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살린 심폐소생술, ‘5분의 기적
승객 살린 심폐소생술, ‘5분의 기적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8.17 10:22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소 몸으로 익힌 안전교육이 빛 발해
[사람] 북부운수㈜ 272번 버스기사 박명규 씨
▲ 북부운수㈜ 272번 버스기사 박명규 씨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지난 1일 이른 아침, 도로를 달리던 시내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차량의 바닥에는 한 남성이 의식을 잃고 늘어져 있고, 주위의 승객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운전대를 잡은 버스기사가 쓰러진 남성에게 다가가 숨을 쉬는지 확인하더니 이내 가슴압박을 시작한다.
곧이어 구급대원이 출동해 남성을 병원으로 후송했고, 이 남성은 4일 뒤 의식을 회복했다. 당시의 상황을 담은 CCTV 영상 일부가 공개됐고, 이를 본 시민들은 버스기사의 신속한 대처에 박수를 보냈다.
영상 속 버스기사는 북부운수㈜ 소속의 박명규(51) 씨다. 그는 평소 정기적으로 받았던 안전교육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언제라도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강조하면서,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을 잘 알려달라고 여러 번 당부했다.

272번 버스, 긴박했던 5분

박명규 씨가 버스운전을 업으로 삼은 지는 7년이 조금 넘었다. 북부운수에서 272번 버스를 운행한 지는 2년 반 정도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서 서대문구 남가좌동까지 이어지는 길은 그에게 익숙하다. 오전 5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각, 박 씨는 아침 일찍 첫 운행을 나섰다.

차고지를 출발한 그의 버스는 여느 때처럼 첫 정류장에서 승객을 태우고 도로를 달렸다. 예닐곱 정류장쯤 지났을까. 오전 5시 43분경 버스가 사가정역에 다다를 무렵 한 남성 승객이 달리는 버스의 관성에 맥없이 쓰러졌다.

▲ 사고 당시 CCTV영상 갈무리 ⓒ 서울시

“옆에 있던 다른 승객한테 술 먹었나 확인 좀 해달라고 했어요. 그 분이 일어나서 냄새를 맡아보니까 술 냄새는 안 났던 거죠. 그러다가 ‘기사님, 숨을 안 쉬는 것 같아요’ 하더라고요. 면목초등학교 앞에 차를 세워서 가 봤더니 바지가 소변으로 젖어있고, 입술이랑 얼굴이 새카매져서 호흡이 없었어요. 일단 급하니까 옆에 있던 승객한테 도움을 받아서 바닥에 눕혀가지고 심폐소생술을 했었죠.”

박명규 씨가 가슴압박과 인공호흡을 세 번 가량 반복하자 쓰러진 남성이 딸꾹질하듯 ‘꺽’ 하고 소리를 냈다. 반응은 있었지만 호흡이 돌아오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박 씨는 119 구급대원과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며 심폐소생술을 이어갔다. 그러자 남성이 보였던 반응의 간격은 점차 줄었고, 그 사이 119 구급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상황이 수습되고 박 씨는 이날 운행을 무사히 마쳤지만 자신이 심폐소생술을 했던 그 남성이 의식을 회복했는지, 행여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걱정됐다.

“그 일을 겪고 나서 한 4일인가 지났는데 병원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거예요. 그 승객이 어떻게 됐는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잖아요. 그래서 병원에 전화를 해서 어떻게 됐냐고 하니까 아직 의식이 없어서 중환자실에 있대요. 만약을 대비해서 가족들도 다 불러놓은 상황이고요. 그래서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 날 구급대원한테서 전화가 왔죠. 환자가 일어나서 일반병실로 이동했다고 하더라고요.”

심폐소생술 중요성 알리기 위해 인터뷰 결심

명규 씨는 처음 이번 일이 알려지거나 자신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기를 원했다.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고 다른 버스기사들도 그 상황에서는 똑같이 했을 거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자신에게 심폐소생술을 받았던 승객이 닷새 만에 의식을 찾았다는 소식을 접한 후 언론의 취재요청을 받아들였다. 재빠른 심폐소생술로 사람이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버스에 승객 몇 명이 더 있었는데 누가 인공호흡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니까 자기들은 할 줄 모른다고 해요. 그 사람들을 누가 탓하겠어요? 괜히 나섰다가 독박 쓸까봐 걱정되니까 안 하는 거잖아요. 저도 똑같았어요. 단지 정기적으로 소방서에서 안전교육을 받았으니까 그 사람들보다는 심폐소생술에 대해 조금 더 인지가 돼있던 거죠.”

그가 속한 북부운수에서는 지역 소방서와 연계해 정기적으로 안전교육이 열린다. 소방서에서 구급대원들이 회사로 장비를 가지고 나와 직접 교육과 실습을 진행했다. 회사도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에 안전교육은 두세 달에 한 번 꼴로 진행됐다. 회사의 최윤준 대표이사가 중랑구 의용소방대장을 20년 가까이 겸했던 점도 실질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데 한몫했다.

“우리 회사 노선 특성상 노인 분들이 많이 타세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만약에 연로하신 가족이 내 차에 타셨다고 해봐요. 기사의 조치에 의해서 내 가족이 죽고 살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얼마나 중요하겠어요?”

명규 씨에게 버스운전은 어디까지나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자신의 손에 수백 명 시민의 안전이 달려있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적어도 심폐소생술 만큼은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안전사고가 빈발하는 지금, 박 씨의 사례를 단순한 미담으로만 남길 수는 없을 듯하다.

<그래서 알려주는 팁>

심폐소생술, 어떻게 하나?

심폐소생술(CPR)이란 심장이 멎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시행하는 일련의 생명 구조 행위를 말한다. 심장마비가 일어난 후 약 5분이 지나면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뇌가 심각하게 손상되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심폐소생술은 환자의 호흡과 혈액순환을 보조해 줌으로써 생존율을 2~3배 가량 높일 수 있는 응급조치이다.

질병관리본부가 내놓은 ‘2015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기본소생술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중앙응급의료센터나 질병관리본부, 심폐소생술협회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그림과 함께 더 상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