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아버지, 그리고 노동을 찾아서
잃어버린 아버지, 그리고 노동을 찾아서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6.07.1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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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머문 오래된 공간을 찾다]연재를 마치며 대한민국의 아버지들(1)

2015년 10월호에 첫 연재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열 달이 훌쩍 지났다. 그 동안 아홉 분의 우리시대 아버지들을 만나 노동의 시간과 공간을 샅샅이 살폈다.

대부분 청소년 시절에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장인들이다. 반백 년 가까이를 한눈 팔지 않고 한 길을 걸은 이들, 말보다는 손으로 자신의 삶을 말하는 이들, 손끝에 대한민국 근대화와 산업화의 역사를 새긴 이들.

그들의 노동을 <참여와혁신>은 소중하게 간직할 것을 약속하며 연재를 마무리한다.

 

연재순서
➊ 만리재 <성우이용원> 이남열傳
➋ 낙산자락 <일광세탁소> 김영필傳
➌ 홍대 언저리 <옛 삼정전파사> 남상순傳
➍ 인사동 표구거리 <묵호당> 손용학傳
➎ 모래내 너머 <형제대장간> 류상준傳
➏ 서촌 <코리아나화점> 정연수傳
➐ 응암오거리 <성원양복점> 임명규傳
➑ 예지동 시계골목 떠난 <경민사> 김동선傳
➒ 중부경찰서 건너 <중앙카메라 수리센터> 김학원傳

 

아버지, 시시포스의 노동

▲ ⓒ 참여와 혁신 DB

날마다 일터에 가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듯, 아버지는 한 집안의 가장인데도 불구하고, 멀거나 두렵거나 때론 존재 자체를 잊고 지낸다. 아버지가 어렴풋하게나마 내 의식 속에 찾아온 때는 내가 아빠가 된 뒤다. 물론 아빠로 살면서도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는 한참 동안 몰랐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아버지의 삶을 생각했다. 아버지라는 그 힘든 직업의 노동을 떠올렸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공무원, 교사, 은행원, 노동자, 상인, 시민사회운동가와 같은 다양한 이름의 직업을 지닌 게 아니라, 아버지라는 단 하나의 직업으로 살고 있었다.

아버지라는 직업, 아버지라는 노동을 찾아 길을 어슬렁거렸다. 아버지를 통해 근대의 시간과 공간이 압축된 서울이라는 도시를 다시 읽었다. 그 시간과 공간을 더듬으며 일자리란 무엇이고, 왜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한가를 알고 싶었다. 근대를 살아온 아버지들의 몸에는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일군 근대화와 산업화의 역사가 아로 새겨져 있다.

때론 독일의 탄광으로 가서 막장 생활을 했다. 때론 전쟁터가 된 베트남으로 갔다. 때론 중동의 사막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자원도 자본도 없는 대한민국 땅. 산업을 일구기 위해서는 몸뚱이가 자본이고, 기계고, 원료고, 공장이어야 했다. 몸에서 쥐어 짜낸 땀, 각성제를 삼키며 반납한 잠, 그 시간들이 공장 굴뚝을 지폈다. 건물을 세웠다. 고속도로를 뚫었다. 그걸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지만 결코 기적이 아니다. 인간의 노동이 만든 피땀눈물일 뿐. 초등학교를 나온, 혹은 그나마도 마치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온 근대 아버지들은 조막만한 손으로 옷을 짓고, 쇠를 두들기며 점차 ‘거인의 손’이 됐다.

근대 아버지들의 권위는 오늘날에 비하면 어마어마했다. 밥상을 따로 받기도 했고, 가족 구성원에게 폭력을 서슴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명목 권위’에 불과했다. 아버지라는 권위는 무거운 바위덩이를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노동과 다르지 않다. 아버지의 손이 거인을 닮아갈수록 어깨에 걸머진 무게에 짓눌려 몸은 왜소해졌다. 아버지의 이름이 커질수록, 몸은 한없이 쪼그라드는 형벌을 받은 셈이다.

그 아버지들이 재조명된 때는, 피땀눈물을 짜 이룬 억지 성장이 우르르 무너져 내린, 구제금융 시기에 이르러서다. 구조조정, 정리해고, 명예퇴직의 바람이 불었다. 그제야 바위덩어리를 짊어지느라 닳고 닳아진 아버지의 앙상한 어깨와 민낯이 드러났다.

일자리,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 ⓒ 참여와 혁신 DB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은 늘었다. 반면 중장년 실업률은 줄고 있다. 어찌된 영문일까? 청년 일자리는 없는데, 장년 일자리가 늘어났다는 말일까.

