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다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6.10.1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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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강요 아닌 수평적 소통으로 방안 모색할 때
[커버스토리]공무원을 말하다④

지난 7월 하순, <참여와혁신>은 국가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오성택)과 함께 한 건의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역대 정부 정책 진단을 위한 행정부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 설문조사’가 그것이다. 설문조사는 국가공무원노조 각 지부별로 10여 일에 걸쳐 진행됐다.

이번 설문조사는 공무원노조로서는 처음으로 조합원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정책을 진단하고 평가하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설문조사는 공무원들의 고민과 인식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이번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간격을 주기로 조합원들의 인식을 파악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결과물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공무원들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추이를 살필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도 충분할 것이다. 또한 국가공무원노조가 향후 정책노조로서의 목표를 이루는 데 있어 이 같은 자료는 귀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참여와혁신> 148호 커버스토리에서는 공무원들의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다루었으며, 향후 정부 정책의 진단과 평가를 살펴볼 계획이다.

앞의 설문조사 결과 분석을 토대로 향후 공직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찾아보자. 지난 4월 총선 이후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과 정치집단은 국민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공직사회 역시 민심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오성택) 조합원들의 인식을 통해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안정된 일자리 원하지만 낮은 임금 보완해야

앞서 설문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듯이 국가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공무원을 선택한 이유는 경제적 안정성이다.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 등과 같은 유행어를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 사회는 직업의 안정성이 대단히 취약한 사회이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직업의 안정성에 대한 갈망도 커져만 간다. 심각한 청년실업 상황에서도 구직자들의 눈높이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맞춰져 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일자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취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현재 자신의 일자리가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노동자를 향해 질시의 시선을 보낸다. 해당 노동자들이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철밥통’이니 ‘그들만의 리그’니 하는 비판이 뒤따른다. 물론 언론이 조장하는 측면도 없지 않으나, 그러한 논리가 힘을 얻는 것은 국민들의 질시라는 여론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도 그러한 일자리로 인식되고 있다. 다만 그림 <공무원 보수 추이>에서 보듯이 지난 10년간 공무원 임금인상률과 민간부문의 임금인상률 간의 격차가 커지면서 공무원의 임금은 민간의 임금에 비해 점차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은 민간부문에 도입된 국민연금과 현격한 격차를 보임으로써 이 같은 차이를 만회할 만한 유인책이 된다.

민간부문에 국민연금이 도입되기 훨씬 이전부터 공무원연금 제도를 시행한 이유는 민간부문에 비해 낮은 임금을 보완하려는 목적이 컸다. 사실상 도입 당시에 지급했어야 할 적정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대신 공무원연금을 통해 사후적으로 노후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려는 유인책이었다.

그런데, 최근의 추세를 보면 공무원의 임금이 민간에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격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더구나 공무원연금 개혁은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즉 공무원들에게 노후보장 수단이 되는 공무원연금 수령액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따라서 공무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민에 대한 봉사자 되려 하지만 현실에 가로막혀

이와 같은 박탈감을 해소하는 길은 공무원의 임금을 민간부문의 수준까지 끌어올리거나 공직사회에서만 가능한 메리트가 있어야 한다.

공무원으로서 국민 전체를 위해 일한다는 소명의식 또한 그러한 메리트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국가공무원노조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지부 이왕재 지부장은 “병원현장에서 환자나 장애인을 돌보고 빠른 시간 내에 사회에 복귀하도록 애쓰는 간호사와 치료사들이 조합원의 대부분인데, 나이팅게일 선서와 같은 직업적 소명과 희생정신이 이들을 이끄는 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국가공무원노조 방송통신위원회지부 이창하 위원장은 “공무원시험을 통해 입직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국민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국민들로부터 인정받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오히려 국민들에게 철밥통, 이끼 같은 인식만 심어주고 있어 자괴감이 들 때가 많고, 이직을 생각하는 젊은 공무원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실질적으로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경제적 안정성을 찾아 공무원을 선택했지만 공무원으로서 국민들에게 헌신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대답이다.

그렇게 소명의식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공무원들은 “적은 월급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 대한 봉사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일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질문 2-1에 대한 응답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공무원들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지 않다. 경직된 조직문화와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국민들에게 ‘소신 없는 공무원’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이왕재 지부장은 “현재 카카오톡이나 밴드를 잘 활용하고 있는데, 공직사회의 소통을 위한 메신저라면서 바로톡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했다”면서 “바로톡 설치현황을 제출하라고 하니 쓰지는 않지만 모두 설치했는데, 기관의 특성을 따지지 않고 의무적으로 하게 하는 이런 것이 인력과 시설과 예산의 낭비”라고 지적한다.

