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설립 1년, 더디지만 한 걸음씩 전진
노조설립 1년, 더디지만 한 걸음씩 전진
  • 고연지 기자
  • 승인 2016.05.0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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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수요양병원지부의 노동조합 뿌리내리기
“8만 치료사 전체의 문제로 보고 나아갈 것”
[사건]고려수요양병원 노사관계

금천수요양병원(옛 고려수요양병원)에서는 손 수(手)자가 들어가는 이름처럼, 기계 대신 치료사가 직접 손으로 재활치료를 돕고 있다. 경기도 부천과 서울 구로, 금천, 강남까지 4개의 병원이 운영 중이다. 작업치료, 운동치료, 언어치료 등을 진행한다. 병원의 치료사들은 대부분 20대 초·중반으로 여성이 80~9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 치료사들이 2015년 4월 3일 노조를 설립해 만 1년이 지났다.

‘송곳’의 주인공을 닮은 치료사들

치료사들은 왜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되었을까. 심희선 보건의료노조 고려수요양병원지부장은 현재 병원 내 유일하게 10년차가 넘은 여성치료사다. 치료사의 업무 특성 상 작업현장에서 손을 다치는 경우가 잦다. 그런데 여태 한 번도 산재신청을 한 사람이 없었다. 심희선 지부장은 지난 2014년 업무 중 손을 다쳤을 때 결국 산재신청을 했다. 이를 말리는 병원의 회유와 협박에도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산재신청을 해야 한다. 처음이 있어야 두 번째, 세 번째 누군가가 아플 때 하는 게 산재신청임을 알고 쉽게 할 수 있다”라면서.

심 지부장은 “1년차에 받은 월급을 지금 저희 1년차들이 받고 있다. 10년째 동결이다. 노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팀장이 되었을 때 직원들에게 말하는 것과 너무 다른 병원의 태도에 부당함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고려수요양병원은 치료부가 70여 명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매년 15명 정도가 입사를 하고 그중에 1~2명은 디스크, 손목 통증으로 일을 그만둔다. 치료사들은 연차가 쌓여가면서 몸이 아파서 관두거나 병원으로부터 암묵적인 퇴사압박을 받는다. 병원에서는 치료사 개인이 힘들어서 나가는 자연퇴사여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15년 4월 3일 노조 설립, 그 이후는?

▲ 고려수요양병원지부 심희선 지부장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고려수요양병원지부는 2015년 4월 3일에 설립됐다. 병원은 노조설립 움직임을 알고 3일 전에 그만둘 것을 종용했다. 조합원은 30여 명 규모. 그런데 노조를 만든 지 1주일 만에 한국노총 철도사회산업노동조합 소속의 제2노조가 설립됐다. 제2노조는 단기간에 70명의 조합원을 규합했고, 조합원이 많은 제2노조가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얻었다. 이후 병원은 소수노조인 고려수요양병원지부를 교섭과정에서 배제했다. 고려수요양병원지부 김지윤 사무장은 “병원은 복수노조 상황임을 앞세워 대화를 일절 거부했고, 철도사회산업노조에도 교섭대표 노동조합으로서 공정대표 의무 이행 등을 위해 대화를 요구했으나 거부됐다”고 밝혔다.

▲ 고려수요양병원지부 1주년 문화제

이후에도 복수노조로 인한 갈등이 계속됐다. 치료사들은 치료실이라는 한 공간 안에서 얼굴을 마주치며 일을 한다. 그 공간 안에서 소수노조라는 따돌림 있었다. 해당 조합원들은 정신적인 고통을 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병원에서는 견디다 못해 퇴사한 조합원 들의 경우 새로 취직한 병원 부원장에게 1인 피켓 시위하는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노조 강성 조합원이라고 눈 밖에 나서 다시 퇴사해야 하기도 했다.

