 듯하다. 곳곳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다른 목적’에 대한 갖가지 의구심마저 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들과 의혹에 대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분명 속병은 언젠가 겉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팔짱만 끼고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속마음은 “일단 실적부터 올리고 문제는 생기면 천천히 처리하겠다”는 것이 아닐까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