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의 뫼비우스 띠에 갇힌 20대
불안감의 뫼비우스 띠에 갇힌 20대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3.0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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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너무나 가혹한 취업시장
[커버스토리] 빨라진 대선, 노동을 묻다 ①
한국 사회를 뒤덮은 ‘촛불’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쌓아두고 외면해 왔던 폐단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각계각층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으며, 무엇에 힘들어하고 있나? 정치적 국면도 크게 요동치고 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때 이른 대선정국으로 들어선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의 면면이 구석구석 회자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과연 ‘노동’이란 이슈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큰 변화의 시기를 맞아 노동은 어떤 의미로 다뤄져야 할 것인가?

1987년 이른바 민주화 이후에 태어난 오늘날의 20대는 다른 한편으로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로 불린다. 조부모세대, 부모세대가 일궈놓은 물질적 풍요를 한 몸에 받고 자랐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빈곤에 허덕이는 세대로 전락했다. 갈수록 커져가는 학자금 부담과 도무지 넓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취업의 문 앞에서 20대는 끊임없이 좌절한다. 사회에 막 첫 발을 내딛은 20대는 ‘포기하는 법’을 가장 먼저 배운다. 부쩍 빨라진 대선을 앞두고 20대는 할 말이 많다.

청년 체감실업자 180만 시대, 20대는 일하고 싶다

20대에게 가장 절실한 사안은 취업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70% 로드맵’을 제시하며 그 일환으로 청년일자리 48만 6천 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청년실업자 수는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33만 1천 명에서 2016년 43만 5천 명으로 오히려 10만 명 넘게 늘었다. 그리고 같은 기간 청년고용률은 39.7%에서 42.3%로 2.6%p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정부의 노력은 청년실업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지난해 6월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5년 8월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청년 체감실업률을 산출했는데, 무려 34.2%나 됐다. 청년 체감실업자 수는 무려 179만 2천 명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통계청이 발표한 공식 청년실업률은 8.0%로, 현대경제연구원의 발표와는 4배 이상 차이가 난다. 공식실업자 수만을 토대로 실업률을 산출한 통계청과 달리, 현대경제연구원은 다양한 고용보조지표를 모두 반영했기 때문이다.

청년일자리 문제와 관련한 용어의 변화 과정을 보면 그 심각성을 더 절감하게 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청년의 취업 문제를 표현한 단어는 ‘취업난’이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청년실업’이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2010년대 들어 ‘3포 세대’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뒤 숫자가 조금씩 커지더니 ‘n포 세대’라는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꽉 막힌 취업문으로 인해 ‘n’의 자리에 어떠한 단어를 집어넣어도 어색하지 않다.

오늘날 20대는 한 가지라도 덜 포기하기 위해 이력서를 채워나간다. 서류전형이라도 통과하기 위해서는 대학성적, 어학점수, 자격증 개수만으로 부족해진 지 오래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자소설’을 쓰고, 기업이 요구하는 직무능력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수많은 지원자들 중에서 한정된 인원을 뽑아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보다 특색 있는 채용기준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그런 와중에 연초부터 주요 기업들이 신규채용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20대 청년구직자들의 한숨이 짙어지고 있다.

20대의 취업, 결말 없는 여정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20대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까지 거치는 과정에는 ‘스펙 쌓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취준생’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부모나 형제·자매 등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는 한 당장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당장 취업을 준비하지는 않더라도 용돈 벌이는 적잖은 고민거리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설령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더라도 ‘임금꺾기’를 비롯한 여러 악조건에 노출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20대의 48.8%는 ‘평생을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살게 될까 두렵다’고 답했다. 20대의 한숨은 어렵사리 취업문을 통과한 후에도 이어진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졸 신입사원의 채용 후 1년 내 퇴사율은 27.7%에 달한다. 이는 2014년에 비해 2.5%p 가량 상승한 수치다. 또한 300인 이상 기업과 300인 미만 기업의 퇴사율 격차는 더 벌어졌다. 입사 후 1년 내 퇴사를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조직 및 직무적응 실패’(49.1%)다. 다음으로 ‘급여 및 복리후생 불만’(20.0%)과 ‘근무지역 및 근무환경에 대한 불만’(15.9%)이 각각 2위와 3위에 올랐다. 직무와는 상관없이 취업 자체에 중점을 두면서 힘들게 입사한 직장을 떠나 ‘돌아온 취업준비생’이 된다는 얘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13세에서 24세까지의 청소년들이 직업 선택 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세 가지는 적성·흥미(33.2%), 수입(27.0%), 안정성(22.8%) 등이다. 그러나 연령이 높아질수록 적성이나 흥미를 후순위로 미루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그 결과 첫 직장에 발을 들이더라도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어려워질 개연성이 커진다.

실패가 용인되는 환경 조성이 급선무

지금까지 정치권이 20대 청년층을 향해 내걸었던 일자리 공약은 대개 지표와 수량이 중심에 있어왔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대선주자들은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몇 개를 만들겠다는 식의 공약을 발표하는 데 열을 올렸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공약은 공약(空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단기간에 성과로 홍보할 수 있는 지표를 내세우는 게 이목을 끄는 데 도움을 될 수도 있겠으나, 지금의 20대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일자리의 내용이다. 일자리의 개수가 아무리 많이 늘어나더라도 임금이 턱없이 낮거나 늘 고용불안에 떨어야 한다면, 다시 취업시장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지속될 게 뻔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불안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적성과 흥미, 수입, 안정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최적의 조건에 맞는 직장을 탐색하기까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기 마련이다. 당장의 삶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직업 탐색비용까지 더해진다면 미래를 내다보기 어렵다.

예컨대 서울시에서는 만19세 이상 29세 미만의 미취업 청년 3천 명을 대상으로 매월 50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해주는 ‘청년수당’ 제도를 시행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와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성남시에서 시행 중인 청년배당 역시 시행 당시의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실패가 곧 사회적 낙오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