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노동자의 삶도 ‘상습 정체’
택시노동자의 삶도 ‘상습 정체’
  • 김경아 기자
  • 승인 2006.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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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길만 열어 달라 외치며 오늘도 길 위를 달린다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출근길 택시잡기 힘들다는 것은 이제 먼 나라 얘기. 아주 한적한 길만 아니라면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로 나서면 ‘빈차’ 빨간 불을 켜놓고 달리는 택시를 잡는 일은 식은 죽 먹기가 됐다. 오히려 손님 하나를 두고 택시 두 대가 유턴을 하기도 한다. 도로 위 택시는 서로 경쟁자가 되고 도로는 택시기사에게 전쟁터다. 교대시간이 다가와 손님을 양보하는 미덕 따위는 이제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다.

회사택시 착실히 운전해서 경력 쌓고 돈 모아 개인택시 갖는 것이 소망이었던 소박한 택시기사들의 꿈은 사라진지 오래, 이제 택시는 ‘어쩔 수 없어’ 근근이 입에 풀칠이나 하는 일이 돼버렸다.

“택시기사, 해보면 다 똑같아져”

택시기사는 ‘예비군’이나 매 한가지라고 했다. 점잖던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모자 삐뚤게 쓰고 ‘짝다리’를 짚게 되는 것처럼 택시기사도 일단 해보면 다 똑같아진다는 얘기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택시기사들의 전직(前職)은 화려하다.

IMF로 사업을 접고 운전대를 잡은 사장님에서부터 교사, 대기업 임원에 심지어 시청 운수과 공무원이었던 사람도 있다. “당장 집에 있는 애들 생각하면 무리할 수밖에 없어. 한 달에 100만원 벌어서 어디 대학이나 가르치겠냐고.

그러니까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신호도 어겨가며 난폭운전에 불법운행 해야 그나마 2백 가까이라도 벌지. 가끔은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천 원짜리 김밥 사서 물고 가면서 운전하기도 하고, 싼 밥집 찾아가는 길에 손님 태워 강남으로 넘어가게 되면 결국 끼니 거르게 되고…. 답십리 이 쪽은 3000원이면 먹는 밥을 강남에 가면 5000원이 넘으니 먹을 수가 있나” 한숨지으며 신세한탄을 늘어놓는 택시노동자 한 모(49)씨의 말 속에 그들의 ‘예비군 법칙’이 왜 생겨나는지 엿보인다.

근무시간 12시간을 화장실도 가지 않고 택시 안에서 김밥이나 빵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운전을 해도 하루벌이는 5만원이 채 안된다. 시간당 만원 안팎을 번다고 하면 택시 한 대당 하루 평균 수입은 10만원 정도. 물론 여기에는 식사비와 연료비가 포함된다. LPG의 경우 하루 평균 30~45ℓ 정도를 사용하는데 이중 보통 25ℓ 정도만 회사에서 지원해주고 나머지는 택시기사가 채워야 한다.

여기에 법인택시의 95% 이상이 사납금 제도를 가지고 있다. 서울시내 법인택시의 사납금은 평균 9만원 정도. 이렇게 뺄 것 다 빼고 남은 금액에 50만원 남짓의 기본급을 합치면 한달에 100만원 손에 쥐기도 빠듯하다.

사납금을 넣지 못하면 결국 일한 대가는커녕 주머니를 털어 채워야하는 구조가 택시기사에게 일단 ‘오래오래’ 일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졸음과 과로는 친구나 같다. 악순환은 건강문제까지 이어진다. 고려운수 이춘숙(48) 기사는 “화장실 제때 못가니 방광염은 기본에다 식사 제때 못하니 위장병에, 때때로 접촉사고까지 나면 관절염에 종합병원이야, 종합병원”이라고 말한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버스-택시 차별하나, 택시기사도 국민이라고”

몸이 아파도 손님만 있으면 신날 텐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택시이용객은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건설교통부 자료에 의하면 하루 평균 택시 승객은 2000년 1380만 명에서 2005년 1168만 명으로 15.4%나 감소했다.

실제 손님을 태우는 실차율은 60%까지 떨어졌다. 불경기가 계속되다보니 승객들의 주머니가 열리지 않을 뿐더러 콜밴, 대리운전에 심야버스까지, 택시를 이용하던 승객들의 대체수단은 무한정 늘어났다. 뿐만 아니다. 버스전용차로가 대폭 확대되면서 택시가 가지던 ‘기동성’이라는 장점은 사라지고 말았다. ‘편하다’는 점만으로 택시를 타기엔 아직도 경기는 좋지 않은 상황.

민주택시노조 고려운수 분회 조경준 위원장은 “택시는 예전에 비해 경제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분명히 퇴보했다”면서 대중교통 정책에서 택시가 배제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1997년 택시운송수입금전액관리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이미 택시업계에 전액관리제 시행은 현실화됐지만 법인택시사업자들이 월급제 시행을 거부하고 변형된 사납금제를 시행함으로써 위반행위가 98%에 가까운 현실이다.

전액관리제란 택시운전자가 사업자에게 수입 전부를 납부하는 대신 평균운송수입금 일정액을 기본급으로 보장받고 여기에 더해 수입에 따른 성과급을 배분받는 방식이다. 현재 서울시내 법인택시업체 256곳 중 전액관리제를 실시하고 있는 곳은 10곳이 채 되지 않는다. 택시업계에서는 꽤 안정적인 곳으로 꼽히는 고려운수도 이 중 한 곳이다. 전액관리제 시행으로 주6일 근무에 하루 휴무는 잘 지켜지는 편인데다가 고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어 사납금이 있는 택시회사보다는 나은 편인데도 한 달 평균 급여는 140만원 정도다.

