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식 사진기와 반백년, 말이 아닌 손의 기억
기계식 사진기와 반백년, 말이 아닌 손의 기억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6.06.1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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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손에서 노동의 역사가 자리 잡다
쉽게 돈 버는 세상일수록 노동의 가치는 왜곡
[노동이 머문 오래된 공간을 찾다]중앙카메라 수리센터(1)

‘Where (or what) one cannot speak, one must pass over in silence.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철학 논고』를 통해 자신이 철학의 모든 문제를 풀었다고 말했다. 『논리 철학 논고』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비트겐슈타인이 포탄이 쏟아지는 참호 속에서 썼고 포로수용소에서 마무리했다. 철학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했다’고 선언한 비트겐슈타인은 세상의 문제를 일곱 가지 명제로 정리했다. ‘세계는 일어나는 일들의 총체이다’, ‘일어나는 일, 즉 사실은 사태들의 존립이다’, ‘사실의 논리적 그림이 사고다’,…… 여섯 가지 명제를 차례로 나열한 비트겐슈타인은 마지막 명제를 철학자답게, 아니 인간답게 제시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글 쓰다 모지라서 왔어?

▲ ⓒ 참여와 혁신 DB

오늘 소개할 인터뷰이에 대해 침묵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를 증명하려는 무수한 검은 활자 대신 묵언으로 그의 손이 쓴 노동을 말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서울 중부경찰서 바로 맞은편 건물 3층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이곳을 수리 센터라 부르기는 왠지 어울리지 않고 어색하다)을 네 번 찾아가 예닐곱 시간 인터뷰해서 녹취록을 만들었건만 고작 일곱 장(대체로 한 시간 분량을 녹취하면 열 장 분량이 나온다)에 불과하다. 그의 답변은 꽉 조여 찍은 사진처럼 심도가 한없이 깊다. 그 끝이 무한에 가깝다. 때론 주변은 철저히 아웃포커스하고 하고픈 말만 딱 부러지게 돋았다. <중앙카메라수리센터> 김학원.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데, 인간의 눈으론 그 끝을 볼 수 없는 사람. 선명하게 드러날수록 그를 에워싼 시간과 공간은 흐릿하다. 결국 ‘궁극적으로’ 그를 본 줄 알았는데 ‘말할 수 없는’, 결국 침묵해야 하는……, 최고의 렌즈라고 불리는 ‘비오곤(Biogon)’으로 찍은 듯한 김학원의 목소리가 야속하다.

작업실 문을 네 번째 열고 들어선 날이다. 김학원은 코끝에 걸린 돋보기 너머로 물끄러미 불청객을 확인한 뒤 묻는다.

“(글) 쓰다가 (원고 분량이) 모지라서 왔어요?”

그 순간, 네 그래요. 꽉 조은 것은 푸시고, 확 연 것은 조여주세요. 마음의 조리개를 ‘똑딱이’ 사진기처럼 적당히 맞춰주세요,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아뇨, 그냥 뵙고 싶어서요.”

김학원의 눈은 비오곤 렌즈를 닮았는지 사람의 속내를 찍어낸다.

“원래 (말하는 혹은 표현하는) 타입이 그래요. 아버지한테 막, 왜 거기서 태어나게 만들었냐고, 내가 (고향이) 경상도지만 나도 경상도가 싫어.”

김학원은 경상북도 “점촌에서도 (문경시 동로행 버스를 타고) 사십 리 더 가야” 도착하는 경천댐 언저리다. 김학원이 입학한 수평초등학교는 경천댐에 잠겼다. “산 넘고 비오면 질척거리는 진창길”을 따라 십 리를 걸어 초등학교를 다녔던 김학원. 그가 산골짝 ‘깡촌’을 떠난 까닭은 배고픔이다. 칠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김학원은 형님이 그랬듯 초등학교를 마치면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어서 빨리 숟가락 하나를 덜어야 했다.

“중학교에 가고 싶진 않았나요?”

김학원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답한다.

“공부는 원래 싫었는데 뭐. (부모가) 갈쳐 줄 생각도 안하고. 어머니가 뭐 졸업하기 전부터 쟤는 만지는 거 좋아하니께 그런 쪽으로 보내야 한다.”

대전에서 폐배터리에서 납을 골라내 제련소로 보내는 사업을 하는 삼촌의 손에 이끌려 김학원은 도시로 왔다.

