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00V 고압 만지는 전기원노동자, “살고 싶습니다”
22,900V 고압 만지는 전기원노동자, “살고 싶습니다”
  • 고연지 기자
  • 승인 2016.06.1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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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절감 위한 직접 활선(活線)공법 더는 안 돼
입찰용 민간 자격증 말고 국가자격증 도입해야
[기획]전기원노동자 노동실태

간혹 지나다니는 길에 전봇대 위에 매달려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주렁주렁 엮인 전선들 사이에 있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면서도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매달려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외쳤다. 전국건설노조 전기분과 소속 전기원노동자들은 지난달 28·29일 나주 한국전력 본사에서 노숙 투쟁을 진행하고, 11일에 대규모 집회와 사진전을 열었다.

그들은 ▲전기현장 직접 활선공법 폐지 및 대체공법 마련 ▲한전배전업무 국가자격증 제도화▲전기 노동자 의무 보유인원 법제화 등을 요구했다.

▲ ⓒ 건설노조

“지뢰 위나 고압선 사이나”

지난 11일 집회에서 한 전기원노동자가 캄보디아 이야기를 했다. 캄보디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뢰가 매설된 국가 중 하나이다. 캄보디아 지뢰제거 활동 센터(CMAC, Cambodian Mine Action Center)의 공식 발표로는 400~600만개의 지뢰가 매설되었다고 한다. 농업국가인 캄보디아 국민들은 밭을 일구다 팔다리가 잘려나가거나 죽을지도 모르는 지뢰의 위험 속에서도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짓는다. 갑자기 캄보디아의 이야기가 전기노동자와 무슨 연관이 있나 싶기도 할 것이다.

전기원노동자는 “지뢰 위나 고압선 사이나 생계 때문에 죽을지 모를 곳에 뛰어드는 것은 똑같다”고 말했다.

인천의 한 배전공사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옷차림을 유심히 봤다. 모자, 마스크, 방염복, 고무장갑 등을 겹겹이 껴입은 그들은 작업에 들어가기 전 서로에게 말한다.

“안전하게 하자, 안전하게”

▲ ⓒ 건설노조

작업자들이 올라가고 땅에 있는 사람들은 작업 내내 한순간도 허공의 작업자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눈을 뗄 수 없다. 위에서 버켓(고소작업차 사람을 태운 부분) 운전하면서 작업을 하니까 혹시 못 보는 부분이 있을까싶어 아래서 계속 본다.”

작업을 마친 전기원노동자는 “올라가기 전 항상 밑에서 바라보면서 머릿속에서 매뉴얼대로 순서를 정해놓고 진행”한다고 말하며 절연고무장갑을 껴보라며 건넸다. “누군가 그 장갑 끼고 있으면 가위바위보 무조건 이겨요. 상대가 보자기밖에 못 내니까” 장갑은 두껍고 손을 오므리기 힘들었다.

작업자들은 전봇대 사이사이 전기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절연 고무장갑을 끼고 조그만 너트를 끼운다. “고무장갑 끼고 하기 쉽지 않아요. 이 조그마한 걸 장갑 낀 손으로 돌릴 수가 없거든요. 근데 한전에서는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아서 잘못이라고 하죠.”

“장갑 끼고, 고압선 사이사이 들어가서 일합니다. 안전장구도 한국 것은 없고 미국 것 가져다 쓰는데 동양인, 서양인 체구가 다르고. 여름에는 그 옷 안이 80도가 넘어갑니다. 찜질방 안에서 일하는 것과 다름없죠. 작업하다 탈진도 하고, 기절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살아있는 활선을 만지는 작업을 계속하니까 하루 종일 벗지를 못하죠.”

한국의 전력 공급은 무정전(전기가 계속 흐르는)상태에서 선로를 유지·보수하기 위한 작업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62년 6.6[kV]에서 전력 사용의 증대로 배전선로의 전압이 22.9[kV]로 승압되었다.

석원희 민주노총 건설노동조합 전기분과 위원장은 “과거에는 잠시라도 정전을 해야 하고, 단순한 작업을 했었다. 국민들의 전기 수요가 많아지고, 정전이 안 되는 것을 원하다 보니 그에 맞춰 정전 없이 살아있는 활선을 좀 더 과감하게 만지기 시작”했다며 “한전이 2002년도에 민간업체가 개발한 ‘무정전 이선공법’이라는 신기술을 도입, 이 공법은 굉장히 복잡한 작업들은 정전 시키지 않고 진행하는데 무척 위험하다”고 전했다.

산업자원부는 2001년 11월 27일 전력기술관리법시행령 제7조 및 동법시행규칙 제3조와 제4조의 규정에 의거해 전선이선기구를 이용한 무정전배전공법을 지정하고, 고시했다. 여기서 말하는 이선공법은 전선을 교체할 때 전기가 흐르는 상태에서 전선이선기구를 이용해 교체전선을 순차적으로 분리, 연결하는 것이다. 석 위원장은 전기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에서의 위험성을 말했다.

