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기 지하철, 죽음의 레일
서울 2기 지하철, 죽음의 레일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5.0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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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기관사 자살사고, 이대로 괜찮나?
원인·해법 모두 나왔지만 책임지는 이는 어디에
[사건]지하철 기관사 정신건강 적신호
▲ 2016년 현재까지 서울도시철도공사 소속 기관사 자살사고 일지

지난달 8일 새벽 서울지하철 6호선 수색승무사업소 소속 기관사 김 모 씨가 공황장애를 앓던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 씨를 포함해 서울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만 아홉 명의 기관사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첫 기관사 자살사고가 발생한 때는 지난 2003년 8월이다. 당시 두 건의 기관사 자살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지하철 기관사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대두됐다. 그러나 햇수로 13년이 지나 똑같은 사고가 또 발생하고 말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여전히 변한 것은 없다.

공황장애, 도대체 어떤 병이기에

부인과 두 자녀를 남겨둔 채 떠나간 김 씨가 앓고 있던 병은 우울증과 수면장애, 불안장애 등을 동반한 공황장애였다. 김 씨가 주검으로 발견된 이후 정신과 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내역이 드러났다.

그가 처음 병원을 찾은 때는 2005년 11월이었다. 무려 10년 동안이나 병원 치료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기록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휴가 사용이 늘어나다 올해 2월에는 사용할 수 있는 휴가를 모두 사용했다.

김 씨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끊임없이 살기 위한 노력을 해온 걸로 보인다. 꾸준히 병원 치료를 받았고, 노동조합 간부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역무직으로의 전환배치 의사도 전달했다. 심지어 숨지기 하루 전인 4월 7일에는 사내 ‘힐링센터’를 방문해 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끝내 세상을 등진 것이다.

공황장애는 공포에 대해 인간의 뇌가 지나치게 반응하면서 생기는 질환이다. 5678서울도시철도노동조합(위원장 명순필, 이하 서울도시철도노조) 관계자가 전한 바에 따르면,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황장애를 겪는 기관사들이 호소하는 증상은 상상 이상이었다. 극도의 공포감으로 인해 심한 경우 육체적 고통까지 수반한다.

“(고통이)어느 정도냐면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은 거예요. 숨이 안 쉬어지고, 땀나고, 우울증 오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 있잖아요. 내과, 외과에 가서 진단해 보면 이상이 없어요. 그런데 느끼기에는 아픈 거예요. 칼로 사람 찌르는 것처럼. 너무 아프니까 잠을 못 자잖아요. 미쳐버리는 거죠. 이 고통을 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거죠.”

2013년 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진행한 서울도시철도공사 소속 기관사 임시건강진단 결과에 따르면, 5~8호선에서 근무하는 전체 기관사 중 1년 이내에 공황장애 증세를 겪은 비율(1년 유병률)은 1.0% 정도였다. 또한 평생 동안 한 번 이상 공황장애를 겪을 위험(평생 유병률)은 1.6%로 나타났다. 이는 낮게 보일 수도 있지만, 1년 유병률은 일반인의 10배, 평생 유병률은 16배에 달하는 수치다.

더 큰 문제는 공황장애 완치가 어렵다는 점이다. 약물치료 등을 통해 증상이 호전되더라도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거나 자기관리가 소홀해지면 재발하기 쉽다. 실제로 공황장애 경험이 있는 기관사들 중 이번에 일어난 자살사고 소식을 접한 일부에게서 다시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뿐만 아니라 맥박이 빨라지다가 가슴통증을 수반한 호흡곤란으로 이어지는 ‘공황발작’ 자체가 또 다른 공포가 되기도 한다.

무엇이 그들을 병들게 했나

특이한 점은 같은 서울시 산하 지하철 운영기관이면서도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에서는 기관사 자살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극과 극’의 차이를 두고, 서울메트로와는 다른 서울도시철도공사만의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 참여와혁신 DB

우선 서울시의 지하철이 건설된 때에 따라 이른바 ‘1기 지하철’(1~4호선)과 ‘2기 지하철’(5~8호선)로 구분하는데, 이 둘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1기 지하철의 경우 강남지역이나 도심지역을 제외하면 지상구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2기 지하철은 대부분의 구간이 지하 깊은 곳을 통과한다. 5~8호선을 통틀어 땅 위를 볼 수 있는 구간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기관사들이 답답함을 느낀다. 공유정옥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2기 지하철의 운행환경에 대해 “기관사들의 불안감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관사들이 공황장애의 위험에 노출되는 이유는 단순히 터널이 많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수백 명의 승객을 홀로 싣고 달려야 하는 데 따른 부담감이 크게 작용한다.

