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목표는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한국회사”
“우리 목표는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한국회사”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6.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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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영시스템과 한국적 생산방식의 하모니 “노사관계 악화는 경영진 책임”이라는 철학이 빚어낸 궁합

▲ 지난 9월15일 열린 퇴임식에서 닉 라일리 전 사장이 노동조합에서 수여한 감사패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당신을 언제나 기억하겠습니다” 지난 9월 15일 GM대우차 부평공장에서 열린 닉 라일리 사장의 고별식에서 대우차노동조합 이성재 위원장이 전달한 감사패에 새겨진 문구다. 감사패를 받은 라일리 사장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연발하며 “GM대우차에서 생활하는 동안 회사 안팎 여러 사람들과 맺은 우정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임직원들의 박수소리가 오래도록 계속됐고 라일리 사장은 행복한 CEO의 모습으로 한국을 떠났다. 이날 행사는 외국인 CEO의 조금 특별한 퇴임식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우리나라 자동차업계의 노동조합에서 사장에게 감사패를 주긴 닉 라일리 사장이 처음이기 때문. 그만큼 노사간의 신뢰를 두텁게 쌓았다는 징표이기도 했다.

GM의 대우차 인수계약이 체결된 2002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대우차의 부도로 해고된 노동자들은 연일 해외매각 반대 시위를 벌였고 인수가 결정된 이후에는 노동계는 물론 업계에서도 ‘하청기지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2002년 40만5673대에 불과했던 GM대우의 판매대수는 지난해 115만7857대로 3배 가까이 늘면서 첫 흑자를 기록했고 수출은 4배 이상 증가했다.

이에 따라 2001년 2월 정리해고 됐던 해고자 1725명 가운데 희망자 1605명도 다시 일터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세계로! 글로벌 경영기법의 도입

회생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부실화와 최고조에 달한 노사대립, 기업 최대의 악재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났던 GM대우차가 쓴 4년여 간의 ‘성공스토리’는 한국적 생산방식과 글로벌 경영기법의 조화, 노사관계 안정이라는 두 지렛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글로벌기업으로의 변신과 동시에 설정된 GM대우차의 비전은 “고객에게 최상의 가치를 주는 자동차회사,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한국 자동차회사”다. 이러한 비전의 달성을 위한 전략으로 안전, 사람, 품질, 신속대응, 원가 등 다섯 가지 분야의 목표를 정하고 전략목표 실현을 위한 기법(tool)으로써 GM 특유의 생산시스템인 GMS(Global Manufacturing System)를 결합시켰다.

GMS는 GM의 전세계 공장에 적용되는 생산시스템으로 전원참여, 표준화, 제조공정품질, 단기 리드타임, 지속적 개선의 다섯 가지 원칙으로 운영된다. <그림 참조>

이를 통해 기존 생산, 구매, 재무, 인사, 교육, 안전 등 회사 전반에 걸친 시스템이 개선됐다. 또 GM 글로벌 네트워크와 GM 대우 간 실시간 정보 공유뿐 아니라 전 세계 GM 생산 공장과의 정보교환 및 업무협조도 가능해 졌다.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사람을 바꾸려 들지 말고 환경을 바꿔라

하지만 단순히 글로벌 경영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오히려 한국 특유의 생산 조직 및 기업문화와 조화되지 않는 무조건적인 해외기법 도입은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

특히 해외 기업의 인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반감 때문에 한국적 환경을 무시하는 것은 갈등과 불신만을 부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경영진은 이 ‘환경’에 관심을 집중했다. 사람을 직접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변화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도입된 환경품질책임제(RBPS·Responsible Boundary Production System).

이 제도는 대우인천차가 GM에 인수되기 전인 2001년, 부평공장 한익수 전무가 고안한 것이었다. 한국의 경영진이 고안한 이 제도는 ‘환경’과 ‘안전’을 우선시하는 GM의 경영철학과도 ‘궁합’이 잘 맞았다. 출발은 간단했다. 일단 공장의 생산직, 사무직을 막론하고 모든 직원들에게 공장부지 20~30평 가량을 ‘분양’했다. 그리고 각자 자기 구역을 정리정돈 하도록 독려하고 먼저 임원들이 솔선수범에 나섰다.

처음엔 진통도 있었다. 자기 공정만 신경을 쓰면 되던 노동자들에게 자신만의 관리영역 이라는 것은 생소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진은 이를 섣불리 강요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근무 외 시간에 시행하는 ‘자율 관리’인 만큼 노동자들 스스로 성과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지표화하고, 오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줬을 뿐이다.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우리가 만든 경영혁신기법, 세계가 탐내다

이렇게 해서 노동자들이 ‘자기구역’ 관리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영역으로 발전이 일어났다. 단지 청결과 정리정돈을 떠나 각자 맡은 구역에 위험요소는 없는지 스스로 관리하게 됐고, 품질관리에도 더욱 신경을 쓰게 된 것.

이 결과 시행 초 60%에 불과했던 자율적 환경관리 참여율이 4년 새 90% 이상으로 높아지면서 사고발생률이 80% 이상 줄어들었다. 불량률 역시 70% 가량 감소했다. 덩달아 생산성도 높아져 칼로스 1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26.03시간에서 19.06시간으로 27% 가량 단축됐다.

