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개혁 드라이브, 불신의 벽만 높이다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 불신의 벽만 높이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6.08.1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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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합의 백지화, 여야정쟁으로 넘어간 위기극복
[커버스토리]④ 정부는 위기의 대책이 있는가

4년째 임기를 맞은 박근혜 정부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정치, 외교, 경제, 안보 각 분야의 국정은 번갈아가며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통령의 언행은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신뢰를 떨어뜨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노동개혁’은 임기 중 치적의 중심에 위치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사회적 합의라는 번거로운 절차 없이 내달리는 이유다.

노동계의 반발 등 다소의 ‘걸림돌’은 세대간, 계층간 갈등을 부채질하는 수사로 덮어버렸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동개혁을 포함해, 공공부문, 금융산업의 개혁을 저지하겠다고 노동계가 맞서고 있다. 노-정 간의 불신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그러면 노동계가 선택한 파업이라는 저지 수단은 과연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대중들의 지지를 폭 넓게 얻는 ‘사회적 의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을까?

우여곡절 끝에 노사정합의, 하지만…

지난 2014년 9월부터 노사정위원회는 고령화 및 법적 정년의 연장,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논의를 진행해 왔다. 1년여 논의 끝에 9.15 노사정합의에 도달했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노사정은 저성과자 통상해고와 근로자 동의 없는 취업규칙 변경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였다. 결국 이와 관련한 내용은 추후 논의하기로 하고 합의에 도달했던 것이다.

다소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간 누적되어 온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그 해법을 마련해 보고자 노사정 각 당사자는 자리를 마주했다. 이것을 다잡지 않고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내다보는 앞으로 닥쳐올 경제와 노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대한민국의 체질을 바꿀 ‘골든타임’을 놓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노사정합의를 도출해 내면서 ‘노동개혁’은 순항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노동개혁은 여전히 부류 중이다. 19대 국회에서 어떻게든 결론을 내려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김현숙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은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날 “노동개혁 4법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패키지 법안”이라며 “20대 국회에선 반드시 통과시켜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갈팡질팡 노동개혁, ‘협치’는 요원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새누리당은 이른바 노동개혁 4법을 발의했다. 청와대와 발을 맞춘 집권 여당이 과반의석을 점한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통과시키지 못한 법안을, 여소야대로 지형이 바뀐 다음 회기에서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다시 발의한 것이다.

노동개혁 4법은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파견법 개정안을 말한다.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는 부분은 파견법 개정과 관련한 부분이다.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에 근로자 파견을 금지하는 현행 법률을 완화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파견법 제정의 본래 취지를 왜곡하고 제조업 전반에 파견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고, 대기업의 사내하청 불법파견을 합법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보면, 노동개혁 법안은 기간제법을 더해 ‘5법’을 가리키던 때가 있었다.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정부와 여당은 이 노동개혁 ‘5법’이 서로 맞물려 있는 패키지 법안이기 때문에 한 번에 처리해야 한다든지, 특정 법안만 개정하면 균형 있는 노동시장 형성이 어려워진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를 내세웠다. 굳이 내용을 따져보자면 근기법과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은 노동계에 유리하거나, 이미 기존에 논의가 상당 진행되어 합의를 도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큰 반발을 불러올 내용이었다.

반드시 패키지로 묶어야 한다던 5법이 하루아침에 4법으로 줄어든 계기는 대통령의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대국민 담화에서 “일자리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차선책으로 노동계가 반대하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중, 기간제법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는 대신 파견법은 받아들여 달라”고 호소했다.

각 법률 개정안의 내용을 차치하고서라도 노동개혁을 둘러싼 그간의 과정은 답답하기 그지 없다. 주요 이해 관계자들의 논의는 순식간에 손바닥 뒤집듯 바뀌기 일쑤였다. 또 그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결국 17년만의 노사정 합의는 깨졌고, 사회적 대화 기구로서 노사정위원회의 위상과 기능은 추락했다.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노동개혁 과정을 되돌아보면 과연 정부가 흔히 ‘협치(거버넌스)’라고 말하는 이해관계자의 사회적 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정말로 의심스럽다”고 평가했다. 협치는 ‘통치(거버먼트)’가 아니다. 협치는 청와대에서 짜놓은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노사정위원회는 사실상 청와대 주도의 방침 안에서 작동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런 모습은 흡사 1960~70년대 중남미에 유행했던 국가코퍼러티즘적 상황을 보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말한다. 정부의 이런 태도에 대한 “노동계의 불신과 사회적 냉소로 인해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과연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가 가능할 지 확신하기 어렵다”고도 지적했다.

