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카슈랑스 보험업계 뒤흔든다
방카슈랑스 보험업계 뒤흔든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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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기, 끼워팔기 등으로
은행권 ‘쏠림 현상’심각

외환위기 이후 은행 중심의 금융산업 재편이 진행되면서 제2금융권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 중인 금융권의 대형화, 겸업화 정책은 특성화된 전문금융체계 마련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은행의 몸집만 불리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방카슈랑스 또한 소비자 중심의 금융산업 재편을 염두에 두지 않은 ‘대형화, 겸업화’ 신화에 발목 잡힌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949년 현대적 보험사 시대를 연 보험업계가 생존을 위한 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금융산업, 은행만 살아남나?

외환위기 이후 금융산업은 은행 중심의 구조조정이 급속하게 진행됐다. 외환위기 이후 올 6월말까지 금융기관의 약 40%가 합병하거나 인가 및 등록 취소, 파산, 영업 이전 등으로 문을 닫았다.

은행권과 비은행권 모두 40% 내외로 비슷한 수준이지만 은행권은 주로 합병이 많은 반면 비은행권은 등록취소·파산 등 퇴출이 많았다.

은행권은 14개 구조조정 기업 중 합병을 제외한 인가 취소, 영업 이전 등 직접 퇴출기관은 5개사(35.7%)인데 반해, 비은행권은 직접 퇴출이 667개사(77.9%)로 대조를 보였다.

인력과 점포수의 경우도 1997년에 비해 2003년 은행권은 25.5%, 16.6%가 줄어든 반면 비은행권은 43.8%, 47.1% 감소했다.

특히 생명보험업계의 경우, 지난해 임직원수는 2만6172명으로 1997년 대비 48%가 감소했으며 설계사수는 52% 줄어든 14만2173명을 기록했다. 점포수도 같은 기간 1만1379개에서 4828개로 48%나 감소, 지난 6년만에 생보산업 전반에 걸쳐 50% 이상의 몸집 줄이기가 진행된 것이다.

또 1997년 당시 33개사에 이르던 생보사 수는 현재 23개로 10개사가 퇴출당했다. 중간에 새로 들어온 외국계 보험사들을 제외하면 생보사 전체 숫자도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은행의 평균 자산규모는 타 금융권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일반은행(시중은행, 지방은행)의 평균 자산은 1999년 33.1조원에서 2004년 6월 57.8조원으로 74.8% 증가율을 보인 반면, 증권사와 보험사는 같은 기간 각각 5.4%와 25.2% 증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총자산을 기준으로 은행 대비 증권사 및 보험사의 상대적 규모는 1999년 3.7%, 10.9%에서 2004년 6월 현재 2.2%, 7.8%로 감소했다.

미국의 경우 증권사와 보험사가 상업 은행 대비 각각 53.1%, 67.4% 수준(2002년 말 기준)임을 감안할 때 은행권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각한 상태이다.

보험업계 근간을 흔드는 방카슈랑스

방카슈랑스는 소비자에게는 원스톱 쇼핑과 보다 저렴한 가격의 보험상품 제공, 보험사에게는 새로운 판매채널을 이용한 신시장 확보, 은행에게는 새로운 수입원 창출의 기회를 준다는 기대 속에서 지난해 9월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최초의 금융겸업화 모델인 방카슈랑스는 불공정행위 규제 등을 통해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3차에 걸쳐 순차적으로 개방 하는 방안으로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내년 4월 2차 시행을 앞둔 상태에서 그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방카슈랑스 도입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04년 11월 현재 전체 23개 생명보험회사 중 15개사(내국사 8개사, 외국사 7개사)가 금융기관 보험대리점을 통해 방카슈랑스를 시행하고 있다. 아직 방카슈랑스를 실시하지 못하고 있는 8개사 중 6개사도 제휴 의사를 갖고 있으나 경쟁력 및 지명도의 열세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방카슈랑스를 통한 판매실적을 살펴보면 생명보험의 경우, 2003년 9월~2004년 8월의 1년 동안 총 신계약 47만건, 수입보험료 3조7000억원의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이중 은행이 신계약건수 46만8천건(98.6%), 수입보험료 3조5914억원(96.8%)으로 절대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8월말 현재 방카슈랑스 판매실적의 96.8%를 차지하는 은행 중에서도 4대 대형은행의 점유율이 초회보험료 기준으로 72.2%에 달하고 있다. 생보사로서는 이들과의 제휴여부 및 판매비중에 따라 방카슈랑스 및 생보사업 전체의 성패가 좌우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하지만 4대 은행 중 국민, 하나, 신한은행이 이미 생명보험 자회사를 설립했고 우리은행도 자회사 설립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카슈랑스 시장은 은행계 생보사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은행권은 외환위기 이후 생명보험, 증권, 카드, 자산운용회사 등 제2금융권 업체를 인수하면서 금융그룹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명보험업계에서는 은행권의 이러한 변화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방카슈랑스가 전면 실시되면 은행들이 수수료 수입에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며 “판매 자회사를 설립, 보험 상품을 만들어 기존 보험업계를 흡수하려 들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방카슈랑스에 참여하지 못한 중소형 보험사의 경우에는 급격한 영업실적 악화로 유동성위기 및 도산까지 초래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방카슈랑스에 참여하고 있는 14개 생보사의 초회보험료는 2002년 9월∼2003년 8월중 4조3538억원에서 2003년 9월∼2004년 8월중 6조9013억원으로 58.5% 증가한 반면, 방카슈랑스에 참여하지 못한 9개 생보사는 4544억원에서 3273억원으로 28.0%나 감소했다.

