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 기반해 ‘내일’을 보자
‘지금’에 기반해 ‘내일’을 보자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6.08.1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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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셈법만 고수하면 결국 파탄… 제대로 된 ‘사회적’ 대화 시작해야
[커버스토리]⑤ 위기의 해법은 ‘우리’가 갖고 있다

앞에서 노동의 위기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대응을 살펴봤다.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대립’이 우선 눈에 띈다. 노와 사와 정의 행동에서 각자의 셈법은 읽어낼 수 있지만 산업과 경제, 그리고 노동에 대한 고민을 찾기는 어렵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누가 이기든 ‘우리’는 지는 싸움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직전이다. 노사 양쪽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길을 모색해본다.

정부가 앞장서 분란 일으킨다

우선 현재 노동계가 내세운 명분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보자. 금속노조는 이번 하투의 명분으로 재벌개혁을 앞세우고 있다. 공공기관과 금융권 노동조합들은 당장 목전에 닥친 성과연봉제 및 퇴출제 저지를 내세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학 교수는 “재벌개혁을 해야 하는 건 맞다”면서도 “그런데 금속노조가 이야기하는 게 몇몇 재벌을 타깃으로 정해 돈 내놓으라는 것 이상의 내용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재벌이 돈을 내놓으면 뭘 할 거냐”는 거다.

이 교수는 ‘재벌개혁’이라는 슬로건을 내건다고 국민의 공감을 얻는 건 아니라면서, “지금까지 재벌 중심으로 구축돼 온 패러다임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강화하고 신수종사업에서 창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산업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재벌개혁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현재 노동계에서 내건 재벌개혁이라는 슬로건에는 그런 산업생태계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지 않아 한 번 소나기가 내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는 더 나아가 “현재의 노조운동은 대기업과 공기업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중의 기득권’ 아니냐”며 “재벌개혁을 이야기하면서 자기들도 기득권을 내려놓을 각오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재벌을 혼내면 그 재벌기업의 노조한테 떨어지는 떡고물을 챙기려고 한다는 느낌밖에 안 든다”고 직격탄을 날린다.

노동계가 내걸고 있는 또 다른 명분인 ‘성과연봉제 저지’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투쟁에 나선 한 노조의 분쟁과 관련해 조정을 위해 공익위원으로 중앙노동위원회에 참석했다는 이 교수는 “물론 사측이 정부에서 제시한 내용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따라오라고 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라면서도 “노조도 자기들 기득권, 정규직 노조원들의 기득권은 양보 못하겠다고 하는 걸 보니 별로 진정성이 안 보이더라”고 이야기한다.

요컨대 정부의 등 뒤에 숨는 사측의 태도는 분명 잘못됐지만, 그런 사측의 태도에 저항하는 노조 역시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그런 자세는 안 보이고 무조건 자기들이 가진 기득권만 지키겠다고 하는 건 국민들로부터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동계가 제시한 명분을 옹호하는 주장도 들을 수 있다. 워크인조직연구소 이문호 소장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는 우리 사회가 이뤄야 할 과제이고, 성과연봉제는 해고를 편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니 노동계가 그걸 막는 것은 당연하다”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그걸 실현할 수 있느냐는 건데, 실현하기 어렵다고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으니 파업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끼면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더 큰 문제는 정부에 있다. 이문호 소장은 “정부가 실효성도 없는데 분란만 일으키는 제도를 자꾸 만드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더구나 “절차도 무시한 채 밀어붙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성과연봉제 도입을)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이걸 저지하는 운동을 하는 게 맞고, 다른 집단이 여기에 동조하는 게 옳다”고 이야기한다.

앞의 대학교수 역시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해야 하는 규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는 터무니없이 약하게 하고, 재벌이 요구하는 ‘노동개혁’은 거시정책이든 재정정책이든 또는 세금을 통해서든 계속 지원해준다”면서 “그러니 정부가 노력은 계속 하는 ‘척’ 하는데 실효성이 없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위기지만 내 것 내놓을 순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현재 눈앞에 닥친 산업의 위기, 노동의 위기를 극복하고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각 경제주체들의 태도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대로 노와 사와 정 각 당사자들은 현재의 위기상황에서 모두 자기만의 셈법을 고수하고 있다. 기득권을 지닌 소수의 정규직 노조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열중할 뿐 정작 보호받아야 할 비정규직들이 잘려나갈 때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말로는 비정규직 보호를 앞세우지만 오히려 비정규직을 자신의 고용을 지키는 안전판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영계에게는 현재의 위기가 오히려 호재인지도 모른다. 당장 이윤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이번 위기를 기회로 그동안 사사건건 문제제기를 하던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을 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가 직접 나서서 노동계를 때려주니, 경영계로선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정부 뒤에 숨어있기만 해도 되는 것이다.

정부는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노동계를 겁박하고 있다. 조선업 노조들이 파업에 나섰다고 해서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하는 데에서는 치졸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모색해도 모자랄 판에 편을 갈라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위기 극복방안이 나올 리 만무하다. 정말 필요한 것은 말 그대로 ‘사회적’ 대화다. 그동안 노사정위원회에 대표자 몇 명 불러 앉혀놓고 미리 준비된 합의문에 시간을 정해 서명만 하라고 강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사회적 대화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대화가 가능한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다.

그러나 대화하지 않고 어떻게 문제를 풀 수 있겠는가? 파업을 하더라도 그 마무리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만 보더라도,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다못해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구조조정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그 매뉴얼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개별 사업장에서 만들기 어려운 내용이니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정부가 나서서 대화의 자리를 만들고, 서로 양보할 부분은 양보하고 타협할 부분은 타협하면서 대안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