ⓒ 참여와혁신 DB

국가공무원노조 통일부지부 이상호 위원장도 “공직에서의 의사결정은 법적으로 갖춰야 할 요건과 형식적인 절차가 있지만, 이를 너무 강조하면 의사결정이 경직돼 있다고 느끼게 된다”면서 “요즘은 직무 위주로 재편한다고 하지만 계급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공직사회에서 상하 간에 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한다.

이창하 위원장도 “최근 환경부는 미세먼지의 주범이 고등어라고 했다가 이를 번복했다”면서 “충분한 검토도 없이 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알림으로써 정부가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요컨대 이처럼 경직된 조직문화와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 때문에 공무원들은 국민들에 대한 봉사자로서 역할을 다하고자 하지만 오히려 불신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성과주의로는 국민에 대한 봉사자 될 수 없다

공직사회의 환경이 이와 같다 보니, 질문 4에 대한 응답에서 보이듯이 공무원들이 공무원노조에 바라는 바도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과 같은 경제적 조건으로 치우친다. 물론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2순위로 꼽고 있기는 하지만, 압도적인 다수의 조합원들은 경제적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동안 우리나라 노동조합운동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경제적 조건의 강조는 이른바 ‘전투적 조합주의’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의 노동조합운동이 국민들로부터 고립된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지만, 노동조합 스스로 전투적 조합주의를 취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아직까지는 우려일 뿐이지만, 공무원노동조합운동 역시 전투적 조합주의로 흐를 수 있고, 국민들로부터 고립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 들어 공직사회에 도입하고 확대하려고 하는 성과주의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인사혁신처는 “개인별 기여·노력·성과의 차이에도 근무경력에 의해서만 보상하면 공정성이 저해되고,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의 사기가 저하된다”면서 “성과주의는 기존의 연공기반 인사제도의 한계를 보완하고, 우수한 성과에 합당한 보상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일선 공무원들의 인식은 다르다. 공직사회에서 개선해야 할 요소 가운데 하나로 성과주의를 지적하고 있다. 성과주의를 강조하다 보면 공무원들은 국민들에게 봉사하기보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국민들의 공익보다는 당장 성과가 커 보이는 데에 집중하게 되고, 아무리 공익적인 부분이라도 성과가 나지 않으면 폐지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성과를 측정할 틀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방식으로 성과주의가 도입되고 확대된다면 이는 공직사회의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설령 지금은 상급자의 지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내면적으로는 따르지 않을뿐더러 시간이 지나면 더욱 큰 폭발력을 가지는 이슈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 ⓒ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수십 대 일,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공직사회에 입문한 엘리트 공무원들은 이와 같은 공직사회의 현실 때문에 ‘소신 없는 공무원’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비판까지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공직사회에 필요한 것은 성과주의의 확대가 아니라 공무원들이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고 다양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제기되는 일선 공무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왕재 지부장은 “조합원들은 다들 업무 혁신과 일하는 방식의 개선에 공감하고 있다”면서 “말로는 대국민 봉사를 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국민과 밀접하게 접촉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이 부족하고,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도 현장에서는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정책이 실제 국민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인력과 현장 공무원의 업무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상호 위원장은 “각 부처별로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을 추진하는 게 가장 우선”이라면서 “공직사회에 새로운 젊은 층이 들어오면서 공직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수평적으로 소통하면서 서로 문제점이 있으면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방식이 정착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수평적인 소통 속에 유연한 의사결정이 가능한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창하 위원장은 “선진국일수록 공공부문을 우대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수준 높은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취지”라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우수한 인력이 공공부문에서 질 높은 행정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그에 걸맞은 보수의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창하 위원장은 또 “공무원들은 사회에 대한 많은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다”면서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약자들 도울 수 있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지금 공직사회 안팎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가 다양한 목소리를 억누르며 일방적인 강요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공무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민심을 반영해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공무원들이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그러한 정책의 수립과 시행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또한 그 길은 일방적인 강요가 아니라 수평적인 토론과 유연한 의사결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내 주장을 한 발 양보할 줄 아는 열린 자세가 무엇보다 요구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