“이선공법 도입 이후 노동자들이 다치는 일이 많아졌어요. ‘통전’이라고 합니다. 전기가 우리 몸을 통과하는 것을. 이렇게 되면 거의 팔을 잘라야 하는 상태가 됩니다. 22.9[kV]가 순간적으로 전해지면 신경이 죽고, 살이 속까지 다 익어버려요. 전기가 심장을 관통하면 현장에서 사망하는 경우도 다수입니다. 전기원노동자들이 2002~2005년 3년간 55명이 죽었고, 팔다리 자르는 부상도 70~80명에 이릅니다.”

미국의 경우 현재 대부분의 송·배전선로 공사의 작업은 절연기구(핫스틱)를 이용한 간접 활선 공법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일부 핫스틱을 이용하기 어려운 장소에서는 절연 고무장갑을 이용한 직접 활선공법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2000년 전후로 대부분 간접 활선공법을 활용하고 있고, 활선작업일 때는 휴전상태로 진행한다. 또한 로봇공법을 통해 작업자의 안전을 중시하면서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4만 명이 가진 자격증, 실제 전기만지는 사람은 6%뿐

“지금 일을 배우는 사람들이 없어요. 전기원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도 아니고,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2년마다 계약하고, 위험성도 높고. 어마어마한 인원들이 자격증을 받고 있는데 막상 현장에 들어오면 한 달을 못 버티고 다 도망가요.”

국내의 배전공사 기능 인력은 3D업종으로 분류되고 기피현상을 보이며 감소하고 있다. 국내의 교육은 2개월 반으로 작업공법에 대한 훈련 횟수가 적어 작업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직무능력을 갖추는데 무리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국은 48개월의 교육과정을 거쳐 현장에 투입되었고, 일본은 약 11개월의 교육과정 후 투입된다. 국내의 기능교육기간이 해외의 사례보다 적고 공사업체의 기업 여건상 충분한 적응 기간을 마련하지 못해 배전 전기원의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전기기술원 자격증은 국가자격증이 아닌 대한전기협회에서 관리하는 민간자격증이다. 실제 그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4만여 명인데, 일하는 4,300명 정도(노조추산), 실질적으로 고압활선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2,500명 정도뿐이다. 민간자격증을 발급하는 대한전기협회(회장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에서는 신기술, 신공법 등을 내놓는다.

석원희 위원장은 쉽게 발급하는 민간자격증이 아닌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인력을 키우는 국가자격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전에서 2년마다 협력업체를 선정하는데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업체별로 인원을 갖춰야 합니다. 그런데 업체도 실질적으로 인원을 다 갖추지 못하고 자격증만 채워놓고 실제 일 할 사람은 없는 겁니다. 그래서 4명이 할 일을 2명이 하고, 그럼 노동 강도도 세지고 안전은 뒷일이고 시간에 쫓기고. 사고는 빈번해지는 거죠. 그래서 노동자들은 국가자격증이 시행돼서 현장검증도 하고, 실제로 일 할 사람만 자격증을 갖게 하라는 거죠.”

목숨 걸고 일하는 전기노동자, 그들이 죽어간다

▲ ⓒ 참여와 혁신DB

한전에서는 배전공사 협력회사 업무처리기준, 무정전 배전공사 시공업체 관리 절차에 대한 지침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사규, 지침이더라도 사규, 지침이기 때문에 안 지켜도 책임이나 법의 처벌은 없다. 또한, 안전관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한전이 현장에 와서 감독하고, 패널티(스티커 발부)를 주는 등 고압적인 태도로 노동자들을 주눅 들게 한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한전의 배전공사 협력회사 업무처리기준에 따르면 고압선로 정전발생시 일시정전일 때 500만 원, 순간정전일 때 200만 원, 저압정전일 때는 100만 원의 벌금이 협력업체에 부과된다.

그렇다면 안전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어떨까? 노동자 사망 시 500만 원, 부상 300만 원의 벌금이 협력업체에 부과되고, 노동자 개인에게도 부상 1건당(본인 과실로 본인 또는 타인이 1일 이상 입원을 요하는 경우) 50점이 주어진다. 누계점수 50점 이상인 경우 2개월간 공사참여가 중지 된다.

한국전력공사는 “한전에서 공법을 공급하는 것이 맞다. 활선작업이 위험하니 작업절차가 명확히 지켜져야 하고, 안전장구도 모두 착용해야 한다. 노동자 개인의 작업집중도가 떨어졌거나 그 부분의 절차를 준수안하면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사건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활선작업의 전면폐지는 사실상 어렵다. 활선작업보다 사선작업이 비용적으로 효율적이나, 사선작업을 하면 1가구당 1년간 100~200분의 정전이 일어날 것이다. 그럼 그 불편을 국민들이 감수해야한다. 10년 전부터 활선작업을 해왔는데, 우리나라는 활선작업에서 바이패스케이블과 전선이선공법을 사용한다. 이 중 전선이선공법이 바이패스케이블공법보다 조금 더 비용절감이 되고,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현재 두 가지 공법 중 바이패스케이블 공법이 안전하니 그 공법을 확대해달라는 노조의 요구를 받았다.

