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생산 중심의 삶의 양식에 저항
폐기물 생산 중심의 삶의 양식에 저항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6.06.1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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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무이한 장인의 기술이 ‘창조경제’가 되는 그날까지
고객이 ‘빨리빨리’ 원해도 ‘차근차근’ 카메라에 새생명을
[노동이 머문 오래된 공간을 찾다]중앙카메라 수리센터(2)

그는 곧 터득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 대상은 피사체가 아니라 빛이라는 것을.
피사체는 단지 빛을 반사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 로버트 제임스 윌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김학원과 네 번째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로버트 제임스 윌러가 쓰고, 영화로도 제작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피사체는 단지 빛을 반사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목소리라는 피사체만 보면 김학원을 쓸 수 없다. 내가 듣는 목소리는 그 기억을 드러나게 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KH1, 지구상 유일한 중형사진기

▲ ⓒ 참여와 혁신 DB

김학원이 오래되어 낡은 기계식 사진기와 함께 늙어가는 건 소중한 것을 버리거나 잃어가는 물질 중심 사회에 맞선 저항이다. “지금은 고장 나봐야 고치지도 못해. 다 바꿔야지. 디카 수리하는 사람들 아무것도 몰라.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거고. 키트만 바꿔주는 거지. 결국 (수리 센터까지 직접 운영하며) 대기업이 다 해먹는 거야.” 김학원이 디지털 카메라를 혐오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뭔가 정서도 그렇고, 돌아볼 새도 없는 거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여. 이 사회 자체가 바뀌어야 애들한테 가르칠 점도 있고 배울 점도 있고.” 곰팡이가 끼고, 핀이 어긋난 렌즈를 닮은 세상에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멈퍼드의 책을 빌려 김학원의 생각을 더듬는다.

필요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상품을 생산하고, 유용성의 유무에 개의치 않고 발명을 이용하며, 효과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권력을 행사하는 습관이 현재 우리 문명 곳곳에 만연해 있다. 그 결과 개성의 전체 영역은 협소해지고, 단순한 적응이 아닌 목적의식적 행동의 영역은 줄어들고 있다. 이런 지배적 도구주의는 기계와 긴밀하게 결합될 수 없는 생명의 작용을 공격하고, 지성, 능력, 선견지명을 상징하는 상품의 중요성을 확대한다. 이 경우 상품을 소유하지 못한 상태는 어리석음과 실패의 표시가 된다. 이런 물질주의가 목적 없는 극단으로 달려갈수록 물질주의 자체가 목적이 된다. 수단과 목적은 전도된다. 공장을 가동해 생산된 상품을 소비하는 것만이 물질적 상품의 존재 이유다.

- 루이스 멈퍼드, 『기술과 문명』

김학원의 저항은 말이 아니다. 노동의 공간인 손으로 한다. ‘KH1’의 탄생. KH1은 ‘김학원(Kim)이 손으로 깎아 만든(Hand made) 세상에 유일한(1) 사진기’다. 2007년에 완성된 이 카메라는 김학원이 비싸게만 생산하고, 수리는 여의치 않은 디지털 카메라에 맞서 4년 가까이를 씨름해 만든 중형카메라다.

최고의 렌즈로 알려진 비오곤 렌즈를 김학원은 지니고 있었는데, 이 렌즈에 맞는 사진기를 찾을 수 없어 스스로 제작에 나섰다.

“이게 엄청 좋은 렌즈지. (렌즈를 보여주며) 그런 기분이 들죠. 얘가 최고의 렌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디테일이 말도 못해.”

도면은 없다. “머리로 생각해서 구상을 하면 그렇게 하는 거예요.” 도면 그리는 걸 배우는 대신 ‘두부모 같은’ 두랄루민을 소형 밀링으로 직접 깎아 만들었다. 부속들도 대부분 머릿속으로 구상해 직접 제작했다. 기계식 사진기에 들어간 무수한 부품까지 직접 설계해 조립했다는 자체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다.

“(좋은 카메라는) 기계를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는가. 그 동작에 맞는 쇠를 잘 써갖고 강한 데는 강한 쇠를 써주고……. 그런 걸 잘 맞춰가지고. 기계는 유격이 생기면 동작이 제대로 안 될 때도 있고.”

김학원은 ‘좋은 카메라’를 수리만 하다 직접 좋은 카메라를 생산했다.

