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 노동자 보호법안 나올까
간접고용 노동자 보호법안 나올까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9.1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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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사각지대 ‘인건비 따먹기’, 대책 마련 절실
[사건] 간접고용 노동기본권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업무가 무엇이건 간에 단 한 명의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청소, 경비, 조리 등의 업무가 떨어져 나가더니 공장 안 기계도 찢어져서 ‘외주’니 ‘소사장’이니 하는 이름이 붙었다. 마치 구매자가 여러 유통과정을 거친 물건을 마트에서 사듯 노동시장에도 유통업체(?)가 생겼다. 간접고용은 상당히 보편화돼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뿐만 아니라 현행 근로기준법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충분히 아우르지 못한다는 지적도 계속됐다. 그런 가운데 이들의 노동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주노총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정미 의원(정의당·비례)은 지난달 17일 ‘간접고용 노동기본권 보장 입법과제 토론회’를 열고, 법안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민간·공공 할 것 없이 대세는 간접고용?

직업소개, 파견, 도급, 위탁, 사내하청, 소사장, 분사, 용역, 외주 등의 말들은 모두 실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간접고용에 관한 용어들이다. 가령 안산의 공단지역에는 ‘근로자파견’, ‘아웃소싱 전문’ 따위의 글귀가 적힌 간판이 즐비하다. 이른바 ‘극한알바’ 중 하나로 꼽은 택배회사 물류센터 상·하차의 경우에도 근로자파견업체와 하루짜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수는 실제로 상당히 많다. 발제를 맡은 권두섭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법률원 변호사는 통계청 자료를 인용해 2016년 3월 기준 간접고용 노동자는 167만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유형별로 보면, 파견근로자 수가 21만 6천여 명, 용역근로자 수가 69만 3천여 명, 호출근로자 수가 75만 7천여 명이다. 통계청은 매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통해 고용형태별 노동자 수를 집계하고 있다.

그러나 권 변호사에 따르면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는 사내하도급 설문 문항이 없어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이 대부분 정규직으로 분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간접고용 노동자 수는 통계보다 훨씬 많다는 얘기다. 권 변호사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가 250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전체 임금노동자 7명 중 1명,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4명 중 1명에 달한다. 특히 최근 심각성이 두드러진 조선업의 경우, 고용노동부 ‘고용형태공시’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들 중 간접고용 노동자의 비율이 무려 66.5%에 이른다.

공공부문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2013년 공공부문 전체 노동자 176만 명 중에서 11만 명이 간접고용(파견·용역) 노동자다. 권 변호사는 그러나 노동부 통계에서 민간위탁 또는 공기업의 자회사위탁 등이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 참여와혁신

간접고용 노동기본권, ‘그림의 떡’

과연 민간과 공공을 불문하고 넓게 퍼져있는 간접고용의 실태는 어떨까?

