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고립에 맞서는 전략은 무엇인가
그들이 고립에 맞서는 전략은 무엇인가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8.1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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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정부·언론이 만든 카르텔, 노조의 공간은 없다
[커버스토리]② 파업 지도부에 '노동의 위기'를 묻다

노동조합에게 파업은 ‘최후의 수단’이다. 이 최후의 수단을 위해 이른바 지도부는 조합원들을 만나고 설득한다. 하지만 이들이 고려해야 할 대상이 조합원만은 아니다. 당장 맞은편에 있는 자본을 상대해야 하고, ‘불법’ 운운하는 정부를 감안해야 한다. 물론 파업 얘기만 꺼내면 ‘불편’, ‘귀족’, ‘차질’ 따위의 부정적 단어를 늘어놓는 언론도 빼놓기 어렵다. 노동조합 입장에서 보자면 법은 언제나 ‘맞은편’에 서 있었다. 파업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지도부들은 할 말이 많다.

그들은 왜 파업을 하는가

7, 8월은 가히 ‘파업의 달’이라 할 만하다. 이른바 ‘노동개혁’,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도입 강행, 조선업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 등의 이슈들이 한 번에 맞물리면서, 노동조합들은 저마다 구호를 내걸고 파업 일정으로 달력을 가득 채웠다. 건설산업연맹,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등 민주노총 산하의 굵직한 조직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한국노총도 서서히 시동을 걸고 있다. 금융노조는 총파업 일정을 공표했고, 공공연맹, 공공노련도 여차하면 정부와의 한판 승부에 나설 참이다.

외부에서는 하던 일 멈추고 특정 장소에 모여 한두 시간 집회를 여는 정도로 파업을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을 위해 노동조합 지도부는 긴 시간 파업 준비를 한다. 산별노조의 임원들은 각지로 현장순회를 다니며 조합원들의 의견을 듣고, 파업 참여를 독려한다. 실무자들은 각종 자료집을 만들거나 예산을 조율한다.

민주노총의 경우 지난 2월 제62차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6~7월 중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사업계획을 정한 바 있었다. 그에 맞춰 각 산별 조직은 투쟁계획을 수립했다. 이렇게 본다면 노동조합의 파업은 정세판단에 따른 전술적 측면이 있다.

그런데 전술로서의 파업 뒤에는 늘 내부적으로 ‘뻥파업’ 논란이 따라온다. 민주노총은 지난해에도 4·7·9·12월 네 차례나 총파업에 돌입했으나, ‘총파업’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하다는 비판이 내부에서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백석근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은 “지금은 정치총파업이 거의 되지 않는다”면서 “총파업 전술이 되려면 자기 문제가 돼야 하는데, 민주노총 구성원 자체가 사회적으로 하위계층에 속하는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모든 파업이 전술 중 하나에 그친다거나, 다분히 선언적인 것만은 아니다. 단위사업장으로 내려가면 파업의 이유는 해당 사업장의 이슈가 되고, 결국 ‘나의 문제’가 된다.

지난 2009년 쌍용차노조가 77일 동안 벌인 파업은 사측이 2천 명이 넘는 노동자를 정리해고 하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유성기업, 발레오전장, 상신브레이크, 골든브릿지처럼 노무법인과 연계된 노동조합 파괴 시도가 자행된 사업장도 있다. 이런 경우 노동조합은 파업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다시 말해 파업을 ‘강요받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일부 산업에서 구조조정 국면이 본격화된다면 고용보장, 더 나아가 ‘생존권’을 내건 파업이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해고는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극한대립은 불을 보듯 뻔하다.

차(車)·포(包) 다 떼고 궁(宮)만 남았다

물론 산별노조, 단위사업장 할 것 없이 노동조합의 파업을 바라보는 각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특히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그 자체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 현대차노조는 그 표본이다. 현대차노조는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의 기업지부들 중 하나지만, ‘강성노조’, ‘귀족노조’라는 이미지까지 덧칠돼 있다. 이들은 파업에 들어갈 때마다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비난을 감당해야 한다. 자본과 노동의 대리전 양상까지 피할 수 없다.

현대차노조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박유기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은 노조의 파업을 향한 부정적 여론을 만든 주범으로 언론을 지목했다. 그는 “언론이 재벌의 입장을 우선으로 대변하니까 노동자들의 입장이나 요구가 철저히 가려진다”며 언론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른바 ‘귀족노조’라는 낙인에 대해서도 “현대차 생산직 평균근속 28년과 우리나라 전체 평균근속 6년을 놓고 단순 비교해서 임금이 높다고 주장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항변했다.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 언론만 적대적인 것은 아니다. 자본은 대외적으로 소위 ‘명분 없는 파업’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강조한다. 정부는 파업의 ‘파’자만 꺼내도 불법이라고 몰아붙인다. 원론적으로 노동과 갈등관계에 있는 자본은 그렇다 쳐도, “자본에 편향된 정부”는 늘 노동조합에게 불만사항이다.