노동자들이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찾게 되고 제안활동에 참여율도 높아졌다. 2001년 연간 4020건이었던 지난해 2만여 건을 넘어섰다. 4년 전, 직원들을 괴롭혔던 패배의식과 불안감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GM대우의 전국 4개 공장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부평공장의 쾌적한 환경도 결국은 이들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이다. 부평공장의 환경품질책임제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도 증명해냈다. 2004년 4월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전세계 GM 임원진회의에서는 대우자동차 사례가 영상자료로 보고되었고 릭 왜고너 GM 회장은 “전세계 GM계열 임원들은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을 학습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GM의 경영혁신 담당 부서는 부평공장의 환경품질책임제를 GM의 경영혁신시스템인 GMS에 접목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부평공장 한익수 승용1공장 공장장은 “부평공장의 변화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를 통해 일궈진 것”이라며 “환경품질 책임제는 마음의 품질을 높이는 의식개혁 프로그램이자, 조직원 내면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한 감동의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했다.

의사결정, 투명하게·신중하게·신속하게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하면서 일어난 또 다른 변화는 ‘투명성’이 강화됐다는 점.경영진의 분식회계 등으로 회사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있던 대우차에서 생산직을 포함한 전 사원을 대상으로 경영현황 설명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GM대우차 노사안전담당 조건도 상무는 “과거에는 사장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경영 전반을 설명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며 “노사의 신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투명성”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닉 라일리 사장은 전국의 공장을 돌면서 1만6000여 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1년에 2회 경영현황 설명에 나섰고 이와 함께 공장장이나 생산본부장 등도 1년 2회씩, 연간 총 4회의 경영설명회를 열었다. 투명성이 한층 높아지기는 했지만 기업 총수 1인의 결정에 의존하다시피 했던 과거와는 달리 의사결정의 속도가 늦어지는 문제도 있었다.

‘결정하면 밀어붙이는’ 과거 경영진의 스타일과 달리 GM은 신중한 의사결정 문화를 가지고 있다. 관계자들의 의견을 모두 묻고 수렴해 사전에 발생 가능한 모든 위험요인을 제거한 뒤 결론을 도출해낸다. 미리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기 때문에 의사결정까지의 과정이 오래 걸릴 뿐, 한 번 결정이 내려지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성질 급한’ 우리 문화에, 의사결정의 내용만큼 그 속도도 중요해지는 경영환경 속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성도 높아졌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고 패스트(Go Fast)’제도. 긴급한 의사결정을 요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소집절차를 간소화해 회의를 소집하고 회의 시작 후 하루 내에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제도다. 의사결정 시스템도 글로벌 문화에 한국적 문화를 결합한 셈이다.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노사관계 악화 책임의 70%는 경영진의 몫”

‘사람’에게 변화를 강요하지 않고 ‘환경’부터 바꾸려 한 노력은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한국 자동차노사관계의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조합의 감사패를 받으며 퇴임한 닉 라일리 사장은 현장 중시 철학과 ‘스킨십 경영’은 이미 GM대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직원들과 함께 삼겹살 파티를 즐기고 몸을 부대끼며 축구를 하는 라일리 사장의 면모는 노사관계의 일면일 뿐이다. 가정의 달인 5월에는 직원가족들을 공장으로 불러 잔치를 벌이고, 신입사원 부모 초청행사, 사원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자랑스런 아빠 일터 방문’ 프로그램 등을 실시하는 것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한 차원 높은 노사관계로의 도약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작업 환경에 대한 투자도 남다르다. 올해에는 작업 현장에 에어컨 및 선풍기를 추가로 설치하고 기존 냉방장치를 개ㆍ보수했고 화장실에도 에어컨을 설치해 잠깐이나마 더위를 식히도록 배려했다. 또 다른 공장에 비해 온도가 높은 도장 공장에는 공장 내로 공기가 들어오는 환기구에 얼음을 넣어 공장온도를 전체적으로 낮추기도 했다.

“노사관계 악화 책임의 70%는 경영진의 몫”이라는 라일리 사장의 철학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GM대우의 노사관계부서 담당자들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올해 3월 정리해고자들 중 희망자들을 전원 복직시킨 것도 사실은 GM이 대우차를 인수할 당시의 약속이었다.

아무도 믿지 않았던 약속을 지킨 경영진들의 신뢰와 동료들을 다시 일터로 불러들이기 위한 노동조합의 합리적 선택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지난 4년간에 걸친 노사의 신뢰와 노력은 출범 초기의 ‘하청기지화’ 논란도 어느 정도 씻어 냈다. 그간의 성과를 인정받아 GM의 소형차 개발 전략기지로 선정된 GM대우차는 현재 차세대 소형차의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개발이 완료되면 전 세계 GM그룹에서 이 플랫폼을 사용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현재 군산 디젤엔진 공장에서 생산중인 2.0리터급 친환경 최첨단 디젤엔진 역시 GM대우는 물론, 전 세계 GM글로벌로 뻗어나갈 예정이다. 글로벌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는 GM대우의 ‘성장엔진’은 글로벌 경영기법과 한국적 기업문화의 조화, 그 속에서 싹튼 노사간의 신뢰다.

   

▲ GM대우 노사안전
담당상무 조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