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비관 이분법 넘어 변화와 대응에 초점을
낙관-비관 이분법 넘어 변화와 대응에 초점을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2.14 16:28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업4.0’ 시대 노동시장의 지각변동
[리포트]산업4.0 시대의 일자리

1년 전 세계경제포럼(WEF) 으로부터 촉발된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이슈는 점점 진화하고 있다. 향후 20년 내 미국 일자리의 절반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전망과 더불어, 현존하는 직업들을 인공지능·로봇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순서로 나열한 도표는 국내에서도 자주 회자되곤 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은 “내 일자리는 사라지는가?”라는 물음으로 모여들었다. 단순히 ‘모 아니면 도’식으로 낙관론과 비관론을 구분하기 보다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가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 일자리 61.3%는 로봇으로 대체

한국고용정보원은 우리나라 인공지능·로봇 분야 전문가 21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국내에서 로봇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직업을 조사해 지난 1월 3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현존하는 직업의 61.3%가 오는 2025년이 되면 인공지능·로봇으로 대체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정보원은 지난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프레이(C. Frey)와 오스본(M. Osborne) 교수가 내놓은 자료를 토대로 인공지능·로봇으로 대체될 확률이 70% 이상인 직업을 ‘고위험 직업군’으로 분류했다. 다시 말해 국내 직업의 61.3%는 2025년 인공지능·로봇으로 대체될 확률이 70% 이상이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에게 사람의 업무수행능력이 어느 수준까지 인공지능·로봇으로 대체될지 7점 만점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도록 했더니 2016년 2.76점에 불과한 점수가 2025년에는 4.29점까지 올라갔다. 업무수행능력을 업무기초능력, 기술능력, 대인능력, 신체능력, 자원관리능력 등으로 보다 세분화하여 살펴보면, 전문가들은 사람의 신체능력(4.60점)이 가장 대체 정도가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반대로 장비 설치 및 유지보수, 설계, 품질 또는 조직체계 분석, 전산 등과 같은 기술능력(3.97점)이 인공지능·로봇으로의 대체 정도가 제일 낮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직업별 대체 비율을 계산했더니 환경미화 및 주방보조 업무(100%), 매표원(96.3%), 청원경찰(92.8%), 음식배달 업무(88.8%) 등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반면 대체 비율이 낮은 직업으로는 회계사(22.1%), 네트워크 보안 전문가(33.8%), 대학교수(37.0%), 세무사(37.9%) 등이 있다. 이른바 단순 직종에 가까울수록 인공지능·로봇으로의 대체 비율이 높았으며, 관리 직종이나 전문 직종에 가까울수록 그 비율이 낮았다. 이는 해당 직종이 신체능력을 우선으로 하는지, 기술능력을 우선으로 하는지에 따른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

비관론 vs 낙관론이 다는 아냐

고용정보원의 조사결과와 같이 인공지능·로봇에 의한 일자리 대체와 관련한 논의가 있을 때마다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으레 따라붙는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다가올 미래를 비관적으로 느끼게 할 때가 많다.

이와는 반대로 낙관론도 존재하는데, 대개는 19세기 초 영국의 러다이트(기계파괴운동)에 대한 후대 사람들의 비판 논리와 흡사하다. 과거를 돌아보면 기계가 발달함에 따라 사라진 일자리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그보다 더 많은 양과 종류의 일자리가 생겨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다.

그러나 지난 12월 14일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노동시장 전략연구회 연구결과 발표회’의 ‘일의 미래와 노동시장 분과’에서는 비관론도 낙관론도 아닌 중립론이 제기됐다. 전체 일자리 수가 줄어들지, 늘어날지 여부는 기술 발전 자체에 달린 것이 아니라 여기에 대응하는 제도와 정책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해당 분과의 주제 발표를 맡은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오히려 직무 변화에 따른 일자리 변화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도록 새로운 직무를 학습하고 이에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점에서 비관론이나 낙관론 중 어느 한 쪽에만 기대지 않는 시각에서는 일자리의 수량적 변동보다는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세부적으로는 근로계약 유형의 변화, 보상 지급 방식의 변화, 전통적인 노동규범의 변화가 언급된다.

이른바 ‘산업4.0’ 시대에는 플랫폼 경제의 확산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정규직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줄어들고, 프리랜서나 기간제 일자리가 그 빈 곳을 채울 가능성이 높다. 또한 노동의 대가가 주어지는 기준이 노동시간에서 성과로 옮겨가는 추세가 더욱 굳어질 전망이다. 그리고 대량생산 시대에 확립된 기업조직과 노동관계법이 변화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이상의 내용이 이날 행사의 ‘일의 미래와 노동시장 분과’에서 다루어진 노동시장 변화의 모습들이다.

지각변동에 따른 충격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

‘일의 미래와 노동시장 분과’는 본격적으로 산업4.0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으로 인한 사회적 충격을 줄이는 것이 향후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의 기조가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선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업무에 대한 노동자들의 적응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를수록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빠르게 대체되고, 그러한 기업 역시 도태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사의 경우 지금은 지식 전달자로서의 역할과 학생들의 멘토로서의 역할을 겸하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지식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대체한다면 교사는 학생들과 감성적으로 소통하는 역할이 지금보다 강조될 것이다. 이때 일선 교사들에 대한 직무교육과 같은 정책은 교육환경 변화와 개인 사이의 완충작용을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적응력을 높이는 방안의 다른 예로는 평생교육이 거론된다. 청소년 또는 청년기에 배운 내용을 정년 때까지 활용하는 시스템이 이미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으로 이어지는 의무교육과정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기술과 지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최근 유치원생들에게까지 코딩 교육을 시키는 게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은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하지만, 지금까지의 직업세계와 다른 미래에 대비한 직업교육 수요가 상당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실무에 이용할 수 있는 기술과 지식의 학습을 개인에게 맡겨둘 경우 사회적 비용이 과도하게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초·중·고 교과과정과 직업교육을 연계하거나, 새로운 기술의 습득을 필요로 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직업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