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은 계속된다, 사회적 공분도 곧 잠잠…
갑질은 계속된다, 사회적 공분도 곧 잠잠…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7.01.1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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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계속되는 차별
[사건] 노동현장 갑질백태

각종 노동 지표들이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점들을 객관적으로 적시해 주고 있는 가운데, 사용자가 노동자들을 홀대하고 무분별하게 억압하는데도 이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 심심찮게 갑질논란으로 번지기도 한다. 실제로 일어난 갑질사례를 살펴보면 땅콩회항으로 범국민적 공분을 샀던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운전기사 갑질 매뉴얼 논란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정일선 현대 BNG스틸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갑질만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취업준비생들을 상대로 벌이는 갑질행태도 적지 않다. 취업포털 사이트 ‘잡코리아’의 조사 결과를 보면 ‘면접관의 언행 및 태도 등으로 인해 불쾌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74.5%가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최저임금 위반 등 청년 ‘열정페이’가 지급되는 일들은 이미 만연해 있다. 고용노동부가 청년들이 주로 일하는 PC방, 카페, 주점, 노래방, 당구장 등 4,589곳을 대상으로 상반기 기초고용질서 일제점검을 한 결과 법 위반업체만 2,920곳이 적발됐다.

이러한 와중에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들은 도덕적 해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야근을 하지도 않은 직원에게 야근식대를 지급하고, 퇴직자 단체에 편법으로 일감을 몰아주는 등 방식도 다양하다.

앞서 여러 차례 감사기관의 지적을 받고도 부당한 관행은 계속됐다. 감사원은 지난해 9~10월 34개 공기업과 3개 중앙부처를 대상으로 경영개선 이행실태를 점검한 결과 모두 80건의 문제점을 적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치권도 이러한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 각종 대안들을 내놓고 있다. 여야 4당 노동 전문 의원들은 양극화 및 비정규직 문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국회 비정규직 차별 해소 포럼을 만들었다. 비정규직 차별해소 포럼은 9월 정기국회 개회에 맞춰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국회 등록 연구단체인 비정규직 차별해소 포럼은 여야 4당의 노동전문가인 김성태(개혁보수신당), 홍영표(더불어민주당), 김성식(국민의당), 심상정(정의당), 장석춘(새누리당)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 외에도 여야 의원 47명이 회원으로 참여한다.

양극화와 관련해선 김준 국회 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장은 노동시장 양극화의 원인을 미미한 낙수효과, 대기업 노조의 지대(이익) 추구행위로 꼽으며 ▲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보호 완화 ▲ 대기업 노조의 과도한 지대추구 제한 ▲ 경제민주화 ▲ 중견기업 육성 ▲ 비정규직 보호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다만 여전히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 법안 등의 사안에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다소 엇갈리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폐기된 노동개혁 5대 법안(근로기준법ㆍ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ㆍ파견법ㆍ기간제법)을 이번 20대 국회에서 재입법을 추진한다.

그러나 이 법안들이 지난해 발의됐을 당시, 여야의 첨예한 대립을 불러일으킨 만큼 20대 국회에서도 적지 않은 잡음이 예상된다. 지난해 노동개혁 법안을 두고 새누리당은 청년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이들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던 반면, 야당은 쉬운 해고를 가능하도록 하는 노동 악법이라며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한편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조속히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에선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한 경제시민단체 관계자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겉으로는 세계 경제 순위 11위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면서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많은 이들이 최저시급, 환경개선, 산재처리 등을 놓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하루라도 빨리 구제해 주는 것이 정부와 경제 활동을 하는 모든 이들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경비·미화 아파트 노동자의 현실

아파트는 편안하고 안락하다. 경비부터 주차관리, 분리수거, 택배관리 등 풀코스로 서비스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주부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 편안함과 안락함이 대부분 누군가의 고된 노동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아파트는 오로지 입주민을 위한 공간으로만 인식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파트를 생활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경비·미화(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2년 전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에게 모욕적인 갑질을 당한 경비노동자가 분신자살로 ‘을 중의 을’의 절규를 항변하고서야 아파트 비정규직노동자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대두됐다.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안산지역 아파트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조사하고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정책과 실행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29일 오후 안산시청 제1회의실에서 ‘안산시 아파트 비정규직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보고 및 토론회’를 열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안산지역 112개 아파트를 직접 방문해 전수 조사한 결과를 보고했다. 경비노동자(설문참여 224명)의 평균연령은 68.1세였다. 근속연수는 평균 2.8년이며, 용역회사가 변경될 때 전원 재고용하는 비율은 25.4%(4곳 중 1곳)에 불과해 불안정한 고용조건으로 인해 이직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비노동자의 올해 평균임금은 156만 원이었으며, 최저임금 위반 비율은 53.8%로 추정됐다. 근무형태는 용역·위탁업체에 고용된 1년 단위의 계약직(89.2%)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위탁관리-용역회사라는 2중의 간접고용이 일반적인 고용형태임을 알 수 있다.

