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평화 없는 평화박물관’ 만들었나
무엇이 ‘평화 없는 평화박물관’ 만들었나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8.1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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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커진 시민사회, 합리적 운영·노사관계 고민해야
[사건] 평화박물관과 시민사회 노동문제

‘평화박물관 건립추진회원회’(이하 ‘평화박물관’)가 내홍을 겪고 있다. CMS 회비 증발 여부를 놓고 시작된 당사자들의 진실공방은 노동관계법 분쟁으로 이어진 상태다.
현재 드러난 사건의 당사자들은 이해동 이사장(목사)과 한홍구 이사(성공회대 교수), 그리고 석미화 전 사무처장과 최성준 전 총무다. 사건을 다룬 몇몇 언론에서는 한 이사와 사무처를 갈등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한다. 한쪽에서는 석 전 처장이 후원회원 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 이사가 단체를 사유화했다고 주장한다. 언론의 보도는 사건의 전말과 서로 배치되는 주장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않거나, 어느 한쪽에 유독 비판적이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걸로 보인다. 그러나 평화박물관 사태는 기업, 정부에 이어 제3의 영역으로 성장한 시민사회에 고민거리로 다가온다. 활동가들은 노동자인가? 시민사회단체에서의 노사관계란 무엇인가?

▲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평화박물관에서 일어난 불화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는 지난 2003년 “전쟁과 폭력의 고통을 기억하며, 생명·인권·평화의 가치와 철학을 확산”시키기 위한 박물관 건립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베트남 전쟁 당시 파월 한국군의 현지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죄운동으로 시작해 소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징용된 문명금, 김옥주 할머니의 성금으로 싹을 틔웠다. 지금은 잠정 폐쇄됐지만, ‘스페이스99’라는 소박한 전시공간도 마련해 전시와 교육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이곳에서 때 아닌 공방전이 벌어졌다. 전쟁과 폭력에 대항해 인권과 평화를 기치로 내건 곳이었기에 시민사회에 몸담고 있는 많은 이들이 의아해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활동가들에게 평화박물관 사태에 대해 묻자 “거기 지금 어떻게 되고 있어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오고는 했다.

문제가 불거진 때는 지난 5월 10일 평화박물관 사무처 명의로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올라온 ‘평화박물관 한홍구 이사의 전횡과 시민단체 사유화에 대한 사무처 입장’이다. 이들은 한홍구 이사가 평화박물관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면서 독단적으로 움직였다고 주장했다. 또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사업(반헌법사업)을 추진하면서 한 이사가 평화박물관 조직을 축소했고, 그 과정에서 사무처와 갈등을 빚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CMS 후원회원 관리 부실을 문제 삼아 석미화 당시 사무처장을 보직해임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사무처는 새롭게 구성된 상태다.

한홍구 이사 측은 옛 사무처의 주장을 일체 부인했다. 한 이사는 “실제로 CMS 후원약정서의 등록이 상당 부분 누락돼 출금액과 큰 차이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석 전 처장의 보직해임에 관해서는 “제34차 이사회 당시 (이해동)이사장님 명의로 이사회 소집 공고가 나가야 하지만 석미화 씨 본인 명의로 소집 공고를 했고, 개최 장소도 기존에 해오던 곳과 달리 이사장님 지시를 어겨가며 스페이스99로 정했다”면서 “(석 전 처장이)업무태만을 비롯해 이사회에 분란을 가져왔고, 회계감사를 기만했다”고 해명했다.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한 이사와 석 전 처장 두 사람이 각각 ‘팩트’라고 일컫는 내용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배치된다. 불화의 직접적인 단초가 된 CMS 후원약정서 누락 여부 외에도, 평화박물관 사업 중단 의혹, 주상복합아파트 주거공간에 마련된 사무실 사유화 여부 등이 쟁점이 되고 있다. 석 전 처장 측이 적극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한 이사 측은 내부갈등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며 평화박물관 홈페이지에 반박문을 올린 것 외에 별다른 대응을 않고 있다.

▲ 서울 종로구 견지동 기존 사무실 지하에 있는 전시공간 '스페이스99'내부. 현재는 자물쇠로 잠겨 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불화는 노동 분쟁으로

그러던 지난 7월 5일 석미화 전 사무처장과 최성준 전 총무가 평화박물관 법인 대표인 이해동 이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용노동부에 고소했다. 고소 사유는 ▲근로계약서 미작성과 미교부 ▲부당한 보직해임 ▲임금체불 등으로 알려졌다. 양 측의 갈등이 노동 분쟁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인 것이다.

석 전 처장은 지난 2013년 평화박물관에 입사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최성준 전 총무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석 전 처장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은 양 측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홍구 이사는 “근로계약서는 다 작성하고 있다”며 “당시 석미화 씨한테 ‘근로계약서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저야 뭘요’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무처장은 당연직 이사인데, 이사면 사용자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최 전 총무에 대해서는 “사무처장이 근로계약서 작성의 실무 책임자”라고 반박했다.

