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 노동조합, 패러다임 바뀌어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노동조합, 패러다임 바뀌어야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6.05.09 15:22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정적인 연구문화 정착 없이 조직문화 살기 어려워
무한경쟁 속에 자기 과제 싸움만 급급
[사람]한주동 한국전자통신연구원노조 위원장

조합원의 대부분이 박사인력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쩐지 노조 위원장이 퍽 고달프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한주동 위원장에게 들어본 ETRI와 노동조합의 상황은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침체된 분위기를 더욱 다운시키고, 개인적인 성향의 조합원들을 이기적으로 내모는 조직문화는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한주동 한국전자통신연구원노조 위원장 ⓒ 한국전자통신연구원노조

ETRI와 노동조합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40주년이 됐다. 지난 1976년에 설립됐다. 전에는 전기통신연구원이었는데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는 2,500여 명의 연구원이 정보 통신 분야의 연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노동조합은 지난 1987년 출연기관 중 최초로 설립됐다. 조합원은 1,100명 수준이다.

조합원들의 대부분은 연구직이라고 보면 된다. 행정 직종이 200여 명 정도 규모가 되는데, 조합 가입을 잘 안 한다. 그러면서도 위원장인 나는 행정직 출신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딱히 노동운동에 관심이 있었다거나, 조합 활동에 신경을 쓰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2000년 10월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만 해도 그냥 평범한 조합원이었다.

당시 노동조합이 이런 저런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었다. 90년대 말 IMF를 겪으면서 조합원이 110명까지 떨어졌다. 선배가 불러서 조합 일을 좀 하라고, 사무국장을 하라고 하는데, 뭘 하는 건지도 잘 몰랐다.

막상 노동조합에 와 보니 시스템이 하나도 없더라. 허허벌판처럼 완전히 망가진 노동조합으로. 대의원도 없고 뭐 그냥…. 내가 축구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운동을 좋아하니까, 왜 운동하는 사람들은 끈끈한 정으로 엮이는 게 있지 않나. 그래서 후배들을 불러 간부도 시키고, 대의원도 하라고 하면서 조금씩 조직을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쳤다.”

조합 활동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특히 출연기관의 경우에는 개인주의가 굉장히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자기 밖에 모른다. 요구하는 것만 알지, 대안을 만들거나, 특히 격려하는 것에 대해선 전혀 무지하다. 최근에는 익명게시판을 통한 비난 때문에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조합원 110명 수준에서 1,100명으로 끌어올리는 데 15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전환점이라고 하면, 연구원들이 선호하지 않는, 이른바 강성노조에서 정책노조로 변환한 점이다. 2004년 무렵부터 소식지 같은 것을 현장에 쭉 배포하고 하면서 연구 현장의 여론을 만들어나갔던 것이다. 그러면서 노사관계도 대등해졌고, 조합의 위상이나 역량이 갖춰졌다.

존중이나 배려가 부족한 것은 지금 현재 ETRI의 조직문화와 관련이 있는 거 같다. 서로가 폐쇄적이고 개인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게, 과제비 안에 인건비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데 같은 경우엔 인건비를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돼 있다. 정부에서 주는 과제를 드롭시키면 인건비가 안 나오는 것이다. 과거에는 정부에서 과제들을 안정적으로 줬다. 지금은 무한경쟁을 시킨다. 그러다보니 서로 자기 과제 싸움이 치열하고, 존중이나 배려의 문화가 자라기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의 해결 방안은?

“무엇보다도 연구 환경을 안정화 시키는 것, 연구 분위기를 쇄신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연구 과제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이를 통해 비용도 해결돼야 한다. 연구 과제를 좀 연구원이 선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한데, 지금 가장 어려운 점은 정부의 미션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연구에 ‘그린’이 들어가지 않으면 과제 선정이 안 되었다. 지금은 ‘창조’가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선정된 과제도 3년을 간다는 보장이 없다. 매년 20%를 탈락시키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 다음 과제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과제 기획을 한 번에 5개씩 돌리고 그런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연구성과가 나오겠나. 공무원들은 무조건 성과, 실적 중심이다. 연구 과정의 투명성이나 성과 평가 등은 외부에서, 공인된 학회나 전문가들이 평가할 수 있는 툴을 만들면 된다. 이미 만들어져 있고.

정부와 연구기관의 신뢰가 중요하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실패를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 600개 과제가 있으면, 보고서 머리말에 100%가 성공한 것으로 나온다. 이거는 거짓말이다.

또 하나는 연구원들이 행정적 부담이 많다는 점도 문제다. 장관이나 국장에게 지시를 받은 사무관이나 주무관에게 아침에 바로 메일이 날라 온다. 몇 시까지 보고하시오. 그러면 연구원들은 그거 밤샘해서 바로 보고자료를 드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