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건 지키되 내려놓을 건 내려놔야
지킬 건 지키되 내려놓을 건 내려놔야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7.02.1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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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고용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커버스토리]인생이모작, 어떻게 할 것인가 ③

주변에서 정년퇴직 후 받은 퇴직금으로 통닭집을 열었다가 빚만 잔뜩 떠안고 문을 닫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업종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지만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한두 번쯤 들어보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다. 한 통계에 의하면 2013년 기준 서울지역의 신규 사업체 생존율은 첫 해 71%에서 5년차에 30%로 낮아진다. 새로 문을 연 사업체 10곳 중 7곳은 5년 이내에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신규 사업체들이 모두 퇴직금을 밑천 삼아 시작한 점포는 아니겠지만, 이 정도 되면 자영업으로 성공한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보통 정년퇴직 등을 통해 주된 일자리에서 은퇴한 이들이 많이 생각하는 게 창업과 재취업, 귀농·귀촌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된 일자리 고용유지·연장이 관건

정년퇴직 이후의 일과 삶이 모두 녹록치 않지만, 재직 중에는 이를 심각하게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재직 중에는 정년퇴직 이후를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까지 있다. 많은 수의 정년퇴직 예정자들이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귀농해서 농사를 지으며 전원생활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에 익숙해진 삶이 농촌의 일상에 적응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노사발전재단 서울센터에서 은퇴자들을 상담하고 있는 임수정 수석컨설턴트는 “그렇게 농촌에 갔다가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면서 “거의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던 이들은 농촌으로 내려가면 1년은 버틸 수 있겠지만 그 이후에는 무료함을 많이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귀농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찾아온 이들은 “자기가 예전에 했던 일을 계약직이나 촉탁직, 아니면 파트타임 형식이라도 다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들은 대부분 정년퇴직 전에 은퇴 이후에 대해서 거의 고민을 하지 않았거나, 혹은 고민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재직 중에는 답도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고, 당장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살림살이가 내일을 생각할 여유를 빼앗기도 한다. 사회적으로나 직장 내에서 정년퇴직 이후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게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그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사치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나마 고령화의 진전에 따라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서 노후준비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공포마케팅이 섞이기는 했지만 노후에 10억 원이 필요하다느니 15억 원이 필요하다느니 하는 광고가 눈길을 끌면서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는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은퇴를 앞둔 장년 노동자의 고민을 속 시원하게 풀어줄 만한 해법은 어디에도 없다.

이와 관련해 노사발전재단 이호창 지역협력팀장은 “주된 일자리에서 오래 일하는 것, 고용 유지와 고용안정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호창 팀장은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연령이 49세인데, 정년은 60세로 돼 있고, 실제 은퇴연령은 71~72세이니까 거의 20년 정도의 차이가 있다”면서 “정년과 연금 간에 정책적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는데, 외국에서도 일치하는 나라는 없지만 적어도 정책적으로는 정년과 함께 연금을 수령할 수 있게 일치시켜 놓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고령화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본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소득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러자면 주된 일자리에서의 정년연장 등 고용안정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정된 고촉법에 따라 올해부터 모든 사업장의 정년이 60세 이상으로 규정되지만, 현실적으로는 60세인 기업이 많다. 하지만 연금 수령연령은 지난 2013년 이후 5년 간격마다 단계적으로 상향조정되는데, 현재는 61세부터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즉 정년과 연금 수령연령 사이에 1년의 차이가 발생하며, 향후 연금 수령연령이 65세까지 높아지면 5년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이 같은 차이를 일컬어 ‘소득 크레바스’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 같은 문제뿐만 아니라 주된 일자리에서 오래 일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주된 일자리는 말 그대로 가장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로, 주된 일자리에서 오래 일한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적으로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통계에서도 확인되듯이 우리나라에서 주된 일자리에서의 퇴직연령은 평균 49.1세이며, 주된 일자리에서 정년을 맞는 비율도 8.2%에 불과하다.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 법으로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연장했지만, 권고사직이나 명예퇴직 등 조기퇴직을 통해 주된 일자리를 떠나는 비율이 주된 일자리에서 정년을 맞는 비율보다 훨씬 높다. 그만큼 정년연장의 실효성이 낮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은 임금피크제와 같은 비용억제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외국에서는 기업의 인사제도를 장년 친화적으로 개선한다든지 장년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외국에서는 작업환경을 개선하거나 작업조직을 개편하고 건강관리 등을 통해 장년 노동자들을 활용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정책이 활성화되고 있다.

