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었는데…’ 한 마디가 빚어낸 불화
‘농담이었는데…’ 한 마디가 빚어낸 불화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6.1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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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발언 논란에서 ‘보복해고’ 진실공방까지
서로에게 날 세우기보다는 갈등해소 위한 혜안을
[사건]‘첩첩산중’ 부천원종복지관 갈등

경기도 부천시에는 석왕사라는 절이 있다. 석왕사는 지역에서 손꼽힐 정도로 규모가 큰 절이다. 1990년 석왕사는 ‘석왕사룸비니’라는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했다. 석왕사룸비니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과 어린이집, 요양시설 등은 모두 16개에 달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처럼 이곳의 산하 기관인 부천시원종종합사회복지관(이하 복지관)에서 성차별 발언 논란과 ‘보복해고’ 여부를 둘러싼 진실공방에 휩싸였다. 1년 전에 벌어진 사건으로 복지관 측과 그곳에서 일하던 한 사회복지사 간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그녀가 법당 앞에서 108배를 하는 이유

지난 5월 20일 한 여성이 석왕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108배를 올리고 있었다. 이날 부천지역 날씨는 기온이 30도에 육박했고 자외선 지수와 미세먼지 농도도 높았다. 도심 전광판에는 종일 ‘외출자제’라는 메시지가 표시돼 있었다. 그녀는 때 이른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법당 안 불상을 바라본 채 묵묵히 절을 했다. 복지관에서 1년 간 계약직으로 일하다 지난해 6월 복지관 측으로부터 계약만료 통보를 받은 이 모 씨였다.

복지관의 통보대로 이 씨의 근로계약은 지난해 7월 31일 만료됐다. 하지만 그녀는 계약만료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날마다 법당을 찾고 있다. 매주 금요일에는 민주노총 지역일반노조 간부를 비롯해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이 씨와 함께 석왕사 정문에서 한 시간 가량 집회를 연다.

이 씨의 요구사항은 크게 두 가지다. 복지관에서 일어난 ‘성차별 발언’에 대한 사과 및 재발방지, 그리고 복지관이 자신에게 한 ‘보복해고’의 철회 등이다. 이 씨는 복지관의 A 부장이 직원 B씨의 임신 소식을 듣고 성차별적 발언을 해 당사자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고 주장한다. 또 당시 발언을 문제 삼은 이 씨에게 일방적으로 계약만료를 통보함으로써 ‘보복해고’를 일삼았다고 주장한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그러나 복지관 측의 주장은 이와 크게 엇갈린다. 복지관 측은 이미 문제의 발언에 대해 A 부장이 당사자인 B씨에게 직접 사과했고, 문제가 잘 마무리됐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이 씨가 본인의 문제가 아님에도 행동에 나서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또 이 씨에게 계약만료를 통보한 사유에 대해서는 1년의 계약기간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관해 복지관 관계자는 “우리를 성차별·인권침해 기관으로 매도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가임기 여성은 다…’ 농담 한 마디에

양 측이 극심한 갈등을 벌이게 된 발단은 A 부장의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버려야겠네”라는 ‘농담’ 한 마디였다. A 부장은 지난해 2월 병가를 내고 암 치료를 받아왔다. 그러던 4월 17일 A 부장은 직원들의 안부가 궁금해 퇴근시간에 맞춰 복지관을 찾는다. 두 달여 만에 만난 A 부장과 복지관 직원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 한 직원이 B씨의 임신 사실을 언급한다.

직원 1 : 부장님, 혹시 B씨 아이 가진 거 들으셨어요?
ⓐ 부장 : 아니, 못 들었는데?
직원 2 : 업무분장표에 쓰여 있던데요?
직원 3 : 부장님, 저도 둘째 가질 거예요.
ⓐ 부장 : 아기 낳은 지 얼마 안 됐는데, 그러면 책상 뺀다.
직원 3 : 책상 빼면 마당에서 책상 가져다가 근무하면 되죠. 부장님 휴직 끝날 때까지 부장님 책상도 온전하지 못할걸요. 그래도 저는 둘째 낳을 거예요.

일련의 대화 내용은 2015년 7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복지관 측이 발표한 자료에 묘사된 것이다. 복지관 측은 당시 상황에 대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설명한다. 직원들과 A 부장이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에 나눈 농담이라는 것이다. 곧이어 복지관에 가임기 여성이 많다는 말이 오갔다. 이에 A 부장은 “일할 사람이 없는데 앞으로는 직원 뽑을 때 가임기 여성은 뽑지 말아야겠다”며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버려야겠네”라고 말했다. 이 역시 직원들이 웃으며 한 ‘농담’이라는 것이 복지관의 설명이다.

