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이런 전염병
번아웃, 이런 전염병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2.15 10:25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칼럼] 성상영의 촌철살인미수

[한 마디 말로 큰 위력을 발휘할 때를 ‘촌철살인’이라고 하지만, 그게 참 쉽지가 않다.]

특검에 출석하는 ‘비선실세’ 최순실 씨에게 한 청소노동자가 날린 한 마디가 시민들의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줬다.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을 이용해 국정에 관여한 것도 모자라 각종 이권을 챙긴 최 씨가 오히려 당당하게 “민주주의 특검”을 외치자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염병하네”. 이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이 말은 ‘이런 전염병(또는 장티푸스)에 걸릴!’이라는 뜻이다. 그 청소노동자는 뒷날 인터뷰에서 자신의 말버릇일 뿐이라고 했지만, 과연 어떤 표현이 그 네 글자보다 더 시민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 줄 수 있을까. 그래서 시민들은 오랜만에 통쾌함을 느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진짜 ‘염병’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겪고 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에 이어 최근의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까지 사람, 가축 할 것 없이 전염병의 공포에 떨었다. 정부는 전염병 앞에 유난히 무능했고, 방역체계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메르스로 38명이 사망했고, 조류인플루엔자로 3,000만 마리의 닭이 살처분됐다. 곧이어 발생한 구제역은 얼마나 농가의 피해를 더할지 예상조차 어렵다. 전염병의 원인은 병원체다.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따위의 것들은 동물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병을 확산시킨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전염병과 싸워왔고, 이 싸움은 앞으로 더 힘들어질 거라는 의학자들의 경고가 잇따른다. 전염병과의 전쟁이 완전히 종식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밝지 않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인간들만 걸리는 전염병이 생겼다. 이른바 ‘번아웃 증후군’이다.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는 이 용어에 대해 ‘직업 생활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피로의 상태’로 정의한다. 번아웃 증후군의 원인으로는 과도한 업무, 잦은 야근, 만성적인 스트레스 등이 언급된다.

‘구로의 등대’라는 한 유명 게임회사에서는 최근 세 명의 노동자가 잇따라 과로사해 파문이 일었다. 이어 드러난 해당 업체의 30시간 연속 근무 등 초과노동 실태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동시에 사람들은 이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빌딩숲을 환하게 밝히는 불들의 개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있거나 잠재적 환자인지 가늠케 한다. 한국 노동자들의 연간 노동시간이 2,100시간이 넘는다는 OECD 발표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번아웃 증후군은 곳곳에 퍼진 전염병에 다름 아니다. 이 병에 가장 효과적인 항바이러스제는 휴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