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회사원, 샐러리맨… 그들은 누구인가
직장인, 회사원, 샐러리맨… 그들은 누구인가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5.09 13:39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리는 이름도 다양한 화이트칼라 노동자
직무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그래도 버틴다
커버스토리_화이트칼라 노동자의 노동 ①

한때 “도시의 야경이 아름다운 이유는 누군가 저기서 야근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라는 말이 누리꾼들의 큰 공감을 얻었다. 이들은 웃기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퍼진다는 뜻의 신조어 ‘웃프다’로 자신들의 감상을 표현했다. 몇 년 새 화이트칼라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끼게 된다. 정장 차림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모습을 연상한다면 세상물정 모른다며 면박을 당할 수도 있다. 때로는 직장인으로, 회사원으로, 또 어떨 때는 샐러리맨으로 불리는 이들은 누구일까?

ⓒ참여와혁신DB

화이트칼라 노동자 : ① 노동자라는 말이 낯선 사람들

TV 뉴스나 신문 등 언론 보도를 보면 ‘직장인’, ‘회사원’이라는 말과 ‘근로자’, ‘노동자’라는 단어가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직장인 또는 회사원의 대상을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한정지은 것이다. 반면 근로자 또는 노동자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한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굳이 따지자면 직장인·회사원은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근로자·노동자는 블루칼라 노동자를 일컫는 한국식 표현에 가까워 보인다.

분명한 사실은 이미 사무직종에도 상당수의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노총의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있고, 민주노총의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도 있다. 뿐만 아니라 제조업종에도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기업별 지부 또는 지역별 지부의 지회 형태로 사무직 노동조합이 존재한다.

2006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수행한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고용 및 노동조합 의식 실태 연구’에 따르면, 사무직종에서 노조 조직률은 15.6%이다. 이는 연구시점 기준 생산직종의 노조 조직률(18.0%)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전체 노조 조직률 11.3%보다는 약간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보고서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이른바 사회의식에 대해 보수화 경향이 뚜렷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들 중에서도 전문직은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고, 그 외 일반 사무직 노동자들도 스스로를 생산직 노동자와는 다른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직장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볼펜을 귀에 꽂고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는 사람이라는 점은 괜한 사실이 아니다.

ⓒ참여와혁신DB

화이트칼라 노동자 : ②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들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직무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 관한 연구도 직무스트레스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들 연구의 대부분은 직장인을 위한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는 수준의 결론에 머무르는 모양새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직무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원인은 다양하다. 가장 크게는 직장 내에서 생존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대량해고의 경험 때문에 누구든 언제라도 잘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정부의 ‘외환위기 극복 선언’ 이후인 2002년 발표된 논문 ‘사무직 직급에 따른 직무스트레스에 미치는 요인’을 보면, 직급에 상관없이 임금이나 승진 문제도 직무스트레스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혔다.

직급별로 보면 직급이 낮은 대리나 사원의 경우 과중한 업무로 인한 부담과 업무가 적성과 맞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중간관리자 이상의 직급에서는 부서 간 갈등과 더불어 소위 사내 권력 문제가 직무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직무스트레스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건강과 직결되기도 한다. 2008년 대한산업의학회지에 발표된 한 논문은 “직무스트레스 요인이 근로자들의 피로와 강한 관련성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사무직 근로자들의 직무스트레스와 피로’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한 연세대 의대 연구팀은 장시간 근무 및 과도한 업무, 직장상사 또는 동료와의 갈등과 육체적 피로 사이에는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참여와혁신DB

화이트칼라 노동자 : ③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

몇 해 전 한 취업포털이 화이트칼라 노동자 73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60.7%가 지금의 회사를 다니는 이유로 ‘생계유지’를 꼽았다.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지금의 회사를 다닌다고 답한 사람이 19.%로 뒤를 이었다. 이와 유사한 질문으로 650명에게 지금의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응답자 중 42.0%가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라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언제나 가슴 속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사직서를 던지기는 쉽지 않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이 화이트칼라 노동자인 것이다.

아침엔 우유 한잔 점심엔 패스트푸드 / 쫓기는 사람처럼 시계바늘 보면서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 경적소리 / 어깨를 늘어뜨린 학생들
This is the city life!
어젯밤 술이 덜 깬 흐릿한 두 눈으로 / 자판기 커피 한 잔 구겨진 셔츠 샐러리맨
기계 부속품처럼 큰 빌딩 속에 앉아 / 점점 빨리 가는 세월들
This is the city life!
한 손엔 휴대전화 허리엔 삐삐차고 / 집이란 잠자는 곳 직장이란 전쟁터
회색빛의 빌딩들 회색빛의 하늘과 / 회색 얼굴의 사람들
This is the city life!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 손을 내밀어 악수하지만
가슴 속에는 모두 다른 마음 / 각자 걸어가고 있는 거야
아무런 말없이 어디로 가는가 /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 넥스트, 「도시인」(1992)

최근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미생>을 시작으로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직장생활을 소재로 한 볼거리, 읽을거리들이 넘쳐나고 있다. 상사 앞에서만 열심히 하는 동료부터 ‘칼퇴’ 했더니 “요즘 일이 없나봐?”라며 비아냥대는 상사까지 모든 게 자신의 이야기 같다. 가볍게 보면서 그냥 한 번 웃고 넘어가게 될 테지만 마음에 품은 사직서를 과감하게 던지지 못하는 많은 이들의 쓰린 속을 달래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생>이 방송되기 20여 년 전에도 사무실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인’을 묘사한 노래가 있었다. 이 노래의 작사자는 도시인에 대해 ‘회색빛의 얼굴을 하고 아무런 말없이 각자 갈 길을 가는 사람’으로 비유했다. 과연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면면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