지부 설립 두 달째, 활동보고 내용 및 노조 홍보물을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그러자 병원은 노조 홍보물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라는 명목으로 직원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또 노조에서 피켓시위를 한 것을 갖고, 병원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노조 간부 3명을 상대로 각 3천만 원씩 총 9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지난 12월에는 조합원 명단이 공개됐다. 그러자 병원은 14명의 계약직 조합원이 근무하는 영양부를 외주화했다. 그동안 영양부에서 근무하는 조합원들은 근로계약서상 5시 반 출근이지만 평상시 업무량 소화를 위해 새벽 4시에 출근했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는 단체행동을 통해 5시 반 정시에 출근하고, 한시간 반의 휴게시간도 갖게 됐다. 하지만 외주화되면서 통상 계약이 갱신되던 조합원들에게 계약해지 통보가 떨어졌다. 노동시간과 관련한 ‘쟁취’도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 ⓒ참여와 혁신DB

환자 낙상방지? 직원 근무감시용 CCTV 설치

성과주의 제도 도입 등을 필두로 한 노동개혁이 사회적으로 화두가 되면서 고려수요양병원 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교섭대표 노조인 철도사회산업노조의 동의하에 병원은 새로운 인사고과제도를 진행하겠다고 통보하고 CCTV를 설치했다. 직원들은 인사고과표에 어떤 항목이 들어가 있고 어떤 기준인지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병원 복도에 설치되어있는 것 외에 치료실에 환자의 낙상방지 목적으로 CCTV도 설치했다.

김지윤 사무장은 “환자분들이 순간적으로 떨어질 때 CCTV가 구해주는 것도 아니고, 이것이 문제였으면 이전에 방안을 냈어야 한다”며 “새로 CCTV를 단 곳들 중엔 환자가 없는 직원식당과 직원들이 컴퓨터 작업하는 곳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직원들의 업무 태도를 감시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게 아니냐는 의미다.

성과주의 제도가 도입되고 근로조건의 후퇴가 지속되면서, 현재 70명의 치료사 중 30명이 퇴사해 치료부 인원이 축소된 상황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상황 속에 최근 노조는 연차와 휴일수당 등을 쟁취했다. 또 서울, 경기지역 치료사 인턴제를 폐지하고 수습은 3개월만 가능하도록(임금 80%) 만들었다고 한다. 보통 인턴으로 길게는 1년 짧게는 3개월 기간으로 80만 원에서 그 이하의 금액으로 받아왔다. 이는 최저임금도 안 되는 금액임을 지부에서 지적해 이룬 성과 중 하나이다.

▲ ⓒ참여와 혁신DB

노조의 존재 이유

최근 한 달 간 고려수요양병원지부와 교섭대표노조인 철도사회산업노조는 임금협상에 앞서 대화를 시작했다. 작년 임단협 때와는 관계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그동안 공문으로만 지부와 대화하겠다는 태도, 전체 구성원과 내용 공유 없이 진행했던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지부는 줄곧 직원들의 알권리를 지켜주고 노조가 하는 활동을 공유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곧 직원들과의 공개간담회도 진행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고려수요양병원지부는 3월 말 10차 집회를 마치고, 4월 28일 1주년 문화제를 열었다. 1년 동안 달라진 점으로는 주변의 도움과 관심을 꼽았다. 이들은 여러 가지 중 지역 노무사들의 도움과 금천구민들이 매일하는 점심 피켓팅을 돌아가며 함께 해주는 것 등을 예시로 들었다.

고려수요양병원지부는 처음 요구사항 중 연차를 돌려 달라는 것, 휴일수당, 최저임금, 체불 등 많은 부분이 시정됐고, 노조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했다고 밝혔다.

지부 한 관계자는 “노조가 정말 필요하다. 1년 간 개인도 노조도 성장했고, 성장한 힘으로 불안정한 계약직이 아닌,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존중받으면서 길게 일하는 환경을 노조와 함께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에는 노조를 안정화 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외적으로는 치료사노조가 확대되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 나갈 방향에 대해 심희선 지부장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로 외부의 치료사들과 연대하고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8만 치료사 전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