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심는 할아버지와 꽃신 삼는 할머니
꽃 심는 할아버지와 꽃신 삼는 할머니
  • 백민호_파이뉴스 기자
  • 승인 2006.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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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도시와 기계 문명에 반대한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장지오노. 그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두레)은 황무지에 수만 그루의 나무를 심으며 홀로 살아온 한 노인의 일대기를 담은 소설입니다.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처럼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살면서 우리에게 소중한 미덕을 건네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11년째 길 따라 꽃을 심고 꽃씨를 나눠주는 김대영(81) 할아버지와 버려진 털실로 꽃신을 만들어 주는 이종숙(80) 할머니.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갖춘 이 소설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소개합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그저 내가 좋아서…”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 곳집마을. 비행장과 멀지 않아 창고가 많은 탓에 ‘고사촌’으로 불린 이곳에서 팔십 평생을 살아온 김대영 할아버지. 11년째 4km에 이르는 마을 진입로며 인근 천변(황구지천)에 꽃을 심는 일명 ‘코스모스 할아버지’다. “내가 꽃을 좋아해서 심는 거지. 그냥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

할아버지가 가꾼 꽃길엔 코스모스 말고도 과꽃, 봉숭아, 채송화가 꽃잎을 피우고 손님마중을 한다. 군데군데 해바라기도 심어져 있다. 남풍에 줄기라도 꺾일까, 지지대가 세워져 있다. 모두 할아버지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뿌린다고 해서 스스로 자라는 건 아니다. 봄, 여름 잡풀이 시시때때로 솟아나니 솎아내고 꽃들이 시름시름 앓으면 약을 친다. 가을바람이 불면 꽃잎 아래에 소쿠리 하나 받치고 꽃씨를 툭툭 털어내, 햇볕에 꽃씨를 말린다. 키질을 해 티나 검불을 까불어 씨앗을 모은다. 할아버지는 매년 20∼30㎏의 코스모스 씨앗을 구청, 동사무소, 학교에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막걸리 한잔 걸치면 세상 시름 잊고”농사일 해온 할아버지는 팔순을 넘겼지만 4년 전부터 집 근처에 있는 택시회사에서 야간경비를 선다. 저녁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6시에 나온다. 꼬박 12시간 야간 경비를 서면서 화장실, 건물, 차고지를 살피며 청소를 한다. 운전기사들이 부탁한 일이나 가끔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손님이 들이닥치면 친절히 응대하는 것도 할아버지의 몫이다. 한 달에 쉬는 날이 딱 두 번. 할아버지는 아침에 퇴근해서 마을을 서너 바퀴 순례한다.

코스모스 길을 따라 구석구석에 놓인 폐지와 고철을 리어카에 담는다. “낮에 한두 시간 눈 붙이면 괜찮다”는 할아버지는 얼마 되지 않는 월급으로 생활비, 아내 병원비며 마을 경조사에 쓰고 폐지와 고철을 수집해 마련한 돈으로 마을을 가꾸는 데 사용한다. 3년 전 중풍으로 고생한 할머니는 일주일에 세 번 병원을 간다.

아내사랑이 지극한 할아버지는 좋은 거나 맛있는 게 있으면 “할멈, 이리 와봐”, “이거 한번 봐요”라고 정겨운 소리가 먼저 달려간다. “차들이 다니면서 꽃나무를 짓이기고 가니 속상하다”는 할아버지는 늦여름 한낮에도 구루마를 끌고 2~3시간 꽃길을 살핀다. “더우면 물 한 바가지 끼얹으면 된다”는 김대영 할아버지는 정말로, 꽃이 좋아 심고 꽃이 좋아 나눠주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버려진 털실과 거친 손마디에서 피어나는 장미
버려진 털실로 꽃신을 만들어 ‘착한사람’에게 나눠주는 팔순의 이종숙 할머니. 이천시 장호원읍 선읍리에 사는 이 할머니는 꽃신으로 유명해진 환경운동가다. 할머니의 안방은 재활용 작업장이다. 남들이 쓰레기라고 부르는 헌옷이며 우유팩이 쌓여있고, 재활용 끈과 털실로 만든 옷과 양말이 눈에 띈다. 할머니는 손바닥만 한 빨간색 라디오를 틀어놓고 짬짬이 뜨개질을 한다.

털실을 넣어둔 바구니는 막내아들 유치원 보낼 때 산 것. 족히 40여 년이 넘었다. 지금까지 뜬 꽃신만 1만 켤레가 넘는다나. 어른 손가락 두 마디 크기지만 1300번 털을 굽이굽이 돌아 꽃신을 토해낸다. 신의 밑창과 윗대를 따로 삼아야 하니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애초부터 작은 건 아니었다. 자투리를 가지고 애면글면하다보니 작아졌다. 꽃신엔 시대의 아픔이 서려있다.

6.25전쟁 이후 “한국에 민주주의가 싹트는 것은 쓰레기통에 장미가 피는 것과 같다”는 영국 신문기자의 ‘오만한’ 말을 듣고, 할머니는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옷이며 털실을 주워다 꽃신을 뜨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꽃신을 장미로 마무리 짓는 팔순 노인의 속뜻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께서 밭에서 콩을 심다가 저보고 그랬어요. 하나는 땅속 굼벵이가 먹을 거, 또 하나는 날짐승이 먹을 거다. 나머지 하나는 사람이 먹을 건데…, 굼벵이와 날짐승이 못 먹으면 사람도 못 사는 법이야.”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전용 이발사다. 20년 단골이지만 공짜란 없다. 1천원으로 시작한 이발비가 1만원이 될 때까지 20년을 모은 돈이 1백만원. 할머니는 50만원을 강화 매화마름 보존에 써달라고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본부에 건넸고, 라디오를 듣다 알게 된 전남 해남벽지의 작은 교회 도서관에 30만원 어치 책을 사주었다.

그리고 20만원은 치매노인 쉼터 도배 비용으로 사용했다. 할머니는 버스를 아홉 번이나 갈아타고 경기도 연천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한마음애집’ 식구들을 만나러간다. 여기만이 아니라 퇴촌 정신대할머니와 소록도에 있는 나환자들도 오랜 말벗이다. 앞으로 할일이 많이 남아 게으를 짬이 없다는 할머니는 일찍 드러누워 봤자 뭐해야지 떠올리느라 머릿속이 분주하단다.

“젊은 사람들 얼굴이나 재산보고 결혼하고 그러는데…, 예쁜 사람은 예식장 들어갈 때만 좋은 법이야. 음식 잘하는 사람은 먹을 때만 좋고, 돈이 많은 사람은 돈 쓸 때만 좋아. 옆에 있어 편한 사람이 최고지. 함께 평생을 살 수 있어. 우리처럼. 호호호…. 분하고 서러운 일은 물에 띄우고 고맙고 감사한 일은 돌에 새기라 그랬어. 자기 욕심, 자기 식구나 내세우고 돈, 돈 그러는데 죽으면 돈 가져가요? 누가 잘사느냐가 문제가 아니야. 어떻게 잘 사느냐가 문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