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해상통신 명장
‘발명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해상통신 명장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6.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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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일하지 말고 오감으로 일하라” 수협중앙회 어업정보통신본부 정석영 시설과장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망망대해의 어선과 상선들에게 통신망은 생명줄과도 같다. 육지와 정보를 교환하고 기상상태나 항해조건 등을 공급받지 못하면 바다는 언제든 ‘무서운’ 곳이 된다.

저마다의 푸른 꿈을 안고 바다를 내달리는 배와 육지의 든든한 끈이 되어주는 곳이 수협중앙회의 어업정보통신본부. 2006년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 정석영(55) 시설과장은 이곳에서 전파통신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1979년 입사해 울릉, 감포, 포항, 속초 등 동해의 바다를 두루 섭렵한 정 과장은 본부 발령이후 16년간 한결같이 전파통신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1991년 국내최초로 어업무선국 무인자동화를 통해 13년간 연인원 1112명의 인건비를 절감했고 1997년 개발한 어업정보통신시스템은 부실한 어획통계를 보완할 수 있는 획기적 기술로 평가받았다. 특히 이 기술은 한일어업협정 시 정부가 쌍끌이 어선을 통계에서 누락시켜 국내 어민의 피해가 커진 일을 계기로 더 주목을 받았다.

그 이후로 현재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위성통신과 달리 통화료 부담이 없는 원거리 무선데이터통신 개발에 매달려 현재 특허 등록의 단계까지 와 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최초의 일로 기록된다.

재미만으로 부족, ‘특허’로 동기부여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되기까지 ‘최초’, ‘최고’ 라는 타이틀은 늘 정 과장을 따라다녔다. 수협에 입사하게 된 계기부터가 그렇다. 1970년 구룡포수산고(현 구룡포종합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원양참치어선 견습항해사로 들어갈 수 있는 우선권. 하지만 홀로 계신 노모를 두고 3~4년씩 바다를 떠돌아야 하는 일을 택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당시만 해도 생소하던 해상통신 분야에 발을 들여놨다.

또 다른 ‘최초’ 타이틀은 그가 출원한 80여 건의 특허다. 현재까지 34건이 특허로 등록되었으니 34개의 ‘최초’ 타이틀을 갖고 있는 셈. 정 과장이 출원한 특허는 통신분야뿐 아니라 보일러, 일반기계 제어기술 등 분야가 다양하다. 여기에 지난 2000년에는 발명지도사 자격시험에서 쟁쟁한 박사들을 제치고 수석합격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자신의 분야가 아니더라도 발명을 즐기는 이유는 “발명 그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다. “처음엔 다른 사람이 해 놓은 일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재밌었죠. 그런데 자꾸 문제를 고치다 보니까 나만의 문제해결 능력을 활용해서 처음부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에 더 흥미가 생겼어요. 그리고 새로운 발상이 떠오르면 그냥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드시 특허를 출원했어요. 특허 그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그 분야에서 세계 제일이라는 확인을 거침으로써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거죠”

27년 외길 인생, 그래도 더 배울 것이 많다
“발명이 곧 취미고, 일이고 삶”인 정 과장이지만 가족들에겐 휴일을 반납하고 사무실 책상에 매달려 있는 가장이 달가울 리 없었을 법도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No’다.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명하고 떠올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자식들에게도 길잡이가 됐다. 스물일곱, 스물넷의 두 아들이 모두 기계공학과를 졸업해 정 과장과 같은 통신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천상 뼛속까지’ 기능인의 피가 흐르는 가족인 모양이다. 무선설비기능사, 특수급무선통신사, 정보통신기술사, 발명지도사 등 여섯 개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정 과장은 요즘 대불대학교 정보보안과를 다니면서 보안 분야에 대해 다시 공부를 하고 있다.

