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구원에서 국내 1호 노동이사 탄생
서울연구원에서 국내 1호 노동이사 탄생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2.1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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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과 연구원 잇는 가교 역할 기대
[인터뷰] 배준식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지난해 4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표한 ‘노동존중특별시 서울 2016’에는 간접고용 노동자 직접고용을 비롯해 다양한 노동정책이 담겨 있다. 특히 돋보였던 정책은 ‘근로자이사제’였다. 근로자이사제는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 대표가 기업의 이사회에 노동이사로 참여하여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로써 독일, 프랑스, 덴마크 등 유럽 14개 나라에서는 이미 시행 중이다.

지난 1월 5일 한국에서도 근로자이사가 탄생했다. 국내 1호 노동이사로 임명된 배준식 서울연구원 도시경영연구실 연구위원을 만났다. 본문에서는 용어의 일반적인 쓰임에 맞춰 ‘근로자이사제’를 ‘노동이사제’로, ‘근로자이사’를 ‘노동이사’로 했다.

▲ 배준식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서울시의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 1명 내지 2명이 이사회에 비상임이사로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서울시 근로자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에 의하면, 정관 상 정원이 100명 이상인 기관에서 노동이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해야 한다. 그 대상에는 전체 서울시 투자기관 중 13곳이 해당된다. 조례로 정해진 노동이사의 수는 300명 이상인 기관의 경우 2명이고, 300명 미만인 기관의 경우 1명이다.

노동이사에게는 별도의 보수를 지급하지 않으며, 안건 심의에 별도의 경비가 소요되는 경우 수당 및 여비를 실비로 지급한다. 또한 노동이사는 노동조합의 조합원이나 노사협의회의 근로자위원 등 노동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직책을 맡아서는 안 된다.

서울연구원은 지난해 12월 12일 직원 투표를 통해 배준식 연구위원을 노동이사로 선출했다. 배준식 연구위원은 전체 노동자 291명 중 234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125명(53.4%)의 지지를 받아 노동이사에 당선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월 5일 배준식 연구위원을 서울연구원 노동이사로 공식 임명했다.

‘국내 1호’ 노동이사로 선출, 임명됐다. 외부의 시선이 부담될 법도 한데, 감회가 어떤가?

아무래도 국내 첫 사례니까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우리 연구원에서도 직원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기대도 크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연구원 경영의 패러다임이 많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사회 참여를 통해 직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사안과 관련하여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문제를 제기할 것은 확실히 제기하도록 노력하겠다. 정말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노동이사 선거에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연구원에는 직장협의회(노사협의회)가 있다. 지금 몇몇 직원들이 근로자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근로자위원도 온라인 전자투표를 통해 선출하고 있다. 그런데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입후보를 한다기보다는 떠밀리다시피 하는 경우도 있고, 약간 형식적인 방식으로 운영된 게 사실이다. 근로자위원들이 직원들의 의견을 취합해서 건의를 하지만 원활하게 수행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직장협의회라는 것이 그 동안은 아주 단단한 협의체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근로자위원은 아니었지만 직장협의회 활동을 하는 직원들과 가끔 술 한 잔씩 하면서 같이 이야기도 나눴다. 그러던 차에 서울시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게 됐고, 주변에서 출마해 보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받았다. 서울연구원 내에 20년씩 일하신 선배들이나 여러 선임연구위원이 있어서 내가 감히 나가도 될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내 전공이 재정, 예산, 회계 분야이기도 해서 용기를 갖고 도전했다.

선거는 어떻게 치러졌나? 선거에서 공약한 게 있다면?

처음에 노동이사제가 도입된다고 했을 때 직원들이 ‘저게 뭐지?’ 하는 반응을 보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직원들이 직접 노동이사를 선출하고 나니까 노동이사제 시행에 대해 실감하는 것 같았다.

서울연구원이 아무래도 연구조직이라 그런지 직원들이 의사표현을 강하게 하거나 거창하게 선거운동을 하지도 않았다. 정견 발표나 공약 홍보도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서 진행했다.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차분했지만, 출마를 위해 직원들의 서명을 받으면서 보니까 많은 직원들이 관심을 보였다. ‘좋다’, ‘해봐라’ 하는 식으로 격려도 많이 받았다.