절연장갑 끼고 못하는 작업이 있어 손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안다. 그래서 한국 내에서 자체 절연기구를 개발해서 하려고 한다. 활선공법을 사용한지 10년이 넘었고 진짜 안전하지 않는지 검증을 하고 안전하지 못하다는 객관적 증거를 토대로 관련기관들과 고려해서 반영할 예정이다. 또한 6월초에 노조와 대화를 하며 합의점을 찾을 예정이다. 당장 확정짓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노조는 “한전은 본인들과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대화창구가 없다”는 것에 답답해하며 “한전내규를 따르라고 하면서 교섭은 업체와 하라고 한다”고 전했다.

석원희 위원장은 전기원노동자들의 실상을 말했다.

“지부장들과 두 달에 한 번씩 한강성심병원을 갑니다. 전기화상전문치료병원인데, 가면 팔 없는 사람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동료들 병문안차 가는 거지만, 멀쩡했던 사람들 마취에서 깨어나면 양 팔이 없는 건데 제대로 살 수가 없죠. 사람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면서 다른 사람들, 가족들한테 히스테리 많이 부리니까 치료 끝나고 돌아가도 가정이 깨지는 경우가 많아요.. 이혼하고, 돈은 없고, 근근이 나오는 돈으로 술에 의지하며 살고, 사람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겁니다. 이렇게 목숨 걸고 일하는데 처우가 형편없어요. IMF이후로는 10년간 급여가 오르지 않았어요.”

▲ ⓒ 참여와 혁신 DB

직접 활선공법을 도입하고 있는 국내의 배전선로 공사의 연도별 재해자 수는 2003~2009년도 평균사망자 수를 기준으로 간접 활선공법을 도입한 미국과 일본 등 의 선진국과 감전사망률을 비교할 경우, 근로자 1천 명 당 사망자수는 가장 낮은 미국에 비해 31.1배, 일본의 8.3배로 한국의 감전 사망률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서 전기원노동자들이 활용하는 직접 활선공법은 간접 활선공법에 비해 경제적인 비용절감과 생산성이 높으나 산재율또한 높다.

현재 고강도 작업에 고압에 노출이 많은 전기원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 암, 백혈병 등 여러가지 중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이 최근 본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역학조사를 진행했다. 2년 전부터 근골격계 질환은 산재처리를 받고 있지만, 암·백혈병 등에는 해당사항이 아니다. 조사결과 암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15명 정도가 있고,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치료를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노조는 “5월 11일 나주 한전본사 앞에서 571명 혈액검사를 했고 백혈병 치료 중인 사람들, 사망한 사람 모두 산재신청을 할 예정”이라며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조선대 산업의학과에 요청해서 진행 중이며 세부적인 조사를 내 산업안전공단에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친듯 일해요. 정말로 왜 그렇게 일했는지 모르겠어. 지금도 다들 습관이 들어 미친듯이 일해요. 일 할 때 밑에 시민들 지나다니고, 고압선 사이에서 정신 놓으면 까딱하면 감전되는걸 아니까 작업내내 신경이 곤두서있죠. 피곤의 농도가 엄청납니다.”

▲ (위)조금만 늦었으면 두 팔 다 잘라야 했는데 병원에 빨리 도착해서 다행이예요. (아래) 중환자실이 난리가 났었다더만, 00이가 그냥 죽이지 왜 살렸냐고 해서 ⓒ건설노조

이철갑 조선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전자기파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란이 되는 과정 중에 전기원노동자들이 노출이 많이 되는 것이 갑상선 질환이나 혈액질환 등 어떤 영향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혈액검사를 하고 있다”고 현재 검사 진행상황을 설명했다.

문길주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사무국장은 “전기원노동자들의 암, 백혈병 등이 개인의 병이 아닌 것 같아 혈액검사를 시작했다”며 “자체 조사 암 환자가 26명이 나왔는데 더 있을 수 있다. 전기원노동자들은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전자파에 대한 규정도 없는 상황이다. 4000명가량의 노동자들 대상 전수조사를 하고 그들을 전자파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 사무국장은 “공법 도입 10년이 지났다. 한전에서도 위험한 활선을 피하고, 대안 제시가 필요한 상황이다”고 주장했다.

1887년 3월 6일. 경복궁 내 건청궁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점등이 점화됐다. 그로부터 129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전기세만 잘 내면 전기쓰는데 지장없는 세상에서 살고있다. 그러나 한순간도 전기를 끊이지 않게 하기위한 전기원 노동자들의 위험은 잘 모르고 지낸다.

1887년 3월 6일 저녁. 경복궁 내 건청궁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깜빡깜빡 하는가 싶더니 처음 보는 눈부신 조명이 갑자기 주위를 밝혔다. ‘아~!’ 주위에 모여든 남녀노소들이 모두 감탄사를 터트렸다.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점화된 것이다. 그로부터 129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불빛에서 시작해 휴대전화, 노트북, 컴퓨터, 냉장고 등 흔하게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생활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전기는 전기요금만 잘 내면 쓰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쉽게 쓰는 전기만큼 전기원노동자의 위험도 그렇게 여기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