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먹튀·정리해고’ 하이디스지회 농성 돌입
‘기술먹튀·정리해고’ 하이디스지회 농성 돌입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1.1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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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만, 다시 한국… “국가가 나서라”
[인터뷰] 이상목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장

2015년 1월 7일 하이디스 사측으로부터 공장폐쇄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은 일부는 희망퇴직으로, 일부는 정리해고로 공장을 떠나야 했다. 모기업인 대만의 이잉크(E-Ink)가 ‘기술먹튀’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빚어졌고, 노조는 공장폐쇄와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했다. 몇 차례의 농성과 대만 원정투쟁을 벌였지만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올해 3월부터 9월까지 진행된 교섭 역시 끝내 결렬됐다. 11월 15일, 여전히 76명의 노동자들이 남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 천막을 쳤다. 이상목 금속노조 경기지부 하이디스지회장은 “이제는 국가가 나서달라”고 말했다.

ⓒ 금속노조 제공

지난 11월 15일 또 다시 농성에 들어갔다. 정부서울청사 앞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투쟁을 2년 가까이 진행해 왔고, 대만으로 네 차례 원정투쟁까지 다녀왔는데도 해결된 게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그새 동료가 한 명 죽었고, 또 한 번의 원정투쟁을 기획하면서 동시에 국내에서도 대정부 투쟁을 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지난달 국회 산업자원통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만 이잉크의 하이디스 기술먹튀 문제가 다뤄졌지만 반응이 없었다. 설령 이슈가 된들 그때뿐이다. 국감을 해서 지적사항이 나오면 그에 대한 후속조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정부가 전혀 움직이지 않다. 정부기관들은 그 순간의 대응에 최선을 다할 뿐 국감이 끝나면 ‘끝난 거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산업자원통상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들이 하이디스 사건에 대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우선 산자부는 대한민국 기업의 기술이 유출되는 데 대해 현행법상 재제를 가하기 어렵다면 법을 바꿔서라도 기술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본다. 외교부 같은 경우는 우리가 대만에 원정투쟁을 갈 때 위법의 소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만 정부에서 입국을 금지하고 있는데 영사관을 통해서 조치를 해줘야 한다.

노동부는 하이디스 해고자들을 복직시키라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이행하지 않아도 사측에 이행강제금 정도만 부과한다. 사용자 측은 매년 천억 원씩 수익을 올리는 상황이고, 1인당 500만 원씩 1년에 두 번, 최장 2년까지만 내면 된다. 어느 사용자가 중노위 판정을 이행하겠나? 노동자들은 급여를 받아야 생활을 하니까 시간을 끌다 보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 노동부가 노동자들에 대해서 복직명령을 내렸으면 이를 강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돼야 한다.

올해 3월부터 9월까지 6개월 정도 교섭이 진행됐는데, 어떤 얘기들이 오갔나?

열 차례 교섭을 진행했고, 핵심 원칙에는 합의했다. 지금 남아있는 조합원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매각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생산설비가 1~3라인이 있었는데 1라인은 이전에 생산이 중단돼 있었고 2·3라인 중에 2라인을 매각해서 조합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이를 위해 매각주관사를 선정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교섭을 진행하다 보니까 이견이 생겼다. 우리는 지금 있는 공장 그대로 매각을 해서 인수자가 현 공장에서 시설을 가동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회사는 다른 데다 공장을 세워서 장비를 옮기자고 했다. 장비 따로 공장 따로 팔겠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회사가 선정하려는 매각주관사가 중고장비 업체다. 심하게 표현하면 고물상인데, 우리는 이에 동의할 수 없었고 결국 교섭이 깨지게 됐다.

굳이 지금 위치의 공장에서 생산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있나?

기존 시설, 이걸 유틸리티라고 표현하는데 전기나 가스 배관들이 쭉 연결돼 있다. 일반 가정집에서 쓰는 세탁기나 냉장고처럼 플러그만 뽑아서 옮기는 게 아니다. 각종 시설을 다 뜯어서 옮기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과 돈이 필요하거든요. 클린룸을 지어야 해서 공장을 신축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인수자가 나타나더라도 기존 시설이 다 있는데 굳이 뜯은 채로 받는다고 할 이유가 없다. 비용이 이중으로 드는 거니까. 보수만 해서 가동시키면 되는데 왜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려는지 모르겠다.

ⓒ 금속노조 제공

회사 입장에서만 봤을 때 생산을 하든지 안 하든지 특허수입이 들어온다면 아예 생산을 안 하고 특허수입만 받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주장할 수 있지 않나?

그 논리의 기반을 회사 측 법률대리인인 김앤장이 만들어줬다. 대만 이잉크가 하이디스를 인수하고 나서 지속적으로 인원을 감축하고 설비를 축소해 왔다. 그게 해고회피노력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어려운 회사가 2014년에 일반직원, 개발담당 임원, 영업담당 임원까지 해서 50명 정도 채용했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영업에 더 힘을 쓰겠다면서 개발담당 임원과 영업담당 임원을 뽑았는데, 회사를 유지하기 어려우면 채용을 안 해야 맞다.

한 걸음 더 물러나서 만약에 고객이 주문한 물량을 다 생산하고 나서 공장을 폐쇄하면 어느 정도 수긍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막무가내로 공장을 폐쇄하고 특허장사를 하려고 했다다. 설령 경영논리에 따라 그렇게 하더라도 절차가 필요한 거다. 우리나라에 노동법이 있고, 정리해고는 경영상 부득이한 경우에만 하게 돼있는데 실제로는 전혀 안 지키고 있다.

이잉크의 하이디스 인수는 결론적으로 기술먹튀가 분명하다는 주장일 텐데, 어떤 대책이 마련돼야 할까?

기술먹튀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외국자본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 외국자본이 국내에 투자할 때 인센티브를 엄청나게 받는다. 법인세를 감면받기도 하고, 토지를 거의 무상에 가깝게 임차한다. 혜택은 받지만 외국자본이 기업을 유지, 존속시키려는 의지가 없다. 구조조정해서 인건비 줄이고 자기들 수익만 챙기려고 들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