“지구상에 이런 카메란 없어.”

이런 저런 개인사를 물어볼 때는 애써 무시하던 김학원. KH1 이야기를 시작하자 얼굴에 웃음이 넘쳐난다. KH1은 중형카메라 가운데 가장 작은 카메라로 사진작가들이 무척 탐을 낸다.

“안 판다고 하니까 짜증을 내.”

삶의 양식을 되찾는 장인

두 세기 전 일어난 산업혁명으로 기계에 장인들이 밀려났다. 김학원은 노동의 손으로 명품 카메라 기업들에게 맞섰다. 기술의 경쟁이 아니다. 물질 중심, 소비 중심의 사회에 올바른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일깨우는 행위다.

처음부터 기계의 가장 지속적인 정복 대상은 빠르게 유행에 뒤처지는 기구도, 빠르게 소비돼버리는 상품도 아닌, 바로 삶의 양식이었다. 즉 삶의 양식을 기계를 통해서, 그리고 기계의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 루이스 멈퍼드, 『기술과 문명』

▲ ⓒ 참여와 혁신 DB

상품 중심, 소비 중심, 돈 중심 사회에서 기술과 문명의 진보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게 아니었다. 인간은 한계가 있는 존재임을 세뇌시켰다. 기계의 힘과 속도를 인간에 견주며 인간의 노동을 일자리라는 경쟁의 공간으로 좁혀 쫓아내고 있지 않는가. 스마트폰과 잠시라도 멀어지면 두려워지게 만들고, 남보다 더 비싸고, 많고, 큰 소유물을 지녔는지 여부로 인간의 품격을 매기는.

현대 사회의 상품은 하루빨리 폐기물 처리장으로 가는 게 목적이다. 상품의 교환주기를 빠르게 해야 경쟁력을 지닌 상품이고,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다. 기계 중심의 사회는 폐기물 생산 시스템이다. 손의 노동이 기계의 노동으로 바뀌며 노동은 더 이상 인간다움을 갖지 못하게 됐다. 인간의 노동을 빼앗은 기계가 위협하는 건 일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삶의 양심을 바꿨다. 인간의 본성마저 위험하다.

18세기 중엽 신생 산업 분야에서 수공업 노동자는 기계와의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계 시스템에는 하나의 아킬레스건이 있었는데, 이는 인간 본성 자체였다. 처음부터 노동자들은 빠른 작업 속도, 엄격한 규율, 단조로운 작업에서 오는 무료함에 저항했다.

- 루이스 멈퍼드, 『기술과 문명』

컨베이어벨트에 매달린 노동은 무료함을 소비를 위한 돈으로 보상받으려 한다. 공장은 숙련된 기술보다는 기계의 속도에 적응하는 부품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절실했다. 인간이 부품이 될수록 인간은 허기진 배를 채울 돈이 절실했다. 배고파서 못 살겠다고 파업을 했고, 기계를 부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기술을 거세당한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컨베이어벨트 앞에 다시 설 수밖에 없었다. 이미 공장과 기계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김학원은 KH1을 통해 공장에서 더 이상 만들지 않는 반영구적 사진기를 선보였다. 인간의 본성을 찾는 노동이 거세당하지 않았음을 밝히는.

<중앙카메라수리센터>에 오는 사진기는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김학원의 손을 거친 사진기는 아무리 고객이 ‘빨리 빨리’를 원해도 ‘차근차근’ 새 생명을 찾기 때문이다.

꽤 유명한 메이커의 사진기 바디를 감싼 레자가 오그라든 걸 벗겨내고 가죽으로 다시 감싸는 작업을 하며 김학원은 말한다.

▲ ⓒ 참여와 혁신 DB

“이렇게 알아주는 메이커가 오그라들면 어쩌라고. 레자 같은 거, 비닐 쓰면 오그라드니까. (새로 씌우는) 이건 가죽 제품이니까 오그라들 일이 없지.〔……〕조금씩 조금씩 하는 거야. 이거 내가 붙여놓고 칼로 자르고 그러면 (빨리 할 수 있지만) 여기가 자국 나가지고 몸뚱이 같은데, 기스가 문제가 아니라 그래서 내비두면 도금 사이로 습기가 들어가서 (도금이) 일어나. 감자 껍질 벗겨지듯이 벗겨져. 그래서 칼 대면 안 돼. 그런 걸 알면 괜찮은 데 개뿔을 아나. (가죽 덧대면 보이지 않는다고) 칼로 대고 쭉쭉, 그런 거 저런 거 다 따져서 해주는 거하고, 그냥 칼로 대서 쉽게 짝짝 붙이는 거하고, 그런 걸 모른다고 사람들이.”