박유기 지부장은 “(정부가) 대기업이 교섭에 나설 수 있도록 협력하고 행정지도를 하는 역할은 뒷전이고, 노동조합 파업에만 ‘배부른 대기업 이기주의다’, 20년째 이러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 또한 노동조합의 파업에 우호적이지 않다. 노동조합은 불법인 파업과 합법인 파업을 굳이 구분하는 사회의 분위기를 수긍하기 어렵다. 법에 대해 노조가 갖는 불신은 장기투쟁사업장에서 잘 드러난다.

사무금융노조 골든브릿지지부(지부장 김호열)는 지난 2012년 4월부터 이듬해까지 무려 586일 동안 파업을 벌였다. 이른바 ‘노조파괴’로 악명을 떨친 ‘창조컨설팅’의 자문으로 사측은 단체협약을 해지하는 초강수를 뒀다. 노조 지도부는 말할 것도 없고,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상대로 수많은 고소·고발장이 날아들었다. 법은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파업을 이끌었던 김호열 지부장은 “합법적으로 파업을 하더라도 막상 파업 과정에서 형법으로 다 통제가 된다”고 비판했다. 김 지부장은 “파업이라는 것이 본래 업무를 방해하는 것인데도 업무방해죄가 기능하고, 교섭을 요구하면서 농성을 하면 주거침입이나 퇴거불응이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두 손 두 발 다 묶인 상태에서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노동조합의 파업은 사실상 차(車)와 포(包)를 다 떼고 두는 장기와 다르지 않다. 언론도, 정부도, 법도 노동조합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어쩌면 진짜 ‘노동의 위기’는 노동의 고립일지도 모른다.

10% 외딴섬 벗어날 방법을 찾아서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9.5%다. 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12,2%,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1.5%다. 정규직 노조 가입률은 비정규직 노조 가입률의 8배가 넘는다. 이를 놓고 여당의 대표를 지냈던 한 정치인은 “10%의 노조가 기득권을 움켜쥐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가 남긴 “노조가 쇠파이프만 안 휘둘렀어도 국민소득 3만 불 됐을 것”이라는 말은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그 정치인이 굉장히 실없는 발언을 한 것은 맞지만, 역설적으로 그 말은 고립된 노동조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셈이 됐다. 노동조합의 고립에 대한 지도부의 고민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백석근 위원장은 고립의 이유로 비정규직을 조직하지 못한 점을 꼽았다. 그는 “민주노총이 만들어질 당시 조합원의 70% 가량이 사회적으로 하위 10~30% 계층에 들어갔지만 지금은 거꾸로 상위 40%의 노동자가 조합원의 7~80%를 차지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백 위원장이 이른바 ‘귀족노조’ 주장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그는 “근로조건과 임금이 조직을 통해 많이 향상된 것”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조직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리더십의 부재를 이야기한다. 앞서 김호열 지부장은 민주노총 내부의 조직 갈등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을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조직 갈등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갈등이지 정규직-비정규직 갈등이나 조합원들 간의 갈등이 아니”다. 그리고 “자본과 기득권은 항상 그 틈을 약점 삼아 비집고 들어”온다.

김 지부장은 “시간이 걸려도 왕도가 없다”고 말한다. 지도부가 단기적 이익을 좇기 보다는 장기적 이익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단기이익에 호소하는 것이 특정 정파가 선거에서 이기는 데에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결국 그게 공멸하는 길이었고, 그게 국민들과는 괴리돼 왔다는 걸 학습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현대차지부는 해마다 임단협을 앞두고 출정식을 갖는다. 출정식이 열리는 장소는 본관 앞이다.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은 정문 바로 옆에 위치한다. 그래서 출정식을 준비하는 노동조합 집행부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정문을 봉쇄하는 것이다. 출정식으로 인해 조업이 없기 때문에 상당수 조합원들이 출정식 참석이 아니라 귀가를 선택하고, 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그런데 올해 출정식은 이례적으로 정문 봉쇄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은 광장을 가득 메웠다. ‘자발적 참여’로 진행된 것이다. 이는 최근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장 인근의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업의 구조조정 분위기를 지켜보면서 자동차산업도 예외일 수 없다는 위기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올해의 파업 양상은 예년의 ‘뻥파업’ 혹은 ‘알리바이 파업’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노동의 위기는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생산의 자동화와 고용의 위기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정책으로, 때로는 산업구조의 변화로 노동의 위기를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이 모두를 아우르는 것은 결국 사회적으로 냉소의 대상이 돼버린 노동조합일지도 모른다. 사회로부터 고립된 노동조합을 구출할 수 있는 이들도 결국 노동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