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점검 나왔습니다” 검침원의 한숨
“가스점검 나왔습니다” 검침원의 한숨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3.0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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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연속, 멀고 험한 검침원의 길
[리포트] 도시가스 검침원 노동현장

도시가스는 난방, 취사 등에 쓰이며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지만 달마다 집으로 날아드는 요금고지서는 반갑지 않다. 특히 보일러를 많이 트는 겨울철이면 우편함에 꽂힌 종이만 봐도 등골이 서늘해지곤 한다. 요금고지서 발송 시기가 되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계량기를 확인하는 검침원들도 가슴을 졸이기는 마찬가지다. 건물 외벽 어딘가에 숨어있는 가스계량기를 찾기 위해 검침원들은 곡예를 펼쳐야 한다.

생소한 이름 ‘안전매니저’

전국 도시가스 보급률은 78%에 육박한다. 서울지역의 경우 전체 가구의 96% 가량이 도시가스 배관과 연결돼 있다. 과거 가정에서 널리 사용되던 연탄은 이제 고깃집에서나 볼 수 있고, 액화석유가스(LPG)를 주문해 사용하는 집도 일부만 남았다. 전기요금, 상하수도요금과 더불어 도시가스요금을 ‘3대 공과금’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가스가 배관을 타고 집집마다 들어가면서 전기나 상하수도처럼 매월 계량기 검침을 주 업무로 하는 노동자들이 생겼다. 이들 도시가스 검침원들은 자신이 맡은 구역을 다니며 계량기에 표시된 숫자를 확인해 휴대용단말기에 입력한다. 그리고 정해진 날짜에 고지서를 작성해 송달한다. 도시가스 검침원과 전기·상하수도 검침원의 기본 업무는 외견상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도시가스 검침원들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업무가 더 있다. 이들은 계량기 검침뿐만 아니라, 상·하반기 각 1회씩 가정을 방문해 가스밸브와 보일러 부근에서 가스 누출이 발생하는지 여부까지 점검해야 한다. 이 때문에 도시가스 검침원을 ‘안전매니저’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끔 초인종을 누르거나 현관문을 두드리며 “가스점검 나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바로 안전매니저(검침원)들이다.

도시가스가 각 가정으로 공급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검침원들은 도시가스 공급 사슬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역별 민간 도시가스 공급업체가 한국가스공사로부터 가스를 공급받아 개별 가구에 판매하지만, 이외의 업무는 별도의 고객센터 운영업체에 대부분 위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지역의 경우 5개 민간 공급업체가 서로 권역을 나누어 가스를 판매하고 있고, 모두 합쳐 71개의 고객센터가 운영 중이다.

고객센터의 주된 업무는 도시가스 설치 및 가스레인지 연결, 계량기 검침 및 점검, 요금고지서 송달, 가구별 안전점검, 기타 민원업무 등이다. 2015년 말 기준 서울지역 도시가스 고객센터 직원 수는 모두 1,753여 명인데, 이 중 검침원이 1,048명으로 가장 많다. 소비자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만큼, 400만 곳을 훌쩍 넘기는 가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서울 강서구 서울도시가스(주) 사옥 전경

틈새 비집고, 담 넘고… 차라리 곡예사라 불러다오

검침원들은 가구 수에 비하면 천 명이 결코 많은 인원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 자신들의 업무에 대해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달에 한 번 계량기 숫자를 확인하고 1년에 두 번 무전기처럼 생긴 측정기를 배관에 갖다 대는 일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냐고 여기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고객센터 소속 인원 중 검침원이 가장 많다고는 하지만 서울지역 검침원 한 명이 맡은 계량기 수는 단순계산으로도 4천 대 수준이다. 구역별로 면적과 세대 밀집 정도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하루 200대 꼴이다.

서울 서북부 지역에서 일하는 검침원들의 경우 한 달에 봐야 할 계량기 수가 3,400대 가량이다. 하루 170여 대를 살펴보는 셈이지만, 곳곳마다 검침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산재하다. 실제로 검침원 A씨의 도움을 받아 서울의 모처를 다니면서 그 실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집집마다 무난하게 계량기 숫자를 읽을 수 있는 곳이 대체로 많았지만, 입이 벌어질 정도로 열악한 곳도 적지 않았다. 사람의 키가 닿지 않는 높이에 계량기가 있는가 하면 담을 넘어야 하는 곳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곳은 계량기가 위치한 벽이 옆 건물에 바짝 붙어있어 외투를 벗고 배에 잔뜩 힘을 준 후에야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온갖 집기가 아무렇게 나뒹구는 장소도 많아 넘어져 다칠 위험도 커 보였다. 계량기 검침이 아니라 곡예에 가까웠다.

우리는 새로 건물이 올라가면 계량기를 어디에 다는지부터 봐요. 계량기를 너무 높이 달아놓으면 뭐든 딛고 올라가야 하는데, 계단 한 칸이라도 있으면 좋죠. 그런 게 없으니까 숫자 보려고 낑낑대서 올라가고 어디 받쳐놓을 것 없나 확인하고. 또 어떤 데에는 계량기를 화단 안쪽에 숨겨놔서 여름이 되면 나뭇가지랑 수풀을 헤치고 거미줄 걷어가면서, 모기 물려가면서 봐요.
- 검침원 B씨

도시가스 검침원들이 이처럼 위태로운 곡예를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계량기 위치 때문이다. 상당수의 건물에서 미관을 이유로 도시가스 배관과 계량기가 후미진 곳에 설치돼 있다. 구석으로 숨은 계량기는 검침원들의 불편을 넘어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이다.