남들은 쪼가리 떼고 붙이면 되는데 무슨 시간이 오래 걸리느냐고 투덜거린다. “나도 빨리 하고 쉽지. 내가 쉽게 넘어가는(일하는) 그런 성격은 아닌 거지. 그냥 내 것 아닌데 언제 다시 보겠다고, 이런 일은 안했어요.”

디지털 시대처럼 고객은 “맡기면 급해”한다. 김학원도 안다. “물론 빨리 해줘야 되지만 난들 빨리가 되나.” 인간의 노동을 덜어주는 기계문명이 첨단을 걷는데, 인간에게 여유는 사라지고 더욱 바쁘기만 한다. 자연의 시간에 움직이던 인간의 몸이 째깍째깍 촌각을 다투듯 카운트다운을 하는 기계의 시간에 매달려서일까.

김학원은 기계에 뺏긴 삶의 양식을 지키며 저항 중이다.

노동의 형이상학

아난다 쿠마라스와미는 “예술 없는 산업은 야만”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술 없는 산업은 노동자의 영혼과 정신을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형이상학이 현대의 형이상학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예술가가 특별한 부류의 인간인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특별한 부류의 예술가이다.” 이것이 바로 좋은 노동의 형이상학입니다.

- E.F. 슈마허, 『굿 워크』

내로라하는 사진작가들이 김학원에게 사진기를 선뜻 맡기는 이유가 뭘까? 김학원의 사진기 수리는 예술행위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잘 나가는 연예인이 공장처럼 그림을 뽑아내 고가에 판매하듯 김학원도 공장처럼 카메라를 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행위(노동)는 기계가 새기지 못하는 무엇이 있다. 인간의 눈이 구별하느냐 못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는 구매자가 아닌 행위자만이 간직할 수 있는 희열이고 행복이기에. 바로 혼이다. 예술작품에서 혼을 볼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예술 행위의 대상(관람자가)이 혼을 안다는 건 허위일 수 있다. 행위의 주체가 담은 혼, 그 혼은 행위의 주인일 때만이 누릴 수 있는 럭셔리(사치)다. 임재천 작가가 김학원을 쓰며 ‘수리의 명장, 낡은 카메라에 새 생명을 불어넣다’고 표현한 까닭이 여기 있다. 여기서 ‘새 생명’이 바로 혼이 아닌가. 알파고가 바둑을 둘 때 지능을 닮을 수는 있어도 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학원은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두 번째 인터뷰를 하기 직전인 오월 첫 주에는 KH1을 지니고 중국에 다녀왔다. 인터뷰를 위해 녹음기를 꺼내자 김학원은 현상된 6X7 사이즈 필름을 내민다. 유리 진열장 윗면을 향해 비추는 형광등을 켜고 그곳에 필름을 올린 뒤 루페를 통해 감상하란다. “와!” 입이 벌어졌다. 믿기지 않았다. KH1과 비오곤 렌즈가 만나자 환상이 펼쳐진다.

“입이 안 벌어지면 눈이 잘못됐지.”

▲ ⓒ 참여와 혁신 DB

자신의 수리 기술에 대해서는 좀체 자랑을 하지 않던 김학원이 자신이 찍은 사진에 대해서는 스스럼없이 속내를 내비춘다. 보는 이가 사진 속으로 끌려가게 만드는 생동감을 표현하고 있으니 아낌없이 자랑해도 손색이 없다. 김학원이 KH1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 풍경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듯하다. 김학원은 무엇을 담고 싶은 게 아니라 무언가를 지키고 싶어 사진을 찍는 듯하다.

끊임없이 유동하고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사진기는 ‘복원’이나 ‘재생산’을 하지 않고 사람, 장소, 건물, 풍경을 사진이라는 길쭉한 이미지 형식 속에 담아냄으로써, 쇠락하고 부식되어가는 과정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수단을 제공했다. 이런 사진기 덕분에 집단 기억은 보존될 수 있었다.

