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은커녕, 모든 것이 어중간한 세대
안정은커녕, 모든 것이 어중간한 세대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3.0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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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삶에 적응하고 순응한다
[커버스토리] 빨라진 대선, 노동을 묻다 ②
한국 사회를 뒤덮은 ‘촛불’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쌓아두고 외면해 왔던 폐단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각계각층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으며, 무엇에 힘들어하고 있나? 정치적 국면도 크게 요동치고 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때 이른 대선정국으로 들어선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의 면면이 구석구석 회자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과연 ‘노동’이란 이슈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큰 변화의 시기를 맞아 노동은 어떤 의미로 다뤄져야 할 것인가?

20대는 젊지만 돈이 없다. 50대는 돈을 가졌지만 나이가 많다. 그렇다면 3~40대는 어떤가. 모든 것이 불안정하다는 20대 시기를 거쳐 안정적인 삶을 기대하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다. 어쩌면 모아둔 돈도 나이도 삶의 위치도 가장 어중간한 세대다.

2017년 현재 한국사회에서 30~40대 노동자들은 적응의 달인이다. 비교적 단순했던 산업화 고용시기를 거쳐 고용형태가 다양해졌다. 베이비부머의 부상을 보고 자란 이들이 변화된 고용시장 속에서 느끼는 괴리감은 크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지 오래다. 1년 미만 반복 근로자 수가 급증했다. 이 속에서 이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적응하기’다. 30대는 결혼을 포기하고, 40대는 내 집 마련의 포부를 접는다. 과거와 달리 고학력 전문 인력으로 사회에 나온 30, 40대 여성들의 경력단절 문제도 난제다. ‘정년’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이던 ‘희망퇴직’도 요즘은 3~40대와 부쩍 가까워졌다.

30대 초반 실업자 증가

2016년 하반기 들어 30대 초반(30~34세) 청년층 실업자가 크게 늘었다. 경기침체로 인해 일자리가 준 것도 영향도 있지만, 임금과 근로여건이 악화되면서 더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실업자가 되는 이들도 많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30~34세 실업자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9월 30대 초반 취업자 수는 재작년 같은 달에 비해 16만 8,000명이나 감소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고용감소가 더해진 결과다.

2015년까지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인구 효과’만 두드러졌지만 작년 4월부터는 고용악화로 인한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용악화로 인한 취업자 감소는 남성의 경우가 여성보다 컸다. 특히 지난 9월 30대 초반 실업자의 95%는 직장을 다닌 경험이 있는 ‘전직 실업자’였다. 이 중 실직 기간 1년 미만인 사람의 비중은 74.7%였는데, 이들의 퇴사 사유는 직업 여건 불만족(39.8%), 개인·가족적 이유(23.0%), 임시직·계약 만료(10.8%) 순이었다.

늦어지는 취업에 3~40대 캥거루족 확대

이런 배경에서 캥거루족이 늘어나고 있다. 캥거루족이란 커다란 새끼를 아기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캥거루처럼 어른이 됐음에도 자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지해 사는 젊은세대를 의미한다. 한국에서 처음 사용되던 200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하고도 독립하지 않는 20대 청년들을 지칭했지만, 현재는 3~40대에게까지 확장돼 나타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독립을 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이른바 ‘연어족’, 취업을 했어도 부모 집에 함께 살면서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전세금과 생활대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는 첫 직장 생활을 하는 나이가 2008년 27세에서 30대로 높아진 영향이다.

갓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은 인턴과 수습 등의 시기를 거치며 받은 낮은 임금을 모으기는커녕, 자신의 생활비를 감당하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작년 취업 포털 인크루트는 국내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신입사원 연령에 대해 ‘평균 31.2세’라는 암묵적인 마지노선을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저소득 - 미혼’의 연결고리

한국사회에서는 소득이 낮을수록 결혼을 하지 못한다. 소득에 따른 결혼 양극화 현상은 작년 11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를 분석해 작성한 ‘출산과 청년 일자리’ 보고서에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5분위 이하의 남성 기혼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은 절반도 결혼하지 못하는 것이다. 30대 남성 중 소득이 가장 적은 1분위부터 4분위까지의 기혼율은 27%포인트, 중소득층인 5분위에서 7분위는 19%포인트가 줄었다. 반면 고소득층인 8분위에서 10분위의 기혼율 감소는 4.6%포인트에 그쳤다. 남성은 학력, 안정된 일자리, 적정임금 등을 확보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여전한 것이다.

여성의 경우는 달랐다. 고용형태, 임금 등과 기혼율의 상관관계에서 남성과 같은 특징은 보이지 않았다. 이는 장시간 노동으로 일과 생활의 양립이 어려워 기혼여성의 상당수가 출산과 자녀의 양육기에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30대 女, 경력단절 비율 증가

지난해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8.4%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비슷한 캐나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74.2%)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30대 여성의 경력단절이 주 원인이다. 한국 여성의 연령별 경제활동 참가율은 20대 이하와 60대 이상을 제외하고 30대(60.1%)가 가장 낮다. 최근 조사에선 기혼 여성 2명 중 1명은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재취업하는데 까지는 평균 8.4년이 걸렸다. 지난 2월 21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내용이다.

한편, 경력단절의 주요 원인은 결혼과 출산, 육아 등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여성들은 기존업무가 아닌 단순노무나 판매직으로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2013년 여성의 경력단절로 인한 한국의 잠재소득 손실은 GDP 대비 4.9%다.

희망퇴직자 속출

희망퇴직은 회사가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원 감축이 필요할 때 노동자로부터 퇴직신청을 받는 것이다. 법정 퇴직금 이상의 위로금을 주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자의 선택이 아닌 압박에 의해 사실상 ‘해고’당하는 경우가 많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된 희망퇴직은 주로 40대 이상 고연차를 대상으로 시행 시행됐지만, 최근 들어서는 30~40대로 그 연령이 더 낮아졌다.

조선업 위기에 따른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한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경영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20대 젊은 노동자들도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되는 추세다. 한창 일해야 할 30~40대에 희망퇴직을 당하는 이들은 재취업은 물론, 생계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하다.

그야말로 ‘끼인 세대’

불안정한 현실은 20대를 지나 30대에도 계속된다. 취업 자체가 늦어지는 추세도 있으며, 직장을 다니더라도 여건이 녹록치 않다. 대한민국의 3, 40대는 그래서 ‘포기’를 시작한 세대다.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과 육아를 포기하고, 내 집 마련을 포기한다. ‘희망퇴직’의 연령층이 부쩍 내려오면서 이제 3, 40대는 일자리마저도 포기를 강요당한다. 험난한 현실의 삶 속에서 이들 세대들의 생존전략은 ‘적응하기’다. 그렇게 현실에 순응하면서도 안정은커녕, 모든 것이 어중간한 세대, 불안한 대한민국의 초상이다. 30대와 40대, 대한민국 사회의 기반이라고 볼 수 있는 이들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