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사막을 만들 수 있을까.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여기, 물로 인해 사막이 된 곳이 있다. 바로 지난 여름 수해로 논과 밭에 애지중지 키워 온 ‘작물’ 대신 ‘모래와 자갈’만 가득해 ‘자갈밭’을 일구게 된 기막힌 사연의 사람들이 있는 곳.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호명리이다.
“집이 사라졌다!”
지난 여름, 강원도 하늘에 구멍이 뚫렸던 그 날. 호명리는 단 1시간 동안 내린 비로 20가구 중 10가구가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집을 잃은 사람들은 밭에 일하러 올라가며 울고, 내려오며 또 울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집이 ‘폭삭’ 무너져 내린 것을 보며 그 마음도 같이 무너져 내린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마을 이장은 면사무소에 부탁해 아예 그 집들을 ‘밀어’버렸다.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동조합(위원장 박봉철, 이하 마필관리사노조)이 마을을 찾은 8월 21일은 그렇게 집의 흔적조차 사라진 뒤였다. 그래서 노조 사람들은 마을 이장이 ‘이곳, 이곳에 집이 있었다’고 설명해 주기 전에는 그 곳에 집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고.
‘준비된’ 나눔, ‘맞춤’ 나눔
그렇게 집을 잃은 사람들은 ‘사무실용’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수재민들이 구호물품으로 받은 것은 ‘주거용’이 아닌 단열이 거의 되지 않는 ‘사무실용’이었던 것. 그래서 40도가 넘는 무더위를 고스란히 느끼며 주민들은 그 ‘찜통 상자’ 안에서 살아야 했다.
이런 모습을 본 박봉철 위원장은 “언론에서는 ‘90% 이상 수해가 복구 됐다’고 떠들어 댔는데 실제로 수재민들은 갈 곳이 없어 겨울을 걱정하고 있었다”며 “길만 닦아 놓고 수재민들이 곳곳에서 겪는 어려움을 신경 쓰지 않는 건 복구라고 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뜬금없는’ 복구를 하게 될까봐 마필관리사노조는 아예 활동 기획보다 답사를 먼저 했다. 함께 활동한 마필관리사노조의 사측인 서울조교사협회(회장 하재홍) 임원들과 마을에 필요한 것을 알아보았고 주민들의 요청으로 ‘감자 캐기’ 활동을 결정했다.
썩어가는 감자, 타들어가는 농심
강원도처럼 대량으로 감자 농사를 짓는 곳은 감자를 캘 때 호미로 하나씩 캐는 것이 아니라 트랙터가 밭을 뒤엎으면 사람은 그 뒤를 따라가며 감자를 줍는다.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는 기계의 속도에 맞추려면 사람은 허리 한 번 펼 새가 없어 ‘줍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특히 마필관리사들은 대부분 허리가 안 좋아 일반인들보다 두 배는 힘들었다고.
그러나 허리보다 마필관리사들을 힘들게 한 것은 ‘썩은 감자’였다. 보통 감자 수확 시기는 7월 중순이라 이미 캐야 할 시기를 놓친 채 젖은 땅 속에 방치된 감자들이 절반 이상 썩어버린 것. 썩은 감자를 보며 “우리가 좀 더 일찍 준비해서 갔으면 좀 더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었을 걸, 하는 생각에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고 유영기 사무처장은 설명한다.
그런 아쉬움을 이겨내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고 그런 열심을 알아본 주민들은 “진짜 봉사할 맘을 먹고 온 사람들이라는 게 보인다”며 고마워했다. 그렇게 진심을 통해 정이 든 사람들은 봉사를 끝내고 돌아서는 이들에게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또 그런 마을 사람들을 보며 박봉철 위원장과 하재홍 회장은 앞으로는 수해 때뿐 아니라 농번기 등 마을에 일손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나눔 활동에 나서자고 다짐했다.
12지신 중 ‘남성신’을 상징한다는 말은 그 굳건한 근육과는 어울리지 않게 무척 예민한 동물이다. 그런 말의 감정을 모두 이해하며 돌보는 마필관리사가 다른 이들보다 배려심이 깊은 것은 당연한 일. 그런 마음으로 자신들이 캐온 감자를 구매까지 해 온 마필관리사노조의 배려를 보며 나눔 활동에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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