석 전 처장 보직해임의 경우 절차에 하자가 없는지 여부가 쟁점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 3월 28일 열린 제34차 이사회가 회비관리 문제로 일대 혼란을 빚은 후, 이해동 이사장은 ▲절차 무시 ▲이사장 지시 무시 ▲사무처 관리 부실 등을 이유로 4월 18일자로 보직해임했다. 이에 대해 석 전 처장은 “보직해임 사유를 정확히 알려달라고 했으나 세 가지 사유가 적힌 통보서와 함께 ‘이사장 권한’이라는 답만 돌아왔다”고 전했다. 이후 5월 3일 열린 제35차 이사회에서는 9명의 이사 중 8명의 이사, 1명의 감사가 참석해 만장일치로 ‘회비관리에 문제가 있었으며 석미화 당시 사무처장에 대한 중징계가 불가피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두 활동가에 대한 임금체불 또한 인정될지 불투명하다. 이해동 이사장은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이들에게 ‘5월 14일부터 대성스카이렉스 803호로 출근하지 않으면 무단결근’이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석 전 처장과 최 전 총무는 “평화박물관 사업 중단을 위한 조치이며 부당한 인사명령”이라고 반발하며 기존 사무실로 계속 출근했다.

결국 석 전 처장은 보직해임 당한 4월 급여로 전달 대비 세후 80여만 원이 삭감된 151만 2,040원을 받았다. 그리고 5월 급여는 50만 원을, 6월 급여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최성준 전 총무는 5월부터 급여가 삭감돼 57만 원을 받았고, 6월 급여는 지급받지 않았다.

반면 한홍구 이사는 대성스카이렉스 803호로 출근하라고 지시한 것을 놓고, “이사회가 사무처를 총체적으로 불신한 것”이라며 “사무처 관리가 안 되니 이사들이 볼 수 있는 장소에서 근무하게 하자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철차에 관해서는 “인사명령을 내고, 여기(현 사무실)로 출근하라는 통보를 구두로 하고 내용증명도 보냈다”고 말했다.

▲ 기존 사무실 맞은 편 대성스카이렉스 803호 현 사무실 내부. 이곳은 현재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와 평화박물관이 함께 사용하고 있다. 석미화 전 사무처장은 “한홍구 이사가 개인연구실처럼 쓰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한홍구 이사는 이를 부인했다. 실제 이곳을 방문한 결과, 한홍구 이사가 방 하나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공간은 활동가들의 공동업무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시민사회, 운영 합리화와 노사관계 고민 필요한 시점

평화박물관 내부의 불화가 노동탄압 논란으로 퍼졌듯 문제는 상당히 복잡하다. 한쪽에서는 단체의 비민주적 운영과 이사 1인의 전횡을 문제 삼으며, 노동탄압을 받았다고 외친다. 다른 한편에서는 업무태만으로 재정 손실을 야기한 것도 모자라 분란을 외부로까지 확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두 주체 사이의 감정이 격해질 대로 격해진 상황에서 사태를 매듭지을 수 있을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답변을 종합하면, 평화박물관이 양적으로 성장한 데에는 한홍구 이사의 기여가 분명 큰 걸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한홍구 이사의 영향력이 다른 이사들에 비해 큰 것도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이는 한 이사 스스로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는 “그만큼 일한 것에 따라 주장에 권위가 생기는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한 이사는 평화박물관은 물론 반헌법사업팀의 운영과 사업 기획, 실무 등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었다. 이 두 곳의 관계는 현재 교집합에 가깝다.

한편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제3의 시선은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재정운용과 인사, 그에 따른 명확한 근로관계의 필요성을 향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시민사회는 눈에 띄게 성장했다. 그에 따라 재정과 회원 수 등 규모가 상당히 커진 단체들도 생겨났다. 평화박물관 역시 지난 13년 동안 전쟁, 인권, 평화 등의 화두를 던지며 규모를 키웠다.

문제는 덩치가 커질수록 단체 운영에 전문성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평화박물관의 경우 정관과 그에 따른 이사회와 총회 등 의사결정기구, 그리고 실무기구인 사무처를 두고 있으면서도 한홍구 이사에게 많은 부분을 의존해 왔던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평화박물관 사업을 중단하고 반헌법사업으로 재편하려 한다”는 의혹에 대해, 한 이사의 업무 과중으로 인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기존 사업이 일정 부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견해도 있다.

아울러 인사와 노사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활동가라고 해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게 원칙”이라며 “규모가 커지고 재정이 커지면 전문경영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종교시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같은 곳에서도 노사문제가 광범위하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분야를 전문으로 준비하는 노무사도 있다”고 덧붙였다.

평화박물관 사태는 온라인에서 특히 더 많이 회자되고 있다. 이른바 ‘진보적 논객’들 사이에서는 강자가 약자를 탄압하는 구도로 보는 시각이 주류에 가깝다. 그러나 평화박물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활동가는 “강자가 약자를 탄압하는 프레임이 문제를 볼 때 편할 수는 있어도 본질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 말처럼 평화박물관 사태가 시민사회에 남기는 숙제는 단체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미 발생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발생할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보다 외연이 넓어진 시민사회 단체가 합리적 운영이나 내부갈등을 투명하게 처리할 수 있는 구조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