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 노조 경력 안 썼다” 황당한 해고
“이력서에 노조 경력 안 썼다” 황당한 해고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2.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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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노위,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모두 인정
[리포트]조양산업 노조탄압

지난해 11월, 이전 직장에서의 노동조합 위원장 경력을 이력서에 적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사가 노동자를 해고하는 황당한 일이 한 업체에서 일어났다. 해고 당사자는 그보다 보름 정도 앞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보복성 해고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12월 27일 이 사건에 대해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다. 울산 북구에 위치한 조양산업(주)의 이야기다.

 

열악한 처우에 채용공고는 연중 지속

조양산업(주)은 자동차 엔진부품인 ‘인테이크 매니폴드’(인매니)를 제조하여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케피코, 현대글로비스 등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에 납품하는 업체다. 인매니는 엔진 내부로 흡입된 공기를 실린더로 배분하여 연료가 연소될 수 있도록 돕는 부품이다. 이처럼 자동차 엔진을 구성하는 여러 부품들 중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터라 조양산업에서는 인매니의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공장이 가동된다.

이은규 조양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해 7월 조양산업에 입사했다. 노조 설립일이 10월 13일인 점을 감안하면 입사 후 3개월 동안의 수습기간이 끝나자마자 노조 위원장직을 맡은 셈이다. 여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조양산업의 임금체계는 매우 단순하다. 기본급과 상여금 단 두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 많은 국내 기업들이 호봉제에 기반을 둔 기본급 비중을 줄이고, 성과급과 각종 수당을 붙이는 것과는 크게 대비된다. 조양산업 노동자들은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를 할 때의 가산임금을 제외하고 어떠한 수당을 받지 않는다.

단순한 임금체계가 복잡한 것보다는 낫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지만, 조양산업은 기본급이 너무 적어서 문제가 됐다. 이곳 노동자들은 입사 후 수습기간 동안에는 그 해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고, 수습기간이 끝나면 그보다 100원 더 받는다. 입사 후 1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다시 100원 더 많이 받는데, 근속연수에 상관없이 같은 금액을 받는다. 1년간 일한 노동자, 5년간 일한 노동자, 10년간 일한 노동자 모두 최저임금보다 200원 더 받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월 급여는 200만 원 수준을 상회하는데, 주야 2교대 근무가 이루어졌던 데다가 사실상 토요일 특근이 의무화 돼 있어서다.

낮은 임금과 긴 노동시간 이외에도 조양산업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8시간 근무 후 추가 2시간의 연장근로 전까지 15분 남짓 휴게시간이 주어지는 동안 노동자들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열악한 처우로 인해 노동자들의 입·퇴사가 꾸준히 반복돼 최근 1년간 조양산업의 퇴사자 비율은 30%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는 조양산업의 채용공고가 1년 내내 올라와 있다. 조양산업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근속연수 1년 미만이고, 극히 일부의 현장관리자를 제외하면 3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입사 하루도 안 돼 퇴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노조 설립하자 “귀띔 안 해줘 유감”

이은규 위원장은 조양산업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런 곳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입사 한 달이 지날 무렵 팔꿈치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외측상과염 진단을 받았다. 팔에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힘줄이 손상된 것이다. 업무로 인한 질병이었지만 이은규 위원장에게 주어진 것은 고작 4일 간의 병가뿐이었다. 이마저도 무급이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현장관리자는 “무급병가 3일 밖에 안 되는데 사정 얘기해서 이번 주까지 휴무 후 다음 주부터 출근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 관리자는 심지어 “일단 사직을 하고 치료를 마친 후 재입사하라”는 취지의 말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조양산업의 시간 당 생산량은 적게는 1,600개에서 많게는 1,800개에 이른다. 이는 타 업체에 비해 60~80% 가량 많은 것이다. 이은규 위원장은 “5kg에 이르는 부품을 일일이 손으로 옮기면서 조립을 반복하는데다가 생산속도까지 빠르다 보니 몸이 성할 일이 없다”고 전했다. 업무강도가 높아 작업 중 상해를 입는 노동자들이 자주 생겨났지만, 산재 처리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결국 지난해 10월 13일 이은규 위원장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동료 7명과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 위원장은 “입사한 지 3일 만에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혼자만 도망가려고 하니 무엇보다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노동조합을 설립하기까지의 고민을 털어놨다.