직원들과 A 부장이 문제의 대화를 나눌 때 B씨는 그 자리에 없었다. B씨는 다음 날 오전 복지관에서 주관한 행사장에서 다른 직원을 통해 A 부장의 발언을 들었다. 오후에는 A 부장을 만나 자신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복지관 측 주장에 따르면, 당시 A 부장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B씨가 육아휴직을 다녀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했다. 또한 B씨가 육아휴직을 하면 다른 팀원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날 수 있으니 남은 기간 팀원들에게 잘해줘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B씨는 당시 A 부장이 “그럴 거면 육아휴직을 다녀오지 말던가. 지금 돈 없어서 있는 직원도 자를 판인데, 새로 사람 뽑지 않을 거니까 알아서 해”라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며칠 뒤 외근을 갔다 복지관으로 돌아온 이 씨가 B씨를 만났다. 그녀는 B씨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보였다고 전했다.

커지는 갈등, ‘보복해고’ 주장까지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B씨로부터 사정을 들은 이 씨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버려야겠네”라는 A 부장의 말 자체가 부적절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A 부장이 B씨를 만나 육아휴직에 대해 탐탁지 않은 듯 말한 사실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씨는 문제의 발언을 두고 임신한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발언’이라고 주장한다.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느낀 이 씨가 복지관의 고충처리위원회에서 사건을 다루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 씨는 A 부장이 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B씨의 동의하에 복지관 관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직접 사실을 알린다. 그러자 이 씨의 행동이 이른바 조직의 ‘결재라인’에 합당한지를 놓고 복지관 내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A 부장은 해당 발언에 대해 “오해한 것 같다”며 B씨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했고, 일이 커질 것을 우려한 B씨는 사과를 받아들인다.

비록 개인적으로 사과가 이루어졌으나, B씨는 이른바 ‘결재라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복지관 내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을 알고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B씨를 지켜보던 이 씨는 그녀가 원할 경우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개인 차원이 아닌 복지관 차원의 사태해결을 촉구하고 나선다.

그러나 A 부장이 문제의 발언을 한 지 두 달이 지나는 동안에도 사태가 해결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B씨를 지지하고 도왔던 계약직원 이 씨에게 갈등의 불씨가 옮겨 붙으며 문제가 복잡해졌다. 복지관 측이 이 씨에게 계약만료를 통보하면서 ‘보복해고’ 논란까지 더해진 것이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재계약 불가’ 통보였다. 이 씨가 작성한 근로계약서에는 계약기간이 2014년 8월 1일부터 2015년 7월 31일까지로 돼있었다. 형식상 ‘예산부족에 따른 재계약 불가’였기 때문에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봐야 이 씨가 복직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결국 이 씨는 노무사와의 상담 끝에 지노위에 구제신청을 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지역공동체사업을 너무 하고 싶은 마음에 계약기간이 어떻게 되는지는 생각지도 않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상처뿐인 영광 얻으려 하나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이 씨가 복지관을 떠난 후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이른바 ‘성차별적 발언’과 ‘보복해고’에 관한 갈등은 그 끝을 알 수 없게 됐다. 사건을 둘러싼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양 측 주장의 차이가 큰 탓에 아직까지도 사건의 양상은 진실공방에 머물러 있다. 두 가지 쟁점은 지난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이 접수돼 현재까지 계류 중인 상태다.

인권단체연석회의가 국가인권위에 전달한 의견서에는 A 부장의 발언이 “합리적 이유 없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평등권을 침해한 차별 행위”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섰던 이 씨의 계약해지는 보복성 해고라고 이해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복지관에서 A 부장의 위치를 고려하면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버려야겠네”라는 발언은 해고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편 이번 사건은 양 측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한 B씨는 아이를 출산해 육아휴직 중이지만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복지관 측은 “합리적 기관의 공동조사”를 요구하면서도 이 씨와 더불어 그녀를 돕는 지역 활동가들에게 ‘명예훼손’이라며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른바 ‘성차별적 발언’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지만 끝내 고소·고발이라는 악수를 둔 것이다.

반면 이 씨는 “갈등을 마무리할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면서도 오히려 지금보다 더 높은 수위의 행동을 하겠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양 측 모두 ‘문제해결’을 말하지만, 자신이 ‘완봉승’을 거두는 데에 매몰되지는 않았는지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아직 사건을 둘러싸고 기본적 사실관계조차 불명확한 지금, 좀처럼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양 끝에서 있는 힘껏 잡아당기기만 한들 그것이 풀릴 리 만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