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은 64%, 정년 적용은 21%에 불과했다. 또 전체의 95.3%가 격일제(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고, 휴게시간의 휴식은 ‘그림의 떡’이었다. 휴게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휴게시간을 근무지 안에서 보내거나 근무지에서 대기하는 게 다반사였다. 연차휴가는 32.1%만이 자유롭게 사용했으며, 휴가가 없는 경우(15.8%)도 있었다. 산재보험 적용은 21.9%에 불과했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 등에 대한 설문결과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가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영향력(64%)이 큰데다, 입주민과의 관계에서 욕설 등 ‘갑질’을 당한 경험이 27%(월 2.4회)로 부당한 대우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힘든 점으로 ‘저임금>고용불안>장시간 근무>입주민 응대>과도한 업무량>휴게공간’ 등을 꼽았다.

미화노동자(291명)의 평균연령은 63세였고, 평균임금은 94만 원이었다. 최저임금 위반 비율은 71.6%로 매우 높게 추정됐다. 근무형태는 위탁관리(88.3%)가 대부분이었고, 소속 회사는 용역회사가 90.5%를 차지했다. 고용승계 비율은 63.7%였고, 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은 67.3%였다. 주 근무시간은 30.8시간이었으며, 자유로운 휴게시간 사용은 57.8%로 절반을 넘었다. 휴게공간은 지하공간(77.9%)이 대부분이었고, 여기서 취사(49.8%)나 도시락(39.8%)으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26.1%)하는 비율은 1/4 수준이었고, 휴가가 없는 비율도 32.4%에 달했다. 산재보험 적용은 40%로 절반에 못 미쳤고, 힘든 점으로는 ‘저임금>고용불안>입주민 응대>인력 부족>과도한 업무량’ 등을 꼽혔다.

시설관리노동자(279명)의 평균연령은 50.5세로 평균임금은 226만 원이었다. 근무형태는 위탁관리(91.5%)가 대부분으로 경비·미화노동자와 같은 2중 간접고용은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전원 고용승계 비율은 16.8%에 불과했으며, 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은 70.2%로 가장 높았으나 임금 등 노동조건 명시의무 위반 사례가 많았다. 또 근무는 격일제가 62.5%였으며, 휴게공간이 별도로 있는 경우(57.4%)는 절반이 넘었으며, 연차휴가는 48.7%만이 자유롭게 사용했고, 산재치료는 20%만이 적용을 받았다.

입주자대표회의의 영향력은 76%에 달할 정도로 컸다.

구체적인 업무지시(43.5%)가 경비노동자(26%), 미화노동자(25%)에 비해서 높은데다 입주민들이 자기 집안 시설을 관리해 줄 것을 요청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힘든 점은 ‘저임금>입주민 응대>고용불안>인력부족>장시간 노동’ 순이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안산지역 아파트 노동자들은 최저 수준에 가까운 저임금을 받으면서 휴게시간에도 택배를 처리하고, 좁은 경비사무실 한켠에서 쪽잠을 자거나 지하실에서 한 끼를 해결하면서도 만성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열악한 노동조건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실태조사를 실시한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고용문제와 관련해서는 ▲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문제 ▲ 관리방식의 개선 ▲ 고령노동(정년 문제)을 제기했다.

임금 및 근로시간과 관련해서는 ▲ 최저임금 준수와 생활임금제 확대 ▲ 휴게시간 상한 규제 ▲ 감시·단속적 근로 승인 문제를, 휴게공간에 있어서는 ▲ 휴게실 설치 규정 ▲ 휴게실 개선사업을, 인격적 대우와 관련해서는 ▲ 아파트공동체활성화 지원 ▲ 좋은아파트운동 사례 확산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센터는 아파트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입주자대표회의의 관심과 개입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아파트 관리를 기존의 위탁관리에서 ‘자치관리’로 전환하고, 정규직 채용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자치관리로 전환할 경우 위탁수수료와 관리비 등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자부심 또한 높일 수 있다는 평가다.