그런데 노동조합설립신고증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조양산업 사측은 노동조합을 압박해 오기 시작했다. 노조 설립 나흘 뒤인 17일 조양산업 A상무이사와 B생산차장 등은 이은규 위원장과 노조 간부 4명을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면담이 시작되자 이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들에게 “노조를 왜 만들었냐”는 질문이 날아들었다. 이은규 위원장이 노조 설립 이유를 설명하자 “노사협의회로 충분하다”거나 “노조 설립 전에 귀띔을 해주지 않아 유감이다”라는 내용의 발언이 이어졌다.

하지만 조양산업에는 노사협의회가 구성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이는 30명 이상의 노동자를 상시 고용하는 사업장에서 노사협의회 운영을 의무화 한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이다. 회사는 노조가 설립되자 그제야 노사협의회 구성에 나섰으나, 근로자위원 선출이 투명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등 파행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조양산업 사측은 이은규 위원장에게 노사협의회 의장직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한 회유책에 지나지 않았다.

노조 위원장의 이상한 해고사유

상황이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조양산업노조가 소속된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이하 ‘금속노련’) 울산경주지역본부 관계자들이 진상 파악을 위해 회사를 찾았다. 회사 측 임원들은 이 자리에서 “노동조합이 생기면 회사가 어려워져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취지의 말만 되풀이했다. 대화가 공전을 거듭하면서 단위노조 차원의 원만한 해결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이은규 위원장 앞으로 징계위원회 출석통지서가 총 두 차례에 걸쳐 날아왔다. 10월 27일자 첫 번째 출석통지서에서 언급된 징계사유는 이은규 위원장이 이전 직장에 있을 때 노조 활동을 했던 경력을 밝히지 않은 채 조양산업에 입사했다는 게 핵심이다. 이 위원장이 옛 직장에서 노조 위원장을 한 것은 맞지만, 조양산업 취업규칙에 명시된 채용 제한 요건에는 노조 활동 경력이 들어있지 않다. 또 채용 전 면접 당시 자리에 배석한 면접관들은 노조 활동을 포함해 특별히 경력을 묻지도 않았다.

두 번째 출석통지서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연속 3일을 초과하여 결근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회사 측이 주장한 ‘연속 3일을 초과한 결근’이란 이은규 위원장이 팔꿈치 인대 파열로 나흘 간 냈던 무급병가를 가리킨다. 정황상 업무로 인한 질병일 가능성이 매우 큰데도 불구하고 무급병가를 내도록 한 것도 모자라 이를 무단결근이라며 말을 바꾼 것이다. 사측은 이 위원장의 병가를 무단결근으로 둔갑시키기 위해 그가 일하던 부서의 관리자로부터 허위 진술서를 받기까지 했다.

결국 이은규 위원장은 11월 2일 징계위원회가 끝난 뒤 같은 날 해고통보를 받았다. 해고통보서에 언급된 해고사유를 종합하면, ▲입사 시 중요한 경력사항을 숨기고 입사하여 수습기간 3개월이 지난 즉시 사내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연속 3일을 초과하여 결근하였으며 ▲근무시간 내에 작업장 내 근로자에게 노동조합 가입을 지속적으로 권유함으로써 사내 질서를 문란케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노조 설립과 활동이 이은규 위원장의 해고사유임을 짐작케 한다. 이에 이 위원장과 조양산업노조는 해고통보 이틀 뒤인 4일 조양산업을 상대로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냈다.