27년 외길 인생이지만 아직도 배울 게 많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친다는 그에게도 어려운 시간은 많았다.
특히 처음 발명부터 상용화까지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10년을 훌쩍 넘기는 시간동안 인내심을 갖고 ‘너무 앞서나간다’는 시선을 견디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발명은 원래 먼 미래를 보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람들 동의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죠. 가끔은 개인적 취미에 괜히 회사 사람들을 끌어 들인다는 시선이 힘들기도 했고…. 나중에 기술이 실제로 적용될 때 ‘정말 편해졌다’는 한 마디가 더 없는 보상이 되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정 과장은 발명이란 생활 속의 불편함을 찾는데서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헌과 자료 속이 아니라 사람들의 현실 속에서 탄생한 발명이 더 많은 도움을 주고 동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기술의 바다’가 출렁이도록 돕고 싶어
퇴직 후 자신의 기술이 사회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여전히 공부하고 있다는 정 과장은 “전문가일수록 일반적 기술도 함께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전문기술과 일반적인 기술까지 함께 갖추는 것이 어렵기는 하죠. 그래서 많은 유능한 기능인들이 일반인들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어요. 분명 훌륭한 제안인데도 ‘쟤들이 쓰는 건, 어려운 용어, 자기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 골치아프다 등등’의 반응에 묻히기 십상이죠.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기능인이 되려면 그것을 쉽게 일반인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기능인 최고의 영예라는 ‘명장’에 오른 정 과장은 이제 좀 더 넓은 ‘바다’로 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 ‘바다’에서 특허법을 몰라 분쟁의 늪으로 빠져들다가 결국 유능한 능력을 잃고 마는 젊은 기능인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싶단다. 굴지의 대기업들과 특허 분쟁을 벌이면서 법의 현실을 잘 모르는 발명가나 기능인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폐단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

“후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발명과 기술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도록 돕고 싶다”는 정석영 명장의 또 다른 ‘항해’가 기대된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정석영 과장이 말하는 ‘발명왕’의 노하우는 논리를 앞세우기 이전에 오감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기능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자신의 발명을 일반인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도록 표현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한 자질 중의 하나라고 조언한다.

논리로 안 풀리면 한 걸음 물러나 감각을 작동시켜라.

젊고 우수한 인력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는 모든 것을 논리로만 풀려고 한다는 점이다. ‘분명 식은 맞는데, 왜 안되느냐’고 항변할 게 아니다. 진정한 기능이란 감각으로 터득되기도 하기 때문. 논리나 식을 점검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는 한 걸음 떨어져서 시각과 후각, 청각을 모두 집중해야 한다. 자신의 몸을 진단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멀찍이 떨어져 유저(사용자)의 입장이 되어 보면 의외로 쉽게 답이 보인다. 이것이 기술의 ‘깊이’다.

훌륭한 기술이나 아이디어도 ‘전달력’이 없으면 무용지물

기술을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전달력이다. 내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말’은 완벽한 수단이 아니다. 훌륭한 기술을 일반인들과 후진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표현능력을 길러야 한다. 표현능력, 서술능력 등은 엔지니어가 마지막으로 투자해야 할 분야다.

정석영 과장이 말하는 ‘발명왕’의 노하우는 논리를 앞세우기 이전에 오감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기능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자신의 발명을 일반인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도록 표현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한 자질 중의 하나라고 조언한다. 젊고 우수한 인력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는 모든 것을 논리로만 풀려고 한다는 점이다. ‘분명 식은 맞는데, 왜 안되느냐’고 항변할 게 아니다. 진정한 기능이란 감각으로 터득되기도 하기 때문. 논리나 식을 점검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는 한 걸음 떨어져서 시각과 후각, 청각을 모두 집중해야 한다. 자신의 몸을 진단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멀찍이 떨어져 유저(사용자)의 입장이 되어 보면 의외로 쉽게 답이 보인다. 이것이 기술의 ‘깊이’다. 기술을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전달력이다. 내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말’은 완벽한 수단이 아니다. 훌륭한 기술을 일반인들과 후진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표현능력을 길러야 한다. 표현능력, 서술능력 등은 엔지니어가 마지막으로 투자해야 할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