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비정규직 노동자, “누가 내 시급에 소금쳤어?”
알바·비정규직 노동자, “누가 내 시급에 소금쳤어?”
  • 고연지 기자
  • 승인 2016.07.1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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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협상 막바지, 가장 영향 받는 당사자들의 목소리 들어달라
알바·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애 첫 파업, “그러니까 시급 1만원”
[기획]최저임금 노동자 증언사례
▲ ⓒ 참여와 혁신 DB

2017년 최저임금에 대해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들은 시급 1만원으로 대폭 인상안을 주장하고, 경영계는 올해 최저시급인 6,030원 동결안 주장을 굽히지 않는 가운데 최저임금위원회 협상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7월 5일, 2017년도 최저임금 인상안을 놓고 9차 전원회의가 개최된 시각.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아르바이트·비정규직 청년 100여 명이 본인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국회에 요구안을 보냈다. 이들은 자신들이 최저임금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며 최저임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것 같아 자리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이곳에 모인 노동자들은 “103만 원으로는 살 수 없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으로 살아봐라”라고 말하며 본인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 ⓒ 참여와 혁신 DB

이날 이야기마당을 주최한 민중연합당, 청년전태일, 청년하다, 한국청년연대 등은 자리에 모인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청년들은 모두 근무 중 부당한 경험을 했고, 여기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 곳곳의 수많은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고통 받고 있다고 말한다. 교통비, 통신비, 월세, 학자금 대출이자, 생활비 등 최저임금 받는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일해도 삶 속에 여유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포기를 종용하는 사회 안에서 최저임금 1만 원을 간절히 요구한다”고 외친다. 4월 총선 때 여야 모두 최저임금 대폭인상에 대해 공약을 냈고 거기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또 최저임금 1만 원이 영세자영업자들의 부담으로 돌아가지 않게 정부와 국회가 정책으로 법안으로서 해결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10여 개의 테이블에서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 보낼 요구안을 작성한 이들은 집회의 마지막에 퀵서비스를 통해 요구안을 전달했다. 또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거치는 행진을 진행했다. 최저임금 심의의결일은 지난달 28일로 이미 법정 시한을 넘긴지 오래다. 최근 5년간 최저임금을 결정한 심의의결일을 살펴보면 해마다 법정시한을 넘겨 2010년 7월 3일, 2011년 7월 13일, 2012년 6월 30일, 2013년 7월 5일, 2014년 6월 27일, 2015년 7월9일 등으로 마무리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이 법적 효력을 갖기 위해 노동부 장관 고시일(8월 5일) 20일 전인 오는 16일까지 합의안을 내놔야 하는 가운데 최저임금위원회의 노동계와 경영계사이의 합의 도출은 쉽지 않아 보인다.


패스트푸드점 XX킹에서 일하는 21살 대학생

“평일에 학교를 다니고 주말에 XX킹에서 금~일 밤을 일 하는데, 밤새 하는 일이 많다. 알바생 2명이서 다음날 아침8시까지 다음 영업 준비를 하고, 주방 청소를 하고, 밀린 설거지하고, 분해한 그릴과 연기가 올라가는 굴뚝을 화학약품으로 닦는다. 굉장히 힘들지만 야간 1.5배 시급 때문에 계속한다. 지금 최저시급만으로는 주 3일 일해서 한 달을 살아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알바는 용돈벌이가 아닌 우리 생계라고 생각한다. 사용자들은 우리가 돈이 생기면 이상한데 쓸까 걱정을 하는 것 같다. 근데 돈 받아 생활비 외에 여유가 있으면 고기집 가서 고기 사먹고, 옷 사 입고, 영화도 한편 볼 계획을 세운다. 이게 그렇게 나라를 좀 파먹는 짓인가? 경영계는 근 10년간 단 한 번도 최저임금 인상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1800년대 모든 기업들이 노동자의 파업을 법적으로 정당화하면, 20세기 초 흑인에게 같은 임금을 적용하고 노조를 인정하면, 20세기 말 여성의 임금을 남성과 똑같이 지급하고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한다면 기업은 망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최저임금이 오르면 망한다고 얘기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답을 알 수 있고, 정답을 말하기 위해 자리에 나왔다. 4월 총선 때 여야 모두 최저임금 대폭 인상안을 말했고, 그것을 요구하러 나왔다.”