또한 기존 설계사 시장도 적지 않게 잠식, 대량 실업의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방카슈랑스 시행 이후 설계사의 개인저축성보험 판매실적은 16.7%나 감소했으며 전체 개인저축성보험에 대한 설계사 개인저축성보험 비중도 78.0%에서 22.7%로 급락했다.

여기에 설계사들의 주 수입원인 보장성보험이 개방되면 대량 실업사태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게 업계와 노동계의 주장이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김창희 정책기획실장은 “방카슈랑스 확대는 전통적 영업조직인 설계사조직의 와해와 이로 인한 보험사의 경영난 심화라는 악순환으로 대량실업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방카슈랑스 폐해 심각, 연기론 대세

최근 방카슈랑스 2단계 확대 시행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보험업계의 생존을 위한 저항도 저항이지만 은행권의 꺾기(대출거래를 하면서 보험가입 권유), 끼워팔기(대출과 연계 보험 판매), 무자격자 보험 모집, 성과보상비 부당 지급 등 각종 불법·부당 영업으로 인한 폐해가 알려졌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와 생·손보협회가 공동으로 벌인 방카슈랑스 소비자 조사에서 900명의 설문응답자 중 131명(14.6%)이 꺾기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중 55.7%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지난 8~9월 전국 356개 중소기업을 상대로 기업자금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에서도 27.5%가 은행대출과정에서 보험가입 권유를 받았고, 이들 중 63.3%가 압력에 못이겨 보험에 가입했다.

또한 국정감사 기간에 금융감독원이 제출한 보고서에서도 각종 불법·부당 영업사례들이 나열됐다. 모 은행의 경우 2000만원짜리 부동산저당대출을 연장해 주면서 같은 고객에게 보험상품을 판매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은행과 보험사가 방카슈랑스 제휴를 맺을 때 은행이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불공정한 제휴관계를 관철시키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지난달 말 금융감독원 관계자가 사견을 전제로 연기를 밝혔고 재정경제부도 문제점을 인정한 상태다.
 

국회에서도 방카슈랑스 연기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된 상태다. 우제창 열린우리당 의원은 동료의원 70여 명과 함께 지난달 15일 2단계 방카슈랑스 시행을 규정한 `보험업법 시행령`에 대한 개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에 제출했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2단계 방카슈랑스 도입의 시기를 적시하지 않고 대신 ‘현재 시중은행이 판매할 수 있는 보험상품을 보험업법상의 시행령에만 규정한 것을 법률로 규정하도록 한다’고 명시, 저축성보험만 은행에서 판매가 가능하도록 법안에 규정을 했다. 이 법이 통과될 경우 2단계 방카슈랑스는 `연기`가 아니라 사실상 완전히 `폐지`된다.

정부 규제 강화, 공정 경쟁 보장해야

생명보험업계는 방카슈랑스 1단계 상품이 은행 상품과 비슷해 시장 확대라는 장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때문에 방카슈랑스 1단계 상품 판매는 지속하되 정부의 감시, 감독이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간 ‘보험아줌마부대’라는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기 위한 보험업계의 노력이 은행의 잘못된 판매로 깨질 수 있다는 염려다.

대한생명 홍보실 김영식 과장은 “지속적인 교육과 자격증 취득 등으로 보험설계사들의 질적 향상을 이룩한 상태”라며 “은행이 보험업계의 70~80년대적 과오를 반복, 보험산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욱이 당초 경제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반전되어 장기간의 경제침체로 생보업계의 영업환경 악화, 역마진 지속, 해약률 증가 등 경영위기가 심화되고, 은행은 예대마진 감소 등 은행 고유업무에서 창출되는 수익이 감소함에 따라 큰 비용부담과 리스크 없이 수수료 수입을 확대할 수 있는 보험판매에 치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은행의 보험판매 업무 허용과 같이 보험사의 금융관련 업무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특성화된 전문 금융 체계의 마련을 위해 교육훈련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생명보험업계의 경우 내부 이견이 만만치 않은 상태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계와 전업 생보사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태”라고 밝혔다.

방카슈랑스로 인해 위기가 닥친 생명보험사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재도약을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