- 루이스 멈퍼드, 『기술과 문명』

김학원은 마흔 즈음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기 수리가 “직업이 되다보니까 아는 사람도 생기고, 그러다보니까 자꾸 (출사) 나와라. 같이 촬영 좀 가자. 이러니까 그렇게 우연찮게 자꾸” 사진을 찍게 됐다.

작업실 곳곳에는 자신이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그 사진들을 감상하며 김학원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찾고 싶지 않다. 그의 사진을 멋들어지게 이 자리에 설명하는 일은 글쓰기를 위한 과장으로 흐를 수 있어 표현도 자제한다. 그저 “아!”하는 감탄이 멈추지 않았음을, 그래서 사진을 마주한 순간 행복을 느꼈음.

우리시대 미래유산

▲ ⓒ 참여와 혁신 DB

다시 김학원의 십대로 돌아간다. 대전에서 열네 살부터 카메라 수리를 했건만 주인은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기술을 배운다는 핑계로 월급 한 푼을 주지 않았다. 스물 즈음에 김학원은 “봉급을 안주니까 봉급 주는 데로 간다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역에서 동대문까지 걸어 다니며 자신이 일할 곳을 찾았다. 지금의 동대문종합시장 자리는 전차 차고였는데, 인근 청계천을 따라 판자촌이 있었다. “노점도 아니고 점포도 아닌” 판자촌에 자리한 카메라점이 눈에 들어왔다.

“남이 잘한다고 해야지 자기 입으로 자신의 기술이 어떻게 말”하느냐는 김학원은 애써 말하지 않아도 수리 솜씨가 뛰어났음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빈털터리로 서울로 와서 오륙 년 남짓 일하는 중에 결혼도 하고, 집도 한 채 장만했으니.

1970년대 후반에는 소공동 지하상가에 자리한 카메라점에서 십 년 가까이 일했다. 일생동안 월급을 받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카메라점 주인이 고쳐달라는 카메라는 구석 자리에 수리대를 차린 대가로 그냥 고쳐주고, 자신이 직접 맡은 사진기만 수리비를 챙겼다. 1985년에는 영등포 지하상가에 자신의 카메라 판매점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장사에는 소질이 없었다. 집을 팔아 점포를 냈는데, “장마통에 상가에 물이 차버렸잖아. 카메라가 다 물에 잠기고”, 별 수 없이 문을 닫았다.

1988년 올림픽이 끝나고 남대문 옛 시경 앞 건물에 수리 전문점 간판을 걸었다. 중부경찰서 앞으로 온 때는 2002년께다. 건물 1층에 자리한 <보성카메라> 건물에 이런저런 연으로 세를 들어 <중앙카메라수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KH1도 이곳으로 옮겨 와서 만들기 시작했다.

김학원은 이제 수리보다는 KH1 쌍둥이를 만들고, 자신이 만든 사진기로 출사를 나가며 살고 싶다. 하지만 수리대를 떠나기는 쉽지 않다. 돈도 벌어야 하지만 그가 수리를 멈추는 걸 주변 사람들이 가만 두지 않기 때문이다.

“수제 사진기를 만들어 파시면 되잖아요?”

묻는 순간 그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알았다. 김학원이 사진기 만들기에만 전념하려면 일이 년 동안 한 대의 사진기 제작에만 집중해야 가능하다. 그렇게 탄생한 사진기를 기계 사회가 가치를 값으로 환산하리라는 생각은 환상이다. 창조경제를 신처럼 떠드는 대한민국이지만 김학원 같은 숨은 장인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거다.

과학적 발견은 수많은 기술을 위해 쓰이거나 기술을 통해서 구체화될 수 있지만, 새로운 기술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뒤를 밀어줄 때만 개발될 수 있습니다.                        

                                - E.F. 슈마허, 『굿 워크』

김학원이 반백년 사진기 수리 노하우를 소중히 여겨 이제 그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명품 수제 사진기 생산 공방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는다. 노동의 공간이 된 김학원의 손이 국보고, 문화재이고, 미래유산이고, 창조경제센터가 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울시는 ‘근현대 서울을 배경으로 시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건이나 인물 또는 일상의 유무형의 것으로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를 지닌 것’을 미래유산이라 규정했다. ‘그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자생적인 문화유산 보전을 통해 미래세대까지 문화유산을 전달하여 역사문화도시로서의 서울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미래유산 보전의 목적이다. <중앙카메라수리센터> 김학원의 두 손이 무덤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존중하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