▲ ⓒ 참여와 혁신 DB

부산에 사는 30살 취업준비생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혹시라도 누굴 좋아하게 될까 봐 그게 가장 두렵다. 사용자들은 10년째 최저임금 동결을 이야기하고 103만 원이면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103만 원으로 살 수 없겠지만, 사실 103만 원 가지고 살라면 살 수 있다. 근데 아무도 안 좋아하고 ‘노오오력’하면서 혼자 살면, 그럼 가능하다. 내 인생에서 결혼, 출산, 육아는 둘째 치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부터가 사치가 되었다.”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최저임금의 문제는 비정규직 뿐 아닌 전체 노동자의 문제이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직종마다 다르지만 한 달 100만 원 초중반인데 만약 최저임금 1만 원이 통과 된다면, 월 209만 원 이상을 받게 된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번 임금협상을 논의하며 가장 큰 요구가 상여금 이었고, 그것을 위해 파업 등 다양한 행동을 했다. 최저임금 1만 원이 되면 상여금을 받는 이상으로 월급이 늘어나는 것이다.”

대기업 빵 프랜차이즈 파XXXX에서 일하는 25살 음악인

“지금은 오전에 알바를 하는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군 복무를 제외하고 늘 알바를 했다. 작년에 일했던 스크린골프 업체에서는 최저임금 5,580원도 아닌 시급 5,000원을 받으면서 580원은 밥값으로 안 준다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게다가 청소 및 카운터만 본다는 초반의 이야기와 달리 밥을 배달, 손님들의 담배 심부름, 개인 심부름 등을 시켰다. 심지어 마지막 달에는 시급을 4,000원 가량으로 책정해서 지급하기에 이유를 물으니 무단퇴사라 그랬다고 하더라. 노동청에 고발하여 받아냈지만 화나고 억울했다. 나는 노래하는 음악인인데, 6살 여동생이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을 자유롭게 사줄 수 없는 내 처지에 음악을 하고 있는 걸 후회할 때가 있다. 내 음악에 확신이 있지만 각박한 현실 앞에 시작도 전에 무너지는 것 같다. 오늘 아르바이트를 빼고 왔는데, 최저임금 1만 원이 되면 동생에게 케이크를 사주고 싶고, 내 음악을 하고 싶다.”

▲ ⓒ 참여와 혁신 DB

20살 장애인활동보조인

“장애인활동보조는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거의 모든 일을 한다. 이 일은 봉사활동이 아니라 장애인이 자기 결정권을 유지한 채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노동이다. 시급은 최저임금인 6,030원이고 주휴수당, 연장·추가근로 수당은 구경도 못해봤다.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국가사업인데도 이렇게 열악하다. 게다가 보건복지부가 활동보조인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장애인 단체에 외주를 맡기는데 제대로 된 임금을 지급하면 장애인 단체는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밤새워 전신마비 장애인을 보조하는 일이었는데 그렇게 일해 한 달에 200만 원을 벌었다. 자립하고,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여행도 가끔 다니고, 매달 적은 돈이라도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드리고 싶어서 그렇게 일했다. 당시 밤새 일하면서 제가 느낀 건 서러움도 분노도 아닌 공포였다. 잇달아 밤을 새우고 끼니도 거르며 나 자신을 망쳐가면서까지 일을 하지 않으면 나는 부모님의 짐이 될 수밖에 없는 걸까. 이런 패배의식과 무력감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최저임금 1만 원이 되면 이런 것을 떨쳐내고 차마 꿈이라고 하기도 미안한 목표들을 이루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