다른 회사에 비해 안정적이라고 해도 혼자 벌어서는 ‘애들 교육시키기’는 빠듯하다. 대부분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아이들 교육이며 생활을 이어가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대학 등록금은 매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데 매달 벌이는 점점 더 형편없어지니 때로 부모로서는 해서는 안 될 몹쓸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조 위원장은 전한다.

“괜히 어중간하게 공부해서 어정쩡한 대학 들어갈 바엔 아예 공부를 못해서 대학 못가는 게 마음 편하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오죽하면 그런 생각하겠어요?”

가까이고 멀리고 사람이 무서워

택시는 예나 지금이나 힘들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십 몇 년 전만해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

‘아이들 과자 사들고 가는 여유’가 있었고 ‘노란 와이셔츠 입은 개인택시 사장이 되는 꿈’도 있었다. 하지만 택시총량제로 개인택시 면허발급은 중지되고 개인택시 면허는 6~7천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으로 ‘거래’된다. 또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택시시장에서 개인택시를 가져본들 별다른 희망은 없다.

‘도심 속 막장’으로 변해버린 택시는 ‘3D 업종’, ‘낙오자’로 분류된다. 그래서 동창회나 가족모임에 가도 ‘왜 힘들게 택시를 하냐’는 핀잔을 듣는다. 고려운수의 이범수(43) 기사는 “명절에는 일부러 쉬지 않고 일하러 나와요. 친척들이며 마누라가 잔소리하는 것도 듣기 싫고. 명절에 서울 시내에 무슨 손님이 있겠어? 그래도 일하러 나오는 게 마음은 편하니까”라며 한숨 쉰다.

또 작은 사업을 했었다는 한 모(49) 기사는 “동창회에 가도 택시 한다고 하면 보는 시선이 곱지도 않고 술 한 잔 하려고 해도 양주에 비싼 안주 놓고 먹는 자리가 편하지도 않고…” 라며 “예전이랑 다르게 친구들에게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사는 것도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고 털어놓는다.

주위 사람들만 택시노동자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 많게는 40명 넘게 승객을 만나는 택시노동자들에게 ‘별별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이제 새롭지 않은 일. 택시비 떼먹고 도망가는 사람, 차 안에서 노골적인 애정행각을 벌이는 사람들, 타서부터 내릴 때까지 거친 욕으로 도배하는 사람 등 셀 수도 없다.

별난 사람들이 아니어도 하루 12시간을 좁은 운전석에 앉아 일하느라 늘 피곤에 절어 있다보면 승객들의 작은 행동 하나에 울고 웃는다. 근본적으로 구조 자체가 다른 외국택시 운운하는 사람이 얄밉고, 휴대폰 빌려 쓰고도 당연한 것인양 의기양양한 사람이 짜증난다. 또 수고하시라고 인사하는 승객이 고맙고, 거스름돈 100원에 담긴 마음이 고맙다.

오늘도 뛰뛰빵빵! 택시는 달린다

매달 가불해가며 몰고 다니는 택시지만, 매달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 택시지만 꿈을 싣고 달린다. 언젠가는 택시도 공영제가 돼 운전자도 승객도 편안하게 달릴 수 있게 되는 꿈, 열심히 일한 만큼 달콤한 열매를 맺는 꿈, 가족들과 여유 있게 둘러앉아 고기 굽는 꿈. 고려운수의 이춘숙 씨는 택시의 매력을 이렇게 얘기한다. “일단 길을 나서면 내 뜻대로 지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소위 로드맵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만한 매력은 없죠.” 누군가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일이란 때로 가슴 벅찬 일이란다. 오늘도 택시는 전국 구석구석을 달린다. 그들의 택시가 택시노동자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끌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교통가족이라고 불리는 부부 택시기사의 생활은 숨바꼭질 그 자체다. 같은 택시를 부부가 교대하며 운전을 하다보니 교대하는 시간 외에는 마주앉아 밥 한번 먹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 어떻게 택시운전을 시작했는지? 남편이 80년대에 택시운전하면서 노조 활동을 했었다.

시절이 엄혹해서 남편이 조합 활동 때문에 형무소에 갔다. 도대체 뭐 때문에 집에서 말리는 데도 기어코 조합 활동 하다 형무소까지 갔는지가 궁금해서 운전대를 잡았다. 택시운전을 해보니 알겠더라. 그냥 당하고 있기에는 정말 대우가 너무 형편없더라.

부부가 맞교대를 하면 가족끼리 모이기도 어려울텐데. 일요일에나 부부가 함께 할 시간이 있다. 식구들의 생활패턴이 다 달라서 때로 하루에 상을 여섯 번씩 차릴 때도 있다. 좀 편찮으신 시어머니를 모셔야하는 것 때문에 교대시간에 차고지에 잠시 들렀다가 집으로 가 남편과 교대한다. 사실상 집이 차고지인 셈이다.

다같이 둘러앉아 편하게 밥 한번 먹는 것이 이젠 희망사항조차 못 된다. 택시운전 하면서 꿈이 있다면. 택시기사이면서 주부이기도 하다보니 느끼는 게 많다. 이제는 더 이상 택시문제가 택시노동자의 문제로 국한되지는 않는 것 같다. 택시노동자들이 결국 교육이며 주거문제까지 위협받으면서 빈민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결국 정부가 이런 문제를 연결지어 봐줘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택시 제도가 자리 잡히는 게 결국 우리가 사는 길이고 소망이다. ‘난폭운전에 불친절 택시’의 오명을 벗는 일도 결국 같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