노동계 파업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

오른쪽 박스는 회원 수 10만이 넘는다는 국내 한 대형커뮤니티에 올라온 현대차 파업 글과 그에 대한 댓글이다. 이 커뮤니티는 20~30대 남성 중심으로 극명한 반 새누리, 친 더민주, 정의당 성향을 보이는 사이트다.

대체 이런 파업에 대한 혐오증, 혹은 노동조합에 대한 증오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노조 지도부가 얘기하는 것처럼 언론의 왜곡보도로 인한 여론 호도 때문인 것일까. 물론 이 글에서 보듯이 이번 파업과 임단협 연결, 그리고 자녀 취업 등 기본적인 팩트가 잘못된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여론의 시선은 파업 참여 가능한 노동자들에 대해 ‘수퍼을’로 보고 있다. [리쌍 VS 세입자] 사건에서 보듯이 초기에는 연예인이자 갑인 건물주에 대한 비판 여론이 팽배했다가, 세입자의 요구가 점점 수위를 높여가면서 이른바 진보언론과 정당들을 등에 업은 ‘수퍼을’의 ‘을질’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이 형성됐다.

지금의 여론, 특히 젊은 세대의 여론은 ‘기회의 평등’ 혹은 ‘공정한 잣대’에 대한 갈구가 심하다. 자신들은 노력해서 도달하기 힘들어 보이는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자녀들까지 이너서클 안에 두고 챙기려고 한다는 거부감이 극단적인 반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취업준비생이라고 불리는 청년실업 계층의 경우,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도 강력한 반발을 보인 바 있다. 많은 이들이 안정적이라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상황에서, 상당수가 공채가 아닌 특채 방식으로 공공기관에 들어간 이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특혜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을 부채질한 것은 분명 정부이다.

고용노동부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홍보비로 지난해 모두 62억 9천만 원을 썼다. 이중 53억 8,700만 원은 사전 예측하지 못한 긴급한 예산이 필요할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예비비로 집행됐다. 국회 예결위 결산심사소위에서는 국정 홍보를 위해 예비비를 쓴 것에 대한 야당의 비판이 쏟아졌다.

고용노동부는 “기획재정부의 예산집행지침을 지키지 않고 예비비를 편성한 것은 잘못”이라면서 “상황이 급했기 때문에 책임자 징계 등 시정요구는 삭제해 달라”고 밝혔다. 또 이와 같은 비용이 “노동개혁 입법이 빨리 되고자 하는 방향에서 홍보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홍보 내용은 주로 노동개혁의 시급함을 강조하는 내용과 청년 실업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홍보 효과가 실제로 얼마나 될 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노동조합과 파업을 바라보는 여론이 싸늘하다는 점은 체감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지금 갈등의 다음 단계인 나와 다른 편에 대한 ‘혐오’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 혐오의 대상에 노동조합도 포함된 것이다. 이 혐오는 논리로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혐오를 하는 쪽은 점점 자기확신이 맹신으로 이어지고 무조건적인 적대감을 갖게 된다.

또한 이들은 노동의 관점에서 노동을 바라보지 않는다. 이들 스스로가 상당수가 자신이 노동자라고 말하면서 좀 더 진보적인 것처럼 자위하지만, 정작 그들이 노동을 바라볼 때 소비자의 시각이 작동한다.

앞서 언급한 노동개혁 법 개정 중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경영계의 강력한 요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의 입장이 어떠할 지 예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렇듯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론을 통합해 경제와 노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할 정부의 입장과 태도는 아쉬움이 크다.

노동 전문가들은 “청년실업 해소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개선에 딱히 실효성이 보이지 않는 법 개정안을 두고, 그것도 기업들의 요구가 반영된 내용을 정해진 시한 안에 통과시키려니 잡음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그 과정에서 절차적인 문제가 될 정도로 과도하게 밀어붙인 점 등은 오히려 국론을 분열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음을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