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 킬로미터 넘게 달린 택시, 더 타도 괜찮을까…
50만 킬로미터 넘게 달린 택시, 더 타도 괜찮을까…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8.1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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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시행령 개정, 택시 차령 연장 길 열려
[사건] 늘어나는 택시 차량 연한

중형택시의 차량 연한(차령)을 기존 6년(개인택시 9년)에서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최장 8년까지로 연장하는 안을 골자로 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이 지난 6월 30일 공포됐다. 이에 택시 노동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노총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이하 ‘전택노련’)과 민주노총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이하 ‘민택노조’)은 지난 6월 3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총력투쟁 선포식’을 시작으로 대정부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문제없다”는 입장이어서 한동안 택시 노동단체와의 갈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참여와혁신 포토DB

노동계·시민단체, “노동자·시민 안전 위협” 한 목소리

국토교통부는 6월 30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차령제한 완화를 ‘차령제한 합리화’라고 표현했다. “택시 운행거리가 지역별로 크게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비합리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현재 가장 많이 이용되는 배기량 2,400cc 미만 중형택시의 경우 기존 차령은 4년(개인택시는 7년)으로 제한돼 있었다. 자동차정기검사에 합격한 경우 최대 2년까지 더 사용할 수 있어 사실상 택시 차령은 최대 6년(개인택시는 9년)이었던 셈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인해 택시의 사업구역을 관할하는 기초(‘구’ 제외) 및 광역자치단체 조례로 차령을 최대 2년을 더 늘릴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 재량으로 법인택시는 8년(4+2+2년), 개인택시는 11년(7+2+2년)까지 사용 가능하다.

택시 노동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택노련과 민택노조 조합원 300여 명은 지난 6월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택시 차령 연장 음모 국토교통부 규탄 및 총력투쟁 선포식’을 열고 대정부 투쟁을 결의했다. 이들은 “택시회사 중형택시의 차령을 최대 8년으로 늘리겠다는 발상은 운전자와 승객의 안전은 도외시한 채 시민 생명을 담보로 사업주 이익만 챙기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택시 노동계는 7월부터 매주 청와대, 정부서울청사 및 세종청사, 국회 등지에서 ‘게릴라 1인 시위’를 시작으로, 8월 말 ‘고물택시 상경집회’, 9월 국회 공청회 및 ‘택시노동자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 등을 벌일 예정이다.

교통 관련 시민단체도 반대하는 분위기다. 개정 시행령 공포에 앞서 ‘녹색교통운동’은 성명을 통해 “노후화된 택시 운행은 잠재적 사고위험 및 환경오염을 높이고, 관리 비용 증가와 택시 서비스 질의 저하를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택시 차령 완화의 책임을 지자체로 떠넘김으로써 지자체는 법인택시 및 개인택시 사업자들의 차령 완화 요구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운송사업자·정부 관계부처 “안전상 문제없다”

택시운송사업자들은 이번 시행령 개정을 반기는 모양새다. 사업자들은 이전부터 대도시와 중소도시, 군 지역의 사정이 서로 다른데도 택시 차령을 일괄 규제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해 왔다.

김종원 전남택시운송사업조합 이사장은 지난 3월 한 언론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서울 등 대도시 지역은 배회영업이 주를 이루고 심야시간 유동인구가 많아 하루 24시간 교대영업으로 인해 주행거리가 길다”고 말했다. 반면 “지방 소도시와 군 지역은 일정한 구역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콜이 있을 경우 운행하는 경우가 많고, 심야시간 유동인구가 극히 적어 그 시간대 운행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동차의 수명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주행거리가 지역별로 크게 차이난다는 얘기다.

아울러 김 이사장은 “사용연한만을 기준으로 한 차령제도로 인해 지방에서는 충분히 운행이 가능한 차량을 강제로 폐차하고 신규 차량을 도입하는 데 큰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며 “지방의 택시업체에는 심각한 경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우려에 대해서는 “자동차의 내구성과 성능이 과거에 비해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택시 차량에 대한 정비·점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국토부의 입장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토부는 “주행 여건 차이 등이 현저한 경우 지자체가 조례로 현행 차령을 축소·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또 차량 등록 2년이 지난 후 매년 정기검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안전상 문제도 없다고 설명했다.

