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취급은 그만! 진짜 직원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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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연지 기자
  • 승인 2016.08.1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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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비학생조교’ 69명 해고 우려
[사건] 서울대 비정규직 조교 이슈

따가운 햇살과 약간의 빗줄기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있다. 이들은 본인을 서울대학교 조교들이라고 소개하면서 벌써 일주일째 점심시간이 되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피켓팅과 선전전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날 100여명의 조교들은 ‘비학생조교 고용안정’, ‘정규직 전환’, ‘초과수당’ 등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왜 점심을 거르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외치고 있는 걸까.

고등고육법 vs 기간제법

서울대학교에는 총 364명의 조교 중 학업을 병행하며 교수 연구업무를 보조하는 ‘학생조교’가 111명, 학업을 병행하지 않고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비학생조교’가 253명(69.5%) 있다. ‘비학생조교’인 이들은 “학교는 우리를 고등교육법에 명시된 조교로 한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학업을 병행하지 않고, 정규직 직원들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때문에 고등교육법이 아닌 기간제법에 해당하는 근로자로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에 따르면 2년 이상 근무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하도록 규정하지만, 조교는 예외 조항인 ‘고등교육법 14조’에 해당한다. 그러나 ‘조교’에 대해 법원 및 고용노동부는 ‘학업을 병행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고, 서울대학교 조교인사규정에서는 ‘교육·연구 및 학사에 관한 사무를 보조하는 사람’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학교지부는 “조교는 학업을 병행하며 연구를 보조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 비학생조교들은 학업을 병행하지 않고, 행정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때문에 고등교육법에 명시된 조교가 아닌 기간제법에 해당하는 근로자로 보는 게 타당하다. 불려지는 이름만 조교지 실제 조교가 아닌 셈”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조교 인사규정에 따르면 교육·학사업무를 지원하는 조교는 계약직으로 기본 계약기간은 1년이다. 시행지침에 따르면 4회 재임용을 포함하여 통산 임용기간을 5년, 실험·실습업무를 지원하는 조교의 경우 7년 근무 가능하게 하고 있다.

조교 A씨는 이번년도 조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선 이유를 설명하며 “서울대학교 법인화 전후의 규정이 동일했고, 법인화가 이뤄진 2012년 3월을 기준으로 기간을 다시 시작했기에 초반에는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전과 같이 단서규정이 있어 통상 임용기간(5,7년)이 지나도 사유서를 쓰거나 규정에 맞춰 내부 회의자료를 제출해서 임용기간을 연장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계속 고용의 기대감을 안고 있었는데, 나를 포함해 올해 1년 남은 사람들에게 ‘임용기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공문을 보내면서 압박을 했다.

그걸 보면서 학교가 예전처럼 고용을 계속 하지 않을 작정”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휴먼의 류하경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조교의 법적지위 및 고용관계에 대해 “이들의 업무를 보면 고등교육법상 ‘조교’로 해석하기 어렵고 기간제법이 적용되는 기간제근로자”라며 “기간제법에서 2년을 초과해 사용할 경우 무기근로자로 간주하고 있고, 서울대 비학생조교 역시 2년 초과한 시점부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라고 밝혔다. 또한, 이들이 2년이 초과한 근로자에 대해 단순히 근로계약기간(임용기간)의 만료라는 이유만으로 해고할 수 없으며, 같은 이유로 해고된 경우 해당 해고는 무효가 된다고 밝혔다.

서울대, 세계는 품어도 비정규직은 못 품겠니

서울대학교는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교직원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고, 7월 초부터 감사원으로부터 감사를 받고 있다. 감사원은 서울대학교의 비정규직 고용 실태 전반과 조교 편법 고용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와 동시에 여태 ‘조교’라는 이유로 비정규직 통계에도 잡히지 않았던 ‘비학생조교’들이 해고위기에 몰렸다.

비정규직 문제로 감사원 감사까지 더해지자 조교 인사규정 개정(안)을 내놓은 것이다. 서울대학교는 7월 12일 각 기관의 의견조회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주요내용이 새로 임용되는 조교에 대해 1회에 한해 계약갱신이 가능하게 함으로서 통산 임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현재 근무하고 있는 조교들의 임용기간을 통산 5년(실습 7년)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서울대학교지부는 “조교 인사 규정 개정(안)은 기간제법 위반 논란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그동안 비학생조교를 편법으로 운영한 것을 시인하는 꼴”이라며 서울대의 이런 처사에 반발했다.

조교 B씨는 “서울대는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비율이 75%가량이고, 인력관리가 한 부서에서 총괄로 이뤄지지 않고 각 기관별로 떠넘기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계약직 근로자를 부려먹고, 근로조건을 명시하지 않으면서 각 기관들은 그것을 악용한다. 학교에는 자체직원, 조교, 연구원, 연구보조, 기기관리원, 용역 등 하고 있는 직원들이 많지만 직원대접 못 받는 사람 역시 많다. 조교들이 최저시급 거의 웃도는 연봉을 받는데 거기에 초과근무, 휴가비, 식비, 자녀학비보조까지 다 들어간다면서 초과수당을 주지 않는다. 재임용시즌만 돌아오면 그 어떤 과중한 업무를 맡겨도 웃으면서 한다고 한다”고 조교들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학교에서 발간하는 통계연보를 언급하며 “통계정보를 근간으로 학교의 정책이 효율적으로 추진되는지 확인 할 수 있는 자료인데, 서울대 78개 연구소 중 직원이 근무하는 곳은 15개라고 한다. 나머지 연구소는 어떻게 운영되나 싶다. 실제로 총장이 있는 법대 법학연구소에도 직원이 없는 것으로 표시된다. 그러나 전화하면 전화 받고 일하고 있다. 각 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 유령 취급받으면서 일하는데, 이제라도 처우개선하고 고용안정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학교지부는 2012년 3월부터 통산 임용기간이 만료된 조교들의 재임용을 하지 않을 경우 128명의 조합원 대상으로 2017년 해고자는 69명에 이르고, 비학생조교 전체 253명 중 100여명의 조교들이 대거 실업자가 될 상황이라며 조사한 내용을 밝혔다.

한편, 재임용(재계약)을 위한 ‘조교 근무 평가서’에 근무담당 사무 및 성과내용을 허위로 기재했다는 논란도 한창이다. 이들은 정규직 직원과 동일하게 교무(교원인사, 교원복무, 대학 및 대학원 입시), 서무(법인회계, 연구비회계, 발전기금회계, 시설, 보안), 학사(논문, 학적, 수업), 학생(장학, 복지, 행사, 학생상담센터), 연구(연구과제관리, 연구활동지원사업), 대외협력(외국인 교수 및 학생지원, 번역, 의전), 홍보, 정보화서비스(홈페이지) 등 각 기관에 소속되어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조교들은 학교가 수많은 업무 중 서울대 조교 인사 규정에 명시된 교육·연구 및 학사에 관한 사무 보조 업무 이외에 기재하지 못하게 공문으로 강제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서울대 관계자는 “조교개정안에 대해서는 전후관계가 다르다. 애초에 장기적으로 진행을 했던 부분이고 시기가 맞물린 것이고 감사 때문에 개정안을 발표한 것은 아니”라며 조교들이 재임용 관련 업무를 허위로 작성하게 했다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 조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까지 어떻게 관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비학생조교들의 기간제근로자로 인정에 대해서는 학교의 내부 계획·진행상황이라 밝힐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