서울시는 2기 지하철 개통을 앞두고 기존의 서울메트로(당시 서울지하철공사)에 운영을 맡기는 대신 제2공사를 설립한다. 94년 설립된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운영 목표는 저비용·고효율이었다. 서울시는 2기 지하철에 자동운전시스템(ATO, Automatic Train Operation)을 도입하면서 1인 승무를 채택한다. 2인 승무 하에서는 열차의 전두부에는 기관사가 탑승해 운전을 하고 후두부에는 차장이 탑승해 출입문 조작과 안내방송을 담당하지만, 1인 승무 하에서는 기관사가 모든 역할을 도맡는다. 비록 ATO를 갖췄다고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 수동운전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열차 착발 때 차장의 업무

➊ 정차 위치가 맞는지 확인한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을 때에는 ‘정차유도 안내 표시등’에 표시된 “양호” 알림을 확인한다.
➋ 출입문을 연 후 모든 출입문이 제대로 열렸는지 화면을 통해 확인하고, 스크린 도어의 ‘열림표시등’을 확인한다.
➌ 열차의 도착·출발시각을 확인한다.
➍ 육안 또는 CCTV 화면으로 승객의 승하차 상태를 확인한 후 출입문과 스크린 도어를 닫는다. 마찬가지로 닫힘 상태를 확인한다.
➎ 출발신호기 또는 출발반응표지를 확인한다.

자료 : 5678서울도시철도노동조합

결국 이 말은 크고 작은 열차고장이 발생하거나 사고가 일어나면 기관사 혼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1인 승무는 승객이 몰리는 혼잡시간대에 특히 더 많은 부담을 준다. 공유정옥 전문의는 시민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기관사들에게 필요하지만, 혼자 그 부담을 지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한다.

아울러 서울도시철도노조는 기관사 정신질환 발생의 원인으로 ‘억압적 노무관리’와 ‘후진적 조직문화’도 지목하고 있다. 지난달 8일 숨진 김 씨가 근무하던 수색승무사업소의 경우, 회사의 노무관리자가 별도의 스프레드시트 파일을 통해 기관사들의 신상을 관리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파일에는 수색승무사업소 소속 기관사 219명의 본적은 물론 출신까지도 들어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지부장 선거를 앞두고 기관사들의 성향을 ‘보수’, ‘중도’, ‘진보’ 등으로 나눠 분석한 사실도 드러났다.

▲ 서울지하철 1·2호선 시청역 농성장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서울시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기관사들의 고충을 넘어 고통에 다다른 여러 가지 문제들 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1인 승무에 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2003년 첫 사망자가 생겨난 이후 10년이 넘게 지난 탓에 서울시에서도 이 문제를 모를 리 없다는 게 서울도시철도노조의 전언이다.

실제로 서울시에서는 2012년 3월 다섯 번째 사망자가 나오자 같은 해 7월 ‘서울시 지하철 최적근무위원회’(최적위)를 발족했다. 2007년과 2013년에는 서울도시철도공사 소속 승무직 4급 이하 전 기관사를 대상으로 임시건강진단도 실시했다. 2013년에 실시된 임시건강진단 결과 정신질환 고위험군에 속한 34명의 기관사들 중 다른 업무로 옮긴 7명을 제외한 27명은 지속적인 상담과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해당 보고서가 발표된 지 한 달여 만인 2013년 10월 일곱 번째 사망자가 나오고, 서울도시철도노조는 2014년 1월까지 91일 동안 서울시청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인다. 그러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제안으로 지하철 기관사 근무환경 개선단이 꾸려져 총 여섯 차례에 걸친 회의 끝에 2014년 10월 ‘기관사 근무환경 개선 종합대책’ 최종안이 확정된다. 종합대책에는 향후 발전과제로 ‘2인 승무 시범실시’와 ‘1인 승무수당 지급’ 등이 포함돼 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기관사 정신질환의 원인과 해법이 모두 나온 셈이지만 기관사 자살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1기 지하철과의 공사 통합을 앞두고 2인 승무가 도입될 거라는 기대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공사 통합은 무산됐다.

서울시는 서울도시철도공사에 2인 승무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926명의 인원과 1,341억 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며 “시에서 공사에 개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조합과 전문가들은 서울시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공유정옥 전문의는 “건강에 손상을 입은 분들을 위한 치료와 재활, 아직 건강한 분들을 위한 예방을 위하여 이미 찾아낸 대안들을 공사와 서울시가 책임 있게 실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아홉 명의 기관사가 이미 극단적 선택을 한 상황에서 책임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편, 서울도시철도노조는 지난달 18일 서울지하철노조와 공동으로 시청역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명순필 위원장은 “기존에 합의했던 내용으로 또 다시 합의에 그칠 수는 없다”면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농성을 거두지 않겠다고 밝혔다. 기관사 근무환경 종합대책을 이행하라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대해 과연 서울시가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