장년고용서비스 턱없이 부족하다

노동자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주된 일자리에서 정년을 맞을 수 없는 경우, 다시 말해 주된 일자리에서 조기에 퇴직하는 경우에는 빠르게 재취업을 할 수 있도록 전직 또는 재취업 지원제도가 준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각 지역의 고용센터나 노사발전재단 등을 통해 일부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우선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전직 및 재취업 지원서비스가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재 재취업을 희망하는 장년층이 늘고 있고, 그 다양성도 증가하고 있어 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전직 및 재취업 지원서비스가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 및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공공고용서비스를 이용하는 장년층의 비중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기관의 수도 부족하고 한 기관이 관장하는 지역이 너무 넓어 장년 구직자들의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 양적인 부분이 중심이 되다 보니 구직자에게 필요한 맞춤형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이호창 팀장은 “종합적인 장년고용전문기관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장년고용과 관련된 사업이 여러 부처와 기관에 분산되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기 때문에 사업과 역할이 중복되기도 하고 반대로 사각지대도 생기고 있다.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처럼 취약계층 일반을 대상으로 지원되는 서비스가 아니라 장년층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울러 장년층의 직업생애 단계별로 맞춤형 지원을 강화할 필요도 제기된다.

결국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체계화된 장년고용전문기관을 설치하고, 이 기관을 통해 다양하고 특화된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노사의 인식 전환 절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 내부에서 노사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장년고용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퇴직 후에 준비하는 것은 너무 늦다”는 점이다. 노동자가 정년에 이르기 전에 퇴직 이후에 대한 준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업의 노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수정 컨설턴트는 이 같은 점을 강조하면서 한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공공기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정년퇴직한 은퇴자가 노사발전재단을 찾아왔는데, 상담실에 들어가자마자 화를 내더라는 것이다. 자기가 60세까지 남들보다 길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혜택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정년을 채우고 회사를 떠나게 될 때는 나가서 뭘 먹고 살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느냐면서, 자기가 퇴직하기 전에는 노사발전재단과 같이 장년 노동자들이 재취업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있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구직자의 화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야 비로소 풀릴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정년퇴직 후 재취업을 희망하는 노동자들이 전직 또는 재취업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년 노동자들에 대한 기업의 인식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기업은 장년 노동자들을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정년까지 안고 가야 하는 비용으로 인식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년 이후를 고려해야 할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기업의 입장에서는 장년 노동자들을 위해 재직 중에 시간을 할애해 생애설계니 은퇴 후 준비니 하는 것들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장년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퇴직 전 교육 등을 통해 동기부여와 직업역량의 향상을 도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이 부족하기는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필요한 사업이라 하더라도 당장 눈앞에 수치로 표현될 수 있는 성과가 없으면 그 지속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기업의 인사제도를 장년 친화적으로 개선한다든지 정년 적합직무를 발굴하고 적용하는 것과 같이 그 성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 사업들에 대해서는 언제 지원이 끊길지 알 수 없다.

이와 같은 제도들을 개별 기업 차원에서 도입하고 시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자금의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에서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화되고 있는 사업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부분인데, 정부는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성과가 있는 사업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울시가 추진하는 50플러스센터 사업처럼 여력이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나름대로 움직이지만, 그렇지 못한 지방자치단체는 시도를 못하는 게 현실이다. 또 각 부처마다 고령화에 대비한다면서 사업을 집행하다 보니 비슷한 사업들이 중복되기도 하지만, 이를 총괄해서 조정할 전담기관은 없는 상태다. 심지어 각 부처 또는 지자체가 비슷한 사업을 하면서도 다른 기관에서 하는 것은 포퓰리즘이고 자기 부처나 기관에서 하는 것은 필요한 정책사업이라고 우기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고령화 시대를 대비할 종합적인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생애를 설계해보자

그렇다고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는 게 정부나 기업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개별 노동자들의 노력도 있어야 한다. 지금 장년 노동자들에게 가장 먼저 밥하고 된장찌개 끓이는 방법부터 가르쳐줘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정년퇴직 등으로 일자리를 떠나게 될 때 허무감을 맛보지 않으려면 스스로에 대한 변화관리가 필요하다. 날마다 일터를 중심에 두고 생활해 왔다면, 이제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가족과 대화하기 위한 노력부터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변화관리를 위해서는 자신의 나이에 상관없이 지금 바로 자신의 생애를 설계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먹고 살기도 벅차고 빠듯한데 생애설계 같은 거창한 계획을 세울 여유가 없다고 하소연할 수도 있지만, 지금 여유를 찾지 못한다면 이후에도 여유를 가질 수 없다.

생애설계는 정년퇴직을 앞둔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자기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생애주기별로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를 계획하는 것이 생애설계다. 생애설계에는 결혼이나 자녀 출산, 내 집 마련, 정년퇴직 등과 같이 살아가면서 중요한 고비가 될 순간이 언제일지, 그런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필요한 자금은 어떻게 마련할지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지금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끝이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세대 간 연대를위해 직책이나 직군을 조정하는 문제 등을 받아들일 준비도 필요하다. 지금 가진 모든 것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하다 보니,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만 물러서도 끝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대신 자신이 필요한 자리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고 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컨대 장년 노동자에 대한 노동시간 단축이나 적합직무로의 배치전환 등과 같은 문제는 내 자리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풀리지 않는다. 그런 태도는 자신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고령화라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무조건 양보하라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가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조합이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