근대 아버지들의 일자리에 대한 생각과 청년들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일 거다. 근대 아버지들은 ‘알바’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먹여주고 재워만 주면 그곳이 직장이다.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도 몰랐다. 심지어 임금을 받지 않고도 일했다. 어떻게든 일자리를 잡아 기술을 익히면 굶지 않는다는 희망이 있었다. 성실하게 일하면 잘리지 않고, 해마다 호봉이 오르고,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엠에프를 거치며 이런 희망과 믿음은 사라졌다. 자격증을 따도 일할 곳이 없고, 취업해도 정년이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을 결코 가질 수 없다. 아니 이런 생각을 지니며 취직한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시중은행을 인수합병 해가면서 덩치를 키워가는 어떤 은행지주회사 회장이 은행원에게 한 말이 있다. “은행에 대한 애행심은 가질 필요가 없다. 아니 버려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애업심으로 일하라!” 지주회장의 이 다그침은 기존의 직장 문화를 깡그리 짓뭉갰다. 실적이라는 수치가 은행 안 계급을 구분 짓자 동료는 사라졌다. 동료 대신 경쟁자 혹은 물리쳐야 할 적과 함께 일했다.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지니고, 성과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다. 근대 아버지들의 일자리 개념이 무너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97년 아이엠에프 사태 이전, 회사마다 걸려 있던 한 가족, 혹은 한마음과 같은 슬로건은 사라진지 오래다. 평생 일터라는 개념도 낡고 어리석은 사고다.

근대 아버지들은 당장 배고픔 때문에 일자리를 찾았다. 나가라면 언제든 군소리 없이 나가야 하는 처지였다. 근로기준법이 무언지, 부당해고가 무엇인지, 배운 적이 없다. 대부분의 기업이 ‘평생 가족’이라는 달콤한 말로 아버지들의 피땀눈물을 저렴한 임금으로 사용했다.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당장의 배고픔 때문에 가축 신세의 가족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요즘은 당장 배고픔의 해결보다 평생의 배고픔을 해결할 일자리를 찾아야 취업이다. 그밖엔 알바이다. 기업은 비정규직, 계약직,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임시 노동자를 선호한다. 배고픔의 개념도 바뀌었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의 근대 아버지들의 배고픔과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경제력을 지닌 요즘의 배고픔이 동일할 수 없다. 여기서 의문이다.

‘근대 아버지들과 오늘날 청년들이 생각하는 일자리 의미가 다른 것처럼, 일(노동)의 가치도 달라졌을까?’

일이란 무엇인가를 알기 전에 일자리 전쟁에 뛰어든다. ‘일’은 없고 ‘자리’ 전쟁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일이 빠진 자리의 다툼은 바뀌지 않았다. 일이 뭔지 모른 채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꼴이다. 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총을 들지 않았을 뿐, 분쟁지역 청년과 다르지 않다.

▲ ⓒ 참여와 혁신 DB

일자리를 중심으로 전공을 선택하고, 일자리에 맞춰 개인별 적성을 익힌다. 일자리에 어울리게 얼굴을 성형하고, 성격마저 개조한다. 일자리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다. 일자리라는 침대에 맞춰 몸을 늘이거나 다리를 잘라야 한다. 일자리 교육, 일자리 대학, 일자리 정치, 일자리 경제, 일자리 사회, 일자리 운명……, 일자리가 온 사회를 지배한다. 정령 일이란 무엇인가는 무시한 채 말이다.

일=일자리=부, 공식을 깨자

▲ ⓒ 참여와 혁신 DB

창의적인 인재를 말하고, 창의적인 사고로 청년 창업을 하라고 부추긴다. 창업가 정신으로 기적을 만드는 인물이 되라고 주문한다. 이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는 아이티 거품에서 확인됐다. 아이티 산업은 극극극, 극소수에게 거대한 부를 쥐어줄 뿐이었다. 거기서 파생된 일자리의 양과 질은 어떤 실정인가? 솔직히 말하자.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면 충분하다. 사회가 일상적으로 존속하고 움직이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더더더, 더 많이 필요하다. 누구나 존중받고, 보람을 얻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일자리와 환경을 만드는 게 오늘날의 과제가 아닌가.

일이란 나만의 독특한 무엇을 개발해 부를 쌓는 욕망이 아니다. 일이란 철저히 사회 속에서 사람과 관계를 통해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일’은 삶이라는 과정의 총체다. 일이 아닌 일자리를 중심에 놓았기에, 7급 공무원이 되려고 정부청사를 터는 범죄를 서슴지 않는다. 공무원이라는 일이 무언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 자리만을 훔치려 한 거다.

재벌가의 손자 기업인이 운전기사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프랜차이즈 점주나 하청업체에게 천박한 갑질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업과 사회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기업인이 필요하듯 운전기사의 노동도 없어서는 안 된다. 출신 가문과 재력, 학연으로 일자리를 지배했다고 일, 곧 인간의 노동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보잘 것 없고, 하찮아 보이고, 싼 인건비의 일자리에서 일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노동은 사회에 꼭 필요하고, 소중하고,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한다. 손목시계에 들어가는 수많은 부품 가운데 아주 티끌만한 부품 하나가 없거나 고장 나면, 수천만 원짜리 명품 시계도 움직이지 못하고 멈추는 이치와 같다.

