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가 경제성장을 돕는다”
“복지국가가 경제성장을 돕는다”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6.12.23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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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노동’과 ‘공정성’ 생각할 때
▲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더불어 함께, 대한민국 경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민경 기자 mkkim@laborplus.co.kr

소득만이 아니라 ‘노동’과 ‘공정성’을 함께 생각해야한다. 건강한 일자리와 보편적인 복지가 중요하다. 이는 행복한 삶과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

23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동문회관에서 ‘더불어 함께, 대한민국 경제’라는 주제로 열린 강연회에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소득으로 삶의 질을 측정하는 것의 한계를 짚으며 이같이 말했다. 행복에 대한 경제학적 이해를 돕기 위해 소득, 노동, 공정성 등의 개념을 설명하며 “복지국가와 경제성장은 상충관계가 아니고 잘 구축된 복지국가는 도리어 성장을 돕는다”고 강조했다.

한국 여성들은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과 출산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다. 복지국가가 잘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세계 유례없이 급격한 인구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게 됐는데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소득을 높이는데 집중해왔다. 과거 고도의 성장기를 경험했던 것이 주효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물질적 수준이 높아도 정치적 자유, 공동체 생활, 자아실현 등의 요소가 충족되지 않으면 높은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며 “오히려 소득을 높이는 과정에서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행복한 삶을 위한 인간 복지는 소득이라는 한 가지 잣대로 재려하면 안 되고, 여러 잣대를 종합적으로 사용해야한다”며 “1인당 국민 소득은 평균값이기 때문에 구성원들 간의 소득불평등 정도는 반영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국민 생활수준의 실상과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조한 것이 ‘노동’과 ‘공정성’이다. 노동과 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봐야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으며, 전체적인 사회가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그는 “노동은 한사람 인생의 절반을 차지하며 복지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라며 “그러나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소비’를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본다. 소비를 위해 소득이 필요하지만, 노동은 괴롭고 힘들기 때문에 필요악으로 여기고 경시해왔다”고 설명했다.

2013년도 기준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한국 22.3%로 OECD 평균(11.8%)의 두 배에 달한다. 정규직의 경우에도 조기퇴직 관행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법규상 퇴직 연령은 57.4세인데 실제 퇴직 연령 53세다. 노동자 평균 근속연수는 5.6년으로 OECD의 평균(9.5년)에 한참 못미친다. 또 생계를 위해 고령층도 73~4세까지 일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은퇴시기가 늦은 나라로 꼽힌다.

그는 “한국 노동의 신체적, 지적, 심리적 복지 등에 대한 지표를 포함해 소득산출을 하면 지금보다 훨씬 낮아질 것”이라며 “한마디로 소득수준에 비해서 노동시간이 길고, 고용안정이 불안하며 노동환경이 열악하다. 단순히 소득을 올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문제에 더 주의를 을 둬야 국민 복지를 제대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성을 강화해야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사는 사회질서가 공정하다고 믿어야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 소득도 늘어나고 더 행복하게 노동을 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공정한 사회는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는 것과 함께 결과의 평등도 어느정도 고려하는 사회다.

“기회균등을 제도적으로 완전히 보장해도 진정 공정한 것은 아니다. 달리기 경주에서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해도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최소한의 능력이 다르면 불공정할 수 있다. 아이와 어른을 함께 달리게 하면서 출발선이 같으니 공정하다고 해선 안 된다”며 “가난한 집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면 제대로 잠재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모든 가정에서 부모들이 영양, 교육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지 않으면 그 나라는 공정한 나라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결과의 평등을 이루는 방법으로 복지국가를 제시했다. 세금을 많이 걷어서 소득 격차를 줄이자는 것이다. 방법은 시민권에 기초한 ‘보편적 복지’다. 차등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를 주장한 이유는 “차등복지는 얼핏 들으면 맞는말 같지만 비효율적인 체계”라며 “혜택을 못 받은 중상층은 불만을, 복지혜택을 받은 저소득층은 낙인이 찍혀 안 좋은 인식을 갖게 돼 지속가능성이 낮다. 뿐만 아니라 차등복지의 과정에 많은 비용이 든다. 모두에게 나눠주고 나중에 소득세로 걷어 들이면 되는 문제다”고 말했다.

시장주의경제주의자 학자들이 보편적 복지에 대해 장기적으로 노동과 투자 의욕을 떨어뜨려 부정적일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에 대해선 근거가 없다고 단언했다.

또 ‘무상복지’라는 표현은 한국사회의 복지국가에 대한 편견이 반영된 것이라며 비판했다. 가난한 사람도 물건을 사면 부가가치세를 낸다. 가난한사람은 낸 것에 비해 많이 받고, 부유한 사람은 좀 더 내고 적게 받는 것일 뿐 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상 프레임이 복지에 씌워지면 저소득층은 막연히 기대를 하고, 부자들은 반발심만 생겨 경계해야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이날 강연 후 장하준 교수와 함께하는 토크쇼가 열렸다. 정승일 박사(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이사)가 사회를 보고 △사회연대네트워크 정용건 상임대표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이명묵 대표 △김영배 성북구청장 △민형배 광산구청장 등이 참여해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한편 장하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 이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뮈르달 상, 레온티예프 상 등을 받으며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 등 다수의 경제학 저서의 저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