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이라니, 야박하기도 하지
각자도생이라니, 야박하기도 하지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7.02.1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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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박종훈의 프리킥

[점심시간 야구 얘기가 듣기 싫어 축구를 좋아하기로 한 불경스런 축구팬이 날리는 세상을 향한 자유로운 발길질]

제각기 살 길을 도모한다는 뜻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유행처럼 쓰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들을 때마다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꽤 유치한 유행어도, 재미없는 ‘아재개그’도 웃음으로 잘 받아주면서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표현을 돌돌 외우며 자랐기 때문일까,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 다른 이에게 기대려는 어리광이 아직도 남아서일까.

대한민국 사회는 적신호가 켜진 것 같다.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이 OECD국가 중 늘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는 것은 진즉 알고 있었지만 점점 더 정도가 심해진다. 예컨대 우울증이나 자살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지고, 공동체적 연대감이나 유대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묻지마 범죄’ 같은 흉악한 사건이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가 하면, 2016년 통계를 보면 분노운전, 보복운전 건수는 하루에 6건 이상 발생하면서 전년도에 비해 31%나 늘었다.

그런데다가 더 최근의 뉴스를 도배하다시피 한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폭발 직전처럼 아슬아슬한 상태다. 내재된 분노, 억울함이 ‘혐오’로 삐져나오고 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삭막해 가는데, 누군가 붙들어주고, 가끔 기대지는 못할망정 각자도생이라니 참 야박한 말이다. 최근 노동계에서도 각자도생은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표현이다. 일련의 사태 이후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노동계 역시 무언가를 도모하기 위해 여러 갈 길을 찾고 있다. 그 방향은 이미 예상되었던 것처럼 한 방향으로 좀처럼 모이지 않는다.

민주노총의 올해 정기대의원대회는 역시 유회되는 과정을 겪었다. 특히 논란이었던 ‘정치방침’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한국노총은 정초에 집행부가 바뀌었다. 한국노총 또한 ‘한 방향의’, 혹은 ‘확고한’ 정치방침을 세우기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단위 노동조합은, 지역은, 산별은 각자도생해야 한다. 노동계의 힘은 ‘단결된 조직력’이란 표현이 허허롭다.

아니, 어쩌면 새삼스런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네 사는 거 하루하루, 노동자들 일하는 거 하루하루가 안 그럴까? 주어진 물량, 성과 지표 아래 경쟁은 부추겨지고 있으며, 다른 이유보다도 제 살 길 찾으려고 오늘도 꾸역꾸역 버틴다. 오죽하면 살벌하게 전쟁터니, 지옥이니 하는 표현을 갖다 붙일까. 개별 조합원들의 일상이 이럴진대, 조합원들이 모인 노동조합이, 노동조합이 모인 상급조직이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좀 큰 기대치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