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 제도 강요로 공공기관 자율성은 심각하게 훼손
획일적 제도 강요로 공공기관 자율성은 심각하게 훼손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6.08.1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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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정회권 한국도로공사현장직노조 위원장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되면서 정부는 공공부문이 정규직화를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규직들과 비교해 처우는 그대로 둔 채 ‘기간의 제한이 없는’ 근로계약만을 내세웠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에, 이른바 ‘중규직’이란 표현처럼 생뚱맞은 계층을 만들어냈다. 지난 2007년 한국도로공사에서 이런 공공기관 ‘중규직’들을 가입 대상으로 하는 최초의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정회권 한국도로공사현장직노조 위원장은 설립 당시부터 노동조합을 지키고 있다.

▲ ⓒ 한국도로공사 현장직노동조합

4선 임기를 시작하면서 공공기관에서 보기 드문 다선 위원장이 되었다. 선거 과정은 어땠나?

단독출마였지만 빡세게 치렀다(웃음). 선거운동 기간이 2주이고, 전체 선거구가 70곳이다. 조합원이 3명 미만 근무하는 사업단이나 격오지를 제외하고 50개 선거구를 모두 방문했다. 5천 킬로미터 정도 달리는 동선이다. 주말을 제외하면 사실상 열흘 동안 돈 건데, 하루 최소 다섯 군데는 다닌 거다.

두 번째 임기 때를 제외하곤 다 경선을 치렀다. 단독 출마를 했지만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조합원들이 좋게 봐준 것 같다.

이번 선거에서 경쟁 출마자가 나서지 않았던 것은 몇 가지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임기 때 이룬 성과가 혁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정규직들과 급여, 복지, 제도 부문에 있어서 완전 일치를 이뤄냈다. 통상임금 소송도 1, 2차에 걸쳐 승소해 조합원들이 돌려받았다. 또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승진 역시 시작됐다. 또 한 가지 요인은 성과연봉제 투쟁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좀 더 냉정하게, 조합원의 시선에서 한번 바라보자면, 먹고 살기도 바쁘고 여러 가지 신경 쓸 구석이 많은 거다. 지금 국토부에서 경력직 공무원을 뽑고 있다. 조합원들도 벌써 20여 명이 공무원이 되었다. 또 지난 임기 동안에 현장에서 직무를 바꿀 수 있도록 직종전환 제도도 들여왔다. 그러다보니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현장에서 자신들의 근무평가나 상훈, 인사고과 같은 것을 관리하고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현장의 인력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 3년 간 신입 직원도 계속 채용하고 있다. 140여 명 정도. 내부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고졸 공채와의 역차별 문제이다. 정작 무기계약직인 실무직에는 대졸 신입인력이 들어오는데, 공공기관 고졸 채용 할당 때문에 8급으로 고졸 신입이 들어오고 있다. 공공기관부터 차별을 없애자며 도입한 제도가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낸다.

정부가 공공기관에 획일적으로 제도 도입을 강요하는 것에는 여러 문제가 많다. 이를테면 시간선택제 일자리만 해도 그렇다. 지금 현재 일하고 있는 이들 중에서 일에 너무 지쳤다든지, 가정에 일이 있다든지, 개인적인 이유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가져가야 하는 상황이 있으면 시간선택제 근로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게 본래의 취지와 맞는 제도일 것이다.

근데 실상은 어떤가?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따로 채용하고 있다. 전체 신입 인력의 20% 가량이 시간선택제이다. 고용률만 높이기 위해, 숫자놀음을 위해 만든 제도이다. 현장에서 시간선택제로 적합한 직무도 없다. 오히려 부족한 임금을 벌충하기 위해 시간선택제는 투잡, 쓰리잡을 해야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무늬만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을 만들어냈던 과거의 모습과 비슷한 거 같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이번 정권 들어 매년 투쟁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이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지금 진행 중인 투쟁은 어떻게 생각하나?

결국 문제는 정부가 공공기관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와 낙하산 인사를 통해서. 정부는 공공기관의 복지축소를 가져왔던 이른바 ‘방만경영 퇴출’,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 퇴출제 등을 노동조합이나 구성원들의 의사는 개의치 않고 그냥 막 끌고 들어온다.

전체 공공기관으로 확대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각 기관을 목을 맬 수밖에 없다. 평가 등급 하락으로 인한 임금 손실, 경상경비 축소, 기관장 해임 건의까지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노동조합 역시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투쟁이 쉬운 상황이 아니다.

시기별로 보자면, 우선 복지 축소를 막기 위한 투쟁에서는 직접적인 임금 손실과는 무관했기 때문에, 일부 기관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투쟁의 대오가 하나둘씩 이탈로 인해 무너졌다. 그 이후 임금피크제 저지 투쟁에서는 과거의 그런 기억들이 원죄처럼 자리하는 거다. 의심이 들기도 하고. 작년에 그렇게 뒤통수를 쳤는데, 올해에는 뭘 믿고? 이런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그리고 사실 임금피크제 역시 조합원들에게 피부로 크게 와 닿는 사안이 아니었다. 특히 비교적 조합원들이 젊은 기관에서는 더더욱. 노동조합이 치열하게 나서기엔 조합원들 세대 간 갈등을 오히려 만들 우려도 있었다.

성과연봉제 투쟁은 진행형이다. 각 기관의 정부의 지시 하에 불법적으로 이사회를 열어서 제도 도입을 강행했고, 120개 기관이 모두 도입이 완료되었다며 청와대에 보고되었다.

내 생각에는 이런 과정, 절차가 문제라고 본다. 각 기관의 사정이나 실정에 맞게, 노사가 합리적이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고민해서 제도를 들여오기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이 무시된 거다.

성과연봉제 투쟁은 과거와는 달리 조합원들이 체감하는 정도가 다른 거 같다. 다만 우려스런 점은, 원래 그러라고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거겠지만, 조합원들이 은연중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옆에 있는 동료, ‘너만 제끼면 된다’고 생각하며. 캠핑을 하다가 곰을 마주쳤는데, 옆 사람보다 빨리 달리면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미 신발끈을 고쳐 묶는 이들도 분명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