서울에 사는 대학생 A씨(24)는 지난해 여름 낯선 경험을 했다. A씨는 학기 중에 쓰려고 모아뒀던 생활비가 모두 떨어져 ‘급전’이 필요했다. A씨는 ‘알바○○’ 사이트에서 일당을 당일 지급받을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았다. 그가 향한 곳은 서울 구로에 위치한 H택배회사 물류센터였다. 하루짜리 근로계약서를 쓴 후 줄을 서서 조끼를 받았다. 어떤 사람은 ‘1’, 다른 사람은 ‘2’가 적힌 조끼를 받았다. A씨는 3번이었다. 1번은 김 과장, 2번은 박 과장, 3번은 최 팀장에게 각각 문자메시지로 ‘몇 시까지 어디로 오라’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알고 보니 H택배회사 물류센터 현장사무실에는 모두 3개의 인력업체가 입주해 있었다. 세 명의 과장·팀장들은 두 평이 채 안 되는 각자의 사무실에 책상에 컴퓨터 한 대, 전화기 한 대를 놓고 다음 날 일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A씨의 사례가 보여주듯 택배회사 물류센터는 간접고용의 전형이다. 그러나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이는 불법이다. 근로기준법 제9조(중각착취의 배제)는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권 변호사는 이 같은 조항이 거의 사문화돼 있다고 말했다. 간접고용의 여러 유형이 직업안정법, 파견법, 민법 등 법적 근거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권두섭 변호사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분석 자료를 토대로 2016년 현재 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은 311만 원인 반면, 파견노동자와 용역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은 각각 165만 원, 145만 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또 정규직 노동자의 90% 이상이 4대 보험, 퇴직금, 상여금 등을 적용받지만, 파견·용역노동자들은 이러한 혜택을 받지 못했다. 파견·용역노동자의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가입률은 각각 48.5%와 64.8%로, 퇴직금과 시간 외 수당 적용률은 각각 75.3%와 34.9%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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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만들자 업체 폐업… ‘노동3권’ 어디 갔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상당히 낮은 처우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스스로의 힘으로 처우개선을 요구하기도 쉽지 않다.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단결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이들이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토론자로 나선 이상우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국장은 제조업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단결권 침해를 비판했다. 하청업체에서 노조가 설립되면 해당 업체는 폐업하고, 비조합원 및 노조 탈퇴자만 신규업체에 고용을 승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밝혔다. 노조에 남아있는 노동자들은 업체 폐업과 동시에 해고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단적인 사례는 최근 하청노동자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은 조선업의 경우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조선업 구조조정과 맞물려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가 한국 조선업계에서 사실상 유일한 하청노조일 정도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과 단결권의 거리는 멀다. 이상우 국장은 “2016년 7월부터 핵심간부 및 조합원이 있는 5개 업체를 폐업하고 비조합원만 고용승계 하는 방식의 부당노동행위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노조를 만들어도 교섭과 쟁의행위는 요원하다. 간접고용 노동자를 고용한 사람과 노동을 제공받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국장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원청업체에 교섭을 요구하면 ‘우리 회사 직원 아니다’라고 하고, 하청업체 사장에 교섭을 요구하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며 “원청업체가 교섭의 당사자로 나오도록 법으로써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내하청 파업에 원청업체가 대체근무로 대응하거나 업체 자체가 다른 곳으로 변경돼 쟁의권이 봉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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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고용 실태 바로잡으려면

앞서 발제를 맡은 권두섭 변호사는 “간접고용 노동기본권 보장과 불법파견 금지를 위해 20대 국회에서 논의될 내용이 많다”면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개정해 원청업체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다면 사용자의 책임을 지게 하자는 게 골자다. 그리고 노조법 상 ‘사용자’의 범위에 원청업체 사업주를 포함시킨다.

두 번째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일각에서 파견법의 필요성에 관해 ‘고용유연화’를 이야기하지만 기간제고용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것이다. 권 변호사는 현행 파견법에 대해 오히려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합법적으로 회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세 번째는 불법파견 금지를 강화하는 방안이다. 이에 따르면 직업안정법을 대폭 손질하게 된다. 파견법 폐지와 연계에 해당 법률에서 지칭하는 ‘근로자파견사업’을 직업안정법 하나로 규율하고, 도급관계를 인정받기 위한 요건을 제시한다. 또 직접고용으로 간주하는 경우를 명문화한다. 이와 함께 근로기준법 제9조의 내용을 보강해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는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권 변호사는 네 번째로 생명·안전과 관련된 업무는 직접고용, 정규직 고용토록 하는 내용도 제안했다. 병원, 대중교통, 경비, 소방 등의 영역은 비정규직 고용을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권 변호사는 “‘위험의 외주화’가 화두로 떠오른 만큼 생명·안전업무의 비정규직 고용 증가는 국민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설명했다.

권 변호사가 제시한 여러 방안에 대해 토론자로 참석한 야3당 관계자들은 대체로 공감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파견법의 폐지에 대해서는 시각차가 있었다. 정길채 더불어민주당 전문위원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반면 조동진 정의당 정책위원회 정책기획팀장은 파견법 폐지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 “전 단계로 파견 대상 업무의 축소를 검토해야 할 것”이라며 보다 구체적인 의견을 냈다. 마지막으로 장철원 국민의당 전문위원은 사견을 전제로 “도급은 민법에 의해 규율되고, 그 근간은 계약자유의 원칙이므로 제한하기 까다롭다”고 말했다.

한편, 정길채 전문위원의 토론문에는 지난 19대 국회 환경노동소위원회 회의록 일부가 짤막하게 수록돼 있다. 이 중 지난해 6월 17일 열린 회의에서 나온 고영선 고용노동부 차관의 발언이 인상적이다. 당시 고 차관은 “업무의 직접운영이나 위탁의 여부는 경영상의 판단이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은 사실 기업의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가 유독 20대 국회에 기대를 거는 데에는 괜한 이유가 있지는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