장인의 손은 공간

2,500년 전에 그리스의 시인 알카이오스는 도시를 ‘기회와 비전이 있고 꿈이 이루어지고 욕망이 충족되는 곳’이라며 찬양했다.

- P.D. 스미스, 『도시의 탄생』

▲ ⓒ 참여와 혁신 DB

숟가락을 덜려고 대전으로 온 김학원에게 도시는 ‘꿈이 이루어지고 욕망이 충족되는 곳’이 아니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생의 땅, 열네 살 소년에게 도시는 그랬다.

“삼촌 따라다니며 배터리도 많이 두들겨 깼지. 해머로 막 부셔가지고 납을 가마니에 퍼 담아 가지고 제련하는 곳으로 보내는 거야. 그거 부수면 막 배터리액이 나오는데 나이롱 양말에 (액이) 튀어 구멍 나고, 옷도 구멍 나고, 얼굴이 따끔따끔 하고. 찌질이로 못 살았지. 고생도 많이 했고.”

김학원은 그 시절을 지우며 살고 싶다.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말해서 뭐하겠어.” 몇 년도에 대전에 가고, 서울은 언제 올라 왔는지, 손가락을 꼽아도 좀체 헤아리지 못한다. “좀 지나니까 월남전이 끝났어.” 이런 식이다.

“그때는 뭐 어린놈이 기록을 했나요. 일기를 썼나 뭐.”

기억속의 시간은 층층이 쌓이는 게 아니다. 미래로만 일직선을 그리며 나가는 게 시간인데, 이 시간들은 ‘김학원의 삶’이라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지나간 시간은 더 이상 숫자로 기록되어 순차적으로 나열되지 않는다. 공간속 시간은 기억을 통해 재생된다.

1965년인지 1966년인지는 김학원을 아는데 중요하지 않다. 김학원의 시간은 역사책의 연표가 아니라 손이라는 공간에 기록되어 있다. 오십년 카메라 수리 인생이 사진기를 매만지다 닳은, 그래서 빛바랜 흑백 사진을 닮은 김학원의 손이 시간을 품은 공간이다.

‘오랜 노동의 공간’을 찾아 나설 때 처음에는 대를 이어온 오래된 점포(노포)를 찾았다. 하지만 한국전쟁과 야수처럼 진행된 산업화를 겪은 대한민국에서 사라지지 않고 버틴 노동의 공간은 흔치 않았다. 생계를 이어오던 공간에서 쫓겨나 간판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현대화라는 신기루로. 그래서 슬펐다. 소금꽃 피우며 이룬 산업화와 경제 개발인데, 막상 그들의 노동이 머물 공간은 지워지고 있다. 별수 없이 공간을 떠돌거나 쫓겨난 이들을 찾아다니며 시간의 기억을 채집했다.

시간을 찾는 여정이 쌓이자 잃어버린 공간이 드러났다. 노동의 공간은 땅이나 건물에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노동의 공간은 인간의 손에 터를 만들고 집을 지었다. 장인의 손은 어떤 권력도 철거하거나 빼앗을 수 없는 공간이다. 그 손에 인간의 역사가 자리잡았다.

김학원의 삶도 언어로 표현되는 구술이나 기록보다는 손이라는 공간에서 오롯이 찾을 수 있다. 손이 도구(연장)를 통해 표현하는 소리를 듣는 게 장인과 인터뷰다. 그래서일까. “노동자는 손때 묻은 도구로 작업의 기량을 연마하고, 다루는 물질의 속성에 조금씩 눈떠갔다.” 세계적인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퍼드의 말이다.

김학원은 기계식 사진기와 함께 반백년을 동고동락했다. ‘똑딱’ 하는 순간 십 수 장의 사진을 찍고, 찍음과 동시에 행위에 대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 시대에 김학원은 천연기념물과 같은 존재다. 한 장 한 장 필름을 넘기고, 노출과 거리, 초점을 맞춰야 하고, 셔터를 누른 뒤에도 현상과 인화라는 과정을 거쳐야 자신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기계식 사진기를 사랑하는 이에게 명장이라 불리는 김학원. 이집트인이 피라미드와 미라로 황제의 영생을 기원했듯, 김학원의 손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 그를 사진기 수리의 거장 혹은 명장, 달인이라고 부르는 이들 가운데는 고장 난 사진기를 고쳐 줄 그의 두 손만은 사후에도 무덤 밖으로 나와 있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김학원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환한 얼굴로 성을 낸다.

