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갈등에 가려 보이지 않는 노사관계
노정갈등에 가려 보이지 않는 노사관계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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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갈등의 중재자인가, 갈등의 주체인가
불안정한 노사관계 속 커지는 고민
[커버스토리]노사관계는, 지금

노사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노동계는 거의 매주 서울시청 앞에서, 국회 앞에서, 서울과 세종에 있는 정부청사 앞에서 각종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한국노총 공공노련·공공연맹·금융노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보건의료노조 등 양대 노총 공공부문 5개 조직은 공동대책위원회를 복원하고 9월 총파업을 선언했다.

이외에도 건설노조와 금속노조 등 굵직한 조직들이 파업에 돌입한다.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빅3’ 업체의 노사관계에도 전운이 감돈다.

그런데 단순히 노사분규가 이어진다고만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노사관계는 단지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협력과 갈등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국내 노사관계의 중심에는 정부가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가장 중대한 노동현안인 이른바 ‘노동개혁’의 진원지는 정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커다란 문제인 조선업 구조조정의 경우 그 칼자루를 정부가 쥔 탓에 노정갈등의 요소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 가지 공통된 질문을 낳는다. 노사관계의 한 축으로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노정관계가 국내 노사관계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노정관계는 그 구심점이 되고 있다.

▲ ⓒ 참여와혁신 DB
▲ ⓒ 참여와혁신 DB

‘여의도 천막촌’과 위기의 노정관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에는 의사당대로를 따라 천막촌이 형성돼 있다. 금융업종 빌딩들이 즐비한 동여의도에 밤만 되면 출몰하는 포장마차가 어느새 국회가 있는 서여의도까지 영역을 넓혔나 싶지만, 아니다. 국회 앞 천막촌 주민(?)은 노동조합의 간부들이다.

이전부터 종종 국회 앞에는 천막촌이 형성됐었다. 장애인단체, 인권단체 등 시민사회단체 외에 심지어 정당도 천막을 쳤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노동조합에서 친 천막이 가장 눈에 띈다. 이 천막들을 뒤덮은 현수막에 적힌 글귀는 하나같이 정부를 규탄하는 내용들이다.

지금 정부는 노동계에게 규탄의 대상이다. 지난 세월 군부독재에 의해 노동3권이 억압당하고,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이를 깨뜨린 경험 때문에라도 노동계는 정부를 곱게 보지 않는다. 여기에 98년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 도입, 2009년 무렵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타임오프제 도입까지 양대 노총과 정부의 갈등은 주기적으로 반복됐다.

▲ ⓒ 참여와혁신 DB

현 정부 들어 노정갈등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최초의 직선 위원장이 갖은 수난을 겪다 옥살이까지 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말할 것도 없고, ‘합리적 노동운동’을 견지해 오던 한국노총도 노사정합의 파기 이후 정부와 멀어질 대로 멀어졌다.

산업·업종별로 보면, 대표적으로 공공부문과 조선업의 노사관계가 노정갈등으로 비화됐거나 그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부가 사용자 위치에 있는 공공기관 노사관계는 성과연봉제 강행으로 사실상 파탄 났다. 청년일자리 확충이라는 명분, 경영평가 점수와 임금인상률을 무기로 임금피크제를 성공적으로 관철시킨 자신감 탓인지 정부는 성과연봉제 강행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결국 공공기관 노조들은 내셔널센터를 불문하고 9월 공동 총파업을 예고했다. 노사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대화라고 하지만, 공공부문 노사관계에는 대화가 없다.

구조조정 칼바람을 목전에 앞둔 조선업의 경우에도 노정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개별 기업이 아닌 업종 차원에서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인데다, 노동계는 자신들이 목소리를 낼 공간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조선노연 측은 “경영실패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일방적 구조조정을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는 “자구노력 없이는 지원도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단절된 대화, 노동계는 주도권이 없다

▲ ⓒ 참여와혁신 DB

노동계와 정부의 공식적인 대화는 지난해 9월 극적으로 타결된 노사정합의가 마지막이다. 노사정합의문에는 ▲근로계약 해지 등의 기준과 절차 명확화 ▲임금피크제 도입을 비롯한 임금체계 개편 등에 관해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기로 적혀있지만, 끝내 정부는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변경 지침’ 등 2대 지침을 서둘러 발표했다. 이후 더 이상의 대화는 진행되지 않은 채 대립구도만 굳어지고 있다.