그러나 회사는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이 접수된 이후에도 사실상의 노조 와해 행위를 이어갔다. 노조 탈퇴를 거부한 조합원이 대기발령 조치되고, 노조 간부 3명은 징계위원회를 통해 감봉 1개월 처분을 받았다. “근무시간 중 노동조합 단체복을 착용하여 사내 질서를 위반했다”는 게 이유였는데, 회사는 금속노련의 거센 항의를 받고 징계를 철회했다.

지노위 “더 살펴볼 필요 없다” 노조 손 들어줘

한편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1월 4일 접수된 이은규 노조 위원장의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사건을 두 달여 가까이 지난 12월 27일 마무리 지었다. 부산지노위는 조양산업 사측의 이은규 위원장 해고는 부당해고임과 동시에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또 1월 23일 노사 양측에 발송한 판정서를 통해 이를 수령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이은규 위원장을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기간 동안의 임금을 지급하라고 사측에 명령했다.

판정서에 따르면 부산지노위는 노조 측이 제시한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했을 뿐 아니라, 노조 측의 신청취지를 대부분 받아들였다. 반면 사측이 이은규 위원장의 해고사유로 제시했던 경력사항 누락, 무단결근, 근무시간 중 노조 활동 등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구제신청 심판 과정에서 사측이 제시한 증거는 자충수가 되기도 했다. 사측은 해고사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일부 노동자들로부터 받은 진술서를 증거로 제출했는데 그 내용이 “인메니 모듈라인 이은규 사원은”으로 시작해 “작업을 방해한 사실이 있었음을 진술합니다”로 끝나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이에 더해 부산지노위는 판정문에 ▲진술서가 이근규 위원장의 징계해고일인 11월 2일보다 8일가량 늦은 시점에 작성된 점 ▲회사 측이 이 위원장의 근무시간 중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달리 구체적인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는 점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해고사유의 정당성이 명확히 결여된 데다 회사 측이 제시한 증거의 신뢰성마저 크게 떨어지면서 부산지노위는 “징계절차 및 양정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살펴볼 필요가 없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나아가 “징계해고는 노동조합 설립을 이유로 행해진 불이익 취급의 부당노동행위”라며 판정의 의미를 보다 명확히 했다.

이 같은 심판결과에 대해 금속노련 관계자는 “지노위가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를 모두 인정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며 “지노위의 이번 판정은 조양산업 사측에서 얼마나 터무니없이 노조탄압을 자행해 왔는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조양산업 사측은 하루라도 빨리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단체교섭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금속노련은 지난해 10월 28일자로 조양산업노조로부터 교섭권 및 단체협약 체결권을 위임받은 상태다.

하지만 회사는 노동조합의 존재를 인정할 뜻이 없는 듯하다. 금속노련에서 교섭을 요구하자 대표이사 출장을 이유로 일정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거꾸로 이은규 위원장을 노조 측 교섭위원에서 빼줄 것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회사의 대표이사 이 모 씨는 지난 12월 27일 부산지노위의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판정에도 불구하고 “대법원까지 가겠다”는 발언을 공공연히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회사 측의 이 같은 행보를 납득하기 위해서는 매우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 측의 노동조합에 대한 이 같은 거부반응은 노조 설립 이후부터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조사 과정에서 “(회사 측 관리자가)노조탈퇴 안 할 시에는 일 안 시키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정시 퇴근하라고 했다”거나 “회사 문 닫으면 닫지 사장은 노조랑 절대 합의 안 한다”는 등 조합원의 진술이 이어졌다. 금속노련 울산경주지역본부 관계자가 회사 측과 면담을 위해 방문한 자리에서도 “회사 내에 노동조합이 생기면 원청에서 오더(발주)를 주지 않는다”, “노조가 설립되면 회사 문 닫는다”는 내용의 발언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부산지노위는 조양산업에 이은규 위원장의 원직 복직과 해고기간 동안의 임금 지급을 이행한 후 그 결과를 오는 3월 10일까지 문서로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회사 측의 입장이 강경한 탓에 해당 사건이 중앙노동위원회에 넘어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