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나서라도 외양간을 고쳤더라면
소 잃고 나서라도 외양간을 고쳤더라면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6.1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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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성상영의 촌철살인미수

달리는 전동열차를 향해 스스로 몸을 던지거나 승강장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자 대부분의 지하철 역사에 스크린도어(PSD)가 설치됐다. 서울시는 PSD를 설치한 덕분에 많게는 한 해 90건이 넘던 승강장 투신 시도 건수가 20여 건으로 크게 줄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 PSD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것도 오작동을 일으킨 PSD를 정비하던 노동자가 희생양이 됐다. 무려 세 명의 노동자가 똑같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첫 번째 사고는 2013년 1월 성수역에서, 두 번째 사고는 지난해 8월 강남역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세 번째 사고는 지난달 28일 구의역에서 일어났다. 모두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2호선의 지하철역이다.

구의역 곳곳에는 이번 사고로 숨진 19살 김 모 씨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었고, 몇몇 시민들은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청년의 어머니는 사흘 뒤 기자회견에서 “서울메트로가 죽였다”며 절규했고, 기자회견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서울메트로는 PSD 관리를 은성PSD라는 업체에 맡겼다. 은성PSD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최대한 사람을 적게 뽑았다. 그 결과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1~4호선 강북구간 49개 역의 PSD 정비를 단 6명이 담당하게 됐다. 이 6명은 하루에도 수십 건씩 발생하는 PSD 오작동을 손보느라 끼니도 거른 채 이 역 저 역을 쫓아다녀야 했다. 규정상 ‘2인 1조’로 작업이 이뤄져야 하지만 대부분 혼자서 할 수밖에 없었다. 숨진 청년의 작업용 가방에 공구와 함께 뒤섞인 채 발견된 컵라면은 이번 사고의 원인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노동계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무분별한 외주화’로 지목하고 있다. ‘경영 효율화’를 명분으로 열차 운행에 필수적인 PSD 정비와 같은 안전업무조차 외주화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수역 사고와 강남역 사고 당시 서울메트로 측은 작업자들이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탓이라고 말했다. 서울메트로는 이번에도 “작업자들의 규정 미준수”를 언급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세 명의 노동자가 죽고 난 뒤에야 언론은 사고의 ‘진짜 원인’이 뭔지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전과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직감한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부랴부랴 자회사 전환 등의 대책을 내놨다. 경찰도 이번에는 사고 원인을 찾느라 분주하다.

일각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소를 잃고 난 후에라도 외양간을 고쳤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차이는 크다. 만약 성수역에서 첫 사고나 났을 때 적절한 대처가 이뤄졌더라면 이후 두 번의 사고가 발생했을까? 부디 네 번째 희생자가 생겨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