특히 센터는 안산지역 아파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휴게시간 조정을 통한 최저임금 지급 회피, 휴게시간 미보장, 쪼개기 근로계약, 아파트 비리 등의 실태를 점검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산시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공동주택법(제93조)에 따라 지자체는 공동주택관리규약을 마련해 지역 실정에 맞게 공동주택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센터는 매년 인상되는 최저임금 인상분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경비노동자의 휴게시간을 늘려온 것에 대해 시가 ‘감시·단속적 노동자의 휴게시간과 임금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적정 수준의 준수를 제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시가 이러한 내용의 ‘자치규약’을 제정해 가이드라인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들어 정부가 경비원 처우개선을 위해 휴게시간과 근로시간을 명확히 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일선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무기계약직, 동일노동 차별대우?

통계청 무기계약직 713명이 성과상여금 도입에 반대하며 지난해 12월 파업에 들어갔다. 통계청노조(위원장 이규희)는 12월 14일 오전 정부대전청사 앞에서 파업 출정식을 열고 “유경준 통계청장이 일방적으로 직무등급제를 도입하려다 무산되자 성과상여금 도입으로 호봉제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며 “통계청은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을 줄 세우는 차별상여금을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노사가 대립하고 있는 지점은 성과상여금 도입과 관련한 부분이다. 무기계약직 처우개선 예산으로 배정된 14억 3천만 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해 이견을 보이는 것이다. 노조는 호봉 간 승급액 증액·복지제도 확대·처우개선을 요구한 반면 사측은 재원 중 일부를 성과상여금으로 차등해서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사는 10월 7일부터 7차례 임금교섭을 했다. 노조는 △기본급 3.4% 인상 △호봉 간 승급액 3만 원(현재 2만 1,400원) △맞춤형복지제도 시행 △통계실무관 처우개선 수당 신설을 요구했다. 통계청은 기본급 3% 인상과 성과상여금 도입을 주장했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조정 절차를 밟았다. 이달 7일 중앙노동위는 △올해 임금 기본급 3.4% 인상 △잔여 재원의 임금 지급방법은 추가교섭을 통해 결정 등을 담은 조정안을 내놓았다. 노조는 조정안을 수락했지만 통계청이 거부하면서 결렬됐다.

통계청노조의 파업은 노동위원회의 중재에 의해 마무리되었지만, 여전히 갈등의 소지는 남아있다. 문제의 시발은 무기계약직 통계조사원들의 업무가 정규직 공무원들과 겹쳐 있다는 점이다. 동일 노동을 하고 있는 무기계약직들의 눈에는 이와 같은 처우가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통계청은 아직 이런 문제에 대해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통계청은 2014년 ‘무기계약근로자 처우개선을 위한 중기 계획안’을 제출했으나 계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2016년 무기계약근로자 인건비로 약 48억 원 증액을 계획했으나 17억 원만을 확보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최저임금 대비 무기계약직 통계조사원의 임금 수준이 2006년 153.5%에서 2015년 128.7%로 24.8%p 하락했다”며 “2015년 기준 무기계약직 통계조사원들의 임금 인상률은 8호봉을 기준으로 6.3%,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인 8.1%보다 1.8%p 낮은 수준”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통계청 무기계약직의 2015년 기준 임금은 정규직 평균 임금 283만 원의 62.8%”라면서 “기획재정부 소속 4개 청의 무기계약직 임금을 비교했을 때에도 통계청 무기계약직 임금은 가장 낮다.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180~190만 원 선의 월급을 받고 있지만 통계청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170만원 선으로 연간 120~240만 원 정도 차이가 난다”고 꼬집었다.

무기계약직 통계조사원으로 25년 근속 시 연간급여액은 2,588만 원으로 정규직 공무원 5년차 수준이며 25년차 정규직 9급 공무원의 연간급여액은 4,295만 원인데 무기계약직 통계조사원은 이들의 60.25%의 수준에 불과하다.

노동개혁이 노동시장 양극화 대안?

정부는 지난해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파견법, 기간제법 등 이른바 노동개혁 5대 법안을 통해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 법 개정안은 논란만 거듭하다 19대 국회가 마무리되면서 폐기됐다. 정부와 여당은 20대 국회가 구성되자마자 이들 법안을 다시 발의했지만, 비정규직 양산과 쉬운 해고를 위한 법안이라는 노동계와 야당의 반발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