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이 아니라 문제해결을 원한다
싸움이 아니라 문제해결을 원한다
  • 고연지 기자
  • 승인 2016.08.1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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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이 아니라 우리 일이 될 수 있어야
[커버스토리]① 노동자에게 파업을 묻다

전국 곳곳에서 총파업-총력투쟁이 동시다발로 일어나고,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23년 만에 동시 파업을 했다. 구조조정을 앞둔 다른 조선사들도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이미 총파업을 결의해 놓은 상태고, 공공부문도 분위기가 심상찮다. 형식과 내용을 떠나 노동계의 ‘총력전’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원론적으로 파업은 헌법으로 보장된 노동3권 중 하나이며 단결권과 교섭권을 유지하게 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정부는 늘 파업을 불법이라고 규정짓는다. 법으로 정해진 파업의 권리는 사업장 내부의 일로 선을 그었다. 사회적 의제가 등장하면 언제나 파업은 불법이 된다. 사업장 내부의 일로 파업을 하면 ‘집단 이기주의’이고 ‘귀족노조의 제밥그릇 챙기기’가 되고, 사회적 의제를 내걸면 ‘정치 파업’이고 ‘불법’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왜 파업에 참여하는 걸까. 지난 7월 22일 서울 여의도와 양재동에서 동시에 진행된 금속노조 총파업대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파업에 대해 물었다. 사업장 밖의 ‘거리’로 나선 파업 참가자들은 일반 노동자들에게 비해 좀 더 적극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의 목소리 속에서 ‘파업의 오늘’을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

위기는 벌써 시작됐다, 불안하다

세월이 하수상하다. 위기의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총파업 결의대회에 나온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이웃사람의 이야기였고, 언젠가는 내 이야기가 될 일이었다. 당장 회사의 매출감소와 운영사정 등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이 흘러들고 있었다.

“경남은 살얼음판이다. 조선만 봐도, STX조선부터 성동조선 등 임금에 대해 지급지연책을 쓰면서 고용불안이 직접적으로 다가온 것을 느낀다. 그 전부터 닿아있었는데 지금 더 구체화 된 것 같다.”

“아직은 구조조정이나 이런 말은 없지만, 사정이 안 좋은 건 확실한 것 같다. 입사한지 얼마 안 됐지만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10년간 산업이 기울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조선-철강-자동차 순으로 기울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직 사업장에 직접적인 정리해고는 없지만, 옆 사업장들이 그러고 있어서 곧 닥칠 것 같은 불안함과 위기감을 안고 있다. 직접적으로 일감이 없어지면서 잔업이 많이 없어지고, 수입도 확실히 줄었다. 대기업도 일감 없다고 난리인데 중소기업은 오죽하겠나.”

“경남에는 조선소가 모여 있고, 외자기업들도 있다. 그 사업장 모두 구조조정문제가 걸려 있다. 지금 금속노조의 사안 중에 아무래도 총 고용보장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지금까지 작년 경영실적이나 올해 상반기 실적을 봐도 회사는 적자라고 하는데 9% 정도 밖에 안 떨어졌는데 엄살을 부리는 거다. 그런데 한편으로 주변 사업장에서 힘들어하니 덩달아 (위기를) 느끼는 건 있다.”

“현장에서 현대중공업 구조조정이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 한다. 우리도 98년도에 구조조정이 있었다. 지금 현대중공업노조가 식물노조로 있다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가족들마저 부정적이었던 파업의 이미지

한편 파업에 냉소적이거나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의무감에 참여를 하기도 하고, 하나의 일정처럼 여기기도 한다. 혹자는 파업이 가지는 의미는 인식하지만 크게 좋고 나쁘고의 판단이 불가 하다고도 말했다.

“특별히 파업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지는 않는다. 어떤 투쟁을 하든지 나한테 피해만 많이 안 오면 된다. 무임금이더라도 빨리 끝내주면 그게 좋다.”

“지회에서 금속노조 총파업을 한다고 하니까, 금속노조원이라서 오게 됐다. 3교대 근무인데 야간근무라서 참여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의무니까 참가는 해야 한다.”

“권리를 주장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입사한 지 얼마 안됐는데 파업을 보면서 그냥 ‘파업이란 걸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크게 좋지도 않지만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파업을 대하는 여론은 언제나 부정적이다. 한때 파업에 대한 지지와 거부감이 공존했지만, 최근 들어 노골적 반발이 더욱 커지고 있다. 노동자들도 체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배부른 노동자’, ‘귀족노조’ 같은 단어들이 파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노동자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는 요소라고 주장했다. 22일 금속노조 총파업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 모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지역의 분위기는 좋지 않고, 한국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다니면서 본인들보다 복지나 임금 모두 다 좋은데 왜 파업하냐고 따지는 것에 깊은 피로감을 내비쳤다.

“파업한 지 8개월 정도 됐다. 작년 11월부터 했으니까. 주변 지인들도 싫어하고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지역에서도 그렇고 여론이 안 좋다. 현장에서 느끼는 것과 미디어를 통해 보는 것 사이에 온도차이가 심하다. 돈 많이 받고 정규직이면서 이해 못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한 작업장 안에서도 같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선이 좋지 않다.”

