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닥쳐서 준비하면 이미 늦다
은퇴, 닥쳐서 준비하면 이미 늦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7.02.1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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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으로 떠넘겨선 문제 해결 어려워
[커버스토리]인생이모작, 어떻게 할 것인가 ②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알게 모르게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노후에 대한 준비 역시 거의 이루어져 있지 않다. 은퇴 후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은퇴 전에는 거의 관심조차 없다가 은퇴 후에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 같은 낭패를 방지하려면 재직 중일 때 하루라도 빨리 정년퇴직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심각한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정년퇴직 이후 고령자들의 삶에 대한 준비가 그 하나이고, 기업을 고령자 친화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다수의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주로 정년퇴직 이후의 삶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다른 언론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정년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대안은 생략하고, 기업을 고령자 친화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정년퇴직 이전의 재직 중 노동자에 대한 조치로 가장 먼저 시도된 것은 정년 연장이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촉법)을 개정함으로써 기존에 60세에 미치지 못했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이렇게 고촉법이 개정됨에 따라 정년은 60세 이상으로 연장됐지만, 그에 따르는 부수적인 문제들도 생겨났다.

논란만 키운 정부의 일방통행

우선 거론할 수 있는 것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다. 임금피크제는 2015년 노사관계의 핵심 이슈로 부각됐다. 당시 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공공기관에서부터 임금피크제 도입을 밀어붙였다. 정년을 연장하되 임금은 조금씩 양보해서 청년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정부 주장의 요지였다. 기획재정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는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임금을 깎겠다는 극약처방까지 들이밀며 임금피크제를 밀어붙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런 기획재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다수의 공공기관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민간기업 중 일부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정부가 주장했던 것처럼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라 청년고용이 늘어났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청년실업률이 해마다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주장은 임금피크제를 밀어붙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임금피크제 도입과 관련한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고촉법의 애매모호한 조항이다. 고촉법 제19조는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의무화하고(제1항), 60세 미만으로 정년을 정한 경우에는 60세를 정년으로 본다(제2항)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지는 제19조의 2에서는 정년을 연장하는 경우 사업장의 여건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제1항)고 규정했다.

문제는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의 범주가 규정되지 않아, 그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그러한 조치로 해석하고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행한 것이다.

고령화의 진전에 따라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됐을 때, 노사는 물론 정치권도 정년 연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했으나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입장을 달리했다. 노동계는 정년을 연장하되 그에 따른 임금의 손실이 없기를 바랐고, 기업은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의 부담 가중을 호소했다.

그러한 노사의 입장 차이가 반영된 게 고촉법 제19조와 고촉법 제19조의 2였다. 제19조에 따라 정년은 연장하되, 제19조의 2에 따라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타협한 것이다.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 중 한 가지로 인식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임금피크제 도입의 명분으로 청년일자리 창출을 들이민 것은 논의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었다. 정부는 정년 연장에 따라 고령자의 일자리가 늘어나면 청년일자리가 줄어든다는 편견을 이용해, 청년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이라며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제한 것이다.

고령자의 일자리와 청년일자리가 경합관계도 아닐뿐더러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청년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다는 연구결과가 쏟아졌지만, 정부는 막무가내였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하는데, 그러한 취업규칙 변경은 불이익변경에 해당한다는 것이 당시 연구자들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런 의견에도 불구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개념을 가져와 불이익변경 절차를 무시하고자 했다.

정부는 이른바 양대 지침 중의 하나인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을 지난해 1월 전격적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를 내용으로 하는 이 지침의 요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경우 불이익변경으로 보지 않으며, 따라서 노사 합의 없이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시도는 결국 임금피크제 도입을 둘러싼 법적 공방을 예정하는 것이었다. 노동계가 임금피크제를 강제적인 임금 삭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 지침은 결국 근로기준법이 정하고 있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회피하고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 지침에 따라 취업규칙을 변경한 공공기관 또는 기업에서 이를 둘러싼 소송이 이어지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청·장년 세대 간 갈등 넘어서야

정년 연장과 관련한 임금피크제 도입 논란이 크게 부각되기는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기업의 노동조건을 고령자 친화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이는 50대 이상 장년 노동자들이 일할 때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환경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장년 노동자들이 정년도 되기 전에 일터에서 퇴직하거나 밀려나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다.

많은 기업들에서 노동자들의 평균연령은 40대 중반을 넘어간다. 사회가 고령화되고 산업현장에서도 고령화가 진행된 결과이다. 이 같은 산업현장의 고령화로 기업들은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근력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근력이 떨어진다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근력은 부분적으로는 숙련으로 보완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동화의 진전으로 보완할 수 있다. 근력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은 점차 기계로 대체되어 가는 추세이기도 하므로 고령자의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은 편견에 가깝다.