정말로 괜찮을까

결국 쟁점은 택시의 차령제한 완화가 택시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에 위협이 될지 여부다. 우선 택시의 연간 주행거리를 살펴보면 지역별로 차이를 보이는 점은 사실이다. 이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2014년 4월 내놓은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서울의 연간 주행거리는 12만 9,792km로 추산됐다. 인천과 경기가 12만 9,480km로 뒤를 이었으며, 대구가 7만 9,248km로 가장 짧았다. 이를 6년 동안 총 주행거리로 따지면 연간 주행거리가 가장 긴 서울의 경우 약 78만여km를, 연간 주행거리가 가장 짧은 대구의 경우 약 48만여km를 주행하는 셈이다.

결국 지역별 주행거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택시의 차령과 교통사고 위험성 사이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한국교통연구원은 2012년 ‘여객자동차 차령제도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기술 발전 등 차량성능 개선에 따라 차량 자체 요인으로 인한 사고는 크지 않으므로 차령과 교통사고와의 상관성은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사업용 자동차의 차량적 요인에 의한 사고 발생 건수가 2005년 2,141건에서 2011년 458건으로 줄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반대의 결과도 있어 택시 차령과 교통사고 위험성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논란이 있을 전망이다. 지난 2010년 부산시의회의 부산시 교통국 행정사무감사 당시, 차령을 연장한 택시 10대 중 8대가 차령 연장 후 교통사고를 경험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택시 차령제한 완화를 바라보는 현장의 반응은 어떨까. 택시노동자들은 차량 노후 정도에 따라 운행에 지장을 준다는 반응이다. 택시운전 7년차인 서울의 한 법인택시 운전기사는 “아무래도 차가 출고된 지 3~4년이 되면 반응속도가 느려져서 신경을 더 쓰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의 또 다른 법인택시 운전기사는 “택시(운전) 시작한지 3년쯤 됐는데 신입 기사들한테는 낡은 차를 배차한다”면서 “(차가 낡으니까)문제가 많이 생기는데 회사에다 정비 좀 신경 써 달라고 해도 별반 달라지는 게 없어서 불안해도 대충 타고 다닌다”고 말했다.

현장의 이 같은 반응은 전택노련의 2012년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이에 따르면, 군 지역을 제외한 전국의 택시노동자 2,381명 중 약 84%는 차령이 4년이 넘어서면 운행에 지장을 느낀다고 답했다. 운송사업자 및 정부 부처, 그리고 현장 노동자들의 노후차량에 대한 불안에는 제법 큰 간극이 있는 것이다.

▲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공은 지자체로… 차령제도 개선 어떻게?

물론 택시 차령제한 완화 움직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73년 사업용 자동차의 차령제도가 최초로 도입된 이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운송사업자들로부터 꾸준히 나왔다. 특히 1997년 12월, 정부는 규제완화 차원에서 차령제한제도를 폐지키로 하였으나 노후차량 증가와 잇따른 사고 발생으로 2001년부터는 차령제한제도 유지로 방향을 선회했다.

국회에서도 차령제한 완화 움직임이 있었다. 2013년 11월 주승용 당시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은 농어촌 택시의 경영난 해소를 목적으로 지역별 여건에 맞게 차령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역별 운행여건을 고려해 해당 지자체장이 차령을 정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지만, “객관적인 기준 없이 지역별로 기준을 달라지게 하여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해당 법안의 발의된 지 2년 반 만에 차령제한 완화는 시행령으로 돌아왔다. 노동계가 반발하자 국토부는 “각 지자체 조례로 차령을 축소 또는 연장할 수 있지만 연장의 경우 최대 2년으로 제한했으며, ‘차령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현저히 불합리한 경우’로 요건을 명시했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막상 지자체 조례로 차령 연장이 이루어지면 정부 차원에서 이를 제재할 마땅한 수단이 지금으로서는 없는 게 사실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해, 과거 지자체 선거 때마다 민원성 택시면허 발급이 이루어져 지금의 만성적 공급과잉 상태를 낳은 경험 때문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택시 차령제한을 놓고 운송사업자와 노동계 사이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동안 여러 방안이 제시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차령제한은 다소 완화하되 주행거리제한을 혼합해 적용하는 방식을 내놓기도 했다. 지역별로 연간 주행거리가 다르다는 사실이 문제라면 차량 교체주기에 관한 당국의 규제 역시 주행거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토부가 시행령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노사 양측의 의견을 두루 검토했는지, 전문가들과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했는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