물론 부정적인 시각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노동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긍정적인 시선을 발견하고, 본인 자체도 과거와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그랬는데, 어제도 보니까 희망적인 부분도 있더라. 우리가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려고 한다는 반응들. 저 사람들이 파업이라도 하고 거리로 나서기 때문에 다른 노동자들이 조금이나마 ‘개, 돼지’ 취급 안 받을 수 있는 거라고 하더라. 그런 걸 보면 뿌듯하다. 앞으로 사회적 관심을 많이 필요하다.”

“지역특성상 이걸(파업이나 집회) 좋게 보지는 않는데, 사정을 아니까 시민들도 격려를 해주고 연대한다. 사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부터 부정적이다. 그런데 안 겪어보면 모른다. 그 전에 이렇게 파업하고 집회하고 이런 것 보면 욕하고 뭣하러 하는지 이해 못했다. 내 입장이 아니니까. 근데 막상 닥쳐보니 왜 했는지 사정을 알게 됐다. 언론을 통해 잘 못나오고 이런 것 보면 열 받는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일 수 있지만, 내 일이어야 눈에 불 켜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겪고 나니 앞으로는 내 것이 아니라도 같이 파업에 동참하고 집회에 참여할 것이다. 땡볕에서, 추운 길바닥에서 왜 이러고 있는지 아니까. 이제는 내 일이고, 가족 일이고, 친구 일로 보인다.”

파업에 참여할 수도 없는 사람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파업 전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파업은 웬만하면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찬반투표의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는 건 “그만큼 사용자측의 태도에 조금의 여지도 없기에 분노를 표출할 유일한 수단이 표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와봤는데 많이 참여를 한 것 같다. 쟁의권에 대해 정당하다고 생각했기에 쟁의행위에 찬성표를 던졌다. 노동조합에 들어와서 깨달은 것은 노동자의 권리가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 현재 노동조합 내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항상 관심을 두고 있다.”

“금속노조가 강압적인 이미지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자율적으로 참석하게 한다. 처음 파업에 참여 했을 때와 두 번, 세 번,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해고된 상태이지만, 근무 중이었어도 파업에 동참했을 것이다.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해고자이지만 금속조합원으로 참여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과거의 노동조합과 현재의 노동조합의 가장 큰 차이는 구성원의 지위라고 말한다. 그는 “과거에는 비정규직 등 이른바 하위 70%로 구성됐다면, 지금은 정규직 등 상위 40%의 노동자들이 총연맹의 70%를 차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총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비정규직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정규직)야 사실 임금이나 복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주위의 비정규직을 봐야 한다. 실질적으로 많고 따로 조합이 설립되기도 하지만 정규직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어렵다. 그런 부분을 많이 신경 썼으면 좋겠다. 연대투쟁도 많이 해야 하고 지금은 겉보기에도 소홀한 것 같고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파업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 지금은 다른 것보다 고용안정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어떻게 보면 ‘내 밥그릇 챙기기’ 하는 것 밖에 안 된다. 상식적으로 주변 절반 가까이가 비정규직이다. 그 사람들은 여기 참여하고 싶어도 못한다. 60%의 정규직만, 조합원들만 참여가 가능하다. 100명 중 4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비정규직인데 우선 그 사람들을 챙겨야한다.”

“비정규직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노동자들은 알고 있다. 파업은 하다하다 안될 때 가장 힘든 노동자들이 던지는 카드라는 것을. 그래서 오랜 기간 파업을 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노동자들은 지도부가 버텨주는 게 고맙고 힘을 잃지 말자고 오히려 서로를 다독인다.

한편에서는 진정한 파업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현 상황을 타개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에게 노동조합이 풀어야 할 문제에 대해 물었다.

“총파업에 제대로 된 주제가 있는지 모르겠다. 조합원들이 다 파업하고 나온 것도 아니고 주된 이슈가 부각된 것도 아니다. 노동조합의 확실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올해 투쟁력이나 조합원을 보더라도 굉장히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직력을 바탕으로 오늘 집회도 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해야 할 거다. 쌍용자동차나 유성기업 때 플래시몹을 했을 때 오히려 집회 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국민적 동의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하는 것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나쁘게 말하면 우리만의 잔치 같다. 자료를 보니 산업 내에 비정규직이 41%로, 전체노동자 기준으로 절반 가까이 되는 수준인데 그들과 동기부여하고 같이할 수 있어야 한다. 동참하고 있지만 100% 만족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금속파업대회를 양재동과 여의도로 나눠 하는 것도 불만이 있다. 지금 조선의 위기에 직면했으니 금속노동자들이 집중해서 모여야 한다. 조선 다음에 철강이나 자동차로 위기가 갔을 때 연대가 이어져야 한다.”

“이번에 노조에서 내건 슬로건처럼 재벌개혁이 돼야 한다. 곳간을 열어서 고용창출을 하거나 사회재투자를 통해 먹고 살 일감, 분위기가 필요하다. 노조도 본인이 말한 것을 지켜야 한다.”

“조선업은 10년 전부터 불황에 대비하자고 이야기했었다. 근데 지금 당장 사안이 터지니 정부는 고용보장을 못 해주고 임금을 깎으라는 둥 노동자가 책임지라고 말하고 있다. 노동자 총고용을 보장하기 위해서 정부와 채권단들, 기업체 경영진들이 대화에 나서서 해결점을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노동자에게 책임전가를 하다가는 노동자와 경영진 또는 정부와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큰 싸움을 벌어지길 원하는 게 아니고 문제해결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