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과 불황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
호황과 불황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10.1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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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유연화의 끝,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
[사건]갈 곳 없는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

지난해 말 이른바 ‘빅3’로 불리던 대우조선해양 · 삼성중공업 · 현대중공업 등 조선3사의 적자가 9조 원에 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올해 초 조선업 위기에 대한 우려는 현실이 됐다. <참여와혁신>은 2월호(140호) 특집 기사 “조선산업의 위기를 통해 본 제조업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노동조합”을 통해 조선업종 차원의 현재를 조명했다. 당시 조선업계 곳곳에서 ‘조선업 위기는 이미 예견된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된 후, 이듬해 본격적으로 실물경기에 그 여파가 미치면서 중소형 조선소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빅3와 같은 대형조선사들은 경우 조선부문의 부진을 해양플랜트 사업으로 만회하려고 했다.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일단 수주부터 받고 보자는 식의 전략은 금세 밑천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렇게 조선업은 수술대에 올랐다. 여느 구조조정이 그래왔듯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13만 명이 넘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그 위기에 노출됐다.

한국 조선업 호황의 보이지 않는 손들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우리나라 조선업은 그야말로 황금기를 보냈다. 초대형컨테이너선과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을 주력으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이에 따라 고용규모 역시 1990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폭발적으로 커졌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자료에 따르면 9대 조선업체의 고용규모는 1990년 5만 90명에서 2014년 18만 9,014명으로 네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기능직을 기준으로 9대 조선업체의 정규직(직영) 노동자의 수는 소폭 증감을 반복하거나 거의 변화가 없었다. 반면 하청노동자의 수는 1990년 7,360명에서 2014년 12만 2,788명으로 무려 17배가 됐다. 같은 기간 정규직 노동자 대비 하청노동자의 비율은 21.2%에서 346.5%로 폭증했다. 정규직 1명에 하청노동자 3.5명꼴이다. 십 수 년 동안 이어진 조선업의 성장에는 하청노동자들의 자리 잡고 있던 셈이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비중이 커지면서 이들이 맡은 업무도 많아졌다. 하창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의 말을 빌리면 “거의 다”이다. 모든 직종에 하청노동자가 분포돼 있다는 얘기다. 그 중에서도 하청노동자들이 집중돼 있는 업무는 의장(선체에 전기배선, 배관 등 각종 장비를 설치하는 일), 용접, 취부(도면에 맞춰 선체가 될 철판을 자르고 붙이는 일) 같이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

하청노동자의 급격한 증가에 대해, 사용자의 이해와 정규직 노동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도 이러한 현실을 근거로 한다. 금속노조가 발간한 ‘2016 조선산업 위기극복 보고서’는 이 점을 지적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용자는 경영여건에 맞춰 노동자 수를 자유롭게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는 하청노동자를 통해 위험한 작업을 피하고 자신들의 고용을 보호할 완충장치를 얻었다.

▲ ⓒ 참여와혁신 DB

위험한 작업, 힘든 작업이 하청노동자에게 맡겨지면서 조선소 내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 역시 이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올해에만 9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숨졌는데, 이 중 6명이 하청노동자다. 하창민 지회장은 “하청이 워낙 많으니까 (산재가)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 원청업체에서 작업지시가 내려오면 하청노동자들은 기한을 맞추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이처럼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노동자로 갈라진 현장에서는 서로 간 갈등의 골도 깊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하청노동자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고,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일도 많이 안 하면서 돈은 많이 받아간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조선소의 진짜 그림자, ‘물량팀’의 정체

정규직 노동자들과 하청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청노동자들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점들을 원청업체에 직접 얘기할 수도 없다. 이들은 조선소 안에 있는 수백 개의 사내협력(하청)업체 소속 ‘물량팀’ 노동자일 뿐이다.

물량팀은 하청노동자 위주의 생산구조가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다 조선업 위기가 본격화되고, 몇몇 언론에서 하청노동자의 실태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물량팀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런데 물량팀은 사내하청업체의 특정 부서이름이 아니다. 그럼에도 물량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저 하청노동자들이 블록(공정)별로 물량에 맞춰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기 때문일 거라 추측할 뿐이다.