정부가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만, 그 과정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쏟아진다. 사회적 파장이 큰 정책일수록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이해당사자를 배제한 채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정부를 뺀 나머지 주체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 1월, 노사관계 평가와 전망에 관한 보고서에서 “2015년에는 정부의 강한 주도성과 추진력 앞에 노사의 상대적으로 낮은 역량, 리더십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고 꼬집었다. 특히 노동계의 경우 정부의 공세를 방어하기 바쁜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안팎에서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가 4.13 총선 직후 열린 토론회에서 “노동개혁 국면에서 민주노총은 4·7·9월의 ‘뻥파업’ 논란에서 보듯 시간이 가면서 동력을 잃었고, 한국노총은 협상에 참여하면서 밀리고 밀리다 합의문에 서명했다”고 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이 교수는 “노동의 힘이 부족해서 만들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수평으로 맞춰야 하지만, 노조운동이 투쟁과 협상 전략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노동계는 조선업 구조조정과 관련해서도 노사정 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전략의 부재에 대한 내외부의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노사관계에서의 정부 역할에 관해

▲ ⓒ 참여와혁신 DB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노사관계에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은 여백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노사관계에 대한 법과 제도를 과감히 고쳐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으로 기준을 세워야 할 부문이,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있어 정부의 역할을 어디까지 어떻게 하게 할 것인가라고 본다. (…) 정부의 경우 노사관계체제에 있어 제3의 핵심역할을 하는 당사자이다. (…)

우리나라 노사관계 제도는 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제도, 파업 시 사용자의 대체 금지, 교섭절차의 법정화, 국가기관에 의한 강제 조정전치주의 등 정부의 개입과 역할이 지나치게 강하여 이를 선진국 수준과 국제 기준에 맞추어 선진화해나가는 (것이) 과제이다. 노사간 강한 불신과 전투적 노동운동, 과격행위 등으로 인하여 교섭 및 파업과정에 정부가 상당한 개입이 불가피한데, 이의 합리화 방안도 정립해야 할 과제이다. (…)

네덜란드의 폴더모델(네덜란드의 노사정협의모델)과 우리나라의 노사정위원회가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비슷함에도 우리의 경우 성과가 적은 이유는 (…) 불과 15년 전까지만 해도 계속되어 온 노조 불인정과 이에 대항한 비타협 투쟁이라는 노사관계 문화가 지속되어온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화는 정부 및 경영계의 앞장선 노력이 있을 때 빨리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 이기권(2004), <노사관계에서의 정부 역할에 관한 비교연구> 중

위 내용은 이기권 당시 노동부 공보관이 2004년 12월 한 학술지에 게재한 <노사관계에서의 정부 역할에 관한 비교연구>에 실린 것이다. 이 학술기사를 쓴 이기권 공보관은 10년 뒤 고용노동부 장관이 되어 이른바 ‘노동개혁의 기수’를 자임하고 있다. 노정갈등의 중심에는 그가 있다. 이 장관은 2대 지침과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노동계로부터 검찰에 고발까지 당했다.

학술기사 전체를 살펴보면, 이기권 당시 공보관은 지금 가장 논란거리인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 등 노동개혁의 핵심 내용을 암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노사관계 패러다임 하에서 정부의 역할은 과거 노사 조정적 역할보다는, 노사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사회적 대화를 다양화하며 학습기회를 많이 주는 역할에 중점이 주어져야 한다”며 노사자치와 사회적 대화, 신뢰를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 정부의 야심찬 기획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은 물 건너간 셈이 돼버렸고, 조선업 위기국면에서도 사회적 대화가 들어갈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 장관은 최근 조선업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근로자들의 고용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노사관계가 삐걱대는 데 따른 비난의 화살을 그에게만 돌리는 건 가혹한 처사일 수 있다. 또 노정관계만 가지고 노사관계의 ‘지금’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변화하는 노사관계, 정부가 지켜야 할 선

▲ ⓒ 참여와혁신 DB
▲ ⓒ 참여와혁신 DB

미시적으로 보면 여전히 노사분규는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다만 그 양상은 달라지는 듯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올해 초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노사관계의 무게중심은 집단에서 개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실제로 연간 노사분규 건수와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반대로 노동위원회에서 개별 노사분쟁 심판사건이 처리된 숫자는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은 “노사갈등 요인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이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근로자들의 개인적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개별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겹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상당수의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른바 ‘미조직 노동자’들이 많은 점도 집단적 노사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개별적 노사갈등의 증가가 법적인 분쟁 해결기구에 의해 적절히 조절되지 못하거나 집단적 노사관계로 수렴되지 않는 경우, 기업의 성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개연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계의 역량에 한계와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 조정자로서의 정부 역할의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하지만 노사자치와 사회적 대화가 강조되는 거시적 노사관계와 개별 노사분쟁의 원만한 해결이 강조되는 미시적 노사관계 모두 갈 길이 멀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가 노사관계에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 역할이 무엇인지 칼로 무 자르듯 정하기는 어렵다.

노사관계는 지금, 노정갈등으로 수렴하고 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한 학계의 조언도 “정부가 사회적 대화의 장에서는 인내심을 가지되 개별적 노사갈등이 있을 때에는 공정한 심판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나, 이는 곧 정부 스스로가 자신의 역할을 균형 있게 잡아나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