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준비’된 나눔 실천
말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준비’된 나눔 실천
  • 현예나 기자
  • 승인 2006.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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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마필관리사노조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물이 사막을 만들 수 있을까.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여기, 물로 인해 사막이 된 곳이 있다. 바로 지난 여름 수해로 논과 밭에 애지중지 키워 온 ‘작물’ 대신 ‘모래와 자갈’만 가득해 ‘자갈밭’을 일구게 된 기막힌 사연의 사람들이 있는 곳.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호명리이다.

“집이 사라졌다!”

지난 여름, 강원도 하늘에 구멍이 뚫렸던 그 날. 호명리는 단 1시간 동안 내린 비로 20가구 중 10가구가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집을 잃은 사람들은 밭에 일하러 올라가며 울고, 내려오며 또 울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집이 ‘폭삭’ 무너져 내린 것을 보며 그 마음도 같이 무너져 내린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마을 이장은 면사무소에 부탁해 아예 그 집들을 ‘밀어’버렸다.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동조합(위원장 박봉철, 이하 마필관리사노조)이 마을을 찾은 8월 21일은 그렇게 집의 흔적조차 사라진 뒤였다. 그래서 노조 사람들은 마을 이장이 ‘이곳, 이곳에 집이 있었다’고 설명해 주기 전에는 그 곳에 집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고.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준비된’ 나눔, ‘맞춤’ 나눔

그렇게 집을 잃은 사람들은 ‘사무실용’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수재민들이 구호물품으로 받은 것은 ‘주거용’이 아닌 단열이 거의 되지 않는 ‘사무실용’이었던 것. 그래서 40도가 넘는 무더위를 고스란히 느끼며 주민들은 그 ‘찜통 상자’ 안에서 살아야 했다.

이런 모습을 본 박봉철 위원장은 “언론에서는 ‘90% 이상 수해가 복구 됐다’고 떠들어 댔는데 실제로 수재민들은 갈 곳이 없어 겨울을 걱정하고 있었다”며 “길만 닦아 놓고 수재민들이 곳곳에서 겪는 어려움을 신경 쓰지 않는 건 복구라고 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뜬금없는’ 복구를 하게 될까봐 마필관리사노조는 아예 활동 기획보다 답사를 먼저 했다. 함께 활동한 마필관리사노조의 사측인 서울조교사협회(회장 하재홍) 임원들과 마을에 필요한 것을 알아보았고 주민들의 요청으로 ‘감자 캐기’ 활동을 결정했다.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썩어가는 감자, 타들어가는 농심

강원도처럼 대량으로 감자 농사를 짓는 곳은 감자를 캘 때 호미로 하나씩 캐는 것이 아니라 트랙터가 밭을 뒤엎으면 사람은 그 뒤를 따라가며 감자를 줍는다.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는 기계의 속도에 맞추려면 사람은 허리 한 번 펼 새가 없어 ‘줍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특히 마필관리사들은 대부분 허리가 안 좋아 일반인들보다 두 배는 힘들었다고.

그러나 허리보다 마필관리사들을 힘들게 한 것은 ‘썩은 감자’였다. 보통 감자 수확 시기는 7월 중순이라 이미 캐야 할 시기를 놓친 채 젖은 땅 속에 방치된 감자들이 절반 이상 썩어버린 것. 썩은 감자를 보며 “우리가 좀 더 일찍 준비해서 갔으면 좀 더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었을 걸, 하는 생각에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고 유영기 사무처장은 설명한다.

그런 아쉬움을 이겨내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고 그런 열심을 알아본 주민들은 “진짜 봉사할 맘을 먹고 온 사람들이라는 게 보인다”며 고마워했다. 그렇게 진심을 통해 정이 든 사람들은 봉사를 끝내고 돌아서는 이들에게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또 그런 마을 사람들을 보며 박봉철 위원장과 하재홍 회장은 앞으로는 수해 때뿐 아니라 농번기 등 마을에 일손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나눔 활동에 나서자고 다짐했다.

12지신 중 ‘남성신’을 상징한다는 말은 그 굳건한 근육과는 어울리지 않게 무척 예민한 동물이다. 그런 말의 감정을 모두 이해하며 돌보는 마필관리사가 다른 이들보다 배려심이 깊은 것은 당연한 일. 그런 마음으로 자신들이 캐온 감자를 구매까지 해 온 마필관리사노조의 배려를 보며 나눔 활동에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해 본다.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미니인터뷰 _ 박봉철 위원장
“노동자니까 나눠야죠”

노동조합이 나눔 활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노동조합은 국민들이 갖고 있는 안 좋은 이미지를 불식시키고자 나눔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노동조합이기 이전에 노동자로서 생각했을 때 나눔활동은 당연한 것입니다. 노동자가 돈이 있습니까, 빽이 있습니까?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노동자입니다. 그러니 우리 노동자들이 농민이나 소외된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러니 기회가 주어져 그 분들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함께 해야 합니다.

마필관리사들이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인지?

노동자들의 재산은 건강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하는 일이 길들여지지 않은 말을 교육하는 것이라 산재 사고가 엄청납니다. 우리 475명의 조합원 중 약 38%가 통원치료와 입원 등으로 병원에 있을 정도니까요. 이런 문제에 대처하고자 노동조합에서 교육과 홍보를 하고 있지만 좀 더 실질적인 예방법을 더 찾는 중입니다. 그리고 마필관리사들이 실력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힘든 부분입니다. 종주마를 관리하는 트레이너의 전문성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아, 사람들은 경마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기수에게만 관심을 갖습니다. 한 마리의 경주마가 탄생하기까지는 그 밑에서 노력하는 마필관리사들은 못 보는 것이죠. 이런 부분은 마사회에서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야 합니다.

노동조합 활동 중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경마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경마’라고 하면 ‘사행 산업’, ‘도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도박들은 숨쉬지 않아요. ‘바다이야기’나 빠찡코가 살아 숨쉬나요? 하지만 경마는 말과 자연이 살아 숨쉽니다. 또 기수들이 숨쉬고, 그들의 호흡으로 박진감 넘치는 레이스를 펼치죠. 그런 레이스를 보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자연도 즐기고. 그래서 가족단위로 오시라고 이름도 경마장에서 경마공원으로 바꿨는데 아직도 도박으로만 여기는 게 가슴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