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강요 받는 조합원… 공공기관 본질을 고민
‘각자도생’ 강요 받는 조합원… 공공기관 본질을 고민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7.02.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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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혁신, 노동운동의 테두리를 넓히자
[인터뷰] 현상훈 한국산업인력공단노동조합 위원장

지난해 11월 치러진 한국산업인력공단 노동조합 임원선거에서 ‘혁신노조’의 기치 아래 현상훈(위원장)박치덕(수석부위원장) 후보조가 당선돼 13대 집행부를 이끌게 됐다. 새로운 13대 집행부가 만들어가고자 하는 변화와 혁신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이라는 공공기관 울타리 안에서가 아니라, 넓게는 노동운동 전반의 지형에서 고민해야 할 화두를 품고 있다. 

▲ 현상훈 한국산업인력공단노동조합 위원장

정권마다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는 것이 이제는 마치 공공기관의 숙명처럼 느껴진다. 그동안의 현황은 어떠한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갖고 있는 고유한 기능과 목적, 사업이 있음에도, 그 역할을 다하는 데는 태생적인 한계가 분명히 있다. 예를 들자면, 공단의 한 해 예산이 1조 2천억 원 가량인데, 그중 4천억 원이 자체 예산이고, 8천억 원은 고용노동부에서 공단에 위탁한 사업에 대한 예산이다. 산하기관으로서 주무부처의 손발 역할로 진행하는 사업이 예산 규모로만 두 배 더 큰 것이다.

그러다보니 공공기관으로서, 혹은 공공기관 종사자로서 공공성이라는 부분을 일을 통해 어떻게 강화해 나가느냐에 대해 고민이 크다. 예산이 편성되고 거기에서 주어지는 물량대로 일을 꾸려나가야 한다. 성과는 모든 부분이 계량지표화되고 거기에 따라 성과연봉제와 같은 이슈까지 연결되는 거다.

예를 들어 일학습병행제라는 제도적 과제가 주어지면, 도입 초기부터 몇 개 이상의 기업을 모집하라는 식으로 업무량이 할당되는 것이다. 그걸 소화하지 못하면 당연히 실적이 하락하는 거고. 이걸 어떻게 해서든 달성해야 한다. 올해 사업이 끝나면 차후년도에는 최소 20% 이상은 더 물량을 잡아야 한다.

그렇다고 인원이 늘지는 않는다. 물론 최근 3년은 청년 취업을 늘리기 위해 신입 직원들이 들어왔다. 문제는 그들이 숙련된 인력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이라는 것이다. 국정과제들이 인턴들의 손에 의해 수행되는 형태로, 일단 앞으로 나아가고 보자는 거다.

전에도 그런 경험이 있지만, 노조 위원장이 되고나서 밤 10시가 넘어 사무실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본사 건물을 한참 바라보고 서 있었던 적이 있다. 창문에 불이 켜진 사무실이 절반이 넘었다. 이건 굉장히 비정상적인 거다. 그냥 감내하면서 지내다보면, 어느 시점에는 임계치를 넘어 문제가 폭발할 것이다.

공단 본사가 울산으로 이전한 이후 조합원들의 여건은 어떠한가?

업무과중 정도를 포함해 지방이전 문제까지, 조합원들의 노동조건이나 삶의 질은 전보다 계속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1,300여 조직에서 본사에 400명은 근무를 해야 하니 1/3 정도가 울산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인사발령 때마다  전혀 연고가 없는 곳에서, 갑자기 근무를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른다. 울산광역시에서 혁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을 보면 말 그대로 삶의 터전을 울산으로 옮긴 이들은 20%가 채 안 된다. 공단이 25% 수준이니 좀 높은 편이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내려가라니 내려온 것인데, 그러면 구성원들의 삶은 송두리째 바뀐다. 단신부임은 단신부임대로 문제 거리이고, 가족들을 데리고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는 것도 역시 문제이다. 그 과정에서 감내해야 하는 고통들은 조합원들 자신은 물론, 그 가족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조합원 아내들이 연고 없는 울산으로 옮겨온 이후에 겪는 우울감이나 이런 부분의 부정적인 지표들은 엄청나다.

정착지원금이 20만 원씩 나왔는데, 본사 이전이 2014년이었고 2년이 지났으니 이제 그것도 없다. 20만 원이면 서울까지 두 차례 KTX 왕복하면 끝이다. 아무튼 공공기관 지방이전이라는 것이 일단 추진된 것이고, 그런 과정들을 그동안 현장에서도 겨우겨우 버티며 3년째에 접어드는 것이다. 구성원들의 삶은 어떠할지, 기관이나 국가에서는 어떤 것을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그냥 각자도생인 거다.

선거 과정에서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그 내용은 무엇인가?

공공기관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해 봤다. 정책이라는 것이 공공성이라는 가치와 윤리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이, 일단 수립되고 시행되며, 문제가 발생하면 미세조정하고, 상황에 각자 적응할 수 있도록 약간의 인센티브를 주면서 그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계속 이런 모습에 딸려가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

두 가지 변화와 혁신의 지점은 바로 공공기관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공공성을 회복하는 수준이 아니라 확대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하나이고, 그것을 만들어가기 위한 우리 내부의 변화가 둘째이다.

공공성을 강화하는 본질적인 이슈를 깊이 고민하고 실천해 나갈 주체는 바로 조합원들이다. 임기를 채우면 떠나갈 경영진들은 여기에 관심이 없다. 주도적으로 이런 고민들을 이끌어나갈 주체는 20년, 30년 근무해야 하는 조합원들이고, 그들의 고민을 한 목소리로 담아낼 수 있는 조직은 노동조합밖에 없다.

그러한 역할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노동조합도 자신들의 조직 논리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조합원들의 임금을 조금 더 올리는 수준, 성과연봉제 도입이 단순히 우리의 이익을 침해할 거 같으니까 반대하는 수준의 조합 활동에 그쳐선 안 된다.

그동안 산업인력공단 노동조합은 이인상 위원장, 손종배 위원장, 선배 집행부를 거치며 노동조합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쌓아온 역량이 있다. 이를 기반으로 노동조합은 앞으로 공단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를 치르면서 알게 된 점인데, 현장의 조합원들은 단순히 1번 후보를 지지하는가, 2번 후보를 지지하는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좀 더 근본적으로 노동조합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 그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2008년 이후 입사한 비교적 신입 직원들이 이제 공단 안에서 44%를 점하고 있다. 이들의 생각과 니즈는 기존의 선배들과 확연히 다르다.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을 매번 갈아치우면서 입사한 동량들이다. 이들은 실제 일선 현장에서 가장 많은 업무를 하고 있고, 생산성도 높다. 그럼에도 초임삭감 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은 크게 느끼고 있다.

공단 조직 안에서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노조 위원장이기 전에 공단의 직원으로 느끼는 점이지만,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돼 공단이 수행하고 있는 사업들에 의아하게도 노동계는 별 관심이 없다.

이유는 한 가지다. 공단의 사업 대상은 노동계의 주요 고객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라고 할 때, 대부분은 대기업 노동조합이다. 공단이 사업을 통해 지원하는 대상은 거의 전부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하루아침에 조직률을 90%로 끌어올리는 것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면, 지금이라도 노동계는 지금까지의 노동조합 활동이라는 울타리에 기대 안주할 것이 아니라, 좀 더 활동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