“욕을 해라, 욕을 해!”

밀고 당기고 돌고

삼촌 일을 따라다니던 김학원은 대전역 앞 시계와 카메라를 파는 점포에 취직한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도시로 온 열네 살 김학원에게 물었다.

“월급은 주던가요?”

사진기에서 쏟아낸 부품들과 렌즈들이 어지러이 차지한 작업대 위에서 핀셋으로 버릴 것과 간직해야 할 것을 고르던 김학원이 고개를 들며 웃는다.

“다 아는 거 자꾸 물어요. 아니 그때는 밥만 먹여주면 그냥 하는 거여. 기술 배운다고.”

김학원은 누구에게 기술을 배웠을까.

“그곳에 사진기 수리 기술자가 있었나요? 기술 가르쳐주는 사람?”

이번엔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한다.

“없었죠.”

김학원은 낮에는 온갖 잔일을 하고, 점포 문을 닫으면 가게 안 다락방에서 홀로 잠을 잤다. 주인과 김학원 둘이 일했는데, 주인은 시계는 만질 줄 알지만 카메라는 고치지 못했다. 고객이 고장 난 사진기를 들고 오면 전문수리점에 위탁했다. 그렇다고 시계 수리를 배운 것도 아니다. 주인은 열네 살 김학원이 그저 월급 없이 부려먹을 ‘꼬마’로 남아 있길 바랐는지 모른다.

주인은 김학원을 점포 안에 둔 채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집에 갔다. 감옥이 따로 없었다. 닫힌 점포 안에서 할 일이 없었다. 심심했다. 김학원은 가게 한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부품들이 나뒹구는 사진기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조립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깨너머로도 수리를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 무모하게 부품의 자리를 찾아 맞추기 시작했다. 열네 살 김학원이 처음으로 사진기와 인연을 맺은 날이다.

다음날 아침 주인이 가게에 나왔다.

“이거 누가 만졌노?”

어린 김학원은 덜컥 겁이 났다. 만져서는 안 될 물건을 만졌구나! 제대로 말도 못하고 우물쭈물 했다. 겨우 주눅 든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제가 그랬심니더.”

성낼 줄 알았던 주인은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가더니 자그마한 수리대를 하나 구해왔다.

“앞으로 카메라 수리 들어오면 네가 해라. 알겠제.”

사진기가 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고쳐야 할지, 가르쳐주는 사람은커녕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김학원은 홀로 사진기 수리공이 됐다.

▲ ⓒ 참여와 혁신 DB

“기계라는 게 ‘밀고, 당기고, 돌고’, 동작은 그거 몇 개야. 밀고 당기고 돌고. 그 몇 가지 밖에 없는 거야. 이거 다 기억하고, 배우려면 공부하다 끝나. 공부하다가 돈도 못 벌어요. 못 먹고 살아.”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 부품의 명칭을 말해가며 회전운동이니 직선운동이니 하며 설명을 할 거다. 김학원은 ‘밀고 당기고 돌고’로 조리개가 열리고 닫히는 방식이나 셔터 작동 원리를 간단하게 말한다.

“부속 보면 이 부속은 뭔 동작이다, 단번에 알아야지.”

고장 난 사진기를 수리해야 “입에 풀칠을 할 판”이니, 몇날 며칠을 고생하더라고 어떻게든 고쳐야 했다. 그렇게 익힌 기술이 소년의 손에 연둣빛 새순처럼 기록됐다. ‘밀고 당기고 돌고’라는 원리도 손끝으로 깨우쳤다. “어떤 때는 내리 며칠씩 밤을 새우기도 했는데, 수리하다 말고 핑그르르 쓰러져 죽은 듯이 잘 때도 있었어.”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임재천에게 김학원이 한 말이다.