서울연구원 직원들은 박사급 연구원들과 행정업무 담당 직원들이 정규직이고, 일반 석사급 연구원들이나 과제 한 건당 계약되는 연구원들, 환경미화원 같은 시설관리직은 비정규직이다. 인원수로 보면 비정규직이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혜택은 정규직 대상으로만 한정돼 있다. 예를 들어 자녀 학비 보조수당이나 사내 근로복지기금 같은 혜택들은 정규직에만 제공된다. 이러한 혜택들을 직원 전체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김수현 원장이 부임한 이후 소통을 굉장히 강조했지만, 원외 전문가들이나 시민고객들과의 소통에 중점을 두면서 원내 소통은 다소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원내 소통을 활발히 하겠다는 얘기를 했다. 부가적으로 비정규직 연구원들의 고용안정, 행정지원 조직의 승진 적채 해소, 근무환경 개선, 이런 것들을 강조했다.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서울연구원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서울시 산하의 여러 기관들 중에서도 서울연구원은 시민들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조직은 아니다. 하지만 연구사업 계획을 짤 때 보다 시민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시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본격적으로 노동이사로서 활동을 시작하면, 서울연구원이 보다 시민에게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박사들은 높은 자리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구원들도 아이디어를 가지고 연구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고, 그 연구사업 계획을 짜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박사들도 결국 지식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노동이사제를 최초로 도입함으로써 서울연구원이 노동친화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직원들의 복지 확대뿐만 아니라 직원 간 차별을 없애는 방향으로 경영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 배준식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노동계에서는 노동이사제를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였지만, 노동이사의 수가 한 명 내지 두 명에 불과하다는 점에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이사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가령 서울연구원의 경우 이사회가 12명의 이사로 구성돼 있는데, 한 명이 거기에 들어가서 의결권을 가진다고 해서 무슨 영향을 미치겠느냐는 아쉬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한 명의 파급력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한 명이라도 노동자 대표가 들어가면 아무래도 경영진들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견제 세력이 없을 때에는 아무래도 경영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기 쉬운데, 이제는 의결권을 통해서 목소리를 뚜렷하게 낼 수 있으니까 함부로 할 수 없다.

서울시가 협치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서울연구원에서도 직원과 경영진 간에 협치가 활성화 할 수 있는 계기는 만들어졌다고 본다. 이전에는 직장협의회의 근로자위원들이 정기적으로 직원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경영진에 그것을 전달했다. 그렇지만 직원들의 다양한 의견이 이사회에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확신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이를 테면 경영에 관한 의견이나 요구사항이 제시되면 연구원장 선에서 받아들이거나 끊을 수 있었다. 이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경영에 참여해서 어떠한 사안을 안건으로 올리자는 얘기를 할 수가 있게 된 점은 확실히 달라진 부분이다. 물론 앞으로 실제 어떤 효과가 발휘될 것인지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여러 미흡한 점이 있을 수 있지만 점차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일단 한 명이라도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다른 한편으로 경영계는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는데, 심지어 경영권 침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경영이 투명하지 않으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닐까? 경영의 투명성에 자신이 있으면 노동이사제를 꺼릴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서로 대화와 설득을 통해서 합리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노동이사도 합리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면 되지 않나. 오히려 직원들이 경영 참여를 통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충분히 인지하면 노사화합에는 훨씬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경영권 침해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노동이사제를 통해 경영의 투명성이 올라간다면 고객들에게 좋은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기업 가치가 상승할 수 있다. 기업 가치가 상승하면 오히려 경영자 입장에서도 굉장히 좋은 일 아닌가.

노동이사의 역할이 단순히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협상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내가 직원을 대표해서 직원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입장이지만 한편으로는 경영진이기도 하다. 이사회에서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마찰을 일으킬 생각은 없다. 모든 걸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

갈등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중간에서 이해조정자 역할을 충실히 해서 그것들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내가 판단을 잘해야 할 것 같다. 그러라고 노동이사를 뽑은 거 아니겠나. 다만 건전한 노사문화라든가 건강한 조직운영을 위해서 경영상의 잘못된 부분은 바로 시정을 하고 견제를 하는 기본 역할에는 충실할 생각이다. 이사회라는 공간을 통해서 노사가 협상을 벌이거나, 뭘 주고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동이사제가 처음 시행되는 만큼 어려움도 따를 것 같다. 앞으로 이사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둘 생각인지?

의결권 행사에 중점을 둘 부분은 당연히 내가 공약했던 사안들이다. 요컨대 공평한 복지혜택, 비정규직 고용불안 해소, 원내 소통 활성화, 근무환경 개선, 협치의 경영문화 구축 등이다. 만약에 이사회에서 ‘원 오브 뎀’(One of them)이다, 즉 이사들 중에 의결권 하나를 노동자가 가져가는 것뿐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달리 방법이 없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노동이사제가 얼마나 의미 있는 제도인지 이사회와 경영진에게 설명하는 일은 나의 몫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향후 서울연구원 차원에서 유럽의 노동이사제와 서울시의 노동이사제를 비교해 보고, 노동이사제가 서울시 산하 기관의 경영이나 노사관계에 어떤 순기능을 하는지 연구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서울연구원은 서울시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노동이사제와 싱크탱크의 역할이 맞물려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만 점이 있을까?

물론 연구조직이니까 앞으로 제도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해볼 만 한 것 같다. 스웨덴이나 독일 같은 유럽 국가에서는 이와 같은 제도를, 어떤 데는 100명 미만의 작은 회사에서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제도들이 어떤 순기능을 하고 있는지, 노사관계는 이 제도를 기반으로 어떻게 발전해가고 있는지 연구를 해서, 민간기업이나 공공기관에 파급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본다.

아쉽게도 서울연구원은 종합연구소를 지향하고 있으며, 투자 규모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노동정책과 관련한 내용만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이나, 부서가 있지는 않다. 경제실에 노동경제를 연구하는 박사가 한 사람 정도 있는 정도. 예를 들면 한국노동연구원 같은 곳처럼 노동에 특화된 팀을 만들거나, 전공분야를 노동 분야에 집중해서 사람을 뽑기는 힘든 상황이다. 앞으로 강화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