▲ 한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조선소 사내하청업체 채용 공고. 쉽고 편한 작업과 높은 일당을 강조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은 일상적인 고용불안과 산재위험에 노출돼 있다.

물량팀이 상징하듯 조선소의 고용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먼저 원청업체는 각 블록마다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각 하청업체에서는 노동자들의 일부를 ‘본공’이라고 불리는 상용직으로 고용하고, 일부 관리자를 뽑는다. 이 관리자들은 원청업체에서 요구하는 인원수만큼 노동자들을 모집한다. 이때 하청업체의 관리자가 모집한 사람들을 싸잡아 물량팀이라고 부르고, 하청업체의 관리자를 ‘물량팀장’이라고 일컫는다.

결론적으로 물량팀은 ‘하청의 하청’인 셈이다. 하지만 외형상 2차 하청업체가 있지는 않다. 편의상 원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은 업체를 ‘1차 하청업체’라고 한다면 물량팀 노동자들도 물량팀장과 마찬가지로 1차 하청업체에 소속이고, 이 업체 이름이 찍힌 출입증을 받는다. 물론 속을 들여다보면 다단계 하청구조와 다르지 않다. 심지어 물량팀장들 중에는 사업자등록을 내고 1차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의 80%, 삼성중공업 사내하청의 50%,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의 40% 가량이 물량팀이다.

문제는 물량팀 노동자들이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산재가 발생했을 때 원청업체는 하청업체의 책임으로 돌리고, 하청업체는 물량팀장과 물량팀 노동자 사이의 문제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임금이나 퇴직금을 받지 못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조선소 떠난 노동자들은 어디로?

더 큰 문제는 하청노동자들의 고용이다. 물량팀, 본공 할 것 없이 일감이 줄어들면 인원 조정이 일어난다. 실제로 지난 2010년 하청노동자 수는 2009년 대비 7천여 명 가까이 줄었는데, 이 무렵 키코(KIKO) 사태로 상당수의 중소형 조선업체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부도가 났다. 그러다 대형 조선사들이 공격적으로 해양플랜트 수주에 나선 2011년부터 다시 해양부문을 중심으로 하청노동자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2014년 하청노동자 수가 정점에 이른 후, 빅3의 경영악화와 더불어 조선업 위기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2015년에는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만 해도 2015년 12월을 기준으로 전년 동월 대비 4,721명이 감소했다. 올해 4월까지 줄어든 3,769명을 포함하면 2014년 이후 현대중공업을 떠난 하청노동자 수는 8,400여 명에 달한다. 빅3중 다른 한 곳인 대우조선해양 역시 올해 2월 기준으로 2014년 대비 5,300여 명의 하청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소를 떠난 하청노동자 수는 이미 파악된 것만 1만 3천여 명이다. 하지만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본인들만 알 뿐이다. 현대중공업과 계열 조선사들이 위치한 울산지역의 경우 조선소 인근에 대거 형성됐던 원룸촌의 빈 방이 늘어났다고 전해진다. 이 원룸들은 주로 하청업체에서 기숙사로 사용했는데, 외지에서 들어온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빠져나갔다.

▲ ⓒ 참여와혁신 DB

한편 일각에서는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실직 상태에 놓인 노동자들을 정부가 추진하는 토목 사업에 일하게 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한 예로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7월, “신고리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추진되고 있는 조선업 분야 근로자(용접공 등)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울산 동구가 지역구인 김종훈 의원(무소속)은 “선박건설과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기술적 차이가 있는 조건에서 조선소 노동자들이 그대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투입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용접이라고 해서 다 같은 용접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에서도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울산·거제·목포·창원지역에 ‘조선업 희망센터’를 설치했으나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조선업 희망센터를 통해 재취업을 알선하고, 귀농귀촌 등을 지원하겠다는 것이지만 참가자는 매우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는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해고는 업체별 부분적 고용감소가 아니라 ‘업체폐업’이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서 “무엇보다 정부의 고용지원대책에 거시적 일자리대책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하청노동자들을 대량실업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또한, 당사자인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업의 위기와 구조조정, 그리고 사내하청 중심의 생산구조 자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