생산성 하락 우려가 기우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보완되어야 할 부분은 있다. 예컨대 생산직의 경우에는 작업 현장 곳곳에 안전표지 등 경고문구가 부착되는데, 연령의 증가에 따른 노안 때문에 경고문구가 잘 안 보일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경고문구 자체를 더 크게 표지함으로써 눈에 더 잘 띄도록 개선하고, 작업 현장의 조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개선하는 게 필요할 수 있다.

이런 물리적인 부분 외에 기업들에서 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세대 간 갈등 문제이다. 많은 기업들에서 장년 노동자들과 청년 노동자들 사이에 세대 간 갈등이 나타나는데, 이 같은 세대 간 갈등은 세대 간 인식의 차이나 원활하지 못한 소통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청년 노동자들은 장년 노동자들 때문에 승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고, 반대로 장년 노동자들은 청년 노동자들에 대해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반목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같은 반목이 생기면 같은 공간에서 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기업 입장에서도 성과를 내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난해 노사발전재단으로부터 장년친화직장 만들기 지원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았던 많은 기업들에서 경험했던 것이 바로 이런 세대 간 갈등 문제이다.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장년 노동자들과 청년 노동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화합할 수 있도록 인사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령 청년 노동자들이 승진에 대한 불만을 장년 노동자들 탓으로 돌리지 않을 수 있도록 공정하고 합리적인 승진제도를 마련해 시행하는 것과 같은 방안이 필요하다.

장년 노동자들의 집중력이 낮아지는 것도 보완해야 할 지점이다. 연령 증가에 따른 집중력 하락을 보완하기 위해 장년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인다든지, 혹은 장년 노동자에게 적합한 직무를 발굴하는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노동시간=임금’이라는 인식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은 곧 임금 하락이라고 인식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우려는 정부의 지원제도를 활용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

또 장년 노동자들이 지닌 숙련도를 노동자 개인이 아닌 기업의 숙련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숙련도 전수를 위한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장년 친화적인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기업들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아직까지는 그 성과가 크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장년친화적인 사업장으로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숙련된 기술을 가진 노동자가 필요할 땐 기업에서 인력을 육성하고 숙련을 전수하는 대신 노동시장에서 그런 기술을 지닌 노동자를 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 기업은 정년을 연장해 고령자를 오래도록 고용하고 숙련기술을 육성해 전수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을 비용으로 인식한다. 장년 노동자들이 지닌 숙련된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인다는 인식이나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기업이 이렇게 인식하면 노동자들은 자신의 고용을 유지할 가능성에 대해 불안감을 갖게 되고, 그러한 불안감은 결국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어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기업은 노동자를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으로만 생각하면서 생산성이 정체되거나 하락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 구직을 위해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는 노인들

은퇴설계, 이제 막 걸음마 단계

장년 노동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일할 수 있게 기업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과 함께 재직 중에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도록 하는 일이다. 보통은 정년퇴직 이후를 고민하는 50대 장년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은퇴설계 또는 노후설계라는 이름의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노후설계가 본격적인 화두로 부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러한 교육이 성과를 내고 있는 사례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드물다.

지난해 한국지엠이 노사 공동으로 진행한 장년 노동자 생애설계 교육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막상 정년퇴직을 할 거라고 생각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런 교육을 통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정년퇴직 이후에 재취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지 정보를 얻고 싶었는데, 교육에서는 자기개발을 해야 한다거나 전문적인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라는 식의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내용만 이야기하니 아쉬움이 남는다”고 평가했다. 한국지엠에서 시행한 교육 프로그램이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례를 통해 보완되지 못했고, 사무직 또는 금융권 종사자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어서 생산직이 대부분인 교육 대상자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현대중공업에서는 전직지원 교육이 상당한 정도로 활성화돼 있었다. 수년에 걸쳐 누적된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정년퇴직 예정자들이 구체적인 은퇴설계를 하고, 그에 따라 창업이나 재취업과 관련한 동아리활동을 통해 정년퇴직 이후를 준비하는 데까지 나아갔던 것이다.

대기업도 이러한 교육을 진행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만큼, 중소기업이 재직 노동자들로 하여금 정년퇴직이후를 준비하게 하는 것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불가능에 가깝다. 더구나 재직 중에 정년퇴직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도 아직까지는 널리 확산되지는 못하고 있다.

각 기업들에서 재직 중에 정년퇴직 이후를 설계하고 준비하는 일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이 같은 준비를 노동자 개인이나 개별 기업에만 떠넘기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결국 정부 차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년퇴직 이후라는 특정시기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을 설계하고 그에 맞춰 각 연령대별로 계획을 실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자 개인도 생애주기에 따라 자신의 커리어를 관리하고 개발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노동조합과 기업, 정부가 이를 입체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고령화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 사회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