시대에 따라 해석은 달라졌을지언정, 노동의 가치는 바뀌지 않았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의 노동력에 대한 대가인 임금이 하찮게 보일지라도. 생산하는 손을 지닌 인간의 노동은 인류 문명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다.

인공지능 운운하며, 인간의 노동이 하찮다고 위협하는 세력들은 누구인가? 과거엔 산업혁명 운운했고, 뒤이어 자동화, 아이티, 세계화, 신자유주의로 이름을 바꿔가며 공포를 퍼뜨렸던 세력이 아닌가. 더욱 하찮게 만든 노동으로 더욱 더 거대해진 부를 축적하려던 무리들.

일자리는 한 없이 가벼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일의 가치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절대적 지위를 누릴 거다. 인간에서 노동을 빼면, 문명 이전 시대에 동물과 자리다툼을 하던 존재와 다르지 않다. 일과 일자리는 동일하지 않다. 일을 부의 크기로 순위 매길 수 없다. ‘일=일자리=부’의 공식을 깨지 않고는, 공무원과 대기업과 공공기관에만 매달리는 일자리 전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자리를 찾아 떠도느라 병들고, 일하면서 불행해지고, 결국 물질의 풍요와 상관없이 허기진 텅 빈 삶만이 남을 거다.

근대 아버지들처럼 요즘 청년들도 일은 배우지도, 찾을 겨를도, 찾아야 할 문제의식도 갖지 못한 채 일자리 전쟁에 내몰리고 있다. 자신이 잘하는 일보다는 갖고 싶은 일자리라는 꿈을 꾸며,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일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갖고 싶은 일자리 입성에 성공한 이들의 삶도,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일자리에 있는 이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게 고통스럽다. 사회에서 주입한 일자리의 값어치(순위)와 노동이 지닌 본연의 가치 사이의 괴리 때문이다. 근대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 명목뿐인 권위와 이름을 지키기 위해 버겁게 살았던 아버지처럼.

“생산하는 손을 지닌 인간의 노동은 인류 문명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다.”


근대 노동, 미화가 아닌 성찰

▲ ⓒ 참여와 혁신 DB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산업화가 아버지들만의 노동으로 채워진 건 아니지만 하나의 상징일 순 있다. 한국 경제는 독재 권력에 의한 오랜 권위주의 시대에서 성장했기에, 근대 아버지들의 노동을 기록하는 작업이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거나 미화하는 일에 머물러선 안 된다. 노동 예찬이 노동자 고통 찬양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래서 근대 아버지들의 노동은 민주화 이후 노동에 대한 성찰의 기초 자료이자 지금도 그리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미래의 노동에 대한 조감도가 되어야 한다.

<노동이 머문 오래된 공간을 찾다>를 연재하기 위해, 대한민국 근대 시공간이 집약된 서울에 사는 아홉 아버지들의 구술을 채록했다. 다른 한편으론 도서관에 소장된 노동과 관련된 철학, 경제, 경영, 정치, 사회, 문학, 예술, 자기계발서를 샅샅이 뒤졌다. 땀으로 기록한 삶과 잉크로 적은 지성을 한 편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재구성 하는 일을 2015년 초가을에서 2016년 초여름까지 진행했다. 잃어버린 아버지들을 찾아서, 그리고 잃어버린 노동을 찾아서 떠난 여행이 이제 종착역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미래로 향하는 열차로 환승하기 위해.

미래로 가는 열차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여기서는 주절주절 늘어놓지 않는다. 그저 청년들이 근대 아버지들의 삶에서 다름보다는 공감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마저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시계는 360도 돌아 제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지만 시간은 공간과 함께 직선을 그으며 앞으로 뻗어 나간다. 오늘 오전 3시를 가리킨 시계바늘은 내일 그 시간에 그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사회라는 공간에서 움직인 시간은 결코 어제의 자리로 갈 수 없다. 그럼에도 근대의 시공간에서 맞이한 아버지들의 청년시절과 오늘날 시공간에 자리한 청년세대가 마주하는 고민에는 시공간을 초월한 공감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 공감이 있기에 역사가 존재하는 거다. 또한 그 공감의 바탕에는 인류 역사와 변함없이 함께 해온, 상품이 되어 거래되는 노동력이 아닌, 인간 고유의 가치와 정체성을 지닌 일, 곧 노동이 있다.

“처음부터 기계의 가장 지속적인 정복 대상은 빠르게 유행에 뒤처지는 기구도, 빠르게 소비돼버리는 상품도 아닌, 바로 삶의 양식이다.”

루이스 멈퍼드의 말로 연재를 마무리하며, 아홉 아버지들의 삶을 다음 장에서 다시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