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이라고?’ 베이비부머의 설움
‘기득권이라고?’ 베이비부머의 설움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3.0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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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일할 때지만 현실은 장벽
[커버스토리] 빨라진 대선, 노동을 묻다 ③
한국 사회를 뒤덮은 ‘촛불’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쌓아두고 외면해 왔던 폐단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각계각층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으며, 무엇에 힘들어하고 있나? 정치적 국면도 크게 요동치고 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때 이른 대선정국으로 들어선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의 면면이 구석구석 회자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과연 ‘노동’이란 이슈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큰 변화의 시기를 맞아 노동은 어떤 의미로 다뤄져야 할 것인가?

한국사회에서 50대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 끝자락에 위치해 경제성장기와 민주화시기, 그리고 외환위기를 모두 겪었다. 한국전쟁만 빼놓고 본다면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세대가 한국의 50대다. 그런 그들에게 사회는 기득권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아버지들의 높은 임금으로 아들이 취업을 못 하고 있으니 임금을 깎겠다고 한다. 반평생을 가족을 위해 일만 하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50대에게 대선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50대가 임금피크제로 얻은 것은

지난해 상시 근로자 수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정년 60세가 의무화 된 데 이어 올해부터는 300인 미만 사업장도 정년이 60세 의무화 조항을 적용받았다. 정년을 60세로 하도록 굳이 법률에 명시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고령화 진행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유난히 빠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년제를 도입하고 있는 기업의 평균 정년이 58.6세에 지나지 않아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기업별로 정년을 정해두고 있더라도 이를 다 채우지 않고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2013년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남성 노동자의 평균 퇴직연령은 55세였다. 여성노동자의 경우 이보다 훨씬 낮은 51세에 불과했다. ‘사오정’(45세가 정년)과 ‘오륙도’(56세까지 회사에 남아있으면 도둑)라는 말은 정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퇴직하는 노동자들의 실상을 나타내준다. 동시에 적당히 나이가 되면 눈치껏 나가달라는 암묵적인 압박도 깔려있다.

하지만 50대의 대부분은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며, 이들의 주된 고민거리는 자녀 교육문제다. 50대의 두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는 이들이 직장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된다. 이러한 현실은 정년 연장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비교적 쉽게 형성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그런데 아무런 조건 없이 정년만 60세로 늘리자니 기업의 비용부담이 걸림돌이 됐다. 지난 2013년 국회에서 정년 60세 법안이 논의되자 임금피크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년을 60세로 보장하는 만큼 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조정(감액)하자는 제안이었다.

특히 정부가 이른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공공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기업에까지 임금피크제 도입 열풍이 몰아쳤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임금피크제가 청년일자리 부족을 해결할 만병통치약처럼 선전했다. 임금피크제를 통해 아버지가 ‘양보’를 하자 딸이 취업에 성공하면서 결국 부녀가 ‘윈-윈’할 수 있다는 광고가 전파를 탔다. 졸지에 50대 아버지들은 기득권을 자녀 세대에 양보하지 않는 매몰찬 집단이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50대 아버지 기득권설’은 성립되지 못했다. 한국노총이 지난해 1월 산하조직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 10곳 중 5곳이 신규채용을 하지 않았거나 계획조차 없었다. 임금피크제와 청년일자리 문제를 무리하게 연관 지으면서 세대갈등만 부추겼다는 비판이 자연스럽게 제기됐다. 나아가 임금피크제 시행이 실제 정년 60세를 보장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여부도 생각해 볼 부분이다.

명퇴해도, 정년 채워도 퇴직 이후는 무방비

50대의 대다수는 스스로 ‘한창 일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회사를 나오더라도 뭐든 할 자신이 있지만 막상 할 일을 찾기는 어렵다. 한때 명퇴바람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둔 50대 노동자들이 치킨집, 편의점 사장님으로 대거 변신했다. 회사를 나오면서 받은 퇴직금을 종자돈 삼아 점포를 임대하고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하지만 자영업자 10명 중 7명은 5년을 채 버티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결국 퇴직금으로 조그마한 가게라도 열어보려던 50대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은퇴설계사들도 50대에게 창업을 잘 권하지 않는다.

자영업자로도 살아남기 힘든 마당에 50대는 상당한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정규직 노동자로 근무하다가 직장을 그만둔 50대 남성의 절반 정도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퇴직한 것이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취업의사는 있지만 구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들도 많다. 이들은 구직을 포기한 이유에 대해 ‘이미 찾아보았지만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원하는 임금이나 노동조건에 맞는 일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라고 말하는 50대도 적지 않다.

설령 새로 직장을 구하더라도 이전처럼 정규직으로 일하기란 쉽지 않다. 이전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던 50대 노동자 중 절반만이 다시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다. 이처럼 고용형태가 악화되면 소득이 급격히 감소하게 돼 극단적으로는 빈곤가구로 추락하게 된다. 법정 정년 60세를 온전히 채워도 그 이후의 생계는 여전히 큰 걱정거리로 남는다.

이를 이유로 본격적으로 명퇴와 정리해고가 줄을 잇던 1990년대 말 이후 전직지원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전직지원제도는 말 그대로 새로운 직장을 얻을 수 있도록 기존의 사업주나 국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해고나 퇴직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고, 전문적인 지원을 통해 개인의 상황에 맞는 진로를 탐색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한편 50대의 일자리 지원을 위한 현 정부의 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지금의 직장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방향과, 퇴직 후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취업을 지원해주는 방향 등이다. 앞서 언급된 정년 60세 의무화나 임금피크제의 경우가 전자에 해당한다. 그리고 전직지원제도나 장년취업인턴제의 경우가 후자에 해당한다.

축 처진 50대 다시 날아오를까

임금피크제를 국가적 차원의 과제처럼 추진해 온 정부는 지금도 여전히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며 ‘일자리 창출 효과’에 대해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임금피크제 시행이 얼마나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는지, 그로 인해 신규 고용을 얼마나 창출했는지 효과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연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도입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 대비 17.5% 수준. 하지만 고용효과는 미지수다.

한창 목돈이 들어갈 ‘생애주기’인 점을 감안할 때, 소득이 감소하기 시작하는, 최악의 경우 일자리에서 퇴출될지 모르는 50대들의 어깨는 오늘도 무겁다. 밑에서는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위에서는 어떻게든 버티려 드는 사이에 끼인 대한민국의 베이비부머 세대, 그들의 미래는 오늘도 불투명하다. 전쟁의 참화 이후 태어나 한국 사회의 발전을 견인해 온 그들이 다시금 힘찬 꿈을 펼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