늘어나는 ‘부재중’, 무거워지는 발걸음

안전점검도 계량기 검침에 못지않다. 6개월 동안 3,400가구를 직접 방문해 가스누출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 더 어려울 때가 많다. 계량기 검침은 집에 사람이 없어도 가능하지만 안전점검은 집이 비어있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검침원 C씨는 “하루에 적게는 30곳에서 많게는 50곳을 점검해야 정해진 기간(6개월) 내에 할당량을 채울 수 있지만, 집에 사람이 없어 허탕을 치기 일쑤”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어떤 때에는 한 집만 10번을 넘게 간 적도 있었다”면서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평일 주간에는 빈 집이 대부분이고,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100집에서 150집을 다닌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빈 집이 많은 평일 대신 그나마 사람들이 집에 머무르는 주말에 대부분의 안전점검이 이루어진다.

아예 평일에는 계량기 검침만 하고 안전점검은 주말에 몰아서 하는 검침원들이 일부 있지만,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이려면 평일에 가능한 한 많은 집을 방문해야 한다. 직접 가보지 않는 한 집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검침원들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걸음을 재촉한다.

요즘에는 다세대 주택이 많으니까, 예를 들어서 8가구가 사는 한 빌라를 갔는데 낮에 우리가 10번쯤 가면 그 중에 두세 집 정도만 사람이 있어요. 심지어 어떤 곳은 16가구가 사는 건물인데 부재중이 아닌 집이 딱 하나 있어요. 그렇게 하고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고. 사람이 없어요. 토요일 같은 때에는 더 바빠서 저녁때까지 다녀야 하고, 나중에는 일요일에도 가야 해요. 그렇게 해야 마감이 돼요.

- 검침원 B씨

족저근막염 역시 검침원들의 크나큰 고충거리다. 족저근막염은 발뒤꿈치 근육 부위에 염증이 생겨 강한 통증을 유발하는 병이다. 실제 족저근막염에 걸린 적이 있는 B씨는 “3,400가구 검침을 끝내면 발바닥에 불이 날 지경”이라며 “그 다음 날은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의 동료인 C씨는 “만보기를 허리춤에 차고 일을 했더니 2만 걸음이 넘게 나왔다”며 말을 보탰다. 키가 160cm인 여성의 보폭을 기준으로 하면 약 13~14km의 거리를 걷는 셈이다. 계단을 수 없이 오르내리거나 언덕진 골목길을 다니고 먼 거리를 걷는 검침원들에게 족저근막염 진단은 연례행사와 다르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발목, 무릎관절 통증은 도시가스 검침원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증상이다. 가정에서 키우는 반려견에게 물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검침원들은 업무 중 발생하는 크고 작은 부상에 따른 치료비용을 스스로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시민들의 편리하고 안전한 가스 사용을 위해 늘 바삐 움직이지만 그만큼 많은 수난을 겪고 있었다. 계량기 검침과 가스 안전검검 이외에 추가적으로 주어지는 업무도 적지 않다. 구청이나 동 주민센터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 가구 실태조사나, 도시가스 배관에 설치된 가스압력 조정장치 점검도 검침원들의 몫이다. 각 가정을 방문하는 김에 부가적인 일을 같이 하면 효율적이라는 게 이유이지만 그렇다고 별도의 수당이 지급되지도 않는다. 이에 대해 검침원 C씨는 “서울시나 구청에서 건당 수수료가 따로 나오지만 우리가 손에 쥐는 돈은 한 푼도 없다”고 설명했다.

▲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도시가스분회 조합원들이 파업집회를 열고 있다.

검침원 노동환경 개선책이 급선무

검침원들은 자신들의 업무량이나 육체적 강도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서울시에서는 지난해 기준으로 검침원들의 월 급여를 163만 원으로 산정했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검침원들은 한 달에 각종 수당을 포함해 130만 원에 조금 못 미치는 급여를 받는다고 밝혔다. 여기에 기본급의 100% 비율로 지급되는 상여금을 더하면 140만 원 선에 불과하다. 최근 검침원들의 임금이 인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특히 서울도시가스(주)의 강북5센터에서는 지난 2월 1일부터 검침원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서울도시가스로부터 고객센터 업무 위탁을 받은 은평도시가스ENG 소속 노동자들로, 지난해 7월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에 가입했다. 노동조합 결성 이후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은평도시가스ENG 측과 교섭을 진행했지만, 해를 넘기면서까지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서울시는 도시가스 검침원들에 대한 임금 지급 실태에 대해 파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은 “시 차원에서 개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관조적 태도에서 한 발짝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높은 업무강도에 시달리며 매일 아슬아슬한 곡예를 감수해야 하는 도시가스 검침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여전히 많이 부족해 보인다. 당장에는 임금인상이 우선이더라도 향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