반백년동안 사진기를 만졌는데 부속품 이름을 모를 까닭이 있는가. 책에 없는 걸 손으로 생각하고 익히고 깨우치고 찾아내고 개발해야 진짜 엔지니어라는 말을, 때론 심도 깊은 사진처럼 때론 아웃포커스 한 사진처럼 말하는 거다. 그래서 김학원을 알려면 말이 아닌 손의 기억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김학원은 사진기의 작동 원리만이 아니라 각 부속의 재질과 열처리에 이르기까지 제조과정을 통달하고 있었다. ‘어깨너머’나 누구에게 묻거나 배워서 아는 지식 이상을 갖췄다. 그랬기에 뒤에 이야기할 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이고, 가장 작은 중형 카메라를 홀로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었다

낡은 것에 새 생명을

우리는 아주 손쉽게 물건을 버리지만, 유지 관리 없이는 물건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물건과의 관계에서는 사용 이상의 아주 내밀한 관계가 성립한다. 물건의 유지 관리와 수리에는 물건을 작동시키는 것과는 다른 능력이 포함되며, 대개는 더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가운데 줄임〕엔지니어는 무엇보다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낙관적이고 진보적이다. 그들은 새로운 것들을 세계로 내보낸다.

- 데이비드 에저턴,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데이비드 에저턴은 수리 기술자를 중히 여긴다. 생산하는 일보다 낡고 오래된 것들에게 새 생명을 부여하는 게 더 힘든 일이고, 더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새 물건을 살 때는 기꺼이 지갑을 열던 이들이 수리비에 대해서는 짠돌이로 돌변한다.

▲ ⓒ 참여와 혁신 DB

거대기업에서는 만들어 팔기만 하고, 고장이 나면 새로 사는 게 더 값 싸다고 말하는 시대다. 이제는 생산도 꺼리는 기계식 사진기를 들고 찾아와 수리비 흥정을 하는 고객을 만날 때, 김학원은 말을 잃는다. 김학원의 노동을 단순하고 하찮은 일로 여기는 말투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클래식 카메라 붐이 일며, 중고 사진기를 사서 김학원을 찾아오는 이가 많다. 자신이 산 중고 사진기가 얼만데, 수리비가 왜 이리 비싸냐고 따지는 이들.

“그럼 누가 그냥 카메라를 그냥 줬으면 나도 그냥 고쳐줘요! 남의 직업을 그냥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많지. 부속 부러지면 갈면 되지, 아니면 때우면 되지, 휘어졌으면 펴면 되지, 다른 사람 일이 다 쉬워 보이는 거야.”

‘남의 일’은 김학원 자신의 일일 거다. 반백년 한 우물을 파며 익힌 기술인데, 빛 한 줌 없는 작업실에서 낡은 작업대에 앉아 일하니, 그 기술마저 값싸게 여기는 ‘투’로 말하는 고객. 김학원은 마음이 불편하고, 서글프다. 실제 그의 수리비에는 ‘기술’의 가치, 오십년 장인의 노하우는 포함되지 않았다. 일한 시간에 견준 비용에 불과하다. 그 이상 받을 생각도 없고, 자신의 기술에 제대로 된 값을 매겨 달라고 애원하지도 않는다.

“마음 자체가 틀렸어. 그럼 안 되지. 노력을 할라고 해서 하는 게 없고 쉽게 돈 벌어 먹으려고. 그냥 한꺼번에 후다닥해서 돈 벌라고 하고. 다 위에 가서 한탕 해가려 하고, 뭐 좋은 자리 가서 후다닥 벌라 하고.”

김학원은 타인의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걸 어느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쉽게 돈 버는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많을수록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는 갈수록 멀어져 간다. 아니, 물질문명이 노동의 가치를 왜곡하거나 말살했을 수도 있다.

산업사회의 노동은 자연과 동떨어진 기계적이고 인위적인 방식이며, 무엇보다도 인간의 잠재능력 가운데 극히 미미한 부분만을 사용하도록 만듭니다. 노동자들로서는 도전할 가치가 없고, 자기완성을 위한 자극도 없으며, 발전 가능성이나 진선미의 요소도 찾을 수 없는 그런 노동에 평생을 허비하도록 종신형 판결을 받은 셈입니다.

현대 산업주의의 근본목표는 노동을 만족스럽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데 있습니다.

- E.F. 슈마허, 『굿 워크』

장인의 노동이 거대 기계 노동으로 대체되며, 김학원과 같은 기술자는 대량 생산의 입장에서, 그리고 지속적으로 신상을 내놓아 새것을 팔아야 하는 기업가의 입장에서, 무척 얄미운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